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메달이 왜 은메달보다 행복할까

245호 (2018년 3월 Issue 2)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가장 따고 싶은 메달이 뭐냐고 물으면 당연히 금메달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름에 ‘은’자가 들어가는 9살 난 우리 딸아이가 은메달이 최고라고 하는 것 같은 예외를 빼면 말이다. 그럼 은메달과 동메달 중에 선수들은 어떤 메달을 더 좋아할까? 2018 평창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은메달을 딴 차민규(500m) 선수와 동메달을 딴 김민석(1500m) 선수 중 누가 더 많이 기뻐하고 큰 성취감을 느낄까? 세상에 2등보다 3등을 더 좋아하는 선수가 어디에 있겠는가? 과연 그럴까?

코넬대의 빅토리아 메드빅(Victoria Medvic) 교수는 올림픽 입상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높은 만족도와 행복감을 나타내는 것을 발견했다. 즉, 선수들이 2등 했을 때보다 3등 했을 때 더 기뻐했다는 이야기다. 스포츠는 성취의 높고 낮음을 그 어떤 분야보다도 명확하게 드러낸다. 1등이 최고 잘한 것이고 2등이 3등보다는 분명히 더 뛰어난 결과를 얻은 것이다. 이런 스포츠에서 도대체 왜 객관적으로 우월한 성취인 은메달보다 열등한 성취인 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더 행복해하는 것일까? 이는 선수들의 성취에 대한 감정적 반응과 만족도가 객관적 성취의 순서가 아니라 사후가정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를 통한 대안과 실제 결과의 차이에 따르기 때문이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금메달을 딸 수도 있었는데 놓친 것을 아쉬워하지만 오히려 동메달을 딴 선수는 메달을 못 딸 수도 있었는데 메달권에 들었다는 생각에 기뻐한다는 것이다.

성취에 대한 만족은 성취의 절대적 크기가 아니라 결과와 본인의 기대, 타인의 성취, 그리고 사후가정적 대안과 비교한 상대적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우선 만족감이라는 것이 기대와 실제 결과를 비교한 차이에 비례한다는 것은 익숙할 것이다. 스노보드 황제 숀 화이트는 하프파이프에서 적수가 없는 선수다. 2006년 토리노,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니 화이트는 경기에 나설 때마다 우승을 기대한다. 화이트는 2018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2014 소치올림픽에서 4위를 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대가 높은 경우엔 전 세계에서 나보다 더 잘한 사람이 3명밖에 없다는 객관적으로 충분히 뛰어난 결과도 매우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또한 타인의 성취와 자신의 성취를 비교하는 것이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도 다관왕인 선수와 자신의 성취를 비교하면 초라하게 느낄 수도 있다.

‘기대’와 ‘타인의 성과’ 외에 ‘사후가정사고를 통한 대안’ 역시 사람들이 자신의 성취를 비교하는 데 많이 사용한다. 사후가정사고란 “만약 … 했다면 또는 하지 않았다면 … 했을 텐데”와 같이 어떤 일을 경험한 후에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던 가상의 대안들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만약 심판이 공정했더라면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와 같은 생각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더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선수들이 자신의 실제 성취를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가상의 성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주로 가상의 비교 대상이 금메달이다 보니 객관적 성취보다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반면에 동메달을 딴 선수는 가상의 비교 대상이 노메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객관적 성취는 은메달보다 못하지만 더 행복하게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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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김민석 선수가 객관적으로 더 우수한 성적인 은메달을 딴 차민규 선수보다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둘 다 기대 이상의 빼어난 성적을 거뒀지만 김민석 선수는 근소한 차이로 시상대에 오른 선수가 된 반면에 차민규 선수는 0.01초 차이로 아깝게 금메달을 놓쳤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많은 교수가 거의 매 학기 경험하고 있다. 학기 말 성적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아쉬워하고 학점에 대해서 교수와 협상(?)을 시도하는 학생들은 주로 A-나 B+ 학점을 받은 이들이다. 이 학생들은 B나 C보다 객관적으로 더 좋은 성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성적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아깝게 놓쳤다는 생각에 기쁨보다 아쉬움이 더 큰 것이다.

그러면 우월한 결과를 열등하게 느끼게 하는 사후가정사고는 피하는 게 상책일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엎질러진 물)과 같은 속담과 고사성어도 있듯이 이런 생각은 무조건 안 하는 게 좋다는 것이 상식으로 보인다. 이미 일어난 일은 타임머신이 존재하지 않는 한 되돌릴 수도 없는데 자꾸 생각해봐야 마음만 아프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게다가 많은 과거 연구가 사후가정사고가 후회와 같은 부정적 정서와 낮은 주관적 삶의 질과 관련이 있음을 밝히면서 상식적인 교훈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후과정사고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면 다양한 영역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우선, 동메달리스트의 경우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사후가정사고는 열등한 또는 부정적 결과를 얻은 사람이 하향적(downward) 사후가정사고, 즉 더 안 좋은 가상의 결과와 실제 결과를 비교함으로써 슬픔, 후회 등의 부정적 감정을 완화시키고 안도, 기쁨, 만족 등을 증대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상의 결과는 자동으로 형성되거나 떠오르기도 하지만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 성과보다 우월한 가상의 결과와 열등한 가상의 결과를 떠올리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열등한 가상의 성과를 선택해 실제 성과와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결과를 가지고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후가정 비교대상의 우열을 선택하는 것은 상황변수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상의 결과를 떠올리는 것보다 더 많은 인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가상비교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긍정적인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등 사후가정사고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사후가정사고는 미래를 대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능도 한다. 상향적 사후가정사고(더 좋은 일을 떠올리는 것)는 부정적인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지만 동시에 더 나은 상황 또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조건 또는 원인들을 파악하는 일종의 시뮬레이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미래에 비슷한 상황에 다시 처했을 때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만약 연습을 조금만 더 했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와 같은 사후가정사고는 다음 대회를 더 잘 준비하도록 하며 미래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사후가정사고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심도 있게 이해하는 것은 소비자 행동 등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에서 도움이 된다. 소비자의 만족이 상품의 절대적 가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요인이 소비자 만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소비자의 만족은 상품의 실제 가치에 대한 인식과 가상대안의 평가 차이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소비자 만족을 높이기 위해 상품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거나 가격을 낮추는 등 상품의 실제 가치를 높일 수도 있지만 적극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비자가 구매한 자사 상품보다 열등한 가상대안을 떠올려서 비교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배우 강소라가 등장하는 A 내비게이션 회사의 광고는 이러한 사후가정사고를 적절히 활용한 경우다. A사의 제품보다 열등한 블랙박스를 달았을 때 상대 사고 차량의 과실로 난 사고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후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포츠 이야기로 돌아가서 마무리해보자. 전 국민이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은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를 보고 많은 감동을 느꼈고 그의 선수로서의 업적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본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은메달을 딴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인 것 같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기록을 확인한 직후 이상화 선수가 울음을 터뜨린 것도 어느 정도 이러한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마지막 코너에서 그 작은 실수만 아니었다면 금메달을 땄을 텐데” 하고 말이다. 게다가 금메달을 두 번이나 땄던 선수고 지난 10년간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선수가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정말 생각하기 나름일 뿐이다. 금메달 말고 동메달과 비교해 보자. 사실 그의 기록도 금메달을 딴 일본 선수와는 제법(0.39초) 차이가 나지만 동메달을 딴 체코 선수와는 0.01초 차이밖에 나지 않고 메달권에서 밀려난 4위 오스트리아 선수와도 0.18초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은메달을 딴 것이 다행이고 기뻐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상화 선수 은메달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에 비교 대상 같은 것은 필요치 않다. 그 자체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의미 있는 성취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ykim22@snu.ac.kr

필자는 서울대 체육교육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플로리다대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주립대에서 7년간 재직하며 종신교수직(tenure)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등 국제 저명 학술지 편집위원과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European Sport Management Quarterly』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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