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조선 왕조 500년 옛사람의 정신을 지배했던 것은 무엇일까? 서원이나 종갓집 등을 돌아다니다보면 건물마다 현판이 걸려 있게 마련이다. 이 현판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신이 지향하던 정신의 경지를 표현했던 글귀가 새겨있다. 그 중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쇄락(灑落)’이란 한자어일 것이다. 이 말은 한 여름 무더위에 텁텁하기만 한 마당에 물을 뿌렸을 때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상쾌함과 시원함을 의미한다. 사실 이 쇄락이란 말을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라는 중국 송(宋)나라 때의 시인이다. 동시대 철학자 주돈이(周 敦 頤, 1017∼1073)를 존경한 그는 “용릉주무숙(舂陵周茂叔), 인품심고(人品甚高). 흉회쇄락(胸懷灑落), 여광풍제월(如光風霽月)”이란 시를 쓰게 된다. “용릉 땅에 살던 주돈이 선생은 인품이 매우 놓았네. 그 마음이 쇄락하여 마치 비갠 뒤의 바람과 달과 같았네”란 뜻이다.
한자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쇄락’ 말고도 ‘광풍제월’이란 한자어도 많이 접했을 것이다. 깊은 밤 오랫동안 내리던 비가 멈추고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매만질 때, 맑게 빛나는 달을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광풍제월’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온갖 시름과 고뇌가 씻은 듯이 사라져 맑아진 마음 상태를 ‘쇄락’이나 ‘광풍제월’에 비유했던 것이다. 성리학(性理學)은 바로 인간의 마음을 쇄락이나 광풍제월의 경지에 이르게 하려는 학문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주자학이 이기(理氣), 혹은 성정(性情)과 같은 형이상학적 논쟁에만 매몰된 사변적인 학문 경향이었다고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런 형이상학적 논쟁은 모두 탁한 마음과 맑은 마음을 구별하려는 데 뜻이 있었다. 기(氣)나 정(情)이란 개념이 평범한 사람의 탁한 마음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면, 이(理)나 성(性)은 성인(聖人)의 마음처럼 완전히 맑은 마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희(朱熹, 1130∼1200)에게 진정한 학문의 길을 밝혀주었던 스승이 한 명 있다. 바로 연평선생(延平先生)이라고 불렸던 이통(李㣚, 1093∼1163)이다. 주희의 아우라가 강해서인지 이통의 이름을 지금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통이란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주희는 진정한 학문의 길이 ‘쇄락’과 ‘광풍제월’로 상징되는 맑은 마음을 갖는 데 있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주희가 이통의 가르침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은 책이 한 권 있다. 늙은 스승이 죽자마자 주희는 스승과 주고받았던 서신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는데, 그것이 바로 주희 나이 34세 때 완성한 연평답문(延平答問)이다. 자신이 스승으로부터 배웠던 것, 그리고 배우기는 했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스승의 금과옥조의 가르침을 가슴에 아로새기려는 노력이었다. 이통은 청년 주희에게 성인(聖人)이 되라고 가르쳤다. 아울러 그는 마음이 쇄락의 경지에 이를 때, 성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 제자에게 보내는 이통의 가르침을 직접 읽어보자.
일찍이 저는 “사태를 만났을 때 고체(固滯)가 조금도 없다면, 곧 쇄락(灑落)의 경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이 마음이 확연히 크게 공정해져 남과 나라는 편벽되거나 치우친 생각이 없게 되면, 아마도 도리에 대해 하나로 꿰뚫게 될 것입니다. 가령 일에 당해 꿰뚫지 못하여 마음속에 편벽되거나 치우친 바를 조금이라도 벗어나지 못한다면, 곧 고체(固滯)와 관련된 것이니 모두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연평답문(延平答問)
이통에게 ‘쇄락(灑落)’은 딱딱하게 막혀 정체된 ‘고체(固滯)’의 상태와 대립되는 마음 상태를 묘사하는 개념이다.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근원적인 비유는 ‘얼음’과 ‘물’이었던 것 같다. ‘얼음’은 딱딱하고 정체되어 있어 타자와 부딪칠 수밖에 없다. 반면 ‘물’은 무엇을 만나든 간에 그것에 맞추어 자신의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얼음’과 같은 마음이 ‘고체’ 상태에 있는 마음이라면, ‘물’과 같은 마음은 바로 ‘쇄락’ 상태에 있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네모난 얼음이 있고, 둥근 그릇이 하나 있다고 해보자. 여기서 ‘네모남’은 이 얼음의 고착된 자의식을 상징한다. 만약 이 얼음이 둥근 그릇과 소통하려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네모남과 둥긂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억지로 네모난 얼음과 둥근 그릇을 소통시키려 한다면, 네모난 얼음이 파괴되거나 아니면 둥근 그릇이 찌그러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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