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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역사

격변기, 개선만으로 역부족… “방식을 바꿔라”

서광원 | 376호 (2023년 0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살아가는 환경이 완전히 바뀌는 격변기에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방법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생존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방법과 방식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다. 어떤 문제에 대한 일시적이고 개별적인 해법이 방법이라면 방식은 이런 방법들을 일련의 순서로 정렬하거나 배치해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이다. 방식 전환이 좀 더 전면적인 혁신인 셈이다. 자연사의 변곡점에서 새 시대의 지배자로 거듭난 주인공들도 모두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 이들이다. 5억4000만 년 전 등장한 ‘눈(eye)’. 3억6000만~3억7000만 년 전 등장한 ‘다리’처럼 말이다. 대전환의 시대에는 지금까지 해오던 걸 열심히 하는 정도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근본적인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페이팔과 테슬라로 결제 시스템과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은 일론 머스크처럼 말이다.



감옥이란 곳은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작은 세상이지만 여느 곳과는 사뭇 다른 속성을 갖고 있다. 죄와 벌이 강하고 거칠게 직접 부딪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20년을 살면 어떻게 될까? 평범한 수감자들이라면 죄를 더하거나 더는 것에 그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자신을 완전히 다르게 변화시킨 사람도 있다. 고립을 이용해 자기만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다. 오랜 수감 생활 동안 공부에 매진해 순도 높은 세상의 이치를 터득했던 고(故) 신영복 선생이 좋은 예다.

물론 과정이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그는 사실 수감 초기 왕따 신세였다고 스스로 털어놓은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해서다. 나중에야 원인을 알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분석하는 습관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1

다행히 그는 바깥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걸 빨리 깨우친 덕분에 ‘자기 개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들을 분석하는 대신 인정하고 존중하자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떠한 죄를 짓고 감옥으로 들어온 사람을 보면 그가 처했던 똑같은 상황에 자신이 놓아봤다. 나라면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사고의 중심을 바꿨고 나아가 가슴에서 발에 이르는 사고의 확장을 시도했다. ‘가슴’이 인정과 공감이라면 ‘발’은 실행을 의미한다. 신영복 선생은 몸을 쓰면서 기술을 배우는 ‘건강한 노동’으로 옷과 구두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왕따를 벗어난 것은 물론 양화공 반장을 3년 넘게 할 수 있었고, 감옥에서의 20년이라는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이뿐인가? 세상의 이치 또한 터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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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아니라 기후가 바뀌면 변신이 필요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고, 사막에 가면 사막에 맞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느리게 흐르는 강에서는 여유롭게 노를 저어도 되지만 급류에서는 달라야 하듯 주어진 환경에 맞는 적응력을 길러야 한다. 살아가는 환경이 완전히 바뀌는 격변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아니라 기후가 바뀐다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단순한 변화를 넘어 변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생존이 흔하고 멸종이 드물다고 생각하지만 생명의 역사를 보면 반대다. 멸종이 흔하고 생존이 드물다. 아니, 사실 생존은 예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는 건 쉽지만 사는 게 어렵고, 잘 살아가는 건 더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지구에 출현한 생명체 중 99.9%가 멸종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 수치는 개체 수가 아니라 종(種)이다. 하나의 종은 대체로 넓은 지역에서 수많은 개체로 살아가는데 이런 종 전체가 사라지는 일이 흔하다는 건 멸종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종이 멸종하면 그 유전자는 완전히 사라진다.

이런 멸종은 특히 격변기에 두드러지는데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만큼 생존력을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격변이란 생존의 규칙이 빠르게, ‘완전히’라고 할 정도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러면 그때까지 유리했던 장점일수록 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에는 두꺼운 털옷을 많이 껴입을수록 좋지만 여름 날씨가 되면 지옥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옷이야 벗고 입을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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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현재 육상동물 중 가장 거대한 코끼리보다 두세 배나 컸던 매머드들을 비롯해 추운 빙하기 때 덩치와 두툼한 털을 장착했던 거대한 동물들이 이렇게 사라졌다. 그들이 적응했던 빙하기가 갑자기 끝나버렸던 것이다. 차량이 클수록 회전 속도가 느려지는 것처럼 덩치가 클수록 새로운 능력을 장착할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생명의 역사에는 격변기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이전 환경에 적응을 잘한 생명체일수록 갖고 있던 장점을 버리기가 쉽지 않아 역설적으로 멸종 1순위가 된다. 오랜 시간 생존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능력이라 선뜻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는 뇌가 가장 발달한 우리 인류도 몸에 착 달라붙은 습관 하나 버리기 힘든데 본능이 강한 동물들은 말할 것도 없다.

몸집이 작을수록 격변기에서의 생존율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쉽게 숨을 수 있고,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으며, 그렇기에 적게 먹어도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렇게 위기를 통과한 후 좋은 시절이 오면 번성을 시작한다. 다양한 종으로 확산하면서 덩치를 키운다. 연구에 의하면 격변기 후 번성한 생명체의 70% 정도가 이런 유형에 속한다.2 특히 혹독한 위기일수록 덩치 큰 상위 먹이사슬의 붕괴 비율이 높기 때문에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아 덩치 키우기도 쉽다. 한마디로 위기에는 작아지고 기회에는 커지는 것, 대멸종 같은 격변기에서 살아남아 번성하는 생명체의 특성이다. 지난 371호 ‘더 나은 방법은 항상 있다’에서 말했던 잠자리 같은 곤충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특성을 본질적으로 보면 방법이 아니라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방법과 방식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다. 어떤 문제에 대한 일시적이고 개별적인 해법이 방법이라면 방식은 이런 방법들을 일련의 순서로 정렬하거나 배치해서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Process)을 바꾸는 것이다. 이런 방식 전환은 환경 변화의 폭과 깊이가 클 때 자주 나타나는데 물론 이유가 있다.

변화가 크다는 건 이전 환경과 달라지는 게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폭의 개선으로는 적응력을 확보할 수 없다. 한국에서 기후가 완전히 다른 알래스카로 이민을 갔을 때, 몇 가지를 바꾸는 정도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럴 때 필요한 게 방식 전환이다. 살아가는 과정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생존의 기준이 변할 때는 개선 정도로는 돌파구를 열 수 없다. 문제가 다르면 해결책이 달라야 하고, 환경이 바뀌면 해결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시대의 주인공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생명의 역사에 나타난, 한 시대를 풍미한 주인공들 역시 그랬다. 그들이 주인공이 된 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생존 방식을 만든 덕분이었다. 5억4000만 년 전쯤 출현한 눈(eye)이 좋은 예다.

지구에서 생명이 시작된 건 36억 년 전이지만 이 생명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에서 눈에 보이는 동물로 나타나기 시작한 건 6억여 년 전 바다에서였다. 상당한 시간의 축적 덕분에 다양한 생명체가 등장할 수 있었고 5억 년 전 중반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폭발하듯 나타나는 캄브리아기 대폭발까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입’이 많아지다 보니 생존 경쟁의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더 잘 살아가려는 수요가 갈수록 치솟은 것이다. 이때 나타난 게 바로 눈이었다.

사실 이때까지 생존은 운이었다. 이리저리 다니다가 먹을 게 걸리면 조금 더 살아갈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져야 했다. 하지만 눈이 생겨나면서 이런 방식은 구시대 유물이 됐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눈과는 거리가 먼,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아주 원시적인 겹눈이었지만 맹목적으로 돌아다니는 것과 시시각각 먹잇감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건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운이 아니라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무작위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돼 에너지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번성은 당연한 것이었고, 세상은 곧 눈을 가진 생명체와 그러지 못한 쪽으로 나뉘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동물이 눈을 장착했다. 스마트폰이 나오자 모두 필수품화했던 것처럼 눈 역시 이 시대 생존의 조건이었다.

눈의 출현은 생존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로 반향이 컸다. 모든 걸 운에 맡기며 이리저리 느긋하게 돌아다니던 삶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눈이 생겨나면서 삶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됐고 생과 사는 누가 먼저 보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방향과 속도가 삶을 좌우했다.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고생대를 대표하는 삼엽충 역시 이 눈을 통해 이 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화석에 나타나는, 눈을 가진 최초의 동물인 이들은 이 새로운 핵심 경쟁력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해 무려 3억 년을 넘게 살아갔다. 우리 인간 호모사피엔스가 살아온 기간이 약 30만 년쯤 되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까지 올라가도 600만 년 정도니 실로 어마어마한 장수를 누린 것이다.

달리는 다리의 출현

생명사의 격변기에 볼 수 있는 생존의 해법 첫 번째가 작아지는 것 같은 축소 방식으로의 전환이고, 두 번째가 이렇듯 이전에 없던 능력을 만드는 새로운 방식의 창출이다. 세 번째는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대폭 진화시켜 용도가 다른 새로운 방식을 창안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척추동물의 다리다.

척추동물의 다리가 이 세상에 생겨난 건 고생대인 3억6000만~3억7000만 년 전쯤이다. 당시 수중 생태계는 이미 경쟁이 치열해진 상태이기도 했지만 대기 중 산소 비율이 낮아지면서 물속의 산소 비율(용존 산소량) 역시 낮아져 환경이 악화되고 있었다. 이때 아무도 없는 텅 빈 육상 공간을 개척한 양서류 조상들이 만든 게 바로 사지(四肢), 그러니까 네 다리다. 뼈가 있는 지느러미를 진화시켜 땅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무리 있는 것으로 만든다 해도 단순한 개선 수준을 넘어 차원이 다른 새로움을 장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지고 있던 뼈를 더 강하게 하거나 몇 개 더 만든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걸을 때 원활하게 움직이려면 뼈와 뼈끼리 연결하는 게 아니라 뼈와 뼈 사이를 살짝 뗀 상태에서 근육과 관절을 통해 연결해야 한다. 아마 이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걸 알아내는 데 수많은 시간과 시도가 투입됐을 것이다.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만들어보는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이다. 이뿐인가? 걸을 때 머리가 흔들리지 않아야 하니 목도 만들어야 했고, 잘 걷기 위해 발가락도 만들어야 했다. 한두 곳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는 방식을 거의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바꿔야 했다. 얼마 전 미국 민주당 대선 출마를 선언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가 고령인 바이든 대통령을 의식해 선보인 팔굽혀펴기 역시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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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네발 동물인 양서류의 다리가 물속을 헤엄치는 형태를 상당 부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롱뇽이 걷는 걸 보면 다리를 마치 노 젓는 것과 비슷하게 움직인다.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움직이듯 몸통 옆에 있는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느리기도 하고 오래 걸을 수도 없다. 옆으로 뻗은 다리가 몸통을 받쳐야 하니 힘은 드는데 속도가 나지 않아서다. 혹시 이해하기 쉽지 않다면 엎드려서 기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팔다리를 몸통 아래에 두지 말고 가능한 옆으로 뻗어 기어 보는 것이다. 금방 땀이 비 오듯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물과 육지 양쪽에서 살기에는 이런 구조가 좋다.

이후에 나타난 시대의 주인공들 역시 이를 한 차원 더 진화시켜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냈다. 파충류와 포유류가 그들인데 파충류인 도마뱀은 걸을 땐 도롱뇽처럼 엉금엉금 기는 듯하지만 달릴 때는 다리를 몸통 아래쪽으로 이동시킨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젓는 형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구조라 어느 이상 속도를 내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 네 다리 중 세 다리가 삼각대처럼 몸을 지탱해줘야 다리 하나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러지기 쉬운 데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몸통까지 같이 움직여야 하기에 이런 움직임이 폐를 압박한다. 보행과 호흡을 동시에 할 수 없다. 도마뱀이 달리다가 멈추곤 하는 이유다.

최선이 전부는 아니다

포유류는 새로운 주인공답게 이 단점을 상당 부분 극복한 구조를 개발했다. 폐를 압박하지 않게끔 다리를 자동차 바퀴처럼 몸통 아래쪽에 위치시킨 것인데 덕분에 훨씬 빨리 달릴 수 있었다. 같은 다리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는 이런 사례는 진화에 종종 나타난다. 이런 새로운 방식들이 대체로 대멸종 같은 혹독한 환경이 닥쳤을 때 출현한 것도 생명의 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패턴인데 이유는 두 가지다. 앞에서 말했듯 기존의 주인공들이 바뀐 환경에 맞는 적응력 개발에 느리게 대응하는 게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이전과 달라진 환경이 된 공간에서 다른 생명체들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돌파구를 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방식의 전환을 통해 가장 큰 효과를 본 건 우리 인류, 호모사피엔스다. 우리 인류 역시 생존의 고비 때마다 새로운 생존 방식을 만들어낸 덕분에 그 어떤 생명체보다 빠른 시간에 전무후무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600만 년 전, 기후변화로 숲이 사라지고 초원이 늘어나고 있을 때 영장류 중 유일하게 숲 생활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초원으로 진출한 것이 그렇다. 7만4000여 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토바 화산 폭발로 기후가 급변해 생존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상황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언어를 개발하고 협력 전략을 강화했다. 이때 살아남은 인류는 모두 합쳐 봐야 2000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1만2000여 년 전 환경이 급격하게 변할 때 농경으로 전환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농경생활로의 전환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영향이 크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중동 지역은 1만3000여 년 전까지 성경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과 황무지뿐인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야생동물이 가득한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류가 이곳을 기반으로 전 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3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않는 법, 마지막 빙하시대가 끝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초원이 숲으로 변하자 동물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앞에서 말한, 코끼리보다 두세 배나 컸던 매머드, 역시 지금의 들소보다 훨씬 컸던 들소와 지금의 들소만큼 컸던 사슴들이 자취를 감췄다. 몸집이 작은 사슴과 가젤들은 뿔뿔이 흩어져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을 사냥하고 살았던 인류에게도 그 여파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살기 좋았던 시대를 거치며 인구가 급증한 탓에 더 그랬다. 인류는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아마 다들 더 열심히 사냥하고 채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형 동물은 보기 힘들어졌고 채집도 시원찮아졌다. 왜 더 열심히 노력했는데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을까? 이런 상황에서 ‘더 열심히’는 그렇지 않아도 줄어들고 있는 자원을 더 빨리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선이라는 걸 항상 좋은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최선을 다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최선을 하는 바람에 상황을 악화시켜버린 것이다.

다행히 인류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들판에 자생하던 풀들 중에서 생산성이 좋은 걸 직접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밀과 보리 같은 농업의 시작이었다. 동물도 그렇게 가축화했다. 사냥하거나 채집하지 않고 키웠다. 방식을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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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성공 비결은 방식 전환

생명의 역사에 나타나는 이런 패턴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이런 방식의 전환이 지금도 시대의 주인공이 되는 지름길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세계사를 바꾼 인물들만 봐도 그렇다. 역사상 최초로 대륙을 넘어선 거대한 제국을 일궜던 알렉산더 대왕의 승승장구는 그리스군 특유의 중무장 보병과 기병대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결과였다. 밀집 대형의 중무장 보병이 적의 주력 부대와 맞서 싸우며 그들을 붙잡아 두는 동안 빠른 기병으로 적의 측면이나 비어 있는 심장부를 치는 게 그리스군의 전매특허였다.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정복했던 칭기즈칸은 보병이 없는 전군 기마병으로, 그것도 한 기마병이 말 두 세필을 번갈아 탄다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들이닥쳐 허를 찔렀다. 알렉산더 대왕을 흠모했던 나폴레옹은 대포를 기마병처럼 사용했고, 적에게조차 존경을 받았던 독일의 로멜 장군도 칭기즈칸처럼 적이 생각하는 속도를 넘어선 덕분에 승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사업가 일론 머스크 역시 그렇다. 그가 벌였던 사업이나 벌이고 있는 사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가 처음 시작했다가 매각했던 페이팔은 새로운 결제 방식을 만들어 냈고, 현재 진행 중인 전기자동차 테슬라 역시 기존과 다른 방식이다.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자동차에 컴퓨터를 장착하는 방식이라면 테슬라는 컴퓨터에 바퀴를 다는 방식이다. 기존 회사들이 하드웨어 중심이라면 테슬라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이다. 휴대전화처럼 무선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어 굳이 정비업소 같은 곳을 가지 않아도 된다. 원가 절감을 통해 가성비를 높이는 게 아니라 소유자가 차를 가진 동안 들이는 비용을 줄이는 것으로 가치를 높이고자 한다. 로켓을 재사용하는 우주 개발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핵심 역량은 기술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내는 방식 전환이다. 새로운 미래는 방식 전환에서 시작한다는 걸 아는 것이다.

사실 습관 바꾸기나 혁신이 어려운 것도 이것이 방식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혁신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개 지금까지 말한 3가지 방식 중 하나일 때가 많다. 방법 몇 개를 바꾸면 되는 게 아니라 일련의 과정 전체를 바꿔야 하기에 쉬울 수가 없다. 이 중 하나만 잘못돼도 모든 게 틀어질 수 있는 데다 모든 것이 연결돼 있기에 누군가의 이점, 누군가의 기득권이 흔들리거나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 반발과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방식이란 보이는 구조(frame)만이 아니라 일을 하는 방식 같은 보이지 않는 구조까지 포괄하는 것이라 더 그렇다. 포토샵과 PDF 파일 등으로 유명한 어도비가 제품을 개별 판매에서 구독으로 바꾸고자 했을 때 엄청난 저항이 있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어도비가 지금 앞서가고 있는 건 이런 저항을 이기고 일찌감치 선도적인 방식을 장착한 덕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전환의 시대에는 지금까지 해오던 걸 더 열심히 하는 최선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개선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일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 서광원 |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araseo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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