格의 경영

유니버셜 디자인, 사회의 格을 높여준다

241호 (2018년 1월 Issue 2)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 위치한 텐진지하가(天神地下街)는 후쿠오카현의 대표 관광지다. 텐진지하가는 우리나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에 꾸며진 대규모 상가와 비슷하다.

이 텐진지하가를 후쿠오카 명물로 만든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다. 이 지하상가에는 4개의 다른 콘셉트로 꾸며진 화장실이 있는데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인다. 그중 한 화장실 안에는 대규모 서재가 꾸며져 화장실보단 도서관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일부 화장실 입구에는 세련된 전시물들이 진열돼 있어 미술관에 들어가는 것 같다. 화장실도 화려함 그 자체다. 수도꼭지, 개수대, 거울 등 모든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꾸며 마치 ‘화장실 명품 브랜드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텐진지하가 화장실이 돋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관광객들을 위해 중국어, 영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화장실 안내 표지판을 만든 건 기본이고 화장실 입구에는 턱을 없애 휠체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개수대 높이를 낮추고 다양한 높이의 거울을 비치해 남녀노소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편하게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화장실 변기에는 노인이나 장애인들도 쉽게 용변을 볼 수 있도록 긴 막대기 형태의 손잡이를 설치했다.

이처럼 성별, 국적,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제품이나 환경, 디자인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일컫는다. 특히 일본과 같이 노령인구 비율이 높아진 국가에선 유니버설 디자인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불편하지 않고, 소외감 없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유니버설 디자인에는 일곱 가지 원칙이 있다. 누구나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다양한 생활환경에서도 사용이 자유로워야 한다. 사용법이 간단하고, 직관적이고, 정보가 간단하고 쉬워 누구나 사용이 편리해야 한다. 잘못 사용하더라도 사고가 방지되고 쉽게 복구가 가능하며, 또 작은 힘으로도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어 이동이나 수납이 편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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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가장 먼저 적용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병원이다. 지난 9월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을 차지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만큼 노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병원시설을 보다 편리하고 친근하게 바꾸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병원 시설은 우선 복도의 넓이, 화장실 수가 가장 먼저 개선돼야 한다. 노인인구 증가로 휠체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자가 늘어나게 되므로 기존의 병원에서 표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복도보다 그 넓이가 최소한 1.5배에서 두 배 정도는 넓어야 할 뿐 아니라 복도 중간에 빈 휠체어를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최근 들어 노인이나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환자가 늘면서 병원 내에 보유하고 있는 휠체어 대수를 늘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이런 현실에 비춰봐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화장실 수 또한 현재의 표준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 늘려야 한다. 노인들은 젊은이보다 화장실 사용 빈도가 잦을 뿐 아니라 휠체어 등을 사용하기에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간도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노인성 질환에 의한 편마비 환자가 늘어나고 있으므로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한쪽 손만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화장실이 설치돼야 한다. 국내 일부 병원에서는 이미 ‘여성 전용 화장실, 오른손용(Female Toilet RH)’ 또는 ‘남녀 공용 화장실, 왼손용(Unisex Toilet LH)’ 등과 같이 편마비 환자를 배려한 화장실이 속속 설치되고 있는 추세다.

아울러 화장실 수와 편의성뿐만 아니라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화장실에서 낙상을 방지하는 작은 장치나 보호기구, 높낮이를 조정할 수 있는 개수대를 설치하는 것이나 누구나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턱이 없는 구조, 쉽게 틀고 잠글 수 있는 샤워기의 디자인, 휠체어에 앉은 채 샤워가 가능한 구조 등을 갖추는 등 내부 유니버설 디자인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다.

앞서 텐진지하가 화장실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화장실은 단순히 용변을 보거나 화장을 고치는 곳이 아니라 유니버설 디자인을 실현해 내는 생활 공간이 될 수 있다. 화장실 하나만으로도 그 사회의 척도가 결정될 수 있는 시대다.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kimjin@yuhs.ac
필자는 1989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중공업 기획실, 삼성 회장비서실 인력개발원, 삼성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에서 인사교육, 전략수립과 현장 적용을 총괄한 HR 전문가다. 호텔신라 서비스 드림팀을 창단해 호텔 품격 서비스의 원형을 보여줬고 차병원그룹 차움의 최고운영총괄을 맡아 의료서비스 분야에도 품격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는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 경희대에서 국제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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