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계산하지 않고 그냥 가져가도 괜찮다. 물건들에 가격표도 붙어 있지 않다. 문화센터나 극장에서 문화생활을 즐기지만 누구도 비용을 지불하거나 받지 않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 드 호그벡(De Hogeweyk)이라는 치매마을 이야기다. 2009년에 생긴 이 마을에는 중증 치매 노인 환자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주거공간으로 슈퍼마켓을 비롯해 극장, 우체국, 헤어숍, 레스토랑, 문화센터, 외래 진료 공간 등이 운영된다. 시설 곳곳에는 우체부나 경비원, 점원 등으로 변장한 의료진과 봉사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보통 치매로 확진되면 병원은 가급적 환자를 정상적인 사회생활에서 격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환자는 사회나 가정으로부터 더 고립돼 결국 일상에 복귀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지경에 이른다. 이 사실에 주목한 의료진은 간병인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환자의 자유와 일상성을 강조하는 치매 환자 케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치매로 인한 문제를 국가가 사회문제로 인식하게 해서 정부의 지원을 확대해 환자나 보호자의 부담을 감소시켰다. 실제 이러한 방식으로 돌본 결과, 호그벡 마을에 입주한 치매 환자들은 다른 시설의 환자들보다 평균수명이 길고, 투여하는 약물의 종류와 양도 감소하는 등 환자와 보호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세계는 그야말로 ‘치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치매는 완치가 쉽지 않을뿐더러 치매 환자의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이들을 돌보는 데 들어가는 의료적, 사회적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비용보다 더 큰 문제는 치매 환자를 돌볼 전문 시설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치매 환자는 시설이 열악한 요양원에 보내지거나 가둬진 채 집안에서만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간호사 출신의 이본느 반 아모릉엔(Yvonne Van Amerongen)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드 호그벡 마을을 만들었다. 치매 환자도 일상을 즐길 권리와 자유로운 공간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치매 환자들은 더 이상 격리되지 않고 마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환자들은 취미생활이나 문화활동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스스로 치매 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강요하지 않는 일상 속에서 의료진이나 봉사자의 배려를 받으며 각자의 생활양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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