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Insight from Biology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생물의 유전 정보 집합체인 게놈(유전체) 속에는 유전자 목록과 함께 유전자를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순서’ 정보가 들어 있다. 게놈 정보는 흔히 비유하는 ‘설계도’ 정보가 아니라 종이접기(오리가미)와 같은 ‘순서도’ 정보다. 이러한 정보 전달에 있어서 이 같은 순서도 방식은 1) 쉽게 실행 가능하고 2) 후대(後代)로 전파하기 쉬우며 3) 진화에 용이할 뿐 아니라 4) 오차를 허용하는 매우 효율적인 방식이다. |
편집자주
흔히 기업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경영에 대한 통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30여 년 동안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이일하 교수가 생명의 원리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생물학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기업 경영에 유익한 지혜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생명체는 완벽한 곡선과 직선, 대칭과 비대칭의 조화를 갖춘 완전체다. 개인에 따라 아름답다고 여기는 생물들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어린 시절 왕잠자리의 위엄 있는 비행이나 돌고래의 매끈한 유선형 몸매를 보면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한편 생명체는 우주의 기본 원소들이 고도로 정교하게 조직된 화학원소들의 배열이다. 더구나 이 원소들의 배열은 우리 몸에 잠시 머물렀다 흘러가는 하나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흐름으로서의 생명과 형태적 완전성, 혹은 기능적 완전성은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어떻게 화학원소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 생명체가 그토록 완전한 형태를 만들 수 있을까? 이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는 없는지 한번 살펴보자.
흐름으로서의 생명
생명체가 하나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시킨 과학자는 미국 컬럼비아대의 루돌프 쇤하이머 교수다. 쇤하이머 교수는 1930년대 후반 ‘우리가 먹는 음식이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매우 재미있는 주제를 탐구한 과학자다. 쇤하이머 교수는 쥐가 먹는 음식에 방사성 동위원소로 표지가 된 아미노산을 섞어주고, 이 동위원소가 어디로 가는지 실험적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동위원소는 쥐의 몸 구석구석에 녹아 들어가 근육에서도 발견이 되고, 심장, 간, 뇌 등 거의 모든 조직으로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이후 동위원소는 체내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말하자면 우리가 먹은 음식은 우리 몸으로 들어왔다 잠시 머문 뒤 스르르 빠져나간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는 방식이 물질대사 회로다. 우리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물질대사 회로는 생물학을 배우는 생물학도들에게도 간단치 않은 매우 복잡한 회로다. 그렇지만 한 생명체의 물질대사 회로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기껏해야 2500여 가지밖에 되지 않는다. 이 2500여 가지의 물질들이 고도로 정교하게, 또 유일하게 배열돼 각각의 생명체를 만든다. 배열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종내 개체 간의 차이를 불러온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생명체가 가진 유전자의 차이로 귀결된다. 고등 동식물의 경우 무려 2만∼4만 개 정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 2500여 가지의 물질들을 정교하게 조립해 유일한 배열을 만들기에 족한 수다. 또한 흐름 속에서 물질의 일정한 배열을 계속 유지시켜 아름다움을 흩트리지 않게 하는 데 족한 수이기도 하다.
각각의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배열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사실 40억 년의 긴 진화적 역사가 필요했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생존에 유리한 특성이 우연히 출현하면 그 특성은 다음 세대로 전달됐다. 이러한 전달을 매개하는 것은 물질대사 회로 속의 대사물질 중 DNA라는 정보 저장 물질이었다. DNA에 새겨지지 않은 생물학적 특성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했으니 결국 진화의 끌에 의해 갈고 다듬어진 것은 사실상 DNA의 배열이라 할 수 있다. 그 배열이 서서히 바뀌어 가면서 생물체의 진화 경로를 추동했고, 그 와중에 무수히 많은 배열들이 명멸됐을 것이다. 내가 가진 대사물질의 유일한 배열은 화학원소들이 무작위로 이합집산하는 가운데 우연히 만들어진 배열이 아니고 아니고 40억 년의 장구한 시간 자연선택이라는 무자비한 칼날 아래 살아남은 배열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40억 년 진화 역사의 최종 승리자인 셈이다.
생명체 속의 게놈 정보
게놈(genome)1 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말로 생물의 유전 정보를 뜻한다. 모든 생물의 세포에는 핵이 있는데 그 안에 염색체가 있다. 인간의 경우 총 23쌍의 염색체(22쌍의 상(常)염색체와 1쌍의 성(性)염색체)가 들어 있는데, 이 염색체 안에 DNA가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 게놈은 22개의 상염색체와 1쌍의 성염색체(남자는 XY, 여자는 XX 염색체)를 합한 총 24개 염색체에 들어 있는 유전정보의 집합체를 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생명체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명령하는 게놈이 ‘디지털’ 정보라는 사실이다. 0과 1로 이뤄진 이진법 체계의 디지털 정보만으로도 그 복잡한 슈퍼컴퓨터를 가동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 이진법 체계를 이용해 대학 도서관의 모든 서적들을 디지털 정보로 전환하기도 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화성탐사선 ‘메이븐’을 화성궤도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생명체가 가진 게놈 정보는 이보다 더 복잡한 4진법 체계를 이용한다. 즉, ATGC(Adenine, Guanine, Thymine, Cytosine, 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신)라는 네 개의 염기를 이용해 DNA 이중 나선 구조로 다양한 명령어를 저장하며 실행하게 한다.이 4진법 체계의 게놈 정보는 생명체를 자유롭게 활보하게 하거나 아름답게 비행하게 하며, 심지어 심해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며 생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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