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대홍기획 팀장 인터뷰
Article at a Glance
‘음침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갖고 있던 ‘오타쿠’, 혹은 ‘덕후’가 이제는 ‘전문가’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또한 평범해 보이던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깊은 취미’를 밝히며 ‘덕밍아웃’을 하거나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해 ‘입덕’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스스로 ‘피규어 덕후’라고 밝힌 국내 톱 광고대행사의 김선태 팀장은 기업의 덕후 마케팅/활용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예전과 같은 ‘팬’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활용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려라. 2) ‘최고의 덕후’ 소수를 찾아가 조언을 듣고 아이디어를 얻는 방식을 써라. 3) 소비행태 변화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매스마케팅의 폭격’에서 ‘취향 저격’의 마케팅으로 전략을 서서히 바꿔나가라. |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손지현(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각각 10년 이상 컨설턴트로 일해온 A씨와 B씨는 최근 마음 맞는 동료들과 새로 회사를 차려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공동 대표직을 맡게 된 두 사람은 ‘업무’에서도 보조를 맞추지만 사실 같은 취미생활도 즐긴다. ‘프라모델’ 구입과 조립이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이 넘은 높은 학력의 두 전문직 컨설팅사 ‘대표’들이 ‘키덜트’이자 ‘덕후’로서 삶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 ‘오타쿠’라고 하면 뒤떨어진 패션을 하고 두꺼운 안경을 쓴 채 오직 집, 그리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자신이 탐닉하는 취미에 모든 시간을 쏟는 사람들, 사회성은 떨어지고 자신의 ‘돈 안 되는 취미’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다소 이상한 젊은이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특히 단순한 마니아와 ‘오타쿠’가 여전히 구별되는 일본에서와 달리 ‘마니아’이면서 ‘전문가’이자 ‘프로슈머’의 이미지를 갖게 된 한국의 ‘덕후’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뒤에 곳곳에서 새로운 소비집단이자 혁신 아이디어 제공집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뒤 새로운 가족 단위 ‘경험 공간’으로 급부상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만들어진 ‘오타쿠스러운’ 피규어숍에는 아버지가 아들과 나란히 서서 피규어를 구경하고 고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종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화성인’ 취급하며 ‘뭔가 이상한 사람들’로 여기던 각 분야의 ‘덕후’들을 이제는 ‘능력자’로 대접하며 그들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다. 이른바 ‘덕후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덕후’가 ‘능력자’가 돼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시대가 다가오기 시작한 지금, 기업들은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마케팅 전략을 짜야 할까? 그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 게 좋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국내 최고의 ‘오타쿠 소비행태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대형 광고대행사 대홍기획의 김선태 팀장을 DBR이 만났다. 본인 스스로 ‘피규어 오타쿠’이기도 한 그는 “아직까지 소비집단의 ‘주류’라고 하긴 어렵지만 분명 새롭게 형성되는 소비집단이자 충성도 높은 고객집단으로서 ‘덕후’를 이해하는 것이 기업에게 필수적인 사항이 됐다”고 강조했다.
‘음침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갖고 있던 오타쿠가 최근 한국에서 ‘덕후’라는 이름으로 각광받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소셜미디어의 발달과 활용이 아마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을 거다. 사실 일본에서 시작된 ‘오타쿠’라는 집단은 그 어원이 ‘집’이라 할 정도로 폐쇄적이고 ‘익명성’이 강한 집단이었다. 한국에서도 지금까지는 흔히 말하는 ‘덕후’들이 그런 속성을 좀 갖고 있었다. 음침하고, 외모도 별로고, 돈 안 되는 이상한 거에 몰두하는 이미지였다. 실제로 그랬다기보다는 전형적인 어떤 ‘오타쿠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웹 시대에 그들끼리 인터넷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자신들끼리 소통할 때까지는 어느 정도 지속됐다. 나 역시 ‘피규어’를 좋아하는 ‘덕후’로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해 몰랐던 정보도 알게 되고, 특별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도 배우곤 했다. 그래봤자 철저한 익명성하에 있었고 그런 커뮤니티는 ‘대중성’이 크지도 않았다. 덕후가 아니면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대화가 무슨 말인지도 모를 곳들이 많았다. 그런데 SNS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조금 다른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SNS는 일단 ‘공개’가 된다. 내가 누구에게 ‘좋아요’를 눌렀는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내가 친구를 맺지 않은 사람도 내 포스팅을 쉽게 볼 수 있는 구조다. 그리고 개인 미디어이면서 동시에 이름 그대로 사회적으로 관계형성을 하는 수단이기에 ‘나’ 역시 어느 정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난해한 취미들이 있었지만 상당수의 취미들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취향을 발견해줄 정도로 ‘대중적’인 성격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전까지 흔히 말하는 ‘덕질’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어, 나 이거 맘에 드는데?’라며 자신의 취향을 깨달으며 ‘입덕’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본래의 ‘덕후’들은 자신들만의 커뮤니티에서 철저한 익명 안에 있다가 SNS를 타고 느슨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고, 그들을 보게 된 많은 이들은 ‘덕후’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는 계기가 됐다.
이른바 ‘덕후’들이 느슨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공개된 영역에 자연스레 등장했다는 얘긴데… 이렇게 갑자기 ‘덕질’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분명 있을 것 같다.
마케팅을 연구하고 광고를 고민하는 사람 입장에서 얘기를 하면 ‘가치 소비 중시’라는 트렌드가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2030세대가 ‘집을 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서, 혹은 포기하면서 ‘나 자신을 위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한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각 사치’라고 해서 다소 비싸지만 뭔가 세련되고 이색적인 음식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고급 레스토랑에도 잘 간다. 기존의 ‘덕후’들만이 아니라 새롭게 ‘덕질’을 시작한 이들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지갑을 예전보다는 잘 열게 됐다. 물론 벌써부터 ‘덕후들이 어마어마한 소비집단이 됐다, 그들을 잡아야만 한다’고 안절부절 못할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트렌드를 잘 주시해야 한다는 건 확실하다.
아까 소셜네트워크에 덕후들이 등장을 한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비록 완전히 자신을 공개한 이들은 아니었지만 익명성의 일부분을 벗어던진 그들은 특정 분야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웬만한 전문가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그러자 ‘덕질’은 ‘돈도 안 되는 데 헛된 시간을 쓰는 이상한 짓’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해서 엄청난 지식을 쌓는 행위’로 이미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예전의 ‘팬질’도 좀 더 몰입하는 느낌의 ‘덕질’로 용어가 바뀌어갔고, ‘덕질’의 대상도 기존에 자신이 좋아하던 ‘오타쿠스럽지 않은 많은 분야’로 퍼져나가게 됐다. 앞서 한 얘기랑 종합해서 정리를 해보면 첫째, 덕후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들의 취미를 얘기하자 덕후가 아니었던 이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발견하면서 ‘입덕’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미 덕후였음에도 굳이 밝히지 않던 이들도 자연스레 ‘덕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오타쿠스럽지 않은 많은 취미나 취향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전문가적 지식’과 ‘몰입’의 상징인 ‘덕’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갑자기 ‘대세’처럼 느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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