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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Planning

평판이 뭐기에…

최효진 | 64호 (2010년 9월 Issue 1)
중소 규모의 식품회사를 경영하는 P사장은 일주일 사이에 희비가 교차하는 일을 겪었다. 이 회사는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던 신제품 개발과 관련해 해외 원료구매 파트의 책임자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이 자리에 꼭 맞는 후보자 K씨가 지원을 했다. K씨는 대기업에서 구매 업무를 꽤 오랫동안 했고, 해외 유학파인데다 무엇보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원료를 직접 다루어본 경험이 있었다. K씨는 누가 봐도 두말 할 것 없는 적임자였다. 회사는 합격통보를 하고 바로 연봉협상에 들어갔다.
그런데 P사장으로서는 딱 한 가지 미심쩍은 점이 있었다. ‘이렇게 경력이 화려한 K씨가 왜 하필 우리 회사에 지원을 했을까?’하는 것이었다. 사실 K씨의 경력으로 봤을 때 이 자리는 크게 도움이 될 요소가 없어 보였다. 직급은 한 단계 올라갔지만 이전보다 연봉이나 복리후생 혜택도 훨씬 적고 업무의 범위나 권한도 오히려 줄어드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씨는 그런 부분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P사장은 최종 결정을 앞두고 필자에게 K씨를 채용해도 괜찮을지 조언을 구했고, 필자는 P사장에게 K씨에 대해 평판 조회를 해볼 것을 권했다. 그리고 얼마 후, P사장은 K씨에 대한 채용 진행을 중단했다. K씨는 이전 직장에서 구매 책임자로 있으면서 공금횡령 사건에 연루돼 불미스럽게 퇴사를 했다. 게다가 그 일의 책임을 다른 직원에게 전가하려고 해서 직원들과 갈등이 생겼고, 그 때문에 담당 임원까지 퇴사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채용 과정에서 이처럼 평판 조회로 인해 결과가 뒤집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경력자 채용 시 평판 조회를 진행하는 기업이 45%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66%는 특별히 평판 조회를 많이 하는 직무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재무회계, 영업·판매, 경영기획 등 기업의 자금이나 매출, 주요 정보 등을 다루는 직무에서는 지원자의 경력이나 능력뿐 아니라 실제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의 평가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평판 관리는 경력 관리의 일부
기업의 채용과정에 평판이 이처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직장인의 경력 관리에도 평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공적인 경력 관리에는 반드시 평판 관리가 포함돼야 한다.
박사과정 진학을 앞두고 커리어 코칭을 받았던 S씨는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공채로 입사했지만, 자신의 학벌이 동료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 자기계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의 학벌을 높여줄 수 있는 야간 대학원에 진학해 주경야독 끝에 석사 학위도 받았다. 그는 끊임없이 동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업무나 자신의 경력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박사과정을 염두에 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S씨의 일과 직장생활에 대한 만족감은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S씨는 회사 내에서 자신의 실력과 열정을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오히려 동료들과의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졌다. 성과 측면에서도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코칭 과정을 통해 S씨는 자신의 경력상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봤다. S씨에게 부족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스펙’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부족한 학벌을 채우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고 박사과정에 도전하겠다는 S씨의 계획은 이미 경력 연차가 10년을 넘어선 그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는데도 중간 정도의 성과에 머무르는 이유도 중간 관리자로서 필요한 ‘관계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력 관리’를 ‘스펙 관리’로 오인하곤 한다. 때문에 자격증을 딴다거나 무언가를 배우는 등 자기계발에 포커스를 맞추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소위 ‘학력 물타기’ 용 편입이나 대학원 진학을 시도하기도 한다. 물론 경력의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스펙 관리’도 분명 의미있는 활동이다. 그러나 직급이 올라갈수록, 경력이 쌓일수록 ‘스펙’의 위력은 점차 흐려지게 마련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스펙 관리’보다 ‘성과 관리’가 중요해지고, 나아가 ‘사람 관리(관계 관리)’가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결국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 자기 관리가 되고, 자신의 커리어 경로(Career Path)와 결합된 자기 관리가 곧 경력 관리가 된다.
경력사원 채용 시 평판 조회를 한다고 해서 평판 관리가 회사를 옮길 때에만 적용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평판은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쁜 평판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질 수도 있다. 특히 도덕성에 관한 안 좋은 평판은 커리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며 한 번 만들어진 나쁜 평판은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 평판을 ‘관리’한다는 것은 모순적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평판 자체에 신경을 쓰는 일을 평판 관리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좁은 시각이다. 평판 관리는 성과와 관계에 관한 포괄적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엇을 관리해야 하나?
대개 기업에서 평판 조회를 한다고 하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후보자의 입사서류 등에 기재된 사항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는 학력이나 경력 사항에 거짓이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때로는 신용 상태에 대한 조회를 하기도 한다.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 사건처럼 학력이나 경력을 위조하는 일이 발생하면 기업의 이미지에도 손상이 간다. 실제로 대학 중퇴를 졸업으로 기재한다거나 근무기간을 조금씩 늘려 쓴다거나 혹은 일부러 누락시켜 입사가 거절되는 지원자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기재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내용도 나중에 조회를 통해 밝혀지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둘째, 실제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평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는 성과, 이직 사유, 도덕성, 대인관계, 업무 태도 등에 대해 주변 인물들의 평을 듣는 일로, 사실 관계 확인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이다. 때로는 단순히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후보자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살펴보는 게 될 수도 있다. 반면 구체적인 역량에 관한 검증을 목적으로 할 수도 있다. 또 직업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사에 관한 내용이 포함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K씨처럼 공금횡령과 같은 재직 중 특별한 사건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진 나쁜 평판이 커리어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A씨는 매우 열정적인 임원이었다. 일에 대한 의욕과 목표가 매우 높아서 회사 내에서 그의 부서는 가장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부서 목표 달성을 앞세우다 보니 다른 부서와의 갈등과 마찰도 심했다. 직원들은 힘들어했지만 A씨는 언제나 목표보다 높은 실적을 냈고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최근 회사의 최고경영진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이 과정에서 몇몇 임원들에 대한 보직해임이 단행됐다. 그런데 A씨도 리스트에 포함됐다. 앞만 보고 달려온 A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문제는 사내 평판이었다. 실적이 좋은 건 인정하지만, 누구도 A씨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A씨가 맡은 부서에서는 유난히 퇴사자가 많이 발생했다. 동료 임원들 사이에서도 A씨는 싸움닭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새로운 경영진은 당장의 실적보다 자신들의 연착륙을 희망했기에 A씨를 중임하지 않았다.

나쁜 평판에서 벗어나기
그렇다면 이미 만들어진 나쁜 평판에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잊혀질까? 물론 시간의 효과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마냥 시간을 흘려 보낼 수는 없는 법. 더욱이 나쁜 평판이 자신의 경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면 반드시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자신에게 유리한 평을 해줄 수 있는 추천인을 찾아야 한다. 유리한 평판을 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좋게 말해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처했던 입장을 잘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자신이 선택한 방식이 최선이었음을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조직의 성과에 기여한 바를 함께 설명해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자신에게 우호적인 상사나 동료에게 단순히 “잘 부탁 드린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추천인과 충분한 미팅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바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고 공감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둘째, 객관적인 데이터를 준비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나쁜 평판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가능한 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누가, 무엇 때문에 자신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이때 문제와 감정을 분리하는 게 중요하다. 감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면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객관화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데이터들을 수집하면 된다.
실제로 회계부서 출신인 B씨는 전 직장의 기획팀 임원이었던 Y씨와 업무상 마찰이 많았다. B씨는 경력 전환을 위해 이직을 시도했고 면접까지 모두 마친 상황이었다. 그런데 B씨가 지원한 기업에서 B씨에 대한 평판 조회를 했는데, 마침 Y씨로부터 나쁜 평판을 전해 들었다. 입사가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B씨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요청했고, 전 직장의 회계부서와 기획팀의 업무 수행 구조와 양 부서 간 마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에 대한 자료들을 제시했다. 다행히 구조적인 문제가 다분하다는 점이 받아들여져 B씨는 성공적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셋째,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나쁜 평판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한다고 거짓을 말하거나 억지 주장을 하면 안 된다. 자신의 과거 경력 중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깨끗이 인정하는 편이 낫다. 단, 지금은 이를 어떻게 개선했고 이후의 경력에 어떤 형태로 발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쁜 평판이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해결책도 나오는 법이다. 나쁜 평판에 대응한다고 해서 평판 기록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력관리 측면에서 최대한 잘못된 평판을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노력이다.
인재 채용과 평판 조회
HR코리아가 276개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판 조회는 경력자 채용에서 면접 다음으로 중요한 선발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인재 선발 도구로서 평판 조회를 활용할 때는 리스크가 따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기업들은 평판 조회를 다른 전형 도구에 비해 매우 손쉬운 방식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저 지원자의 전 직장에 전화해서 물어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비용이 발생하지도 않고 특별히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차원에서 접근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실제로 평판 조회가 일상화된 미국에서는 잘못된 평판 조회 절차 때문에 법적 분쟁이 발생한 사례도 있다.
인재 선발 도구로서의 평판 조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평판 조회에 지나치게 의존해 채용이나 승진, 인사이동의 결정적인 기준으로 여기는 데 있다. 사실 평판은 그 사람을 설명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또한 평판이라는 것은 ‘그 사람 자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속한 환경 속에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평판의 내용을 100%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실컷 서류 전형과 몇 차례의 면접을 거쳐 판단했던 내용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의 말 한 마디로 손바닥 뒤집듯 뒤집힌다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물론 결정적인 문제를 발견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평판은 참고자료 정도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인재 선발 도구로서 평판 조회를 활용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평판 조회에 대한 ‘구조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무엇을 조회할 것이고, 누가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조회할 것인지가 미리 정해져 있어야만 평판 조회 과정에서의 편향(bias)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질문 내용과 응답 내용에 대한 판단 기준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개인정보 및 지원 내용에 관한 보안 등에도 미리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외부 용역을 이용해 평판을 조회하기도 한다.
최근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청문회는 후보자의 공적과 성품, 개인사를 비롯, 일에 대한 외적·내적 준비 상태를 확인하는 공식적인 평판 조회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인사는 청문회의 스타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인사는 경력에 오점을 남기며 낙마하기도 한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경력의 여러 지점에서 마주치게 되는 자신에 대한 평판을 자신의 목표를 조준하는 활시위로 만들 것인지, 자신을 공격할 화살로 만들 것인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경력 관리를 위해 앞으로 달려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주변을 살피며, 무엇보다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게 좋은 경력관리의 초석이다.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직장인들이 ‘과연 내가 경력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인재 채용 및 경력 계발 전문 업체인 HR코리아는 실제 현장에서 체험한 일대일 코칭 사례를 토대로 경력 관리 수준 측정 및 개선 방안 등을 제시합니다. 직장인 및 전문가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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