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국내 바이오 벤처 1세대로 20년 넘게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바이로메드는 자체 기술력과 자금 동원력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미국 FDA 임상3상을 진행 중인 신약을 2개나 보유한 회사다. 바이로메드는 창업 초기 서울대 내 연구소에서 시작해 학내 벤처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며 성장했다. 특히 많은 투자금이 들어가는 신약 개발의 특성상 바이오 벤처들이 대부분 개발 단계 초기에 라이선싱 아웃(기술 수출)을 추진하는 것과 다르게 바이로메드는 ‘기술상장특례제도’를 활용해 코스닥시장 상장에 성공하며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했다. 또 규모는 작지만 나름 수익이 나는 사업(건강식품사업)을 인수해 회사의 현금흐름 문제를 해결했다.
편집자주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신지원(고려대 영어영문학과·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글로벌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한 신약 개발 경쟁이 뜨겁다. 미국,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제약 강국들이 저마다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추세다. 이에 반해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능력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그동안 신약 개발보다는 복제약 위주의 성장을 추구해오면서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은 천문학적인 돈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신약 개발의 첫 단추인 후보물질 탐색부터 신약 승인에 이르기까지 보통 10∼15년이 걸린다. 1조∼3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자본도 필요하다. 이렇게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도 실제 성공 가능성은 1%가 안 된다.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국내 대형 제약사나 대기업 계열 바이오 기업을 제외하면 이 정도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바이오 벤처 1세대 중 대표주자로 꼽히는 ‘바이로메드(ViroMed)’가 자체 기술력과 자금 동원력만으로 미국 식품의약처(FDA) 임상2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3상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국내 바이오 업계에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바이로메드는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김선영 교수가 1996년 연구원 2명과 함께 학내 벤처 1호로 설립한 국내 최초 바이오 벤처다. 김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의 생물학·의학 연구소인 화이트헤드연구소와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구하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유전자 전달체로 사용되던 레트로바이러스의 일종인 것에 착안,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본격 나섰다. 유전자 치료제는 유전자를 세포 내에 전달하는 기술을 이용해 암, 유전 질환, 심혈관 질환 등 다양한 질환들을 치료하는 기술이다. 초기에는 불치·난치병 대상으로 개발됐는데 지금은 암, 심장질환, 관절염 등 시장이 매우 큰 분야를 대상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바이로메드는 전체 직원 약 70명 중 절반 이상이 R&D 인력이다.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도 80%가 넘는다. 코스닥 바이오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150여 개의 지식재산권도 보유하고 있다. 적극적인 R&D 투자 성과로 2005년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통해 코스닥에 상장했고 미국에서 2개의 치료제가 임상2상을 통과하면서 이후 기업 가치가 급상승해 최근에는 1조5000억 원을 넘나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2016년 전체 매출액이 68억 원 수준에 불과함에도 주식시장에서 1조 원을 훨씬 넘는 기업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시장에서 이 회사의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다.바이로메드는 특히 서울대 내 한 연구실에서 출발했음에도 자체 자금 동원력으로 10년이 넘는 임상 시험을 진행하며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도 해내지 못한 완전 새로운 신약 개발을 개발하면서 극한의 불확실성을 견뎌내고 있다. 아직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세계 시장에 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한 바이어 벤처라고 단정 지어 이야기하기엔 부족한 수준이지만 척박한 국내 신약 개발 환경에서 20년간 신약 개발에만 매진하며 꾸준히 성장해 나가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로메드의 성공 요인과 국내 대형 제약사들에 주는 시사점을 DBR이 분석했다.
바이로메드의 탄생과 성장학내 벤처 장점 최대한 활용해 성장바이로메드의 시작은 서울대 내 작은 연구실이었다. 창업자인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연구원 2명이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유전자 치료 연구를 진행하다 시장성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고 이를 기반으로 회사를 세웠다. 사실 미생물학 전공자인 김 교수가 처음부터 직접 창업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초기에는 투자를 받아 연구를 지속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국내 대형 제약사 5∼6곳을 직접 찾아다녔다. 투자 및 경영은 대형 제약사가 맡고 김 교수는 연구에만 집중하고자 한 것. 그러나 이들 모두 투자를 거부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한 새로운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제약사 관계자들은 “일개 학교 벤처가 그런 걸 어떻게 연구하냐, 그런 건 글로벌 제약회사나 하는 것”이라고 무시하기도 했다. 결국 김 교수는 모든 걸 직접 하기로 결정하고 자본금 5000만 원을 모아 ‘바이로메디카퍼시픽’이라는 회사를 차린다. 이 회사가 바이로메드의 모태다.
김 교수는 이전까지 한 번도 창업이나 투자 유치를 한 경험이 없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바이오 벤처라는 개념도 생소하고 전문 투자자도 없을 때였다. 때문에 창업 초반에는 돈이 없어 회사의 모습을 제대로 갖출 수 없었다. 학내 연구소에서 김 교수와 연구원 2명이 원천 물질을 연구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창업 초창기에는 바이로메드가 학내 벤처라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R&D를 주목적으로 하는 바이오 업체에 연구실은 필수인데 바이로메드는 초기 연구실 설립에 따로 투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6년을 전후해서는 학내 벤처라는 개념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도 바이로메드에 학교 내 인프라 사용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심지어 특허 출원을 위해 대학본부에 문의했을 때도 “알아서 하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젊은 연구원들로 구성돼 있던 유전공학연구소 교수들은 산·학 협동과 창업에 우호적이어서 실험실 창업을 가능케 하는 규정과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이로 인해 바이로메드는 초기 큰 비용을 아끼며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평균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했고 당장 내다 팔 신약이 없는 바이오 벤처에게 투자금을 유치하는 일은 회사의 존폐가 달린 일이었다. 이런 막막한 상황을 뚫어준 것은 의외로 해외 기업들이었다. 국내 대형 제약사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던 바이로메드만의 연구 성과를 해외 제약사들이 먼저 알아본 것이다. 특히 창업 후 1년쯤 지나 영국 옥스퍼드 바이오메디카(Oxford Biomedica)가 바이로메드 기술을 라이선싱하면서 7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 창업 초기 ‘가뭄의 단비’ 역할을 했다. 운도 따랐다. 영국에서 70만 달러가 들어온 직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졌다. IMF 관리 체제가 시작되면서 환율이 2배 이상 뛰고 은행 금리가 30%까지 치솟으면서 70만 달러가 150만 달러 정도의 가치로 불어났고 이게 초기 종잣돈 역할을 하며 바이로메드가 적극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