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을 서울 강남 한전 부지에 대한 입찰이 진행됐고 삼성과 현대·기아차의 격돌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결과적으로 현대·기아차가 엄청난 금액을 써냈고 큰 논란이 일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가 ‘혁신’이 아닌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사실에 다소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보자. 그들은 왜 온라인 시대에 과도해 보이는 투자를 서슴지 않았을까?
먼저 다른 자동차 회사들의 상황부터 알아보자. 폴크스바겐은 볼브스부르그라는 작은 도시에 2000년부터 약 4억3500만 유로를 투입해 오토슈타트(Autostadt)를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관광지도 아닌 이곳에 2013년까지 약 2000만 명이 찾아왔다. 오토슈타트는 기차역에서 내려 들어가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마치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것처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개념이다. 이곳에선 별도의 카드 시스템으로 지불이 이뤄진다. 몰입경험의 시작이다. 단지로 들어서면 여러 동의 개성 강한 건물들이 배치돼 있는데, 이들은 폴크스바겐의 다양한 개별 브랜드 전시관이다. 개별 차종 분야의 최고 정점에 있는 벤틀리나 람보르기니, 아우디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브랜드들은 콘텐츠로서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양한 콘텐츠의 힘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히 투름파르트(turmfahrt)는 유리튜브형식 건물로 주문한 자신의 차를 직접 가져 갈 수 있는 타워 형태의 공간이다. 이 경험을 위해서 방문객의 30%는 전국 각지에서 직접 이곳으로 와서 차를 가져간다. 이런 시설과 프로그램은 다양성과 경험을 통한 일체감으로 브랜드파워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또 다른 자동차 회사 벤츠의 뮤지엄은 선명한 공간 구성과 철저한 스토리텔링으로 감동을 제공했다. 세계적으로 유니크한 건축디자인으로 유명한 UN Studio는 한번 진입하면 끝까지 가야 하는 동선으로 설계했다. 이곳 역시 입구가 독특한데 들어가자마자 캡슐처럼 생긴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으로 가야 한다. 문이 열리면 처음 맞이하는 것은 하얀 말이다. 마치 방문객에게 “이제부터 교통수단의 역사를 볼 수 있다”고 말을 거는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이동은 말에서 마차로, 마차에서 초기 모델 자동차로, 다시 미래형 전기차로 모습을 달리하면서 사람들에게 벤츠가 곧 자동차의 역사라는 메시지를 끝없이 전달한다. 전시 형식 또한 다양한 디자인 방법들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직접 만지고 조작하는 코너들로 구성돼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벤츠는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에 자동차와 동일시된다. 건축 공간 자체가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는 벤츠 뮤지엄의 경우 인구 60만 명인 도시 슈투트가르트에 있는데 연간 방문객이 3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벤츠만큼 유명한 BMW 역시 그들의 공간을 만들었고 일본 도요타 역시 자신만의 브랜드 체험관을 만들었다.
이 부분에 주목한다면 한전 부지에 대한 현대·기아차의 투자는 부동산 투자가 아닌 전혀 다른 전사적이고 전 주기적 마케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수많은 자동차 기업들은 입체적 마케팅 전략으로 다양한 공간을 통해 소비자들과 접촉하고 있다. 대표적 기업인 이들의 성공에서 발견되는 특징들이 있다. 선명한 콘텐츠, 스토리텔링, 교육, 시너지, 신기술, 친환경, 개방적 지식네트워크, 공유라는 공통적 가치가 보인다. 비단 자동차 기업에만 적용되지 않는 이런 특징들이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완성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기아차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단순히 ‘특이한 것’을 넘어 현대·기아차가 한전 부지에 만들 공간은 뿌리째 다른 개념으로 새롭고 놀랍게, 그리고 일관성 있는 테마와 감동으로 완성돼야 한다. 억지로 만든 어설픈 콘텐츠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다른 기업들도 앞서 언급한 해외의 성공 사례에서 ‘공간’의 개념을 배우고 현대·기아차의 도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개 가전 매장인 세계 각국의 ‘애플스토어’가 수많은 관광객의 방문 코스가 되고, 임시로 만들어진 ‘런던 아이’에 연간 10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 것을 보라. ‘디지털+아날로그’, 이른바 디지로그 시대를 맞이하는 기업의 전략은 바로 그 ‘공간’에 있다.
홍성용 NCS Lab 대표(건축사)
홍성용은 건축사 및 건축공학 박사로 최초로 2007년 <스페이스 마케팅> (삼성경제연구소 출판)을 정의하고 연구했다. 이후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통해서 KT전화국 콘셉트 개발, 네오벨류 주상복합 프로젝트 등에서 스페이스 마케팅 컨설팅을 진행했다. 스페이스 마케팅의 도시 경쟁력에 대한 연구 결과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를 출간하기도 했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겸 스페이스마케팅 연구소인 NCS lab을 통해 브랜드 스페이스 개발 및 디자인, 건축 설계 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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