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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사람에 대한 예우

이치억 | 211호 (2016년 10월 lssue 2)

종신고용이라는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고 평균 근속년수도 점점 줄어드는 시대다. 마치 프로 스포츠 선수의 이적처럼 직장인들의 이직(移職)도 일상다반사가 됐다. 자신에게 유리한 직장을 찾아서 떠나고자 하는 것은 직장인들의 상정(常情)이고, 바야흐로 의리(義理), ()이니 하는 것을 들먹여서 떠나는 사람을 잡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직원을 떠나보내는 것은 CEO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손실이 큰일이다. 새로운 직원을 채용해서 다시 적응시키는 데 코스트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다. 떠나간 사람이 동종의 경쟁업체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인데 정말로 유능한 인재가 그렇게 된다면 회사로서는 잠재적 손실이 크다. 잡을 수 없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용불안의 원조는 2000년도 더 이전의 춘추전국시대였다. 말 그대로 열국들이 세력을 다투던 시절, 군주들에게는 인재 영입이 급선무였고 인재들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열국을 종횡했다. 나라의 재산이라고는 인적 재산이 전부였던 그 시절에 한 명의 유능한 인재를 잃는다는 것은 지금의 기업에서 유능한 직원 한 명이 떠나가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한()나라와 진나라 사례를 들 수 있다. 진시황은 한비자를 영입해서 천하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반면 그를 보내버린 한나라는 전국 7웅 중 가장 먼저 멸망하는 불행을 당했다.

 

이처럼 인재가 중요한 시대였으니 비전을 가진 군주들이라면 필요한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른 나라보다 더 좋은 대우를 보장하는 것은 기본이다. 국정을 연구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을 제공하고 그들의 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때로는 떠나지 못하도록 회유하고 협박하는 일도 있었던 것 같다. 떠나간 신하에게도 존경받는 왕이 어떤 것이냐는 제선왕의 물음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답해주었다.

 

“사정이 있어 신하가 다른 나라로 떠나면, 군주는 다른 신하로 하여금 떠나가는 국경까지 전송하고, 또 그가 가는 나라에 먼저 기별해서 잘 부탁해주며, 떠난 지 3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그의 재산을 환수하니, 이것을 세 번 예()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떠나간 신하가 그 군주가 죽었을 때 상복을 입습니다. 그런데 지금 군주들은 신하가 사정이 있어 떠나려고 하면, 군주가 그를 잡아서 협박하고, 또 그가 가는 곳에 그에 대한 모진 말을 해 놓고, 떠나는 날 곧장 그의 재산을 환수해 버리니, 이것을 원수라고 합니다. 원수를 위해서 누가 상복을 입어 주겠습니까?” 떠나가는 신하를 예로 대우하면 그 군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도 이전에 모시던 군주가 죽으면 상복을 입을 정도로 존경하게 된다는 것이다.

 

떠나가는 부하를 위해 예를 다하기란 쉽지 않다. 마지막까지 잘 대접해주고 환송하며, 그가 옮겨가는 회사에 미리 연락을 취해 잘 부탁해두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주는 일은 오늘날의 기업의 생리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경쟁업체로의 이직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어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 내가 그를 마지막까지도 잘 대우해준다면, 그는 이전 군주를 위해 상복을 입어주는 신하의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 그는 오히려 나에게 잠재적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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