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좋아야 공부를 잘한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문성 분야의 석학들은 이런 상식이 프로의 세계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문성 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낸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는 저서 <1만 시간의 재발견(비즈니스북스, 2016)>이란 책에서 머리가 좋다는 사실은 초기 학습 성과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이는 초기 단계에 그칠 뿐이며 프로의 세계에서 지능과 성과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유년기 체스 플레이어들의 성과는 지능에 영향을 받지만 프로 기사들 사이에서 지능의 차이는 성과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 가운데 상당수도 천재 클럽으로 불리는 멘사 회원 자격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110∼120대의 지능지수(IQ)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초기에 재능이 부족해 뒤처지더라도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예를 들어 학위 취득이나 프로 입문, 취업 등) 유전적 재능은 더 이상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고의 역량을 갖춰 탁월한 성과를 내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에릭슨 교수는 훈련의 양과 질이라고 강조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뇌나 근육이 적응·발전해가면서 탁월한 성과를 만든다는 설명입니다. 타고난 두뇌나 근육보다는 노력과 훈련으로 얻어진 지능이나 운동신경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에릭슨 교수는 강조합니다. 그는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그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훈련의 양과 질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요소가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훈련 과정에서 지칠 수 있고 이런저런 한계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걸 이겨내는 멘탈이 있느냐가 결국 프로로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열정이나 끈기, 인내, 회복탄력성같이 ‘끝까지 해내는 힘’이 타고난 재능보다 훨씬 중요하며 보다 근본적인 성공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재능보다는 사고방식이나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한때 1마일을 4분 이내에 뛸 수 없다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의학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4분 이내에 1마일을 주파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죽을 수 있다고 말한 과학자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영국의 육상선수 로저 배니스터가 피나는 훈련 끝에 1마일을 3분59초에 주파했습니다.
흥미로운 일은 여기서부터입니다. 로저 배니스터가 마의 벽을 깨고 난 이후 10여 년 동안 무려 100여 명의 선수가 260번 이상 신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로저 배니스터 이전에는 무려 30년 넘게 깨지지 않았던 기록이었는데 그의 기록 경신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너무나 쉽게 이 일을 해냈습니다. 갑자기 신기술이 출현했거나 인간의 근력이 강화된 게 아닙니다. 사고방식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한국 기업들도 최근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은 수조 원대의 엄청난 자본이 투자되고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에 한국의 중소 규모 제약사는 절대 감당할 수 없다는 게 과거의 통념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미약품의 획기적 R&D 성공 이후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력한 생존 전략 가운데 하나는 한계 돌파형 R&D입니다. 이번 호 DBR은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급진적 혁신을 위한 R&D 전략을 모색했습니다. 현장의 생생한 사례를 담은 인터뷰도 실었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R&D와 관련한 마인드셋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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