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양호인 율촌 변호사

“거품 사그라든 거대시장 중남미 계약과 공증절차가 최우선이다”

177호 (2015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경영일반

 

 

한국인에게 계약이시작이라면, 중남미인에게 계약은전부. 그만큼 계약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계약 및 부수서류에 대한 공증 절차가 아주 중요하다. 불필요한 법률 비용을 막기 위해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철저히 문서화해서 남겨놔야 한다. 또 현지 정부 프로젝트나 공기업 관련 일을 할 때도 협상과정을 녹음하고 꼼꼼히 기록하며, 그들의 OK 사인이 무슨 의미인지 재차 확인하는 것이 좋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손혜령(다트머스대 경제학과 4학년) 씨와 남궁용주(이화여대 국제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3월 부산에서 중남미 지역의 경제, 사회 개발 촉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미주개발은행(IDB)의 연차총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중남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다양한 배경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국내 주요 수출국이었던 중국의 경제가 둔화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중남미가 차이나 리스크를 분산시킬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 규모가 큰데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와 비교해 분쟁이나 폭력 사태가 적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런 매력에도 불구하고 치안 문제와 정치 불안, 특유의 느긋한 문화 때문에 망설이는 기업도 많다. 실제로 시장에 진출한 기업 가운데서도 국내와 다른 법률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이에 DBR이 국내 대표 중남미 법률 전문가를 만나 중남미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양호인 율촌 변호사는 국내 대표적인 중남미 지역 전문가이자 법률 전문가다. 초등학생 때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 어린 시절을 중남미에서 보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법과대학 조교수를 지냈으며 동양인 최초로 아르헨티나의 메이저 로펌 알렌데 브레아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율촌에서 중남미 전문팀장을 맡고 있다. 16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와 한국에서 자문과 소송을 포함한 국제업무를 수행하며, 중남미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과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 기업들에 현지법 자문을 포함한 제반 법률서비스를 지원해오고 있다. Chambers Global이 뽑은 기업자문 및 M&A 분야의 leading lawyer로 수차례 뽑혔다.

 

 

양호인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중남미팀장)는 중남미 시장에 대한 우려보다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중남미는 거대한 시장이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서로 언어가 통하는데다 문화적으로 비슷한 측면이 있어 한 국가에서 성공하면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 중남미 특유의 장점에다 새로운 시장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중남미는 더욱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양한 기업들의 분쟁 사례를 소개하며중남미는 동양 문화와 달리 계약 문화이므로 추후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미리 조율하고 계약서로 꼼꼼하게 만들어 남겨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남미 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중남미 시장에 버블이 잔뜩 껴 있던 시기가 있었다. 언론에서 한창 중남미 자원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와 비교해 버블이 많이 꺼진 지금이야말로 현실적으로 중남미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다. 중남미가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커다란 시장과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중남미는 인구 6억 명 규모의 거대한 시장이다. 그 인구 대부분이 서로 언어가 통한다. 33개 국가로 이뤄져 있는데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쓴다. 언어가 모든 소통과 거래의 중심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다. 중남미 인구가 6억 명인데 미국에도 5000만 명 규모의 중남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최근 미국 언론에서 자국 지도를 그려 분석했는데 현지에서 스페인어를 제1 외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주가 1∼2군데밖에 없었다. 미국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대부분의 곳에서는 스페인어 서비스가 제공된다. 65000만 명 전부가 중남미 시장이 된다는 의미다. 어떤 회사든 국제적인 기업이 되려면 중남미를 공략할 필요가 있다. 자원외교와 관련한 사업이 현재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자원개발 사업은 국익 면에서 포기하면 안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플랜트 시장도 동남아, 중동 등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는데 앞으로는 중남미 시장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멕시코 및 브라질 정부가 최근 발표한 SOC 사업 수요만 약 7500만 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다.

 

 

중남미 인구가 6억 명인데 미국에도 5000만 명

규모의 중남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최근 미국

언론에서 자국 지도를 그려 분석했는데 현지에서

스페인어를 제1 외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주가

1∼2군데밖에 없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남미에 대한 관심이

높다. 다른 나라의 중남미 투자 현황은 어떤가.

현재 중남미에서 일본과 중국의 투자가 크게 늘고 있다. 중남미에는 많은 일본 이주민들이 있는데다 브라질이나 페루에는 일본 출신 국회의원들도 많은 편이다. 일본은 굉장히 오래전부터 중남미에 진출해서 체계적으로 투자해 현재 상당한 현지화를 이뤘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에 현지화된 일본계 3, 4세가 엄청나게 많고, 이들의 현지 네트워크가 아주 강하다. 중국도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여러 나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아예 투자할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중국은 계속해서 꾸준히 투자를 이어갔고, 최근에는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기업과 세 번째로 큰 상업은행을 인수했다. 자원개발에 있어서도 중국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시장가의 3배를 불러서라도 사들이는 등 대단히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남미의 시장성과 가치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의미다.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포함해

여러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한국의 중남미 투자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한국은 자원개발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정치적인 논란도 있었지만 처음 자원개발을 할 때부터 문제가 많았다. 자원개발은 탐사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돈을 벌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단기적으로 접근하거나 혹은 체계적인 전략이 없었던 경우가 많다. 2008년 한국의 공공 및 민간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꾸려 볼리비아 코로코로동광 개발에 뛰어들었는데 현재는 사업종료 절차를 밟고 있다. 그 이유는 국내 기업들이 지나치게 단기적인 성과만 보고 진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대로 입찰 제안서를 준비하지 못하거나 입찰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이렇다 보니 입찰 없이 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다니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현지 기업에 많이 속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큰 공사는 공개입찰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국내 건설 기업들은 과거 중동에서 입찰 없이 사업을 많이 해봤던 경험에 의존해 중남미에서도 그대로 하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최근에 국내 기업이 중남미 현지의 한 공기업으로부터 사업권을 따내려다 무산된 적이 있다. 국가가 관련 사업을 민영화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사업권을 여러 공기업에 임시로 나눠준 것이라는 게 나중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임시 사업권이라는 것에 대해 명확히 잘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가 하면 투자시기가 늦는 일도 많다. 자원개발은 처음 단계에 들어가면 위험도가 높은 대신 비용이 싸다. 전략적으로 판단해서 투자하면 초기 비용을 줄이고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국내 자원개발 사업은 대부분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외국 기업이 들어가고 비용이 높아진 상태에서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 단계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격이 오른 상태에서 들어가는 것도 좋은 결정은 아니다.

 

중남미 시장과 관련해 어떤 법률 자문을 했나.

국내 H 기업이 브라질 남부에 공장을 지었다. 공장을 짓기 위해 주정부, 시정부, 연방정부와 세제 혜택에 대한 협상이 있었다. 시정부는 부지를 무료로 제공하기로 하고 토지공사도 해준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는데 막상 시정부에서는 공사를 시행할 예산이 없었다. 다 해주겠다고 한 상황에서 나중에 말이 바뀐 것이다. 결국은 H 기업에서 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공사를 하고, 나중에 돌려받는 식으로 해결을 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 기업들이 투자할 때 현지 정부의 결정이 무슨 의미인지, 이것이 가능한지를 한번 더 따져야 한다. 브라질은 지방 정부 간의 차이가 크다. 상파울루처럼 외국 투자가 많은 지역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법체계가 안정적이고 협상 구조도 체계화돼 있지만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다. 규모가 작은 지역에서는 투자를 받는 데 급급해우선 계약서를 쓰고 보자는 식인 경우가 많다. 이때 관리를 소홀히 했다가 나중에 경쟁업체에서 공정거래 이슈로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다 보면 사업이 1∼2년 지연되거나 최악의 경우 중단될 수도 있다. 정부로부터 OK 답변을 받았다 하더라도 한번 더 따져봐야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부정부패가 심하고 협상 담당자조차 법 관련 규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항상 협상을 녹음한다. 기업들이 중남미에서 계약을 할 때도 녹음하길 권한다. 추후 있을지 모를 법률적 비용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

 

브라질 노동법은 유럽법과 비슷해서 진보적이다. 그런데 국내 기업들이 노동자 보호에 소홀히 하고 국내에서와 같이 운영하려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한 대기업 공장에서 이런 사례가 있었는데 문제가 커지면서 한국 정부에서 사람을 파견하기도 했다. 현지 기업에서올해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보너스를 깎겠다라고 하는 것, 남자 직원들에게잘해 봐라고 하면서 엉덩이를 치는 것, 직원들을 고용할 때 바지를 벗겨서 허벅지가 더 튼튼한 사람을 뽑은 것 등의 문제가 이슈화된 것이다. 나라별 법을 잘 알고, 거기에 맞춰서 현지화 작업을 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이 중남미에서 가장 분쟁을 많이 일으키는

요소는 무엇인가. 어떤 점들을 가장 어려워하나.

요즘 국내 건설기업들이 중남미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사업권을 따내기 전까지 회사 측에서 지원하는 게 거의 없어서 그전까지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현지 파트너에게 맡기곤 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국내 기업이 사업이 시작된 후에 불이익을 입는 경우가 있다. 사업권을 따내기 전에 업무의 주도권을 현지 파트너가 쥐고 있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현지 파트너와 동질의식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이슈나 주주 간의 이윤 분배 등에 있어서는 파트너와 국내 기업이 별도의 자문단을 가지는 게 좋다. 또 여전히 많은 국내 기업들은 전문가를 쓰지 않고 무역을 진행하는 것도 문제다. 실무자들은 현지 언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단순히 숫자만 보고 사인하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 사인을 가볍게 생각했다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만큼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노동자와 가까운 중남미법의 특성상

투자자가 마음대로 회사를 청산하고,

기계를 팔고, 사람들을 해고해서는 안 된다.

 

 

노무 관련 이슈도 많다. 많은 사례를 접하면서 기업에 강조하는 게 있다. 한국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말고 현지 문화와 언어를 익힐 것, 평가와 보상제도를 명확하게 세우고 엄격하게 시행할 것 등이다. 한국처럼 하려고 했다간 큰 코 다친다. 초과 근무를 강요해서는 안 되고 정해진 근무시간 내에 생산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외국 법인인 만큼 현지인들이 한국인 직원들과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업무지시는 서면으로 명확히 해야 하고, 직원 간에도 책임과 권한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직원을 나무랄 때도 조심해야 한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줘서는 안 되고 개인적으로 업무 과실에 대해서만 지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봉 및 근무 조건과 관련된 계약은 반드시 구체적으로 서면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중남미의 소송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기업들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단순히벌금 얼마 물고 말지라는 생각은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특히 브라질은 소송기간이 길다. 법원이 어떤 증거물을 채택한다고 하면 그 증거물 채택 건을 가지고 계속 논쟁한다. 증거물을 받아주지 않으면 왜 안 받아주냐고 다시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웬만한 소송은 7년이 넘는다. 초기 소송비용이 계속 불어나 나중에는 처음의 10배 이상이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자문요청은 다양하다. 노동법, 세법, 민사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요청을 받는데 파산과 관련한 이슈도 많다. 어떤 식으로 파산 절차를 밟고 대응해야 손해를 덜 볼 수 있느냐와 관련한 것이다. 노동자와 가까운 중남미법의 특성상 투자자가 마음대로 회사를 청산하고, 기계를 팔고, 사람들을 해고해서는 안 된다. 회생 절차까지는 기존 경영진의 발언권이 있지만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파산 절차를 진행할 때는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협상할 때 알아야 할 문화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중남미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일이 최고다. 반면 중남미에서는 개인과 가정이 생활의 중심이며 사회는 이런 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여긴다. 시간에 대한 개념도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다. 10∼15분 정도 늦는 것은 흔한 일이다. 또 친해질수록 신체적인 접촉도 많아진다. 선물을 줄 때도 비싼 것은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여유 있는 문화를 반영해서인지 협상은 보통 더디게 진행되며 아주 세세한 내용까지 다룬다. 긴 시간 토론하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을 위한 건설적인 과정으로 인식된다. 소송 절차가 오래 걸리고 과정이 느리기 때문에 계약에서 중재 등의 안전장치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언어적인 것과 관련해서는 국제계약에서 주로 영어를 쓰는 것을 빼면 모든 사업은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로 진행된다. 계약문화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계약이시작이라면, 중남미인에게 계약은 ‘전부’다. 그만큼 계약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계약 및 부수서류에 대한 공증 절차가 아주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중남미에 진출할 때 현지 파트너의 도움을 구하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하지만 파트너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파트너가 필요한가.

물론이다. 새로운 시장을 이해하고 도움을 얻기 위해 유능한 현지 파트너를 얻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법률적 자문이 필요하다. 예전에 P 기업에서 브라질에 자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당시 내가 현지 로펌에 근무할 때다. 나는 영업활동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라고 했는데 현지 에이전트가 영업활동을 못하는 연락사무소 형태의 회사를 만들라고 했다. 비용적인 측면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사업체 형태가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현지 에이전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고 며칠 후에 보니 P 기업 현지 사업체로 소송이 들어왔다. 회사를 만든 지 일주일 만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알고 봤더니 현재 에이전트가 P 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법인을 만들고 이를 통해 라이선스나 수입권을 따온 것이다. 회사 이름이 정확하게 같았다. 그 후 P 기업이 취할 수 있는 것은 돈을 주고 그 이름을 사든지, 혹은 그 회사를 인수하든지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회사를 인수하면 그 회사의 부채까지 짊어져야 했다. 결국 그 회사는 시장에서 철수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 기업이 혼자서 현지 사업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이런 일들이 에이전트 관계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에이전트 관리를 잘해야 한다.

 

중남미 국가들 중 일부는 부패지수가 높다.

국내 기업가 중 일부는현지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뇌물을 줘야 한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절대 그렇지 않다. 칠레나 우르과이는 한국보다 부패지수가 낮다. 법 집행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중남미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유럽식의 엄격한 법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 최근에는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등의 나라에서 스스로 반부패법(Anti-Corruption Law)을 만들었다. 브라질 대통령에 대해 지금 탄핵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큰 이유가 뇌물수수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자국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대표로 있을 때 한국의 기업을 포함해 여러 기업가에게 돈을 받은 의혹이 일고 있다. 이렇게 거물 정치인에게 돈을 주고 거래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 그 기업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부패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자정 노력을 위한 사회 내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중국이나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 뇌물을 당연시하던 행태를 중남미에서 반복했다간 사건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중남미에서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브랜드파워를 이용한 대표 상품 판매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현지화로 중남미에서 성공한 기업 사례가 있다면 말해달라.

스페인의 텔레포니카(Telefonica)라는 통신기업이 있다. 지금은 유럽 2위 통신기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1980년대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이 기업이 지금처럼 클 수 있었던 발판이 된 곳이 중남미다. 스페인 내수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텔레포니카는 일찍이 중남미에 발을 들였다. 세계 최고 부자이자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이 장악하고 있는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서 모두 텔레포니카가 1등을 했다. 이 성과를 계기로 독일, 이탈리아에 진출하면서 유럽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텔레포니카도 법률적인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출의 모든 과정에서 상당한 공을 들였다. 국내 기업들도 중남미를 세계화를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기를 바란다. 국내 기업 가운데는 하나마이크론이라는 중소기업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현지 대학과 협력해서 연구개발(R&D)도 하고 공장도 지으면서 브라질에서 평판이 좋다.

 

 

중남미 진출 기업에 조언하고 싶은 것은.

중남미 진출을 원하는 기업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갖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혹시 중남미에서는 소송이 걸리면필요한 절차를 취하고 그냥 잊어버려라라고 한다. 소송기간이 워낙 길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애초에 소송이 따를 수 있는 여지의 싹을 자르는 것이다.

 

중남미는 기본적으로 유럽문화를 따른 것으로 계약문화가 강하다. 동양의믿는 문화와는 다르다. 아르헨티나에 있다가 한국에 왔을 때 임대계약서가 한 장이라는 말에 놀랐다. 남미에서는 임대계약서가 짧으면 6, 길면 40장이다. 온갖 구체적인 내용이 다 쓰여 있다. 중남미에서는 계약서를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신중하게 작성한다. 계약서가 아주 중요한 문화다. 따라서 기업들도 불필요한 비용 낭비를 막기 위해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미리 조율하고 계약서를 만드는 것이 좋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319호 New Wave of Logistics 2021년 04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