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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經世濟民,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라

이치억 | 200호 (2016년 5월 lssue 1)

 

 

 

경제= 經世濟民,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라

 

 ‘경제’가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할 만큼 이제는 일반상식이 됐다.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이 말은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과 그것을 통해 이뤄지는 사회적 관계라는 경제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어느 정도의 부가 축적돼야 한다는 공자의 생각이나, 백성들은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는 맹자의 주장처럼 경세제민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경제를효율이라는 말과 유사어로 사용하지 않는 한 오늘날의 모든 경제활동은 경세제민의 의미와 그다지 멀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의경제경세제민에 담겨 있는 큰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북송대 화진(華鎭)이라는 학자가 쓴 <악론(樂論)>이라는 글에옛 왕이 왕업을 창도하고 후세에 그 전통을 이어주며,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모두 도()와 덕()에서 나오거나 일의 공적에서 나온다(先王創業垂統, 經世濟民, 不出于道, 則出于事功)”라고 했다. 경제를 꾸려가는 일은 세상의 질서와 안녕을 실현하는 것이 그 궁극적인 목적이다. 재화를 쌓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그것을 위해 불가피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자는 “가진 것이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게 분배되지 못함을 걱정하며,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안정되지 못함을 걱정하라. 고르면 가난할 것이 없고, 화합한다면 부족할 것이 없고, 안정되면 위태로워질 일이 없다”(<논어> ‘계씨)고 했다.

 

요즘상생의 경제공존의 경제니 하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사실 경세제민이라는 말 속에 이미 그러한 의미가 모두 포함돼 있다. 경제라는 단어 앞에 그러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마치역전앞’ ‘처갓집과 같은 의미 중첩일 뿐이다. 진정한 경세제민을 실현하려 한 경제인은 자기의 이익보다 공익을 앞세우고, 내가 잘살려 하기보다는 구성원을 돌봐야 한다. 가령 공자 자신은부귀는 뜬구름과 같다고 하면서 백성들을 부유하게 할 방안을 고민했고, 맹자는 백성이야 항산이 있어야겠지만 선비라면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진짜 경제는 이기심과 물욕의 추구에 의해 꾸려지는 것이 아닌 나눔과 배려, 즉 인간의 인()한 본성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진짜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나만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타인과 사회를 버리고나만잘되고우리만잘사는 방법은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글로벌화로 인해 세계가 가까워진다는 것은 다만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교류와 왕래가 잦아졌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결망은 촘촘해졌고 서로에 대한 영향력과 의존도가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인류는 저쪽이 죽어야 이쪽이 살 수 있다는 적대적 관계에 있지 않다. 모두가 이웃이고 가족이며 하나다. 여기에서 타인과 타 조직을 배려하는 마음이 싹틀 것이다. “마차를 타고 다니는 대부(大夫)의 집에서는 닭과 돼지를 기르지 않고, 여름에도 얼음을 쓰는 큰 부잣집은 소와 양도 기르지 않는”, 그래서 그것을 기르는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길을 막지 않는 배려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극도의 물질적 넉넉함을 경험했고, 그것 자체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뤄낸 영광의 상처로서 말이다. ‘상생공존은 경제(경세제민)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자신의 얼굴이다. 이 얼굴을 다시 드러낼 때보이지 않는 손의 욕망이 오히려 과거의 유물이 될 것이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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