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7.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

설득은 영업기술 아닌 영향력의 과학 요청하기 전에 맥락과 환경을 만들라

244호 (2018년 3월 Issue 1호)

Article at a Glance
『설득의 심리학』은 한국에서 75만 권 이상, 전 세계적으로 300만 권 이상이 팔렸다.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심리학자다. 그는 설득의 원리를 6가지로 정리했다. 사람들은 받은 것을 돌려주려 하고(상호성), 부족하면 더 간절하게 원하게 되며(희귀성), 답을 잘 모를 때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나(권위), 유사한 사람들 혹은 다수의 의견(사회적 증거)을 따르게 되며, 자신이 이전에 공개적이거나 자발적으로 밝힌 의견에 맞춰 행동하려 하고(일관성),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요청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호감) 심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법칙은 매우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1984년 출간 당시에는 센세이셔널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여기에 더해 메시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기 이전의 준비작업 역시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즈니스의 원리는 무엇일까? 엔지니어라면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회계사라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리더라면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그 대상은 소비자일 수도, 직원일 수도, 주주일 수도, 정부나 NGO일 수도 있다. 상대방을 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비즈니스의 광의의 정의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설득의 심리학(Influence: How and Why People Agree to Things, 1984)』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역시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원리라 본다. 그는 이 책 한 권으로 비즈니스 심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학술적, 임상적 영역에서 머물던 심리학을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가져왔고, 동시에 광고와 세일즈 기법 정도로만 여겨졌던 마케팅을 심리학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책은 1984년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네 번 개정됐고 전 세계적으로 약 300만 권이 팔렸다고 한다. 포브스지는 “어떤 면으로 봐도, 로버트 치알디니 박사의 『설득의 심리학』은 비즈니스 고전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치알디니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만도 1996년 출간 이후 75만 권 이상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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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설득의 심리학』의 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후 설득 혹은 인간 심리와 행동이라는 주제를 다룬 심리학자, 경영학 연구자, 저널리스트의 저서가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경제학계에도 심리학을 접목하는 유행이 불고 있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연구로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세일러는 이 분야 선구자인 치알디니의 공적을 인정한다. 언론 인터뷰에서 행동경제학 관련 책 6권을 추천했는데, 가장 먼저 꼽은 것이 바로 『설득의 심리학』이었다. 치알디니가 “지구상 가장 실용적인 심리학자”라고 말하기도 했다.1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인 로버트 치알디니는 1945년 미국 위스콘신주의 공업도시 밀워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육공무원, 어머니는 주부였다. 5남 중 첫째였던 그는 위스콘신대를 졸업하고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심리학 석사, 컬럼비아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하이오주립대와 캘리포니아주립대, 스탠퍼드대를 거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로 일했다. 현재는 명예교수직을 갖고 있다. 『설득의 심리학』은 그가 39세에 쓴 첫 저서다. 이후 150편 이상의 논문을 쓰는 동안 책은 쓰지 않았고,2  71세가 돼서야 두 번째 저서인 『Pre-suasion』을 냈다.

DBR은 창간 10주년을 맞아 치알디니를 스카이프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체크무늬 셔츠 차림으로 연구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인터뷰에 이어 한국 유일의 치알디니 공인 트레이너(CMCT·Cialdini Method Certified Trainer)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보내온 기고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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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심리학을 공부했나?

나의 첫 연구 분야는 사람이 아닌 동물의 행동이었다. 동물 행동학자였던 교수님 한 분이 연구에 참여하라고 해서 한동안은 동물 연구만 했다.3  그러던 어느 날 사회심리학 수업을 듣게 됐는데 거기서 깨달았다. “아! 이런, 동물 행동도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인간의 행동이 내겐 훨씬 더 흥미롭구나”라고. 첫 수업에서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확신했다.

인간 심리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내가 자라온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나는 농촌 지역인 위스콘신의 독일계 이민자가 많은 밀워키시, 그중에서도 폴란드계 이민자가 대부분인 동네에서 살았고 우리 집은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느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리 집을 나와 폴란드 사람이 많은 동네 길거리로 나갔을 때, 또 폴란드 동네를 벗어나 독일식 문화가 남아 있는 밀워키시의 다른 지역으로 갈 때, 또 시내를 벗어나 바깥쪽 농촌지역으로 갈 때, 이렇게 경계를 벗어날 때마다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 급격하게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런 차이가 재미있었고, 또 이런 문화적 차이를 잘 아는 사람들이 같은 메시지라도 각각의 지역색과 지역문화에 맞게 다르게 전달해서 효과를 거두는 모습들을 보면서 흥미를 느꼈다.

당신이 연구를 시작했던 1960, 1970년대에는 심리학과에서 비즈니스 영업이나 마케팅을 다루는 일이 흔치 않았을 것 같다.

당시엔 심리학계에서 영업이나 마케팅에 관한 행동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다만 설득이라는 주제는 연구가 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연구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내 실험에 근거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실수였다. 실험실 같은 세팅에서 대학생들의 반응만을 조사해서는 인간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같은 주제를 연구한다 하더라도 학교를 나가 실제로 사람들이 활동하는 상황에서 조사를 한다면 훨씬 나을 거라고 봤다.

그때 왜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가.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더 넓은 범위의 대중을 위한 책을 써서 우리가 인간 행동에 대해 발견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심리학자들은 대중이 아닌 우리 스스로를 위한 책을 썼다. 학계에서만 돌려보는 책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학자들이 하는 연구는 대부분 시민이 내는 세금과 기부금, 학비 등으로 이뤄진 것이다. 시민은 자신의 돈으로 실행된 연구의 결과를 알 권리가 있고, 학자는 일반 시민에게 연구 결과를 설명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특히 그 연구가 시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라면 말이다.

학계에서는 당신이 그런 책을 쓴다는 걸 싫어한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물론이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쓰다 보면 우리의 연구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도 있었다. 이런 비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쓸 때 내가 얘기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과학적 근거를 들기 위해 노력했다. 나 자신의 주장이나 내가 겪은 경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나온 엄격한 과학적 자료들로 뒷받침한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물로 나온 책을 보고 대부분의 동료 심리학자들이 기뻐했다. 내가 사회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시민들이 좀 더 받아들이기 쉽게 설명해줬기 때문이다.

요즘은 많은 학자가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책을 펴낸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나는 아주 행복하다. 학자들도 깨닫고 있다. 진정으로 과학에 충실한 책을 쓴다면 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가치 있는 통찰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책이 이렇게 성공을 거둘 것이라 기대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전까지 이런 책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많은 사람이 좋아해줬다. 미국뿐이 아니다. 폴란드에 있는 동료가 말하기를, 내 책이 하도 오랫동안 마케팅 교재로 쓰여서 그곳 학생들은 내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더라.

한국에서도 많이 팔렸다. 내 생각에는 한국 시민들이 인간 심리에 대해서, 자신과 주변인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특별히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이 많이 팔리지 않나 싶다. 한국에 있는 동료들이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한국판의 번역과 마케팅 역시 훌륭했다고 한다.4  예를 들어 한국어판 제목에서는 어감이 좋지 않아 ‘Influence’에 해당하는 단어가 빠졌는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당신은 책 안에 수많은 설득의 사례를 담았는데 그것을 딱 6가지로 분류해 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내가 설득에 대한 책을 쓰기 전에도 이미 세상에는 생존을 위해 설득의 프로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 영업조직, 마케터, 광고회사, 리쿠르터, 기부금 모집인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설득 능력을 갖춰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노하우를 배워보고자 자동차와 보험영업인 교육을 받았고 마케팅 회사와 사회단체에서도 일했다.

나는 다양한 직업의 공통점을 찾고자 했다. 각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업무가 독특하며 다른 직업과 다르다고 말한다. 영업하는 사람은 자기 일이 마케팅과 다르다 말하고, 마케팅 하는 사람은 자기 일이 광고와 다르다고 말하고, 광고하는 사람은 자기 일이 PR과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설득을 잘하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을 발견해 보편적인 법칙을 쓰고자 했다. 보편적인 법칙을 만들 수 있다면 더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물이 ‘설득의 6법칙’이다.

당신이 잠입해 일했던 회사들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는가?

각 회사의 세일즈 훈련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책에 쓰는 조건으로 회사명을 밝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들이 내가 심리학을 연구하는 대학교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건 아니다. 신분을 숨기고 몰래 직원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훈련을 받고 일하는 동안은 그 회사에서 내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중에 책을 쓰면서 이들의 허가를 받기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또 책이 나오기 전에 미리 원고를 보여주기로 했다.

허락을 받기 위해 또 다른 조건도 붙였다. ‘당신들이 내게 정보를 사용하는 권리를 주는 대가로, 나 역시 당신들에게 다른 기업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한 것이다. 내가 책에서 말한 ‘상호성의 원칙’을 적용해봤다. 다들 좋아하더라. 또 나는 ‘당신들이 나의 교사(teacher)가 되는 것’이라고도 말해줬다. 이렇게 말하면 세일즈맨들은 자랑스러워하고 또 기뻐했다. ‘당신이 대학교수인데, 내가 당신을 가르치게 되는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교수를 그만두고 계속 영업일을 하고픈 생각은 없었는지.

설득을 연구하는 심리학자가 물건을 판다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서문이나 여러 강연에서 당신은 시민들이 영업이나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이 책에 큰 관심을 가진 건 설득의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영업, 마케팅 관련 기업인들이다. 아이러니한데.

집필 의도와는 다르지만 지금은 기업을 돕는 워크숍도 운영하고 있다. 다만 그 워크숍의 이름은 ‘효과적이고 윤리적인 영향력(effective and ethical influence)’이다. 나는 설득과 영향력이라는 주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데도 관심이 있지만, 그것을 실생활에 윤리적으로 적용하는 데 가장 관심이 많다. 고객이든 파트너든, 정직한 방법으로 대하자는 것이다. 속임수가 아니라 정직한 정보를 전달해서 윤리적인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행동과학 부서를 대규모로 운영하는 기업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 애플 등은 내가 고안한 방법들을 실제 업무에 사용하고 있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덕분에 사람들이 지난 34년간 더 똑똑해졌고 남의 말에도 덜 속는다고 생각하는지.

나 자신을 보면 34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똑하지 않고 남의 말에도 잘 넘어간다. 그게 나쁜 게 아니다. 나는 나에게 정직한 정보를 주는 사람의 말에 잘 넘어가고 싶다. ‘권위의 법칙’을 생각해보자.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나에게 그 분야에 대한 정직한 정보를 준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다. 왜 아니겠는가.

얼마 전 내가 겪은 일이다. 전자제품 매장에 들렀다. 뭘 사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TV 코너에서 한 제품이 세일 중인 것을 봤다. 며칠 전 내가 구독하는 컨슈머리포트 잡지에서 굉장히 높은 평점을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모델이었다. 그 앞에 가서 브로슈어를 보고 있으니 영업사원이 다가왔다. “실례지만 이 모델에 관심이 있으신가 봐요? 왜 그런지 이해가 갑니다. 이 가격이면 정말 훌륭한 딜이죠.”

그러더니 또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 남은 한 대입니다.” 그는 이 말에 내 표정이 굳어지는 걸 봤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방금 전 어떤 여성분이 전화를 했는데, 오늘 오후에 우리 매장에 와서 이걸 사겠다고 하더군요.” 20분 후, 나는 TV를 카트에 넣고 매장을 나오고 있었다. 그 TV는 지금 우리 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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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라. 나는 이 주제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이다. 영향력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다. 그런데 이 영업사원이 ‘희소성의 법칙’을 이용해서 내게 필요하지도 않은 TV를 팔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아까 말했던 윤리의 문제다. 만일 그 TV가 정말로 그 매장에 남은 마지막 한 대였고 정말로 곧 팔려나갈 운명이었다면, 나는 영업사원이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해주기를 원한다. 그 TV가 희소하다는 정직한 정보를 전달해주니 그는 나의 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단지 제품을 팔기 위해 마지막 한 대라고 나에게 거짓 정보를 줬다면 그는 나의 편이 아니라 나의 적이다. 다시 말해, 희소성을 강조하는 설득의 법칙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윤리적으로 사용됐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어떻게 했을까? 바로 다음 날 그 매장에 다시 갔다. 그 TV가 있던 자리가 비어 있는지, 아니면 새로 채워져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영업사원은 나에게 정직한 정보를 준 것이었다. 나는 그 회사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그 제품의 리뷰를 긍정적으로 쓰고, 매장명과 직원의 이름을 적어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만일 그 전날 그 영업사원이 ‘그것이 마지막 남은 한 대’라는 정보를 내게 주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집에 가서 아내에게 훌륭한 TV가 세일 중이라는 것을 말했을 것이고, 아내가 그걸 사오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아내의 말에 따라 다음날 내가 매장에 갔을 때 그 TV가 팔려버리고 없었다면 나는 영업사원에게 화를 냈을 것이다. ‘왜 어제 내가 왔을 때 한 대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해주지 않았냐’고 말이다. 그는 나에게 희소성이라는 정보를 줌으로써 나를 도와줬다. 내 편이 돼줬다.

그렇다면 인터넷 덕에 소비자가 34년 전보다 똑똑해진 것인가.

인터넷 덕분에 나쁜 속임수에는 덜 속게 됐다. 혹시 속임수에 넘어가게 되더라도 인터넷에 비판의 글이나 리뷰를 올린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속임수를 쓴 사람을 벌주기도 쉬운 세상이 됐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설득의 6법칙’에 대해서는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취약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권위에 약하고, 희소성에 약하고, 사회적 증거에 약하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전해도, 온라인상에 정보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6가지 법칙은 이전과 같이 유효하다.

2016년에 두 번째 단독 저서 『Pre-suasion』을 냈다. 발전된 점은 무엇인가.

첫 번째 책은 메시지에 어떤 것을 담아서 사람들을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다뤘다. 두 번째 책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전에 하는 행동이 그 메시지 자체만큼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책을 낸 지 30여 년이 지나서야 두 번째 책을 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설득의 심리학』이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말하자면 하나의 커다란 나무가 됐다. 나는 또 하나의 나무가 될 만한 아이디어의 씨앗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큰 나무 옆에 잡목을 심고 싶지는 않았다.

의욕을 갖게 된 건 몇 년 전 『Pre-suasion』의 아이디어와 관련된 학술 연구가 여럿 발표되면서였다. 결정적인 계기는 어느 토요일 아침의 일이었다. 집에 누가 노크를 해서 문을 열어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우리 동네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 프로그램을 위해 돈을 기부해달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나에게 자신이 실제로 그런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우리 동네에 그런 프로그램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에게 상당히 많은 돈을 기부했다. 이상한 일 아닌가? 그는 내가 말한 ‘설득의 6법칙’ 중 어느 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권위에 호소하지도 않았고 희소성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사회적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남자가 떠나고 나서 내가 왜 많은 돈을 줬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는 4살짜리 딸을 데려왔다. 그 귀여운 꼬마가 아빠 다리 뒤에 숨어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을 내가 봤고, 그러고 나서 그 남자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뭔가를 하겠다는 말을 듣자 내 두뇌가 일관성을 느낀 것이다. 그 남자가 그런 효과를 노리고 딸을 데려오지는 않았겠지만 어찌 됐든 아빠와 함께 온 그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줘야겠다는 동정심이 동네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와, 이걸로 책 써야겠다”고. 나에게도 통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통할 거라고.

최근 ‘행동경제학’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행동경제학은 마케팅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하며 새로울 것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5  당신은 그 용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맞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은 요즘 매우 핫(hot)한 단어다. 나는 이 단어들의 조합을 좋아한다. 우리가 무슨 별들이 늘어선 모양으로 점을 치는 것처럼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간 심리를 다룬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케팅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같은 주제를 놓고 경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는 ‘행동과학자(behavioral scientist)’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행복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주변의 심리학자 중에는 경제학자들이 행동과학이라는 주제를 가져가는 것에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이유를 말해주겠다. 경제학은 언제나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학문이다. 경제학자들이 심리학/마케팅학의 메시지와 아이디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부와 기업 조직에서 심리학/마케팅학의 지위를 높여주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경제학자들이 이제 인간 심리와 행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실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 더 이상 모든 인간의 행동이 수학 공식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는 걸 깨닫고 있어서 나는 기쁘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많은 사람이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당신이 보기에 그것은 이성적인 결과였나? 아니면 사람들이 트럼프의 설득 기술에 넘어가버린 것인가.

둘 다다. 먼저 2016년 선거에 대해 알려져야 할 것이 있다. 지난 100년 동안 미국의 선거 결과를 보면, 대통령 선거 직전에 있었던 2번의 선거에서 하나의 정당이 모두 승리했을 경우 해당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쟁 정당의 후보가 당선된 경우가 80%였다. 이번 선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이전 2번의 선거에서 승리를 한 상황이었다. 즉, 역사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미국인들이 변화를 원할 타이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여러 후보 중에서 ‘변화’를 가장 잘 상징하는 후보였다.

반면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연속성’을 상징하는 후보였다. 클린턴의 메시지는 ‘오바마 정부의 장점과 혜택을 그대로 이어나가자’는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트럼프의 승리는 이성적인 결과였다. 미국인들은 변화를 원했고 트럼프가 변화를 가져올 후보였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트럼프가 사용한 트릭들도 있었다. 트럼프가 연설을 할 때 보면 그는 항상 자신의 뒤편에 다양한 인종, 외모의 사람들을 데려다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TV 시청자들에게 하나의 사회적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많은 사람이 이 남자의 말을 들어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저기 모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바마나 다른 정치인들도 그런 트릭을 종종 쓰긴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이 하는 모든 연설에서 그런 설정을 한다.

오바마와 트럼프가 다른 점이 또 있다. 오바마뿐 아니라 정치인은 보통 TV에 나오는 연설을 할 때 카메라가 자신에게 최대한 집중되도록 만든다. 반면 트럼프는 연설을 하기 전에 꼭 TV 카메라맨들에게 ‘여기 모인 사람들을 쭉 둘러 보여주세요’라고 요구한다. 자신을 보고 있는 관중의 모습을 TV 시청자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는 ‘pre-suasion’을 하는 것이다. 그는 말 한마디하기도 전에 미리 시청자 설득에 들어간다.

당신이 힐러리 클린턴 캠프의 선거전략을 세운 ‘고질라’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던데, 사실인가.6

내 영향력을 그렇게 평가해주니 고맙다. 다만 고질라처럼 사람과 빌딩을 짓밟는 괴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2016년 선거 때 클린턴을 위해 일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겠다. 나는 내 의견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당의 후보라도 함께 이야기할 생각이 있다. 그때 클린턴 캠프는 나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그러나 솔직히 얘기하면,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작성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경민(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DBR mini box I
치알디니의 설득 6법칙 + 2
『설득의 심리학』은 1984년 미국에서 『Influence: How and Why People Agree to Things』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1996년 나온 한국어판 제목은 2판의 부제인 ‘The Psychology of Persuasion’을 번역한 것이다. 4판부터는 많은 케이스가 추가되면서 부제가 ‘Science and Practice’로 바뀌었다. 치알디니는 3년간의 기업체 잠입 취재를 통해 영업사원, 자선단체 모금원, 정치인 등이 사용하는 설득 기법을 수집하고 6개의 범주로 정리했다. (6개 법칙의 순서는 판본마다 조금씩 다르다.)


1) 상호성의 원칙(reciprocity)
사람은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본성이 있다. 공짜 화장품 샘플을 나눠주면 구매율이 올라간다. 자선단체는 기부금을 요청할 때 먼저 꽃을 선물한다.

2) 일관성의 법칙(consistency)
사람은 자신의 말이나 글에 대해 일관성을 지키려 한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은 미국군 포로들에게 ‘미국이란 나라에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다’라는 글짓기를 하게 한 다음 점차적으로 미국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게 했다. 포로들은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저도 모르게 점차 반미 성향을 띠게 됐다.

3) 사회적 증거의 법칙(social proof, consensus)
TV 쇼 프로에서 가짜 웃음을 들려주면 그것이 가짜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덩달아 웃게 된다.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수백 명이 집단 자살을 한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사람은 불확실성이 높을 때일수록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베낀다.

4) 호감의 법칙(liking)
못생긴 사람보다 잘생긴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더 어렵다. 자선단체의 모금행사에 가면 항상 맛있는 식사가 제공된다. 사람들은 예쁜 것, 맛있는 것, 승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응원하는 스포츠팀이 승리하면 “우리 팀이 이겼어”라고 말하고, 패배하면 “양키스가 졌어”라는 식으로 말한다.

5) 권위의 법칙(authority)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 경기 전 특정 브랜드의 에너지바를 세 개씩 먹기 시작하자 팀원 모두가 따라 했다. 벤치멤버 스티브 커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에너지바를 먹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실험실에서도 권위의 위력이 드러난다. 실험실에서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연구 목적’이라며 타인에 대한 전기 고문을 명령하면 평범한 시민들도 고문에 적극적으로 참여
한다.

6) 희귀성의 법칙(scarcity)
로미오와 줄리엣은 금지된 사랑이라 과격한 행동을 했다. 사람은 이익보다 상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역사상 주요 혁명은 경제가 발전하다가 주춤하는 순간 일어났다. 전통적으로 억압받는 계층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나은 삶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들이 화를 내서 일으킨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할인쿠폰을 줬다가 뺏는 것은 아예 주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나쁘다.

이상이 6개 법칙이다. 여기에 치알디니는 두 가지 법칙을 더했다. (0) 법칙은 물질적인 욕심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굳이 책에서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 (7) 법칙은 Unity다. 신간 『Pre-suasion』에 등장한다.

7) Unity
종교, 인종, 국적, 가족, 정치관, 종교 등 자신과 같은 집단에 속한다고 여기는 사람의 말을 신뢰하는 현상이다. 특정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 해도 어떤 행동을 같이하는 것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DBR mini box II
설득의 심리학: 영업의 기술이 아닌 영향력의 과학
2005년 가을. 필자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미국 애리조나로 향했다. 그해 『설득의 심리학(Influence)』을 읽던 중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가 설립한 인플루언스앳워크(INFLUENCE AT WORK)라는 컨설팅사에서 워크숍을 한다는 것을 알게 돼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고백하건대 당시만 해도 비싼 돈을 내고 ‘합법적인 고급 사기’ 테크닉을 몇 개 배워오겠다는 건전하지 못한 기대가 있었다. 예를 들어 연봉을 시세보다 더 높게 받는다든지, 영업에서 더 많은 계약을 더 높은 가격으로 따낸다든지….

2년 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설립한 뒤, 치알디니가 직접 진행하는 공인 트레이너(CMCT·Cialdini Method Certified Trainer) 양성 과정에 지원했다. 2008년부터 한국에 그의 프로그램을 도입해 10년 넘게 진행해오고 있다. 『설득의 심리학』에 대한 필자의 기대와 예상이 맞아 들어간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필자는 이 책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거라 예상했지만 삶의 태도까지 바꾸어 놓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 책은 설득의 고전이다. 마케팅에서 리더십까지, 고객과 협상부터 직원 설득까지 비즈니스의 거의 모든 활동은 영향력 발휘와 관련이 있다. 2002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현대 비즈니스 어젠다를 관통하는 아이디어’를 논하면서 치알디니 박사의 연구를 행동심리학 분야에 올려놓았다. 미국의 경영 잡지 포천은 2005년 ‘75권의 가장 스마트한 책’을 선정하면서 그중 하나로 『설득의 심리학』을 꼽을 때, 협상 분야가 아닌 권력(power) 분야의 대표 저서 5권에 포함했다. 즉, 이 책을 단순히 영업기술 매뉴얼로 읽는 것은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치알디니에게 직접 교육을 받고 지난 10년간 그의 영향력의 법칙 워크숍을 진행해온 사람으로서 이 책을 새롭게 읽는 방법에 대해 몇 가지를 적어본다. 아울러 치알디니의 한국 측 파트너로 10년간 일해오면서 느낀 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기술이 아니라 과학으로 읽기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것은 1984년이니 무려 35년이 다 돼간다. 20세기에 나온 책이 21세기에도 굳건하게 설득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art)’이 아닌 ‘과학(science)’ 서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6가지 설득의 법칙은 걸출한 영업 전문가가 자신의 기술을 정리한 것이 아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사회심리학자들이 실험실과 현장에서 연구한 설득의 과학적 비밀을 분석해 6가지 법칙으로 수렴한 것이다.

그는 인간의 심리과학적 특성에 기반해 사회심리학이 밝혀낸 영향력의 법칙을 6가지로 압축해냈다. 사람들은 받은 것을 돌려주려 하고(상호성), 부족하면 더 간절하게 원하게 되며(희귀성), 답을 잘 모를 때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나(권위), 유사한 사람들 혹은 다수의 의견(사회적 증거)을 따르게 되며, 자신이 이전에 공개적이거나 자발적으로 밝힌 의견에 맞춰 행동하려 하고(일관성),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요청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호감) 심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법칙은 매우 당연한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설득의 과학적 법칙을 오해하거나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상호성의 법칙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내게 해주는 대로 갚아주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어떤 모임에 가게 되면 새로 만나는 사람 중에 나중에 내게 도움이 될 사람이 누구인지 찾으려고 한다. 치알디니는 상호성의 법칙에 대해 말하면서 일반의 상식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호성이라는 과학적 원리에 기반해 영향력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모임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오히려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 내가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지?”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찾는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네트워크나 정보,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먼저 보낸다. 이렇게 자신이 먼저 도움을 베푸는 만큼 자신의 영향력은 올라가게 돼 있다. 필자가 서두에서 설득을 ‘합법적인 고급 사기술’로 생각했다가 치알디니를 만나면서 사업은 물론 삶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나 역시 『설득의 심리학』을 만나기 이전에는 내가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기 때문이다.

‘영업 매뉴얼’이 아닌 리더십과 조직 커뮤니케이션의 과학적 지침서로 읽기

『설득의 심리학』은 마케팅과 영업 직종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랜 기간 바이블처럼 여겨졌다. 그들의 실무에서 설득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필자는 지난 10년 동안 『설득의 심리학』 워크숍을 통해 많은 참석자의 고민을 듣고 논의를 해왔다. 참석자들의 상당수는 CEO와 임원, 매니저들이었는데, 그들은 외부 고객뿐 아니라 내부 고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직원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조직문화를 리드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리더십/조직문화와 설득은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리더는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이끈다’는 말이 21세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자. 직원에게 명령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설득하는 사람일까? 문화권이나 사업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지시해서 일이 잘 풀릴 수 있다면 윗사람의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리더는 일방적 지시로는 조직이 돌아가지 않기에 고민을 한다. 리더는 직원을 설득해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는 정의에 동의한다면 『설득의 심리학』이 제시하는 영향력의 6가지 법칙은 리더십이나 조직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영향력을 만들어가는 과학적인 지침서로 읽어볼 수 있다.

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직원과 경영진 간의 신뢰 부족’이란 말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조직마다 붙여 놓은 기업 가치를 보면 ‘신뢰’가 빠지는 경우가 없다. 아마도 가장 이루기 힘든 것이라서 그럴까? 치알디니가 제시한 6개 법칙 중 ‘권위의 법칙’은 오해하기 쉽다. 직책이 높거나 권위가 있으면 사람들이 쉽게 설득되고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건강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 흰 가운을 입은 의사의 의견에 더 설득된다. 하지만 치알디니는 권위를 얻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신뢰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보며, 신뢰받지 못하는 권위는 영향력을 갖기 힘들다고 말한다. 신뢰 형성을 위해 치알디니는 장점보다는 약점을 어떻게 소통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직문화에서 신뢰의 부족에 대해 고민하는 리더라면 “신뢰하는 조직이 됩시다”라고 연설하거나 멋진 슬로건이나 포스터를 붙여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거의 효과가 없다. 리더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우리 조직이 갖고 있는 약점을 직원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이다.

기업에서 조직문화 진단에 대한 객관적 조사를 한 뒤 결과가 안 좋게 나오는 부분을 빼거나 발표 자체를 안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조직 내부 신뢰를 더욱 악화시킨다. 그보다는 약점을 소통하면서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문제를 향후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약속한 뒤에,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신뢰 회복이 가능하다. 조직 컨설턴트인 패트릭 렌시오니의 ‘취약성 기반의 신뢰(vulnerability-based trust)’나 TED 강연으로 엄청난 인기를 끈 브레네 브라운의 ‘취약성의 힘(power of vulnerability)’ 모두 심리학적으로는 치알디니가 권위의 법칙에서 말한, 강점이 아닌 약점의 소통을 통한 신뢰 형성과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은 신뢰 회복의 패러다임을 고객과의 관계에서 실행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2009년 도미노피자는 ‘미국 내에서 가장 맛없는 피자’라는 한 소비자 조사 결과를 대면했다.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도미노피자는 그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피자 턴어라운드(Pizza Turnaround)’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지금도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이 동영상의 첫 부분에는 소비자 대상 조사에서 나온 악평이 있는 그대로 등장한다. 자신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뒤, CEO와 책임 셰프가 나와 피자의 조리법 등을 모두 바꾸겠다고 약속한다. 이 캠페인 이후 이듬해 도미노피자의 상반기 주가는 전년 대비 70%나 올랐다. 과감하게 약점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도입하자 소비자와 시장이 신뢰로 답한 것이다.

필자가 만난 치알디니

치알디니는 회사를 경영하는 방식이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6가지 법칙을 그대로 실천한다. 예를 들어 공인 트레이너 자격을 운영하는 방식도 그렇다. 대부분의 컨설팅사는 많은 사람에게 공인 트레이너 자격을 부여한다. 치알디니는 자신이 직접 트레이너를 양성하고 필기와 실기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공인 트레이너 자격을 부여하며, 그 이후에도 엄격한 기준으로 관리를 해나간다. 작년만 해도 공인 트레이너는 전 세계 20명이었지만 올해 들어와 18명으로 줄었다. 그 사이에 몇 명이 자격을 잃은 것이다. 여기에 그가 제시한 ‘희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2008년 치알디니는 한 콘퍼런스에 연사로 초청받아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그는 주최 측에서 제안한 사람 대신 필자를 모더레이터로 제안했다. 또 “나를 한 시간 동안 마음껏 이용하라”면서 당시 필자에게 가장 중요했던 고객사를 함께 방문해 경영진과 매니저를 대상으로 강연을 해줬다. 이렇게 치알디니는 기회가 될 때마다 파트너들에게 먼저 도움을 주려고 손을 내민다. 필자가 10년 동안 그의 파트너로서 활동한 것은 상당 부분 이런 매력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필자에게 도움을 주고(상호성), 필자의 장점을 발견해 필자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었고(호감), 트레이너 프로그램은 소수로 매우 엄격하게 운영하면서(희귀성)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의 다음 행보도 기대가 된다. 필자는 몇 년 전 동아일보 ‘책 속의 이 한 줄’이라는 코너에 『설득의 심리학』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필자가 소개한 한 줄은 “똑같은 것일지라도 바로 이전에 경험한 사건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문장이었다. 『설득의 심리학』에 보면 두 손을 얼음물과 더운물에 따로 담갔다가 동시에 뺀 뒤 미지근한 상온의 물에 동시에 두 손을 담그는 실험이 나온다. 같은 온도의 물이지만, 이전에 손을 어디에 담갔는지에 따라 두 손의 온도는 정반대로 느껴진다. 설득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치알디니가 정리한 6가지 법칙은 무언가를 요청하기 ‘전에’ 어떤 맥락과 환경을 만들지에 관련이 있다. 설득의 아마추어는 요청 자체에만 신경 쓴다. 하지만 설득의 과학을 이해하는 프로들은 요청 이전에 상대방이 어떻게 경험할지에 신경 쓴다. 평생 설득의 과학을 연구한 심리학자인 치알디니가 30여 년 만에 낸 단독 저서 제목은 ‘설득’을 뜻하는 ‘Persuasion’의 철자를 살짝 바꾼 『Pre-suasion』이다. 여러분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hoh.kim@thelabh.com
필자는 리더십 및 조직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0년째 일해오고 있다. 한국외대(불어와 철학)와 미국 마켓대(PR)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공개사과에 대한 인지적 연구)를 받았다. 전 세계에 18명만 있는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이며 글로벌 PR 컨설팅사 에델만의 한국 법인 대표를 지냈다. 서강대 영상정보대학원 및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 교수로도 활동했다. 저서로 『쿨하게 사과하라(2011, 공저)』 『쿨하게 생존하라 (2014)』 『평판사회(2015, 공저)』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할까(2016)』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1호 Data Privacy in Marketing 2021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