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6. 감각과 지성

감각의 논리에 참과 거짓은 없어...
지성의 프레임 벗고 자유롭게 상상하라

256호 (2018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은 디자인을 심미적인 장식이나 포장에서 사람들 간 소통과 교감을 이끄는 수단으로 확장시켰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이상은 여전히 보편성과 기능성에 종속되는 한계를 가졌다. 이런 한계는 감각보다 지성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서양 철학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감각은 지성과 다르게 참,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고유한 질서를 가진다. 오선지 악보 혹은 설계도면 같은 기존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이어그램을 통해 감각의 논리를 구축할 수 있다.

디자인,
제품의 장식이 아닌 소통의 인터페이스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는 건축을 ‘거주하는 기계’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기계’라는 말을 접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공학적인 차원에서 그 의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주어진 기능에 적합하도록 많은 부속품이 설계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체계를 이루고 있는 장치가 흔히 생각하는 기계의 이미지다. 르코르뷔지에가 여기서 ‘기계’라는 말을 사용할 때도 기계에 대한 이러한 통념이 전제돼 있다. 건축물은 화려함이나 아름다움, 혹은 숭배의 대상이 되는 조형물(조각)과 달리 인간의 거주라는 목적에 부합해 그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부분이 잘 짜인 체계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화려한 치장이나 장식, 기능과 상관없이 사치스러운 재료들로 지어진 궁전이나 성을 연상시키는 신고전주의를 단호히 거부한 그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그러나 건축 이론가였던 기디온(Siegfried Gidion, 1893∼1968)의 지적처럼 르코르뷔지에에게 ‘기계’라는 말은 공학적인 의미 이상을 지닌다. 그것은 르코르뷔지에가 작업했던 시대정신이자 미학적인 이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실제로 르코르뷔지에는 기능적으로 완전무결한 디자인이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가 가장 완벽한 디자인의 모델로 생각한 것은 자동차와 비행기였다. 자동차와 비행기는 기능에 반하는 어떤 잉여 부분도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의 표준화된 이 완벽한 기계적인 디자인은 단순한 장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시대적인 이상이자 가치관이었다. 이는 디자인이 완성된 제품의 포장 혹은 장식 효과를 통해서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이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도 배치된다.

같은 맥락에서 디자인이란 단순히 제품의 포장이나 장식이 아니라 시대적 가치나 세계관을 전달하는 사회적 실천이라는 계몽적 사고의 집약적 산물이 바로 독일의 ‘바우하우스’다. 르코르뷔지에와 더불어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또 한 사람인 독일의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69)가 바우하우스의 4대 교장이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바우하우스는 수공예와 건축디자인의 전근대성을 탈피하고 인문학적 지식과 과학적 체계성을 겸비해 디자인을 순수예술 못지않은 수준으로 이끌고자 했던 모더니즘 이상을 지닌 디자인 교육기관이었다. 바우하우스를 이끌던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은 단순히 아름다운 집을 설계하거나 제품을 꾸미는 것을 넘어서 시대적 가치나 미적 감수성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오늘날의 용어를 빌리자면 사람들의 미적 감수성이나 교감을 형성하는 심미적 ‘인터페이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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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바우하우스의 큰 공적 중 하나인 ‘타이포그래피’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독일의 데사우에 있는 바우하우스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건물의 측면 벽에 붙어 있는 바우하우스 로고다. (그림) 일명 바우하우스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글씨체는 바우하우스에 입학한 오스트리아 디자이너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고안한 것이다. 이 글씨체는 정확히 말하면 ‘산세리프(sans serif)’체로 일컬어진다. 여기서 ‘산’은 불어의 ‘없음’을 나타내는 전치사이며, 세리프는 기둥의 위와 밑 부분에 있는 화려한 장식을 말한다. 한때 고딕체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 산세리프체는 장식이 제거된 가로세로의 굵기가 같은 기하학적인 형태의 간결하고도 명확한 글씨체다. 다만 기하학적인 딱딱함을 없애기 위해서 끝이 둥근 형태로 마무리됐다.

특히 바이어가 자신의 스승이자 바우하우스를 설립하고 건물을 설계한 초대 교장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의 지도 아래 이 글씨체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주의적 이상을 지녔던 그로피우스는 화려한 장식이나 사치보다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계몽적 모더니즘을 구현하고자 했다. 타이포그래피는 글을 감각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새로운 세계를 상징하는 교감의 수단이었다. 바우하우스의 예술가들에게 감각은 단순히 심미적 만족감이나 취향 저격의 수단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소통을 위한 교감의 수단이 된 것이다.

지성에 갇힌 감각의 한계
이렇게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이라는 감각의 차원을 심미적 쾌감의 대상에 국한하지 않고 소통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감각의 지위를 격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감각에 대한 바우하우스의 태도는 지성의 종속물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바이어의 타이포그래피에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산세리프 서체는 글씨의 목적은 읽기 위한 것, 즉 가독성(legibility)이라는 기능에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가독성에 방해가 되는 화려한 문양, 즉 세리프를 다 제거해버린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프랑스 철학자 리오타르(Jean Fançois Lyotard, 1924∼1988)의 ‘가독성(legibilité)’과 ‘조형성(plasticité)’의 반비례 관계에 대한 언급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리오타르는 감각과 지성이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며 서양의 전통사상이 감각을 열등한 것 내지 지성의 종속물 정도로만 취급되던 것을 급진적으로 비판한 『담론, 형상(Discours, figure, 1971)』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 가독성과 조형성의 반비례 관계는 지성의 대상인 담론과 감각의 대상인 형상(이미지)이 완전히 이질적인 것임을 밝히는 하나의 사례다.

우리는 글자의 목적이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 즉 가독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글씨에 조형적인 멋을 부릴 경우 가독성은 떨어지기 쉽다. 유럽의 필사본이나 19세기까지의 인쇄물을 보면 글씨체가 매우 현란해서 글씨를 단번에 알아보기 힘들다. 필자는 칸트학파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인 마이몬(Salomon Maimon, 1754∼1800)의 책을 구해 읽은 적이 있는데 1800년대에 출간된 그 책은 마치 도장에 새겨진 이름처럼 활자가 너무 화려하고 현란해 읽는 데 애를 먹은 기억이 있다. 조형성에 신경을 쓸 경우 가독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 중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글씨의 내용이 아닌 조형성, 즉 서체 자체를 중요시한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형적인 측면에서 글씨를 잘 쓴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가독성을 대놓고 무시하고 이미지에 신경을 쓰는 초서는 물론이고 정자에 가까운 해서체의 경우에도 가독성보다는 반듯함과 기운생동의 조형적 가치가 더 강조됐다. 서양에서 글씨는 회화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반면 동아시아 회화에서는 내용보다는 글씨 자체가 회화보다 더 중요한 이미지로 간주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리오타르는 가독성이 글자에 국한되지 않고, 조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조형예술까지도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가령 중세의 회화는 성경이라는 이야기를 문맹의 일반인들에게 조형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중세회화는 형식적으로는 조형예술이지만 그것은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일반인들에게 성경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책의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반드시 어떤 특정한 표식이나 형상을 지녀야 하며 자신이 아이를 수태했음을 고지받는 마리아 옆에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이 항상 놓여 있어야만 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한눈에 그 그림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성경의 지배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지만 그림은 여전히 고대신화나 역사의 한 장면을 설명하는 가독적인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회화에서 구상적인 형태, 즉 가독성을 제거해버리고자 한 추상화가 왜 그렇게 급진적인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있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은 감각을 시대적 이념을 표상하는 미적 소통의 차원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시대적 이념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가독성이다. 건축디자인은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그 건물이 어떤 기능을 지니는지 알 수 있도록 투명해야 하며, 타이포그래피는 무엇보다도 가독적이어야 한다. 르코르뷔지에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의 디자인이 왜 당시 등장한 대량 생산의 기계 이미지와 맞물려 있는지 알 수 있다. 바우하우스의 독특한 디자인은 당시 등장한 20세기 초반의 기계 이미지를 띠고 있다. 기계의 획일성과 보편성을 이상적 디자인의 모델로 삼았음은 보편적 가독성을 중시하고 감각을 지성의 하위로 보는 서양의 전통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구시대적 징표다. 자신들의 디자인이 보편적일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과 달리 오늘날 WMF 주방기구나 드롱기 제품처럼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은 복고적인 느낌을 주는 하나의 감각적 스타일이 됐을 뿐이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은 감각을 지성 못지않은 소통의 차원으로 확장하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인에서 보편적인 가독성을 지향함으로써 지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서구의 전통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감각을 하찮게 보는 서양 철학의 전통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 것은 매우 단순한 것이다. 가령 지금 내가 커피집의 한 탁자에 앉아 있다는 것, 탁자 위에는 노트북이 있고, 그 화면에는 내가 쓴 글들이 화면에 떠 있다는 것,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 음료가 준비됐다고 번호를 호명하는 직원의 목소리, 잠시 후 내 목을 넘어갈 차가운 커피 음료, 지금 이 순간에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이 확실성의 근거는 당연히 나의 감각이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보고, 듣고, 마시고, 맡아서 아는 것들이다. 우리의 삶에서 확신의 근거는 대부분 감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생뚱맞게도 우리가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 감각이야말로 철학자들에게는 가장 못 믿을 만한 것이었다.

서양의 근대 사상을 대표하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주저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1641)』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학문의 토대를 찾기 위한 사색의 여정을 담고 있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우리가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 것들을 철저히 의심하고 그것을 폐기해 더 확실한 것에 도달하는 그 유명한 ‘방법적 회의(의심)’를 수행한다. 그가 의심하는 첫 번째 대상이 바로 감각이다. 사람들이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 것이 감각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보기에 당연히 감각은 믿을 것이 못된다. 그는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실상은 꿈일 수도 있다고 의심해본다. 단순하고 과도한 의심 같지만 당시 최고의 생리학자이자 해부학자인 그의 의심은 밑도 끝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감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감각하지 못하기도 하고 거꾸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가령 모기에게는 분명히 들리는 소리가 우리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귀는 초당 200번에서 20000번 진동하는 소리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파충류의 눈에는 보이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기도 한다. 우리의 눈이 지각할 수 있는 범위는 400에서 700㎚의 파장인데 적외선은 700㎚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우리는 확실히 존재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으며, 확실히 존재하는 형태도 볼 수 없다. 그렇기에 데카르트는 감각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의심했던 것이다.

사실 감각에 대한 이러한 불신의 기원은 데카르트가 아닌 더 근원적인 사상가로 소급해야 한다. 서양 사상의 원류가 된 플라톤은 이미 감각을 가장 저급한 인식의 단계로 봤다. 대표 저서 『국가』(Politeia, B.C. 380∼370년경 저술된 것으로 추정)에서 그는 인식의 단계를 감각에서 논리적 추론, 직관의 순서로 계열화했다. 여기서 감각은 가장 낮은 단계의 인식인데 사실상 인식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당시 인식(episteme)이라는 말은 세상에 대한 ‘참된’ 지식을 의미했다. 감각을 통해서 인간이 습득한 것은 인식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한갓 ‘의견(doxa)’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됐다. 가령 어떤 사람은 천둥소리가 오른쪽에서 들렸다고 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왼쪽에서 들렸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왼쪽 건물이 오른쪽 건물보다 크다고 말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똑같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 편 투수의 공이 더 빠르다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상대방 투수의 공이 더 빠르다고 주장한다. 실측하기 전까지 누구 말이 맞는지 결정하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실측의 단계가 감각의 단계보다 높은 논리적 추론의 단계다. 우리는 1m라는 기준을 정하고 그것의 배 단위로 사물의 높이를 몇m로 측정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적 추론의 값은 감각보다 훨씬 더 보편적이다. 그러나 논리적, 수학적 추론의 지식 역시 완전한 것은 아니다. 가령 야구시합에서 투수가 던진 공을 측정한다고 치자. 스피드건에 찍힌 공의 스피드, 즉 순간적인 가속도는 미분값을 다시 미분해서 만들어진 객관적인 수치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그것이 실제의 속도인지는 알 수 없다. 미분값이란 0이 아니면서 0의 값에 가까운 이웃 수치를 가정한 것이므로 엄격히 따지면 허구적인 수치에 불과하다. 또한 스피드는 매 순간 변화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을 비교해 특정한 투수의 공이 빠르다고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수학적, 논리적 추론은 객관적이고 정확하지만 반드시 실재와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플라톤이 인식의 가장 높은 단계로 설정한 것은 직관적 지식, 바로 이데아에 대한 앎이다. 이데아는 그야말로 완전한 세계이며 참된 실재의 모습이다. 그것은 감각으로는 나타낼 수 없으며 감각의 세계는 오로지 이데아를 닮은 불완전한 시뮬라크라(모사물)의 세계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현실의 세계에서 원과 마주한다. 자동차의 바퀴도 원이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머그잔을 위에서 보면 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진짜 원이 아니다. 원이란 하나의 점에서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인데, 우리의 눈에 원으로 보이는 것들을 엄밀하게 측정해보면 완전한 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 불완전한 시뮬라크라를 원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셈이다. 플라톤에게 진정한 실재는 이데아다. 그런데 이때 이데아(idea)는 완전한 ‘정의’, 하나의 관념(idea)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진정한 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며 감각적으로 완전하게 구현할 수도 없다. 감각의 세계는 덧없는 짝퉁의 세계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서양의 사상이 눈앞에 나타난 현실의 모습을 긍정하는 실재론보다 감각에 드러나지 않는 관념의 세계를 중시하는 관념론의 전통에 서게 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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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반전, 감각을 저급한 능력이 아닌
인식과 소통의 원천으로

흥미롭게도 감각의 지위에 대한 본격적인 철학적 반전은 관념론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 독일 절대관념론의 창시자 칸트(Immanuel Kant, 1724∼1084)에게서 나타난다. 칸트는 플라톤이 폄하한 감각의 능력을 인식의 절대적인 조건으로 봤다. 앞서 든 원의 경우만 보더라도 플라톤은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감각으로 마주하는 원은 가짜이며, 원의 ‘정의’가 참된 이데아로서 인식의 대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칸트의 철학에서는 이러한 관계의 역전 가능성이 존재한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의만으로는 부족하며 그에 대한 ‘도식(scheme)’이 필요하다. 원이라는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한 점으로부터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라는 정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원이라는 형태를 떠올려야만 원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큰 원이든, 빨간색 원이든, 타이어 모양이든, 접시 모양이든 어쨌든 원의 형상을 떠올려야만 원의 개념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이렇게 원의 공통적인 형상, 즉 도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상상력(Einbikdungskraft)’이라고 불렀다. 이 상상력은 당연히 우리의 감각 능력에 바탕을 둔 것이다. 좀비나 흡혈귀 등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의 개념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사람들마다 떠올리는 형상이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개념에 부합하는 어떤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형상의 공통성이 존재할 것이다. 사각형의 경우 사람마다 정사각형, 마름모꼴, 사다리꼴, 직사각형, 긴 막대기 모양의 사각형 등 제각기 다른 형상을 떠올리겠지만 적어도 삼각형이나 원과는 다른 사각형만의 규칙, 즉 도식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도식을 만드는 능력이 ‘상상력’이며 상상력의 산물은 플라톤이 폄하한 것과 같은 짝퉁이 아닌 참된 인식의 절대적인 조건이다.

나아가 상상력은 인간의 지식이 세계와 나와의 관계를 넘어서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개념과 정의만으로 소통할 수 없다. 가령 어떤 음식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때 그 음식에 대한 개념만으로는 교감을 이룰 수가 없다. 설혹 자신이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해서 상대방이 얘기를 하더라도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음식을 떠올려야 한다. 말하자면 그 음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도식을 지녀야만 음식에 대한 대화가 지속될 수 있다. 만약 상대방이 말하는 음식을 자신도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그 음식의 정의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음식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소통과 교감은 지성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도식을 소유하는 데서, 즉 같은 감각을 지니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칸트는 지적 공유가 아닌 감성적 일치감, 즉 공통감(common sense)에서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고 봤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와 바우하우스의 묘한 일치를 발견할 수 있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은 제품의 포장이라는 종속적인 역할을 넘어서 디자인 자체가 사람들의 공통적 교감을 만들어내는 심미적인 인터페이스 장치로 확장했다. 칸트 역시 감각의 능력을 부정확하고 저급한 인식 능력이 아닌 독자적인 인식 능력이자 동시에 사람들 간의 지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바우하우스의 모더니즘적 이상이 보편성과 가독성이라는 틀에 갇혀 있듯이 칸트의 상상력 또한 인식 활동이나 보편적 소통의 지배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도 똑같은 한계를 지닌다. 칸트에게서 상상력은 그것이 만든 도식, 즉 사각형의 여러 형태이 사각형이라는 개념에 일치하는가 아닌가에 의해서 제한된다. 말하자면 주어진 개념의 정의를 벗어나는 것은 상상력의 잘못된 사용이며 잘못된 도식이다. 가령 두 발로 기어 다니는 물고기는 잘못된 도식이며 상상력을 잘못 사용한 결과일 것이다. 칸트의 한계는 여기서 드러난다.

지성에서 벗어난 감각의 논리
칸트의 경우처럼 상상력이 개념에 종속될 때 상상력은 자신의 본성과 어긋나게 된다. 칸트는 상상력이 만든 도식의 옳고 그름을 전제하지만 이러한 전제는 상상력의 생산성을 억압한다. 원래 상상력의 역할은 개념에 제한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능력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상상력이 그 고유의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칸트처럼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개념에 적합한 도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개념에 위배되는 도식을 만들어낼 경우다. 화가가 항상 개념의 정의에 부합하는 산의 도식을 그린다면 세잔의 ‘생트 빅트와르 산’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콜로디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노키오는 목각인형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피노키오는 인간이나 인형의 정의에 모두 부합하지 않으므로 방종한 상상력이 만든 잘못된 도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잘못된 도식은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충격을 준다. 피노키오가 사람이 아닌 인형이라면, 과연 사람이란 무엇인가? 만약 생각하고 느끼는 인형이 만들어진다면 그러한 존재는 인격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아니면 성능이 향상된 기계로 간주해야 하는가? 이는 지금까지 우리의 개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확신하는 ‘인간’에 대한 정의까지도 위협한다.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상상력이 인식의 지배, 즉 개념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때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감각의 세계가 지성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감각은 인식과 달리 참, 거짓을 구분할 수 없다. 마티스의 그림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감각은 애초에 참과 거짓의 논리를 벗어나며 자신만의 고유한 질서를 지닌다. 여기에 굳이 논리라는 말을 붙인다면 ‘감각의 논리(logique de la sensation)’라 해야 할 것이며, 이는 인식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논리일 것이다. ‘감각의 논리’에서 ‘논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논리학이나 이성의 질서로서의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들뢰즈는 이러한 감각의 논리를 현실의 논리와 다른 가능성(혹은 잠재성)의 논리로 이해했다.

스코틀랜드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그림은 그가 들고 있는 ‘감각의 논리’ 사례다. 베이컨의 인물화에서 인물은 반듯한 신체기관이 드러나기보다는 마치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처럼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완전한 인간을 그린 구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체적 형태가 완전히 제거된 추상화도 아니다. 그의 그림은 마치 동물의 고깃덩어리 같으면서도 인간 같기도 한 모습이다. 들뢰즈가 베이컨의 그림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간, 팔, 다리, 눈, 코와 같은 개념에 일치하지 않는 모호한 형태를 지니면서도 또 추상화와 같은 또 다른 개념적 도식에 빠지지 않는 어중간한 상태다. 그는 이러한 어중간한 상태를 ‘다이어그램’이라고 부른다.

건축에서 다이어그램은 직접 시공할 수 있는 도면이 아닌 여타의 도식들, 가령 스케치나 메모 따위를 일컫는다. 다이어그램은 기존 설계도면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식의 공간이다. 건축을 공학이 아닌 예술의 논리로 이해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은 설계 도면보다 다이어그램에 더 치중한다. 디지털 기술 덕택에 시공을 위한 설계도면을 옛날처럼 그릴 필요가 없는 오늘날의 디자인 환경에서 다이어그램의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심지어 언젠가는 다이어그램이 도면을 대체할 수도 있다. 화면에 그림을 그리면 다이어그램의 형태가 바로 집으로 지어질 날이 머지않았다.

다이어그램은 건축뿐만 아니라 20세기 작곡가들에게서도 곧잘 사용됐다. 바레즈, 불레즈, 리게티, 배빗 등과 같은 대표적인 작곡가들은 오선지 악보를 사용하지 않고 도형이나 그래프 등의 다이어그램을 활용해 작곡했다. 이런 다이어그램을 보고 어떻게 연주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실제로 그들은 악보 대신 다이어그램을 사용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악보가 그들의 음악적 상상력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악보에는 많은 규칙이 정해져 있으며 그러한 규칙은 음악적 표현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감각은 인식이라는 길잡이가 필요하지 않다. 감각이 인식으로부터 해방돼서 자신만의 논리로 도식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기존의 개념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의 지평에 들어서는 것이다.

필자소개 박영욱 숙명여대 교양학부 교수 imago1031@hanmail.net
필자는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대음악과 미술, 미디어아트, 건축디자인 등 구체화된 예술 형식에 주목해 철학 사상을 풀어내는 데 주력해왔다. 저서로는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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