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2019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EBS의 신입 연습생 크리에이터 ‘펭수’. EBS라는 전통 교양 명가가 배출한 이 걸출한 연습생은 이 시대 크리에이터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어린이’ ‘교육’ ‘TV’ 등 특정 타깃과 기성 매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 같았던 EBS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교육에서 재미로, TV서 모바일 SNS로 영토를 넓히며 미디어 확산의 중심에 서게 된 비결은 ‘소통’에 있다. 연출을 최소화하고 크리에이터의 매력을 극대화해 스토리에 힘을 실은 것이다. 일관성 있는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한 펭수와 제작진 내부의 소통, 시청자와 함께 호흡하기 위한 대중과의 온·오프라인 소통, 미디어를 넘나드는 다른 매체 및 기관과의 소통, 전통 미디어의 자산인 선배 캐릭터들과의 소통 덕분에 펭수를 중심으로 하나의 세계관이 완성될 수 있었다. 이처럼 공고하게 구축된 세계관은 최근 산업계 협찬, 굿즈 판매 등 IP 수익화의 밑거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장예령(숙명여대 경영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
“잘 쉬는 게 혁신이에요.”“사장님은 친구 아니겠습니까. 사장님이 편해야 회사도 잘되는 겁니다.”“다 잘할 순 없어요. 잘하는 게 분명 있을 겁니다. 잘하는 걸 더 잘하면 됩니다.”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힘내라는 말보다 저는 ‘사랑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자이언트 펭TV’ 中남극에서 건너온 10살짜리 펭귄이 무심코 툭 내뱉은 말이 지친 ‘어른이’들의 심장을 강타했다. 주옥같은 어록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모르면 간첩인 EBS의 신입 연습생 크리에이터 ‘펭수’다. ‘키 2m10㎝, 몸무게 103㎏’의 이 자이언트 펭귄은 원래 초등학생 고학년 눈높이에 맞춰 제작된 캐릭터였다. 그러나 마음만은 아직 어린이인 어른들의 감성까지 건드리며 데뷔 1년도 안 돼 유튜브 골드버튼(구독자 100만 명 채널에 수여)을 손에 쥔 대스타가 됐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한없이 따뜻하지만 사장님이나 장관 앞에서는 기죽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발칙한 10살’의 등장에 세대를 뛰어넘어 온 가족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연령대가 의심스러운 괄괄한 목소리로 걸핏하면 EBS 사장 이름을 부르고, “참치는 비싸/비싸면 못 먹어/못 먹을 땐 김명중(EBS 사장)”이라는 시를 읊는 펭수.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진가는 즉흥적인 ‘애드리브’에서 나온다. 외교부 청사 앞에서 마주친 강경화 장관에게 다짜고짜 “여기 ‘대빵’ 어디 있어요”라고 묻고, 인사 각도를 트집잡는 EBS 25년 차 선배 ‘뚝딱이’에게 “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잔소리하지 말아 주세요”고 받아치는 당돌함이 특징이다. 짜인 각본대로 읊는 것이 아니라 때론 제작진마저 당황케 하는 돌직구 발언과 재치로 상대방의 허를 찌른다. 학교나 직장에서 턱밑까지 차오르는 속마음을 내뱉지 못하고 삼켜봤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솔직하고도 에두르지 않는 ‘펭수식 화법’에 빠지지 않기 힘들다.
이처럼 세대를 초월한 인기에 펭수에게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EBS가 소속 크리에이터의 인기에 힘입어 수익화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펭수가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 구독자가 150만 명을 넘어서면서 산업계와 정부 기관의 컬래버레이션 요청이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로 밀려들고 있다. EBS 어린이 프로그램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에 출연하던 초등학생용 캐릭터가 이제 유튜브는 물론 지상파 3사, 종편, 라디오 등을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며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미디어 대통합’을 이뤄내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한 해 국내 크리에이티브 업계를 평정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BTS를 제치고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선정한 ‘2019 올해의 인물’에 올랐을 정도다. 펭수의 에세이 다이어리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는 예약 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 밖의 의류 브랜드 스파오와 제휴를 통해 선보인 펭수 티셔츠 등 각종 ‘굿즈’도 판매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이슬예나 PD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2009년 SK텔레콤에 입사해 광고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2011년 EBS로 옮겨 ‘하나뿐인 지구’ ‘딩동댕 유치원’ ‘보니하니’ ‘멍냥꽁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출했으며 ‘자이언트 펭TV’의 기획과 연출을 맡았다.펭수 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EBS라는 전통 교양 명가가 배출한 이 걸출한 연습생이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는 점이다. ‘어린이’ ‘교육’ ‘TV’ 등 특정 타깃 시청자층과 기성 매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 같았던 EBS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교육에서 재미로, TV에서 모바일 SNS로 영토를 넓히며 ‘미디어 확산’의 중심에 섰다. 잘 키운 캐릭터 하나로 어린이용 콘텐츠와 성인용 콘텐츠, 교양과 예능, 기성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셈이다.
펭수라는 1인 크리에이터에 힘이 실리자 공중파 방송사는 펭수의 ‘소속사’가, 연출자로서 프로그램의 향방을 진두지휘하던 PD는 펭수의 ‘매니저’가 됐다. 그리고 이 탁월한 ‘매니지먼트’의 결과 과거 EBS를 거쳐 간 많은 캐릭터도 덩달아 빛을 보면서 마블처럼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함께 EBS의 지식재산권(IP) 비즈니스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화제의 ‘자이언트 펭TV(이하 펭TV)’를 기획, 연출한 EBS 이슬예나 PD를 DBR이 만났다. 이 PD는 기성 방송사에 유튜브식 문법과 B급 코드를 접목하고, 크리에이터를 전면에 앞세운 기획으로 펭수라는 스타 연습생을 발굴했다. ‘펭수의 어머니’ 격인 이 PD로부터 자이언트 펭TV의 기획 의도와 성공 비결, 그리고 미디어 격변기에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