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별곡>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장

“인간의 본능 터치하는 화폐 형태 달라져도 사라질 수는 없다”

210호 (2016년 10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 우리는 경제활동을 할 때 화폐 시스템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비교적 최근에 확립됐다. 미국도 20세기 초반에서야 중앙은행 제도가 도입됐다. 한반도의 근대적 의미에서의 최초 중앙은행은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만든 옛 한국은행(조선은행)이다. 조선은행은 일제시대 조선 지역의 중앙은행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일본의 만주 진출을 금융 측면에서 지원했다.

 

- 1950년 설립된 새로운 한국은행은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 시스템의 골격을 가져와 만들었으며 구 조선은행의 한국인 직원들이 중용됐다.

 

- 한국 경제는 한국은행이 만들고 운영하는 원화 시스템 기반 위에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의 권한과 역할이 강화되는 추세이고 한국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에도 중앙은행 시스템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민혁(연세대 사회복지학과/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는 일제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소공동에 있는 한국은행 옛 본관 건물에는礎定(정초)’라는 글씨가 새겨진 머릿돌이 있다. 1909, 일제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썼다. 그는 조선을 일본에 병합하기 위한 마무리 수순으로 중앙은행 설립 계획을 세웠다. 석 달 후 안중근에게 저격당해 죽었지만 그의 밑그림대로 한국은행은 한반도 최초의 중앙은행이 됐다. 2년 후 한일합방이 완료돼 대한제국이 사라지자 일본은 한국은행을 조선은행으로 개명했다.

 

현재의 한국은행은 1950 6월 대한민국 정부가 설립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설계했던 구() 한국은행(조선은행)과는 별개의 법인이다. 하지만 초대 총재인 구용서를 비롯, 새로운 한국은행의 핵심 인재 상당수가 일제시대 조선은행 직원 출신이었다. 따라서 조선은행의 역사를 지워버리면 한국은행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의 차현진 원장은 현대사회의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중앙은행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빚어져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연구대상의 횡단면만 보지 말고 종단면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은행이 운영됐던 20세기 초반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과 위상이 정립되지 않은 시대였기에 조선은행의 역사가 곧 세계 중앙은행 발전사의 축약판이기도 하다.

 

차 원장은 한국은행의 여러 주요 직책을 맡아 일하면서 <금융오디세이> <숫자 없는 경제학> 등 일반인 대상의 경제 입문서를 여러 권 펴낸 고참 작가다. 2016년 여름에 나온 <중앙은행 별곡> 2014년부터 <중앙선데이> 신문에 장기 연재해온 원고를 묶어 만들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시대 중앙은행인 조선은행의 역사와 한국은행의 설립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문헌들을 직접 조사하고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청취했다. 방대한 정보를 종합해서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일대기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인천 심곡동에 있는 한국은행 인재연수원에서 저자를 만났다. 먼저 책의 내용을 요약 소개하고 인터뷰 내용을 싣는다.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장. 옆의 타임캡슐은 한국은행 100주년인 2050년 개봉된다.

 

 

 

<주요 내용 요약>

 

1. 다산 정약용도 몰랐던중앙은행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먼저, 가장 앞선 화폐관(貨幣觀)을 갖고 있던 사람은 고려 말기의 관료 방사량(方士良)과 조선 2대 왕인 태종이다. 방사량은 공민왕에게 닥나무로 만든 종이돈을 화폐로 쓸 것을 건의했다. 하지만 발행된 지 1년도 되기 전에 고려가 망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이어서 들어선 나라, 조선의 2대 왕인 태종은 방사량의 유작인 종이돈을 다시 도입했지만 당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파격적인 생각이었다. 이 역시 흐지부지 사라졌다. 조선은 화폐의 암흑기였다. 심지어 다산 정약용이나 성호 이익 같은 실학자들조차도 화폐와 은행 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1863년 왕위에 오른 고종은 화폐제도에 관심이 많아 1901년 금본위제 화폐 도입을 선언하기도 했으나 그 역시 물질()로서의 돈에 집착했을 뿐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매개체로서의 돈의 본질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2. 미국보다 앞서간 일본의 중앙은행

조선은 유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왕을 옹립해 만든 정권이다. 상업과 금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이미 8세기 초에 은화가 발행됐고 금융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일본의 무사정권은 칼 쓰는 무사와 이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해주는 상인들이 끈끈하게 함께 움직였다. 정권의 파트너였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지도층은 정권의 뿌리가 상인들의 돈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미국의 은행법을 베껴 국립은행조례를 만들었다. ‘은행(銀行)’이라는 말은 ‘bank’를 일본인들이 번역한 것으로은화를 취급하는 업자 일행이라는 뜻이다. 일본이 은행을 집합명사로 번역한 이유는 동업자들이 서로 얽혀 망(network)을 이루는 것이 은행업의 핵심이라고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는 미국도 중앙은행이라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을 모방해 은행법을 만든 일본도 경제위기에 취약했다. 1882, 몇 번의 금융위기를 겪고 난 다음에야 벨기에의 중앙은행 모델을 참고해 일본은행을 설립했다. 그래도 미국보다 32년이나 빨랐다. 일본은 조선을 합병할 때도 이런 중앙은행 모델을 도입했다.

 

3. 궁궐터에 세워진 대한제국 중앙은행

동학혁명 이후 국고가 바닥난 조선은 1895년 연 이자 6%를 주는 조건으로 일본은행으로부터 300만 엔을 빌렸다. 또 일본의 상업은행인 제일은행이 인천에서 조선의 관세 업무를 관리하며 실질적으로 중앙은행 역할까지 했다. 이 은행은 1907년 작은 궁궐터였던 서울 소공동에 사옥을 짓기 시작했다. 2 년후, 일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새로운 조선 중앙은행을 만들기로 하면서 이 건물을 제일은행으로부터 인수했다. 바로 한국은행 옛 본관(현 화폐박물관)이다. 이곳에서 발행하는 조선은행권 1원은 일본은행권 1엔으로 등가 교환됐다.

 

4. 조선은행은 일본 제국주의 첨병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만든 옛 한국은행은 이름만한국일 뿐 주주도, 경영진도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조선인 주주는 왕실과 몇 개 기업이 전부였다. 한일합방 후 조선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다음으로는일본 정부를 위한 은행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특히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한 금융 도구로 쓰였다. 이 은행은 조선을 넘어서 만주, 중국, 시베리아까지 차관을 제공했다. 즉 한반도 안에서 돈을 찍어 한반도 밖에 투자하는 일종의 국제투자기관으로 운영됐다. 1917년부터는 아예 만주의 중앙은행 역할도 겸하게 됐다. 조선은행 직원들은만주가 우리의 생명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대륙 진출에 너무 열심이다 보니조선은행이 아니라 대륙은행이나 동아은행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도 나왔다.

 

1920년대에 이르러 조선은행의 부실 문제가 커지면서 조직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 안에서는 조선은행의 감독권을 조선총독부가 갖느냐, 아니면 도쿄의 대장성(재무부)이 갖느냐를 둘러싸고 밥그릇 다툼이 일어났다. 이는 조선을 일본본토의 연장으로 볼 것인지, 본토와 다른 특수지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의 연장선이었다. 대장성이 밥그릇 싸움에서 승리하는 듯했으나 1930년대 들어 일본 군부의 힘이 강해지면서 조선은행도 군부 영향력 안에 들어갔다.

 

5. 만주 조선인의 애매한 정체성

일본은 중국 점령지의 경제 사정이 일본본토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선은행을 일본과 중국 사이의 충격 흡수장치로 뒀다. 중국 대륙으로 가는 군자금 송금, 외환 업무 등을 조선은행에 맡겼다. 조선에서는 당시 많은 인재들이 꿈을 품고 일제의 관료로, 군인으로 취업해 만주로 진출했다. 조선은행에도 그런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1932년 만주국이 설립되자 일본 제국 안에서 조선의 지위는 갑자기 낮아졌다. 이전까지는 일본-조선-만주 순으로 대접을 받았지만 이제 만주국은 괴뢰국일지언정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만주만의 중앙은행인 만주중앙은행이 설립되고 곧이어 1937년 조선은행의 영업망 상당 부분이 만주흥업은행에 넘어가면서 조선은행은 만주에서 위세를 잃었다.

 

6. 전쟁의 도구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면서 조선은행은 일본 제국의 전쟁 도구로 쓰이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했으며 중국과 만주 지역에서 일본군이 마구잡이로 발행하는 현지 화폐에 대해서도 통화스와프 협정으로 보증을 섰다. 중국에서 일어나는 초인플레이션은 조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전쟁이 끝나자 조선은행 역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미 군정으로부터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화폐 발권기관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조선은행권은 한국전쟁 때까지 계속 공용 화폐로 쓰이게 된다.

 

7. 조선은행 임원의 모습

조선은행의 임원직은 나름 3D 업종이었다. 34명의 일본인 엘리트들이 이 자리를 거쳤는데 이 중 6명이 재임기간 중 죽었다. 중국, 조선, 일본 등을 돌면서 근무하다보니 풍토병 혹은 과로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의국제시장세대와 마찬가지로 나라(일본)를 위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하위직에는 조선인 직원들도 있었다. 연변 출장소 직원이었던 전홍섭처럼 독립운동을 돕다가 체포된 직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일제 체제에 순응하는 수동적 인물들이었다. 훗날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직을 지내는 백두진, 그리고 초대 한국은행 총재가 되는 구용서가 대표적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일본에서 경제학을 배웠다. 일본인 직원들에 비해 조직 내에서 차별을 받아 하위직에 머물렀으나 창씨개명을 하며 기회를 엿봤다.

 

 

8. 한국은행 설립

해방 후 미 군정이 들어서자 조선은행과 조선식산은행(현 산업은행의 전신) 직원들이 새 나라의 중앙은행 설립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과거 조선은행은 중국에서의 영업에 치중했지만 식산은행은 설립(1918) 당시부터 경제를 분석하는 조사(調査) 기능이 강했다. 그래서 초반엔 식산은행 출신들이 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는 듯했다. 그러나 조선은행 출신들은 김구, 이승만, 이범석 등 다양한 정치 세력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 구 조선은행권이 해방 후에도 공용 화폐로 통용되고 있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해 결국 조선은행 출신들이 새로운 한국은행의 주역이 됐다. 한편 미 군정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한국의 경제정책에 계속 개입하려 했고,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와 같은 중앙은행 모델을 채택하도록 유도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미국의 의도를 역이용했다. 연방준비위원회의 컨설팅을 받아 한국은행을 설립해서 미국의 조언을 듣는 형태를 취하면서 경제정책의 주권은 빼앗기지 않았다. 미 군정청이 세운 조선환금은행(외환 업무 담당)을 폐쇄하고 한국은행에 흡수시켜 버린 것이 그 예다.

 

<인터뷰>

 

한국 중앙은행의 역사에 대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화폐는 인간의 본능을 터치하는 것이다. 사람과 동물이 다른 점이 무엇일까. 동물은 오늘만 생각하지만 사람은 내일을 생각한다. 오늘의 지출과 수입, 그리고 내일의 지출과 수입의 간극을 메워주는 게 금융활동이고, 금융활동의 수단이 돈이다. 그러니 돈과 금융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그런데 돈을 만지는 사람들은 돈을 굉장히 숭고하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처럼 다룬다. 그러다보니 경제학 교과서가 어렵고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것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일반인들은 금융을 잘못 이해하고 있고, 또 금융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현실을 호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인간의 체취가 풍기는 재미있는 금융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했다.

 

경제학이 왜 현실과 멀어지고 있는 걸까.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측면들 중에서 수리적인 계산능력에만 호소를 하고, 화폐의 현상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각도에서만 바라보다보니 그런 것 같다. 흔히들유한한 생명을 가진 사람보다 내가 갖고 있는 부와 재산이 더 오래 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즉 화폐의 생명이 무한하다는 전제로 저축도 하고, 투자도 하고, 상속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폐제도만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돈을 다룬다. 경제학 교과서들은 현재의 제도가 마치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묘사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앙은행이라는 것도 기껏 해봐야 400여 년 전에 생긴 거고, 지금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화폐 역시 유한하다. 돈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제도가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뀐다는 뜻이다. 금본위제도로 갔다가 불태환화폐(fiat money)1 제도로 바뀌기도 하고, 고정환율제도가 됐다가 변동환율제도가 되기도 한다. 화폐제도 자체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그런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대학교(서울대) 1학년 때다. 국사학과 노태돈 교수의 사학개론이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카(E. H. Carr) <역사란 무엇인가>를 굉장히 감명 깊게 읽었다. ‘역사는 연도를 외우거나 사실을 밝히는 고고학자 이상의 의미를 해석하고 부여하는 철학적인 과정이다라는 메시지였다. 지금도 저 책꽂이에 꽂아두고 시간만 나면 읽어본다. 문장 하나하나가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이 나의 큰 좌표가 됐다. 두 번째는 IMF 외환위기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미국이 정해놓은 금융 시스템의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위기가 터지고 그런 지위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정책당국자로서는 정해진 시스템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스템의 존재 이유와 방향을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곧 <역사란 무엇인가>의 교훈이기도 하다. 역사는 분명히 방향이 있고 진보한다는 게 카의 강한 신념이었다. 우리의 제도도 왜 존재해야 하는지, 장단점은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신념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정책에도 적용하고 있나.

 

그렇다. 많이 바꿨다. 모름지기 중앙은행 직원이라면 경제학만 잘하는 게 아니고 제도도 잘 알아야 한다. 각종 규정, 한국은행법, 글쓰기 같은 것에 실험적인 과목들을 몇 개 도입했다. 또 경영학 분야에서도 재무회계만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고 조직행위론, 조직가치 같은 이념적인 부분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중앙은행 시스템, 화폐 시스템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거꾸로 말해 중앙은행이라는 시스템이 경제발전에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도 볼 수 있는가.

 

중앙은행이 없는 나라도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는 중앙은행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ECB(유럽중앙은행)라는 공동의 국제기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에콰도르처럼 미국 달러를 사용하는 나라도 있다. 홍콩의 경우는 민간은행 3곳이 각자 은행권을 발행하고 중앙은행은 모니터링과 감독만 하는 구조다. 이렇게 여러 가지 형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중앙은행이 있어야 편리하기 때문에 180여 개 국가들이 중앙은행을 갖고 있다. 이는 결국 각 나라 국민들의 선택이다. 미국은 건국 후 100년 이상을 중앙은행 없이 지냈다. 미국인들은중앙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07년에 중앙은행을 설립할 때도 중앙이나 은행이라는 말을 안 붙이고 ‘Federal Reserve System(Fed·연방준비위원회)’이라고 불렀다. 당시 이 법안에 찬성한 의원 중 상당수는 이름만 보고 이것이 중앙은행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은행은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를 참고해서 만들어졌다는데.

 

미국도 20세기 초반 대공황을 거치면서 금융에 있어서는 연방 정부가 힘을 발휘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래서 연방준비위원회법이 개정되며 힘이 강해졌다. 나중에 후진국인 한국에서 중앙은행을 만들 때,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우리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고, 처음부터 강력한 중앙은행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권한이 더욱 더 강해졌다.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아 통일된 화폐가 없다면 국가는 무슨 기준으로 세금을 걷었는가.

 

금본위제 혹은 은본위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 전 대륙에 흩어져 있는 약 2000개의 상업은행들이 각각의 돈을 발행했다. 종이돈을 은행에 가져오면 금이나 은으로 교환해준다는 약속을 했다. 1년에 한 번씩 재무부 관리가 와서 각 은행이 보유한 금은의 양을 확인했다. 정부가 금의 양을 확인한 은행들은 정부의 파트너로서 세금을 받고 보관하는 자격을 받았다. 그런데 국토가 넓고 은행의 수가 너무 많아서 다른 지역에 있는 은행이 발행한 화폐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를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각 주마다 은행의 신용도를 평가하고 그 정보를 교환해주는 서비스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S&P와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사들이다.

 

책에서한국은행은 정부와 민간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기관이면 정부기관이고, 민간기관이면 민간기관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인어공주는 인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인어공주는 인어공주다. 중앙은행은 태생적으로 그런 기구다. 우리가 흔히 삼권분립이라는 말을 쓰는데, 만일 몽테스키외와 루소가 살던 시절에 중앙은행의 기능이 지금처럼 활성화됐더라면 중앙은행까지 포함해서 4권분립이라는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당시의 중앙은행은 민간의 성격이 강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특히 불태환화폐제도로 들어오면서 공공 부문의 성격이 강해졌다.

 

중앙은행에 공공 부문의 성격이 강해진 배경을 좀 더 보자. 과거에는 조물주가 내려주는 금은의 가치가 화폐에 담겨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 은본위제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에 의문을 던진 것이 마르크스다. 마르크스는, 은을 아무리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거기에 가치는 없다. 가치는 사람들의 가슴에 있는 것이고, 가슴에 있는 사람들의 신뢰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은 국가 주권이다라고 말했다. 가만히 보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금융의 원리를 가장 먼저 파악한 사람 같다.

 

마르크스가 굉장히 앞서간 것 같다.

 

금본위제도의 흔적은 지금도 상당히 강하다. 대출금, 장학금, 수도요금 등등에 모두 금()이란 말이 들어간다. 인류가 다 그 정도 수준에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르크스는돈이 왜 금이야?’라고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최초는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을 법(nomisma)이라고 불렀다. 돈의 가치는 법, 국가주권에서 나오는 것이지 물질적 가치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고전을 읽을수록옛날 천재들은 참 다르구나라고 느낀다.

 

그렇다면 중앙은행도 국가주권에서 나오는 것인가.

 

한국은행은 국가기관 중 하나다. 우리가 공무원 신분증이 있는지, 공무원 연금을 받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분명히 국가주권작용에 의해 움직이는 기구다.

 

김영란법도 적용받는가.

 

당연하다.

 

 

한국은행은 무자본특수법인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돈을 만드는 한국은행은 그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회계장부는 어떻게 관리되는지 궁금하다.

 

한국은행뿐 아니라 산업은행, 한전, 담배인삼공사도 모두 특수법인이다. 그리고 무자본이 된 이유는 어차피 자기 돈을 찍고, 또 영속성을 가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예수 시대부터 내려오는 교황청의 자본금이 얼마인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국가, 가족도 마찬가지로 자본금이 없다. 자본금은 자본주의하에서 유한한 생명을 갖고 있는 법인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영속성을 전제로 하는 가족, 국가, 교황청에는 자본이 없다.

 

한국은행의 회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국은행이 얼마만큼의 돈을 뿌렸는지는 한국은행의 부채로 잡혀 있다. 하지만 대장장이 집에 망치가 없다는 말처럼 한국은행의 자산 중에는 원화가 없다. 한국은행은을 공급하는 존재지만 정작 한국은행에 돈이 없다는 점은 물리학의 싱귤러리티(Singularity) 이론과 비슷하다. 북극점과 남극점은 세계의 시간이 다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지금 몇 시인지 물을 수 없다.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통화스와프나 양적완화처럼 중앙은행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미래의 중앙은행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

 

백인백색의 의견이 있다. 어떤 사람은 중앙은행의 화폐가 민간화폐로 대체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사라질 것이라 본다. 또 어떤 사람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본 것처럼 시장의 무능력과 한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금융행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중앙은행의 힘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본다. 솔직히 나는 답을 모르겠다. 요즘 얘기가 많이 나오는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이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갖고 있던 권한을 대체한다고 보기도 하지만 반대로 블록체인 같은 디지털 화폐를 공급하게 되면 중앙은행이 원가를 절감할 수 있어 이익이 커진다는 견해도 있다. 추이를 봐야 할 것 같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헤브루대 교수는 미래에 화폐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2 지금까지는 돈이 사람 사이의 신뢰 구축의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지금의 화폐가 갖고 있는 ‘신뢰’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어떻게 생각하나.

 

무신론에 입각한 <사피엔스>는 과학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여준 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화폐를 다룬 부분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화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불확실성 때문에 존재한다. 내가 만일 하루 8시간씩 노동을 하고 한 달에 영화를 2편 본다고 정해져 있다면 굳이 화폐가 필요 없을 것이다. 정해진 만큼 쿠폰만 받아도 된다. 하지만 오늘 영화가 보고 싶다가 갑자기 밥이 먹고 싶어질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그런 불확실성의 갭을 메우기 위해서 화폐가 존재한다. 또 화폐는 과거의 기억이기도 하다. 미네아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나라야나 코철러코타(Narayana Kocherlakota)가 쓴 ‘Money is memory’라는 논문이 있다. 돈은 불확실성하에서 지난 일을 기억하는, USB 같은 기억저장장치라는 주장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인간 지식의 수준이 넓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고 또 과거를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돈은 계속 필요하다. 형태는 달라지더라도 화폐는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다시화폐는 시간과 연관된다로 돌아오는 것 같다.

 

그렇다. 시간 개념 없이 오늘만 살고 내일은 모르는 하루살이에게는 화폐가 필요 없다. 사람은 내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화폐가 필요한 것이다. 하라리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의 개념을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

 

일제시대 친일 문제는 여전히 큰 사회적 논란거리다. 책에서 일제시대 조선은행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을 많이 다뤘는데 그런 말은 들은 적 없는지.

 

그렇지는 않았다. 역사적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다뤘기 때문에 굳이 친일 논란과 연결시키려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가 걱정이다. 해방 이후 한국은행의 역사에 대해 계속 집필을 할 예정인데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부분도 있고, 또 생존해 있는 인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2)DBR 204자본주의 체제의 전제는 끝없는 성장. 행복의 새 기준 못 만들면 심각한 위기 올 것참조

 

조진서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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