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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별곡>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장

“인간의 본능 터치하는 화폐 형태 달라져도 사라질 수는 없다”

조진서 | 210호 (2016년 10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 우리는 경제활동을 할 때 화폐 시스템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비교적 최근에 확립됐다. 미국도 20세기 초반에서야 중앙은행 제도가 도입됐다. 한반도의 근대적 의미에서의 최초 중앙은행은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만든 옛 한국은행(조선은행)이다. 조선은행은 일제시대 조선 지역의 중앙은행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일본의 만주 진출을 금융 측면에서 지원했다.

 

- 1950년 설립된 새로운 한국은행은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 시스템의 골격을 가져와 만들었으며 구 조선은행의 한국인 직원들이 중용됐다.

 

- 한국 경제는 한국은행이 만들고 운영하는 원화 시스템 기반 위에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의 권한과 역할이 강화되는 추세이고 한국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에도 중앙은행 시스템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민혁(연세대 사회복지학과/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는 일제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소공동에 있는 한국은행 옛 본관 건물에는礎定(정초)’라는 글씨가 새겨진 머릿돌이 있다. 1909, 일제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썼다. 그는 조선을 일본에 병합하기 위한 마무리 수순으로 중앙은행 설립 계획을 세웠다. 석 달 후 안중근에게 저격당해 죽었지만 그의 밑그림대로 한국은행은 한반도 최초의 중앙은행이 됐다. 2년 후 한일합방이 완료돼 대한제국이 사라지자 일본은 한국은행을 조선은행으로 개명했다.

 

현재의 한국은행은 1950 6월 대한민국 정부가 설립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설계했던 구() 한국은행(조선은행)과는 별개의 법인이다. 하지만 초대 총재인 구용서를 비롯, 새로운 한국은행의 핵심 인재 상당수가 일제시대 조선은행 직원 출신이었다. 따라서 조선은행의 역사를 지워버리면 한국은행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의 차현진 원장은 현대사회의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중앙은행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빚어져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연구대상의 횡단면만 보지 말고 종단면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은행이 운영됐던 20세기 초반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과 위상이 정립되지 않은 시대였기에 조선은행의 역사가 곧 세계 중앙은행 발전사의 축약판이기도 하다.

 

차 원장은 한국은행의 여러 주요 직책을 맡아 일하면서 <금융오디세이> <숫자 없는 경제학> 등 일반인 대상의 경제 입문서를 여러 권 펴낸 고참 작가다. 2016년 여름에 나온 <중앙은행 별곡> 2014년부터 <중앙선데이> 신문에 장기 연재해온 원고를 묶어 만들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시대 중앙은행인 조선은행의 역사와 한국은행의 설립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문헌들을 직접 조사하고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청취했다. 방대한 정보를 종합해서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일대기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인천 심곡동에 있는 한국은행 인재연수원에서 저자를 만났다. 먼저 책의 내용을 요약 소개하고 인터뷰 내용을 싣는다.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장. 옆의 타임캡슐은 한국은행 100주년인 2050년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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