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를 혁신적으로 만든 건 ‘유지(有知)’가 아니라 ‘무지(無知)’였다. 우주의 신비를 몰랐기 때문에 대붕을 상상했고, 인간과 사물의 본질을 몰랐기 때문에 호접몽을 떠올렸다. 무지의 혁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적용된다. 특히 무지에는 개개인의 신념과 생각을 내려놓는 행위뿐만 아니라 집단을 둘러싼 문화적, 학문적, 정치적 편견과 편향으로부터의 탈피도 포함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 가운데 가장 위험한 사람은 “옛날에 내가 해봐서 다 안다”며 조직원들의 말을 가로막고 나서는 꼰대 스타일의 리더다. 장자의 말처럼 나의 지식과 견해, 신념을 모두 내려놓고 제로베이스로 만들어야 조직원들의 혁신적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문제적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작인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골간을 지탱하고 있는 사상적 기반은 다윈의 진화론이다. 신(God)을 뜻하는 그리스어 데우스(Deus)를 책 제목에 사용하고 있지만 초월적 존재인 신(神)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에서 진화한 신(新)인류를 가리키는 말이다.
7만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다른 동물과 구별이 안 되는 평범한 존재였다. 신체적 여건으로만 보면 사자나 코끼리, 하마와 같은 덩치 큰 동물들보다 생존 경쟁에서 불리했다. 그랬던 인간이 다른 종(種)들을 모두 제압하고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된 요인은 뭘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는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추적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몇 가지 답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혁신이라는 키워드다. 한때 호모 사피엔스와 주도권을 놓고 경쟁했던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된다. 네안데르탈인은 혁신에 실패했다. 네안데르탈인이 사용했던 도구는 그들이 문명사에 등장했던 10만 년 전이나, 그 무대에서 퇴출됐던 4만 년 전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투박한 돌도끼 수준의 도구는 전혀 진전된 게 없었다. 네안데르탈인은 6만 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는 뛰어난 혁신 능력을 선보였다. 사냥감을 포획하기 위해 호모 사피엔스가 이용한 도구는 뾰족한 돌도끼, 작살, 창, 낚시 바늘 등으로 품종이 다양화됐고 성능도 계속 업그레이드됐다. 호모 사피엔스의 혁신 능력은 농업혁명과 문자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근대 과학혁명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유발 하라리는 근대 과학혁명을 무지(無知)의 혁명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인간의 고백이 바로 근대 과학혁명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뉴턴이 우주의 이치를 알았더라면, 다윈이 생명의 기원을 알았더라면 근대 과학혁명은 태어나지 못했다.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관찰했고, 탐험했다.
박영규chamnet21@hanmail.net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