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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Insight from Biology

생물나침반, 철새의 내비게이션 우리 몸 속에도 나침반이 있다면…

이일하 | 195호 (2016년 2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철새들의 체내에는 지구 자기장을 인식하는 생물나침반(biocompass)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1970년대 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졌다. 이후 과학자들은 해부학적으로 특별한 생물나침반이 있을 거라 보고 연구를 계속했고, 자철석이 묻혀 있는 안면 구조를 찾아냈다. 그러나 모든 이동성 동물이 자철석 해부 구조를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연구의 방향이 달라졌다. 생물나침반의 비밀을 지구 자기장을 인식하는 체내 화학물질에서 찾으려는 흐름이 학계에 퍼졌다. 결국 오랜 연구 끝에 지난해 11월 생물나침반 기능을 하는 단백질 MagR(자기장수용체)의 존재에 대한 논문이 발표됐다. 물론 이 논문은 사실상 정보 검색에 의존한 실험 결과여서 실제 MagR이 생물나침반으로 작용하는가에 대해선 향후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고무적인 연구 결과임에는 분명하다.

 

편집자주

흔히 기업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경영에 대한 통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30여 년 동안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이일하 교수가 생명의 원리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생물학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기업 경영에 유익한 지혜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필자도 스마트폰으로 찍은 풍경 중 인상적인 작품이 나오면 곧잘 배경화면으로 사용하곤 한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빼어난 작품 중 하나가 해질 무렵 석양 노을빛을 받으며 멀리 남쪽나라로 날아가는 철새 떼의 비행을 찍은 사진이다. 늦가을 어느 날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출판사를 찾았다. 예술인 마을을 둘러보고 자유로길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한 무리의 철새 떼가 마침 차창 한가운데로 들어와서 한동안 함께 동행했다. 마침 운전대를 아내가 잡고 있던 터라 스마트폰을 끄집어내 아름다운 자연의 한순간을 잡아낼 수 있었다.

 

철새 떼의 장거리 비행을 생각하면 참으로 오묘하다. 저 철새들이 어떻게 방향을 인지해서 자신들이 가려는 동남아 방향으로 정확하게 비행할까? 이러한 방향인식 능력은 철새 떼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체에서 나타난다. 이를테면 멕시코에서 수천㎞를 비행해 미 대륙으로 날아가는 제왕나비가 그렇고, 심지어 수만㎞를 이동하는 고래 무리들 또한 마찬가지다.

 

오래 전부터 생물학자들은 이런 동물들의 놀라운 방향인식 능력에 대해 생물체에 나침반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어왔다. 생물들에는 자기장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장 인지 능력이 보고된 생물은 위에서 언급한 철새를 비롯해 제왕나비, 연어, 바닷가재, 박쥐, 들쥐, 고래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생물들이 가지고 있는 나침반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물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자기장 센서

 

이동성 철새를 새장 속에 가둬 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철새의 계절 비행이 본능에 따른 것이라면 새장 속에 가둬 두더라도 그 비행 습성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새장이 충분히 크기만 하다면 말이다. 이걸 실제로 관찰하고 보고한 과학자가 독일의 구스타프 크레이머 박사다. 크레이머 박사는 이동성 철새가 생체 내 나침반을 내장하고 있음을 1950년대에 밝힌 이 연구 분야의 선구자다. 그는 유럽의 대표적 철새 중 하나인 울새(robin)를 큰 새장에 가둬 놓고 관찰했다. 그 결과 철새들이 이동하는 시기인 11월만 되면 이들이 새장 속에서 부산스럽게 날갯짓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구나 이들의 비행 방향은 특정한 방향, 즉 남동향을 향하고 있었다. 자연에서 나타나는 울새의 비행방향과 정확히 일치한 것이다.

 

철새의 계절 비행이 본능에 따라 이뤄지는 현상임을 관찰한 크레이머 박사는 자연스럽게 다음 의문을 떠올린다. ‘철새가 어떻게 정확한 방향으로 날아갈까라는 질문이다. 이 의문에 답을 얻기 위해 그는 새장 밖에 인공 태양이 부착된 원통형 회전판을 설치하고 인공 태양의 위치가 바뀌었을 때 울새들의 비행방향이 어떻게 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예측한 대로 울새들의 비행방향은 인공 태양의 위치에 따라 바뀌었다. 이 결과는 로빈새들이 비행 방향을 결정하는 데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삼은 생체 나침반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후 이동성 동물들이 나침반을 내재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들어서는 생물나침반이 설명을 위한 비유가 아니라 인간들이 사용하는 실제 나침반처럼 지구자기장을 인식한다는 사실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철새에서 지구자기장을 인식하는 생물나침반의 존재가 확실히 보고된 것은 1972

<사이언스(Science)> 저널에 발표된 울새에 대한 연구 결과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의 윌취코 교수는 크레이머 박사의 새장 실험을 진전시켜 강한 자기장을 원통회전판에 걸어주면 울새의 이동방향을 조정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보다 더 극명하게 자기장 나침반의 존재를 증명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후 많은 동물들에서 자기장을 인지하는 행동들이 입증되면서 생물나침반의 존재가 자연계에서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구자기장을 인식하는 생물나침반의 존재가 명확해진 후엔 실제 해부학적 관찰을 통해 생물나침반을 찾으려는 시도가 나타나게 된다. 초기 과학자들은 자석을 가진 특별한 기관을 집중적으로 탐색했다. (자석처럼 작용하는 기관을 해부학적으로 찾기 위해 아마도 애꿎은 철새들이 많이 희생됐을 것이다.) 이런 연구를 통해 발견된 것이 자석철로 이뤄진 나침반이다. 비둘기나 닭, 울새 등 몇몇 조류에서는 자석철 나침반이 윗부리에 있었고, 잠비아의 들쥐에는 안면 신경구에 존재했으며, 무지개 송어에서는 나침반이 후각상피세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동성 동물에서 자석철 나침반이 발견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석철 나침반이 발견되지 않는 동물들이 더 많아지면서 생물나침반의 정체는 오리무중이 됐다.

 

생물나침반의 또 다른 정체성크립토크롬

 

이런 상황에서 생물나침반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안된다.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의 물리학과 교수였던 클라우스 슐턴 교수는 지구 자기장을 인식하는 특별한 화학물질이 있을 것이라 예측하면서 그런 화학물질이 가지는 전기 화학적 특성에 대한 이론 논문을 2000 <생물물리학회지(Biophysical Journal)>에 발표하게 된다.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생물나침반으로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지구 자기장을 인식하는 생물나침반이 네 가지 정도의 특성을 가질 것으로 생각했다. 첫째, 이동하는 철새들이 태양의 방향에 의존해 비행 방향을 결정하므로 빛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둘째, 외부에서 강한 자기장을 걸어줬을 때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인지하지 못하게 돼야 하며, 셋째, 생물나침반이 존재하는 장소가 눈 근처 뇌 부위여야 하고, 넷째, 전자쌍(electron pair)의 특별한 배치가 자성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슐턴 교수는 2000년 이러한 몇 가지 특성에 부합하는 단백질로 당시 비교적 최근에 밝혀진 광수용체 크립토크롬(crpytochrome)을 찍었다. 그야말로찍은것이다. 생물학자도 아니고 물리학자가, 생물나침반을 연구하는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막 발견된 단백질을 생물나침반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크립토크롬은 무엇일까? 우선 이름을 풀이해 보자면 그리스어로감추어진’ ‘숨겨진을 뜻하는크립토(crypto)’와 색깔을 의미하는크로마(chroma)’에서 따온 단어다. 쉽게 말해오랫동안 그 존재가 감추어져 있던 광수용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실 광수용체에 대한 연구는 진화론의 효시인 찰스 다윈 때부터 시작됐다. 다윈은 진화론뿐 아니라 다양한 자연과학 분야의 선구자로도 추앙받고 있는데 식물학 분야에서는 굴광성(屈光性)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최초의 과학자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굴광성이란 식물이 빛을 인지해 그 방향으로 자라는 현상을 말하는데, 굴광성을 인지하는 광수용체가 바로 청색광을 인지하는 크립토크롬이다. 말하자면 식물은 크립토크롬이라는 눈을 이용해 빛을 인식하고 그 방향으로 생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광수용체는 여러 가지 광화학적 특성 조사를 통해 20세기 초반에 이미 플라빈이라는 색소 분자를 가진 단백질일 것으로 추정됐지만 그 정체성이 오랫동안 밝혀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크립토크롬이란 이름이 붙었다.1

 

아마 광수용체로서 빛을 인지하는 능력이 있으며 생물시계를 조절하는 특성이 있다는 사실이 클라우스 슐턴 교수로 하여금 크립토크롬에 주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2000 <생물물리학회지>를 통해 공개된 슐턴 교수의 통찰에 자극받은 과학자들은 이후 크립토크롬이 과연 생물나침반으로서의 특성을 실제로 가지고 있을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우선 화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크립토크롬이 자기장을 인지하기 위한 특이한 전자쌍 배열을 가지며 이 배열에 빛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들을 밝혀냈다. 생물학자들은 이 단백질이 눈을 포함한 뇌 조직에서 발현되고 있음을 입증했다. 생물나침반이 가져야 할 화학적, 생물학적 특성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2010년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의 스티븐 레퍼트 교수는 크립토크롬 유전자가 망가진 돌연변이 초파리가 자기장을 인지하지 못함을 밝혀냈다. 생물나침반의 존재가 드디어 밝혀진 것이다.

 

자성을 가진 나침반 단백질의 발견

 

생물나침반을 찾아냈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크립토크롬이 생물나침반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시각들이 하나둘씩 대두됐다. 자석철처럼 자석의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크립토크롬 단백질의 어디를 뜯어봐도 자성을 인지하는 능력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은 생물나침반 역할을 하는 단백질은 따로 있을 것이고, 크립토크롬은 이 생물나침반을 도와주는 보조적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생물들이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자기장에 대한 정보 외에도 빛의 방향에 대한 정보도 함께 인지해야 한다. 따라서빛을 인식하는 광수용체 크립토크롬 + α(자석)’는 아주 좋은 추론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생물나침반으로 작용하는 자성단백질을 찾아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중국 과학자 칸 지에 교수가 2015 11 <네이처 머티리얼스(Nature Materials)>에 발표한 연구다. 이들의 연구 결과를 좇아가보면 꽤 재미있다. 베이징대 지에 교수는 생물나침반이 적어도 두 가지 특성을 반드시 가지고 있을 것이라 추론했다. 첫째는 나침반의 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철을 포함한 보철 인자가 단백질에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생물계에 알려진 대표적 보철인자로는 철-산화니켈 인자나 철-황 인자를 꼽을 수 있다. 둘째는 이 단백질이 크립토크롬과 결합할 것이라 추론했다. 지에 교수는 이런 특성을 가진 단백질(혹은 유전자)을 초파리의 게놈에 들어 있는 12000개의 유전자 목록에서 집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철과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단백질 199개를 선별했고, 그중 초파리의 머리에서 발현되는 단백질 132개를 골라냈다. 생물나침반은 그동안의 생리적 연구 결과에 비춰봤을 때 머리에 있을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동안 발표된 132개 단백질들의 논문들을 꼼꼼히 읽고 분석해 생물나침반의 특성을 가질 것으로 추정되는 단백질 리스트 14개를 골라냈다. 여기까지의 작업은 실험이 필요 없는 생물정보학의 도움과 문헌 조사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다. 14개의 후보군으로 압축한 다음에는 크립토크롬과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을 실험적으로 하나씩 확인하면서 찾아냈다. 그렇게 얻어진 단백질이 ‘MagR(Magneto-Receptor, 자기장 수용체)’이다.2

 

MagR 단백질은 확인 결과 조류, 어류, 곤충, 고래 등 거의 모든 동물에 존재했다. 심지어 사람도 가지고 있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 자기장을 인지하는 능력이 거의 모든 동물에 있을 것이라 생각됐는데, 이러한 보편적 단백질을 찾은 셈이다. 물론 MagR이 정말 생물나침반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향후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우선 지에 교수의 연구 결과는 사실상 정보 검색에 의존한 실험이었다. 무엇보다 MagR 단백질이 망가진 돌연변이 초파리가 자기장을 인지하지 못함을 보였어야 하는데 그런 실험 결과가 빠져 있다., MagR이 실제로 초파리에서 자기장 인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밝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와 관련, 지에 교수는 너무 오랫동안 연구해왔기 때문에 이쯤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3 아마도 이런 실험적 결함 때문에 매우 중요한 발견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권위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리지 못하고 자매지에 실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네이처>에선 이 발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뉴스란에 이 연구 결과를 꽤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도과연 이 결과가 사실일까라는 의혹을 드러내고 있다. 기사 제목부터오랫동안 추적해 왔던 생물나침반을 발견했다는 주장(Discovery of long-sought biological compass claimed)’이다. 심지어 기사 중에는 이 논문의 진위 여부, 즉 생물나침반이 발견됐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대해이게 사실이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는 학자의 코멘트도 실려 있다. 아마도 생물나침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발견은 좀 더 시간을 두고 검증돼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자성을 가진 나침반 단백질의 존재에 대한 지에 교수의 연구는 매우 고무적인 발견이라 하겠다.

 

2016년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이 어수선하다. 요즘처럼 정치, 경제, 사회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지러운 때도 드물었던 것 같다. 이럴 때 우리에게도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 줄 있는 체내 나침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다. 올바른 방향성이 없다면, 그 어떤 노력도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혜안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 줄 수 있는 리더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32579.png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ilhalee@snu.ac.kr

 

필자는 서울대 식물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0여 년간 꽃을 공부해 온 과학자로 1993년 개화유전자 루미니디펜던스를 찾아내는 등 개화 유도 분야의 선구자로서 명성을 굳혀오고 있다. 저서로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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