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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해답, 네덜란드 파프리카 농장에서 찾다

246호 (2018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농업 분야에도 4차 산업혁명의 파도가 밀어닥쳤지만 우리 농업계의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 첨단 농업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경우 최근 농업 혁신의 방향성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생산성 극대화에서 에너지 활용과 지속가능성으로 변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필자가 방문한 암스테르담 아그리포트(Agriport) A7 단지 파프리카 농장의 경우 지열 발전을 활용해 천연가스를 대체하면서 지속가능성이라는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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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 북쪽으로 50여 분 떨어진 첨단 유리 온실 단지 아그리포트(Agriport) A7. 이 단지 내에 위치한 베주크(Bezoek) 부부의 파프리카 농장을 처음 찾은 것은 2014년 6월이었다. 그리고 3년 반 만인 2018년 1월에 이곳을 재방문하게 됐다. 베주크 부부는 네덜란드의 서남부 지역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다가 2007년 당시 간척 사업을 통해 새롭게 조성된 이곳 아그리포트 A7 단지로 이주해온 중년의 농부 부부다. 당시 이 부부가 갖고 있던 유리 온실의 규모는 무려 20헥타르(ha)였다. 그리고 2015년에 10ha를 더 확장해 30ha, 거의 10만 평에 달하는 파프리카 재배 ‘유리 마을’을 소유하게 됐다.

2014년 처음 이 유리 온실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당한 것부터 시작해, 11m 높이의 이 온실의 거의 천장 끝까지 올라온 파프리카 줄기 하며, ‘줄기에서 파프리카 열매를 따는 행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업들(운반, 세척, 포장까지 포함)이 자동으로 제어되고, 자동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매일 하루에 30톤의 파프리카가 공장에서 물건 찍어 내듯 출하되고 있었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며 미래의 농업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 또 우리 농업이 가야 할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있다고 느꼈다.

베주크 농장의 안주인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첨단 온실 시스템의 우수성에 대해 친절하게, 그리고 매우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수십 개의 외기 센서는 수초 단위로 외부 환경을 측정하고 있었다. 센서들은 외부 온도, 풍향과 풍량, 일조량과 일조 방향 등을 수집한 후 그 값을 서버로 보낸다. 서버에서는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음과 동시에 온실 내부에 설치된 수백 개의 센서와 서로 통신하면서 최적화된 제어값을 뽑아낸다. 온실 내 온도, CO₂ 농도, 습도, 흙 없이 자라고 있는 파프리카의 뿌리가 담겨 있는 양액기 속의 양액 배합과 농도를 체크하고, 또 제어한다. 온실 내에서 로봇들은 끊임없이 굴러다니며 일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설명을 듣던 필자는 말 그대로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그 농장에서는 자신들의 다음 방향은 파프리카를 따는 인력마저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 도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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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시설이 있지만 생산성에서는 네덜란드의 시스템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이는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닌 데이터의 문제다. 한국의 환경 특성에 따른 최적화된 제어 포뮬러(formula)를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100년 넘게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쌓으며 데이터 사이언스의 관점에서 농업을 분석한 네덜란드의 첨단 유리 온실의 성과를 우리가 짧은 시간 안에 똑같이 따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14년 당시 한국으로 복귀한 필자는 여러 기고문과 세미나 자리에서 이 네덜란드의 첨단 온실 시스템을 찬양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은 IT가 아니라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통계학자와 수학자, 이를 바탕으로 생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포뮬러를 짤 수 있는 농학자가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농식품부에서, 또 농촌진흥청에서도 국내 농업 환경에 맞는 온실 환경 제어 포뮬러를 만들기 위해, 현장의 온실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기 위한 틀을 구축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필자가 2018년 다시 베주크 농장을 찾은 이유도 농업에서 4차 산업혁명의 끝을 보기 위함이었다. 파프리카를 따는 로봇이 도입됐을까? 개선됐을 것이 분명한 환경 제어 기술은 생산성을 얼마나 더 끌어 올렸을까? 이런 즐거운 질문들을 안고 ‘모범 답안’을 눈으로 확인하러 농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3년 반 만에 만난 베주크 부인은 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 어떤 생산성 향상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로봇도 없었다. 파프리카는 여전히 잘 자라고 있었고 유리 온실의 첨단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베주크 부인이 한 시간 반 동안 나에게 이야기한 것은 에너지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설명뿐이었다. 네덜란드 첨단 농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온실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온실을 작동시킬 전기가 필요하고, 온실 내 온도를 끌어 올릴 열이 필요하고, 식물이 생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CO₂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에너지들은 화석 연료에서 온다. 기름을 쓸 수도 있고, 석탄을 땔 수도 있으며, 네덜란드의 경우 천연가스를 주로 활용한다. 이 농장에는 천연가스를 활용하는 우수한 효율의 열병합발전기를 세 대 가지고 있다. 발전기당 3.3㎿(메가와트)를 생산한다. 생산된 전기로 시설을 제어하고, 물을 데워서 온실 내 파이프로 내보내서 온실 내 온도를 조정한다. 남는 전기는 인근의 마이크로소프트사에 판매하기도 한다. 그리고 부산물로 나오는 CO₂는 따로 포집해 식물에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양을 투입해 파프리카의 생장을 촉진하고 제어한다.

온실 에너지원으로 주로 사용되는 천연가스 가격은 변화의 폭이 크고 전반적으로는 상승하고 있다. 또한 유리 온실을 포함한 농업 분야 역시 교토의정서에 의거해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를 받게 되는 산업이다. 기존 방식의 발전을 통한 에너지 생산은 필연적으로 탄소를 배출하게 되며, 환경을 위협하는 비즈니스 활동으로 간주되고, 이제 이것은 비즈니스에 위협으로 돌아온다. 즉, 첨단 유리 온실의 높은 생산성은 자연의 힘이 아닌 에너지와 탄소 배출로 달성할 수 있었던, 철저히 만들어진 생산성이었다. 그리고 첨단 온실 산업을 둘러싼 산업 환경은 이제 이 높은 생산성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축제를 벌이던 첨단 온실 산업도 이제는 새로운 비즈니스 위협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에너지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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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주크 농장은 2014년부터 지열 발전을 준비해왔다. 땅속 2.5∼2.7㎞에 구멍을 파고 물을 끌어 올린다. 이 지층의 물의 온도는 90도다. 90도의 물은 온실 내 관을 타고 돌면서 온실의 온도를 적정한 정도로 끌어 올린다. 온실을 덥히면서 35도 정도로 식혀진 물은 다시 지층 2.5㎞ 아래로 내려 보내지고 다시 지열로 덥혀지는 방식으로 순환된다. 이 지열 발전을 위한 파이프 구멍을 하나 뚫는 데 700만 유로가 들어간다. EU 각국은 직접적인 농업 보조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기농과 환경, 즉, 지속가능성에 대한 농가 보조금은 지급하고 있다. 베주크 씨도 EU 보조금을 받아서 네 개의 구멍을 뚫었고 향후 추가적인 공사를 준비 중이다.

베주크 씨의 더욱 스마트해진 유리 온실은 이 지열 발전을 통해 기존 천연가스 발전에 투입됐던 비용을 50% 정도 절감했다. 또 수년 내로 이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기존 에너지를 100% 대체하고자 한다. 작물의 생장에 영향을 주는 CO₂는 인근 공단으로부터 지하 파이프로 받아서 활용한다. 공단에서 농업지역으로 연결되는 CO₂용 지하 파이프 인프라는 이미 구축돼 있다. 천연가스 비용을 0으로, 탄소배출 비용도 0으로 낮추는 것에 네덜란드 농업은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네덜란드의 파프리카 첨단 유리 온실의 변동 운용 비용은 대략 인건비 3분의 1, 에너지 비용 3분의 1, 기타 비용 3분의 1로 구성돼 있다. 결과적으로 2014년까지의 유리 온실 첨단화는 IT를 기반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면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첨단화는 에너지 비용을 낮추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에너지 지속가능성’이라는 이슈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날이 결코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앞으로 한국의 농부들은 어떠한 접근을 해야 하고, 어떻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것인가? 당신의 산업에서는 에너지와 자원을 둘러싼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질문들에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답을 해야 하며, 그 답을 찾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Food Biz Lab 연구소장 moonj@snu.ac.kr


문정훈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 경영과학과를 거쳐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외 주요 식품 기업과 연구소를 대상으로 컨설팅하고 있으며, 주 연구 분야는 식품산업 기업전략, 식품 마케팅 및 소비자 행동, 물류 전략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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