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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성찰의 작가 신경숙

“사람이… 세상이… 영감을 줘요”

신성미 | 33호 (2009년 5월 Issue 2)
그녀는 자기가 몇 살인지 잊고 사는 듯했다. 기자와 첫인사를 나눈 그녀가 대뜸 몇 년생이냐고 물었다. 기자가 1983년생이라고 말하자 “나랑 열 살 차이구나”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녀는 1963년생이다. 스무 살 차이라고 고쳐줬더니 그제야 “야, 나 참 나이 많이 먹었구나!” 하며 놀랐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왜 그녀가 나이를 잊고 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가인 그녀는 자신의 실체인 ‘40대 여성’으로 붙박여 살지 않는다. 그녀는 소설을 쓸 때 주인공 혹은 주인공의 친구가 된다. 청초한 20대 여성이 됐다가 양복 입은 50대 아저씨로도 바뀐다. 그냥 등장인물인 척하는 게 아니다. 삶 전체를 송두리째 헌납한다.
 
4월 2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소설가 신경숙을 만났다. 그녀는 최근 ‘엄마’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 어려운 현실이 가족으로의 회귀본능을 자극한 걸까. 작년 11월 출간된 그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약 6개월 만에 70만 부나 팔렸다. 인터넷의 독자 리뷰 코너에는 이 소설을 읽고 쓴 참회의 글들이 넘쳐난다. 서울역에서 실종된 엄마의 흔적을 자식들과 남편, 엄마 본인의 시선으로 추적한 스토리가 수많은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침체 일로를 겪고 있는 출판계에서 이례적인 밀리언셀러 탄생이 기대되고 있다.
 
문학계에서 전혀 새롭지 않은, 오히려 지극히 진부한 소재인 ‘엄마’라는 재료로 어떻게 이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가장 새로운 것은 가장 나답게 쓰는 것
신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에서 문학 역사상 유례없는 창조적인 실험을 했다. 각 장을 큰딸, 큰아들, 남편, 엄마 본인의 시점으로 서술하면서 호칭은 ‘너’ ‘그’ ‘당신’ ‘나’ 등으로 썼다. 이를테면 ‘엄마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너는 언제 알았을까’(21쪽)라는 문장은 독자를 직접 겨냥하는 말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처음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여기 빈 책상 위에 표지도 없고 제목이나 저자 이름도 없는 책이 떨어져 있는데, 누가 지나가다가 그 책을 주웠다고 해보세요. 그 사람이 책을 몇 페이지 읽어보고는 “아, 이건 신경숙 소설인데!”라고 알아볼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게 새로움이라고 생각해요. 인류 역사가 이렇게 오래 진화해왔는데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과연 있을까요? 그래서 오히려 가장 새로운 것은 가장 나답게 쓰는 거예요. 이 세상에 나는 나 혼자뿐이거든요.”
 
그녀의 문체도 창조적 실험의 결과물이다. 주로 현재형 시제를 사용하며 섬세하면서도 물 흐르는 듯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말줄임표와 쉼표를 많이 사용해 호흡을 조절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큰오빠는 전철역이 있는 3공단의 주택가에 세를 얻어놓은 방으로 외사촌과 나를 데리고 간다. 아직도 그 집이 있을는지. 떠나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집, 그 집의 방들. 그 집이 아니라, 그 방이 아니라, 그 근처에조차 다시 가지 않았지만, 잘 보관한 사진처럼 선명한, 이렇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집, 그 집의 방.’(<외딴방> 46쪽) 이런 문체는 독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신 작가의 개성 있는 문체는 국문학의 연구 대상이다.
 
진부한 캐릭터도 그녀의 소설 속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보통 명성황후는 강인한 여성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녀의 장편소설 <리진>에서 묘사된 명성황후는 알고 보면 외롭고 연약한 여인이다. 단편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의 주인공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성은 다른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너무나 착한 캐릭터다. 유부남의 딸까지도 사랑하는 천사 같은 모습이다. 뻔한 소재를 완전히 낯설게 하는 그녀만의 차별화 노하우는 무엇일까. 인간의 양면성을 탐구하고 기존 통념을 뒤집어보는 실험적인 사고가 그 원천이다.
 
“우리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주 모범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뒤집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는 누구에게나 지탄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춰봤어요. 대신 균형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 사람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 다른 가치관이나 통념을 아예 허물어뜨리지는 않았어요. 그게 아주 보편적인 것을 새롭게 하는 관점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거꾸로 가기
그녀는 한 작품을 마치고 나서 새 작품을 시작할 때까지가 가장 두렵다고 고백했다. 글쓰기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가졌지만 백지 상태에서 뭔가를 창조해내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그녀는 스펀지 같은 흡수력으로 공포를 극복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고 한다.
 
“뾰족한 방법이 없구요. 다만 뭔가 느끼고 받아들일 때 자기만의 기준을 너무 뚜렷하게 세우는 것은 좋지 않아요. 마음속에 이미 어떤 이념이 확고히 서 있으면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거든요. 항상 열려 있는, 나와 완전히 반대에 있는 세계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죠. 그게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영화, 그림, 사진, 노래 등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기 위해 애쓴다. 이런 점에서 신 작가는 통념적인 예술가와 다소 차이가 있다. 예술가들에게 흔히 붙는 ‘자기만의 세계’ ‘괴짜’ ‘아집과 독선’ 같은 수식어가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설은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작가 자신은 “내 소설은 존재론적 근원에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트렌드를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지금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는 세대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세상의 중심일 뿐 아니라 신 작가 자신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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