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코너를 도는 12가지 방법 (6)

역사 속 천재의 생각을 훔쳐라

38호 (2009년 8월 Issue 1)

세계적인 비교종교학자이자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에서 2년간 공부하다 1919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그때 바로 대공황이 시작됐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절이었고 그 역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이때 그는 평생을 좌우할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반의 생활을 따라 해보는 것이었다. 그는 우드스톡이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그리고 5년 동안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섭렵했다.
 
 
 
고독한 ‘지적 모방’의 즐거움
캠벨은 독특하며 매력적인 방법으로 책을 읽어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저자 하나를 골라 그 사람의 저서들을 씹어 먹듯 읽었다. 그렇게 한 저자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파고 나면, 그 저자가 중요하게 인용한 다른 사람의 책으로 넘어가 지적 모험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는 마치 한 저자가 다른 저자를 소개하고, 그 저자는 또 다른 저자로 연결되는 것과 같았다. 캠벨은 이렇게 독서를 통해 가장 뛰어난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자신을 흠뻑 적시는 일을 5년 동안 계속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현실을 꿈으로 채워갈 수 있었다. 그의 겨드랑이에서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절 캠벨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그는 1달러 지폐 하나를 벽에 걸어두고, 그 돈이 없어지지 않는 한 자신은 돈이 다 떨어진 빈털터리는 아니라고 자위했다. 5년 동안 그는 3가지 신조를 갖고 버텼다. 첫째, 다음 날 무엇을 먹을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둘째,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실용성을 묻지 않는다. 셋째,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미래에 대한 모든 걱정을 잠재우고, 고독한 지적 모방과 배움으로 자신을 가득 채웠다.
 
이 기간 동안 캠벨은 독서를 통해 기초적 공부를 마칠 수 있었고, 우드스톡을 나온 후 사라 로렌스대 교수로 초빙됐다. 그 후 그는 세계적인 학자이자 가장 창의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인생을 즐길 수 있었다. 캠벨의 인생은 우드스톡에서의 5년이라는 풍부한 저수지를 거쳐오는 동안에 결정됐다. 그는 과거를 모방하는 것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창의성의 원천은 과거의 지적 유산
글 쓰는 작가로 생활하고 있는 필자가 조셉 캠벨의 일생 중에서 가장 놀라워하면서도 부러워하는 것은 그가 젊었을 때 우드스톡에서 보낸 5년의 시간이다. 필자는 ‘나도 내 젊음의 시절에 그렇게 멋지게 인류의 유산에 흠뻑 젖는 고독한 고요와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도약을 위해 매우 중요한 실천 강령 하나를 얻을 수 있다. ‘과거와 싸우지 마라. 먼저 과거의 유산을 상속받으라. 부끄럼 없이 훔쳐 모방함을 반복해 먼저 과거의 정점에 서도록 하라. 미래의 풍경은 그 산 너머에 있다.’ 종종 우리가 고전(古典)을 읽다 보면 고풍 어린 가옥들이 있는 어렴풋한 과거의 저잣거리를 걷게 된다. 이런 퇴색하고 먼지 쌓인 풍광들을 보는 것이 어떻게 미래를 보는 데 기여하는 것일까? 과거는 어떻게 미래의 가장 첨예한 부분에 닿을 수 있는 것일까?
 
몸으로 할 수 있는 동작에서 가장 창조적 실험자 중 한 명인 마사 그레이엄은 자신의 창조성이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도둑이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다. 나는 플라톤과 피카소, 베르트람, 로스와 같은 최고의 인물들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그것들을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그것들이 나만의 재산이 아니며, 내가 물려줘야 할 유산이란 것도 알고 있다.”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은 그 창의성의 원천이 과거임을 알고 있다. 그들은 과거를 거부하지 않는다. 또한 과거 속에 소중한 인류의 유산이 들어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와 싸우지 않고 그 소중한 유산을 먼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다. 가장 현명하게 배우는 사람은 ‘양심의 가책 없이 훔친다’는 말을 자신의 신조로 삼는다. 그래야만 그는 ‘과거를 넘어서는 창의성’을 가질 수 있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많은 사례들이 보여준다. 필자가 알고 있는, 창의성에 가장 근접한 정의는 ‘연결되지 않는 것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이런 창조적 힘은 역설적으로 과거를 존중하는 정신적 태도로부터 나온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창조적인 인물들이 활동했던 때가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라파엘로는 그 시대 창의성의 상징적 인물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르네상스가 그리스 시대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르네상스는 ‘신의 세계’인 직전의 중세시대와는 결별하고, 먼 과거인 그리스의 ‘인본주의 사상’으로의 회귀를 표방한다. 가장 창조적인 인류의 한 시대가 과거의 부활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상징적인 시사점을 준다. 즉 가장 새로운 탄생은 ‘거듭남’이며, 죽음이야말로 새로운 삶의 완성이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야 수백 개의 밀알이 생겨나는데, 그 생명의 근원인 하나의 밀알이 뿌리를 내리는 토양이 바로 과거라는 말이다. 과거의 내 인생에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를 모른다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근원을 알 수 없다. 인류의 과거 업적을 익히지 못한 시대는 과거를 넘어서기 어렵다.
 
과거로부터 배워야 미래를 창조한다
필자를 찾아오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의 고민은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고민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일이 아니다’라는 하소연이다. 그들은 지금 하는 일이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지루해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먹고 살기 위해 그 일을 쉽게 그만둘 수는 없지만, 비전이 없는 일을 매일 해야 하는 답답함이 견디기 어렵다는 말이다. 필자 역시 오랫동안 그런 고민에 빠져 있었고, 그 무력감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한 적이 많았다. 필자는 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그들이 필자에게 답답함을 호소할 때, 필자는 그들에게 늘 곤란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 그러면 뭘 하고 싶은데?” 필자 역시 ‘지금의 삶이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면 내 삶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멍하니 서 있곤 했었다. 그러다가 알게 됐다. 그 이유가 나의 어리석음과 용기 없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 질문들을 절대로 버리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현재를 살며, 미래의 희망을 향한다. 종종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과거에 눌려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과거의 덫에 걸린 것이다. 그들의 현재는 과거를 뛰어넘지 못한다. 과거에 의사가 되고 싶어 했던 한 남자는 아직도 의사가 되지 못한 지금의 삶이 초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의사가 되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겨냥해 총질을 하는 형국이다. 과거는 그 꿈을 이뤄주지 못한 현재를 탓하고, 현재는 과거의 무능과 게으름을 탓하며 지금의 초라함에 대한 책임을 과거에 떠넘긴다. 과거는 교훈이 되지 못하고, 현재에 어두운 그림자만 더하는 불운과 모멸로 남는다. 이래서는 어떤 도약도 불가능하다. 오직 과거로부터 배우고 통찰을 얻을 때, 인간은 과거라는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이것이 역사를 배우는 의미다.
 
과거로부터 배운다는 것의 의미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개인적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의 유산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의 체험과 통찰을 배우는 것이다. 개인적 체험은 직접적이고 그 느낌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거나, 눈물이 흐르거나, 입이 벌어지는 행복감에 젖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와 눈빛 하나에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깊이는 이 체험에서 나온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겪는 일은 발생할 수 있는 무수한 사건들 중에서 내게 일어난 일부의 사건일 뿐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무수한 사건들은 다른 사람들의 체험을 기록한 내용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때 문사철(文史哲)로 대변되는 인문학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문학은 인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다. 역사는 그동안 인류가 겪은 사건들에 대한 기록과 해석들이다. 철학은 수없이 많은 현상들에 대한 인류의 생각들이다. 따라서 독서는 체험의 확장을 가져온다.
 
과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건강한 미래에 다다를 수 없다.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치열하게 고뇌했을 그 문제들을 이해해야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있다. 처음 보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초심자처럼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일을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며 사는 인생은 초라하다. 그런 사람은 그럭저럭 어떻게 살긴 하겠지만, 한 번도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을 갖고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면, 무수한 과거의 사례를 탐색하고 훔치고 모방하고 변용해 새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이때 나를 억압하는 괴물을 무찌를 수 있는 무장을 갖추고, 나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위해 대범한 한 발을 옮기게 된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