습관에 대하여: 의지가 본능이 될 때

74호 (2011년 2월 Issue 1)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DBR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그는 아버지에게 정종을 사다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전자에 정종을 담아 따뜻하게 데워 아버지에게 드릴 생각으로 그의 마음은 설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아버지는 따뜻한 정종을 즐겨 마셨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상장이라도 받은 아이처럼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아내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그는 아버지 방을 향해 유쾌하게 소리쳤다. “아버지. 정종 사왔어요. 어서 나오세요. 제가 곧 데워 드릴게요.” 그러자 아내의 낯빛이 안타까움으로 어두워진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내에게 물었지만 대꾸도 하지 않고 얼굴을 손으로 감싼다. 그는 의아해하며 아버지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는 정종을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에 행복해 하는 아버지 대신 영정 속의 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아! 아버지! 그래.…아버지는 돌아가셨지.” 정종을 손에 든 채 아버지의 빈방에서 그는 망연히 서 있었다.
 
같이 살던 가족 중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가족은 일종의 정신적 착란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물론 가족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을 안다. 장례, 매장, 49재도 다 지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6개월가량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아침 식탁에 자신도 모르게 이미 죽은 사람에게 밥과 국을 차리는 식이다. 분명 죽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는 생생한 느낌이 남아있다. 머리로는 이미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서와 행동은 이와 상반되게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프랑스 철학자 라베송(Félix Lacher Ravaisson-Mollien, 1813-1900)의 통찰이 우리의 의문에 해결의 실마리를 준다.
 
습관은 일단 형성된 후에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란 지나가 버린 것이라면, 습관은 그것의 원인인 변화를 넘어서 존속하는 것이다. 게다가 습관은 그것이 습관인 한에서 그리고 그 본질 자체에 의해 그것을 낳는 변화에만 관계될 뿐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변화에 대해 존속하는 것이다. (…) 바로 이것이 습관이냐 아니냐가 가려져야 할 표지 자체다. 습관은 따라서 단지 어떤 상태인 것만이 아니라 어떤 경향이자 어떤 능력이다.
 
-<습관에 대하여(De l’habitude)>
 
라베송은 말한다. “습관은 그것의 원인인 변화를 넘어서 존속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무슨 말일까? 여기서 변화란 외부 세계를 가리킨다. 세계의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당연히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아버지는 한 때 살아계셨지만, 지금은 돌아가셨다. 그러니 아버지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아들은 아버지와 관계하는 방식을 행동이나 정서의 형식으로 내면화했다. 이것이 바로 습관이다. 이런 습관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여전히 아들의 내면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습관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정종을 사간 것이다.
 
습관에 대한 라베송의 논의는 인간의 뇌와 관련된 최근의 과학적 연구와 부합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가장 심층에 있는 ‘오래된 뇌(old brain)’, 중간 부분에 있는 ‘중간 뇌(middle brain)’, 가장 겉에 있는 ‘새로운 뇌(new brain)’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마치 지질학에서 다루는 지층처럼 오래된 뇌가 가장 먼 과거에 형성된 것이라면, 새로운 뇌는 가장 최근에 형성된 것이다. 뇌의 전기-화학적 반응을 측정하는 f-MRA 기법을 통해 과학자들은 ‘오래된 뇌’ ‘중간 뇌’ ‘새로운 뇌’가 관장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래된 뇌’가 행동을 담당하고 ‘중간 뇌’가 정서를 관장한다면, ‘새로운 뇌’는 합리적인 사유를 담당한다.
 
지층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합리적 사유도 시간이 지나면 정서나 행동의 영역으로 이행하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습관을 설명하는 현대 뇌과학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습관은 부정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아버지가 살아있는 듯이 느끼거나 행동하는 것은 분명 습관이 가진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내면화된 습관이 현재에도 작동한다면, 우리는 현재 주어진 삶에 충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습관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우리의 사유가 정서나 행동의 영역으로 이행한다면, 우리는 별다른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무엇인가를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베송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습관은 의지적 운동을 본능적 운동으로 변형한다. 그런데 가장 의지적인 운동에서 의지가 계획하고 오성이 표상하는 것은 운동의 외적 형태와 극단만이다. 반면 공간에서의 운동과 신체운동 능력의 실행 사이에는 먼저 저항하는 중간 항들로 채워지는 중간지대가 있고, 우리는 노력 속에서 오직 그런 저항에 대해서만 어렴풋한 의식을 가진다. (…) 그런데 반복되고 지속된 노력의 양을 조절하고 우리가 도달하려는 목적에 따라 적용점을 선택하는 것으로 배운다. 그리고 동시에 노력의 의식은 사라진다.
 
-<습관에 대하여>
 
쇼팽의 야상곡, 즉 녹턴을 연주하는 법을 배운다고 해보자. 우리는 쇼팽과 녹턴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악보도 읽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라베송이 말한 “운동의 외적 형태와 극단”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녹턴을 완전히 연주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선생님이 직접 피아노를 쳐보여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의 연주는 우리에게 “운동의 외적 형태와 극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능숙하게 해야 할 목적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악보에 대한 지적인 이해와 의지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피아노 건반을 쳐야만 한다. 물론 피아노 건반이 가진 운동 메커니즘과 내 손의 운동 메커니즘이 무엇인가 삐거덕거리는 이질감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라베송은 “공간에서의 운동과 신체 운동 능력 사이에는 먼저 저항하는 중간 항들로 채워지는 중간지대가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피아노 건반을 능숙하게 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저항은 당분간 지속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의지적인 노력을 그쳐서는 안 된다. 계속 하다 보면 피아노 건반의 운동과 우리 손가락의 운동이 기묘하게 조화되는 순간이 온다. 마침내 저항이 극복된 것이다. “노력의 의식은 사라지고” 우리가 피아노와 하나가 된 것 같은 일체감을 느끼게 된 순간이며, 동시에 녹턴이 우리 내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각인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습관이다. 라베송의 말대로 “습관은 의지적 운동이 본능적 운동으로 변형된 것”이기 때문이다. 습관의 메커니즘은 쇼팽의 녹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수영이나 테니스 같은 운동에도, 시를 짓거나 철학책을 쓰는 것에도, 심지어는 타인을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경우에도 습관의 논리는 그대로 관철돼 있다.
 
우리의 동일성(identity)을 규정하는 제1의 원리가 습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미 습관이 된 것, 지금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나중에 습관으로 획득하게 될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살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새롭게 펼쳐진 삶의 환경과 우리 내면의 습관이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일치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기존 습관대로 환경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에 맞게 자신의 습관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은 선택일까? 삶의 환경이 타락했다면, 우리는 습관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반대로 삶의 환경이 더 좋아진 것이라면,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 더 탁월한 선택일 수 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우리는 미리 결정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강신주 철학자·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 contingent@naver.com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연세대 철학과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출판기획사 문사철의 기획위원,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철학 VS 철학>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상처받지 않을 권리>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