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케어, 좀 더 차분하게

236호 (2017년 11월 Issue 1)


정보통신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어느 분야든 이제 전문가는 유일무이한 지식 저장고로 불리지 않는다. 의료계를 예로 들어보면 의료진, 즉 사람의 기억창고 용량은 작고 컴퓨터는 무한하다. 환자의 임상 데이터 수집은 웨어러블 기기 몫이고, 분석은 정보시스템이 대신한다. 경영컨설턴트도 마찬가지다. 20여 년 전, 태평양 건너 공수한 해외 벤치마킹 사례와 분석 프레임은 신선했다. 경영진단을 통한 경영전략은 미래 지향적으로 보였다. 이제 해외 정보 검색은 특별한 역량이 아니다. 환경이 급변하니 경영전략의 수명이 짧아졌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에 무분별한 벤치마킹이 난무하는 것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새로운 분야다 보니 예전처럼 일단 ‘성공사례 찾아 따라 하기’에 몰두하고 있다. 본래 모방경영은 쉽다. 의사결정을 위한 경영전략이 더 견고해야 할 시기에 검토기간은 짧아지고 근거자료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왓슨을 도입한 병원이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 되는 이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MD앤더슨 암센터가 인공지능(AI) 도입을 서둘렀고, 이를 지켜보던 한국 병원들이 ‘선진국의 트렌드’라 믿고 앞뒤 재지 않고 곧바로 뛰어들었다. MD앤더슨이 IBM사 왓슨을 도입한 것은 2013년 말이다. 올해 초 MD앤더슨은 왓슨을 ‘실효성 없는 ICT’로 판단하고 폐기해버렸다. 기존 데이터와의 호환성 부족과 높은 비용이 문제였다. 단일 병원의 환자 정보는 빅데이터가 될 수 없었다. 왓슨의 딥러닝 시간은 너무 길었다. MD앤더슨에게 왓슨은 고가의 대형 계산기에 불과했다. IBM사와의 계약 해지는 생각보다 빨랐고 전략적 판단은 적절했다. 마치 암 치료의 신세계를 열어젖힐 것으로 기대하면서 앞 다퉈 왓슨을 도입한 한국의 병원들만 민망해졌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헬스케어 전략은 환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고 비즈니스적으로도 성공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해외 신기술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지 가려내는 능력부터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 병원들이 헬스케어의 미래를 예단하지 못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좀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아무리 바이오 기술 환경이 급변해도 경영전략의 본질과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고차원적인 목적을 해석하고, 중간 시점에서 실현된 바를 정의해 다시 평가할 때 새로운 행동이 나온다. 정책을 공들여 기획하고, 투자예산을 배분하고, 전략 실행의 성과를 평가하는 과정이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것, 이것이 헬스케어 경영전략이다. 적절한 대응에 기관의 운명이 걸려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 경영전략의 ‘압축’은 있어도 ‘생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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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형 캡스톤브릿지 대표

필자는 코넬대(Cornell Univ., Ithaca, New York) 의료경영학석사(M.H.A.) 과정을 졸업했으며 미국 공인회계사다. 삼일회계법인과 미국 FTI컨설팅 헬스케어본부(FTI Consulting Inc., FTI Healthcare) 등에서 일했다.
현재 글로벌 헬스케어 경영컨설팅 업체인 캡스톤브릿지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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