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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거울

혁신의 가르침도…어머니의 눈물도… 영웅의 오만함을 다스리지 못했다

김상근 | 170호 (2015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과시욕과 오만함은 최고 엘리트 집단의 고질병이다. 이 병의 근원은 어처구니없게도분노. 최근 화제가 된땅콩 회항이나라면 상무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리스의 알키비아데스와 로마의 코리올라누스는 모두 탁월한 장군이자 조국의 수호자였다가 나중에 각각 아테네와 로마의 배신자가 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알키비아데스는 타고난 과시욕을 억제하지 못했고 코리올라누스는 오만한 성격을 주체하지 못한 탓에 화를 입었다. 그리스와 로마 영웅의 면모를 비교하던 플루타르코스는 이 두 사람의 사례를 본받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로 소개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마음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겠다면 자신을 한번 돌아봐야 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군자의 자세다.

 

 편집자주

고전의 지혜와 통찰은 현대의 지성인들에게 여전히 큰 교훈을 줍니다. 메디치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과 마키아벨리 연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군주의 거울을 연재합니다. 인문학 고전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깊은 통찰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과시욕과 오만한 성격을 가진 엘리트

옛날보다 그 맹위가 덜해지긴 했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는 최고 엘리트 그룹은 경기고, 서울대 출신들입니다.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의 여파로 한국 사회의 신분계급이 급속도로 해체되면서 학력이 엘리트 계급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좀 더 범위를 넓혀보면 지금도 이른바 ‘SKY’로 불리는 명문 대학이나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이 난공불락(難攻不落)과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가창력이 좀 떨어져도 서울대 출신 가수라면 뭔가 심오한 철학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들리고 연기 실력이 엉터리라 해도 서울대 출신의 예쁜 여배우는 용서가 되는 법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학벌 중심의 교육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SKY, 또 죽어도 서울대에 입학하겠다는 학생들로 대입학원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이미 많은 한국의 상류층 자녀들은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직행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습니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대단히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지만 과시욕과 오만한 성격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발견되는 최고 엘리트 집단의 고질병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다수 있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엘리트 병에 걸려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부리는 과시욕과 오만한 성격은 일반적인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성취한 눈부신 성공과 막대한 부의 축적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되고 결국 본인의 과시욕과 결합하게 됩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졸부들의 행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엘리트들이 오만한 성격 탓에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에게 씻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까? 집안이 좋은 사람들, 엘리트 부모 밑에서 어릴 때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타고난 머리 때문에 좋은 대학을 다닌 사람들, 뒤에서 밀어주는 선배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는 사람들, 재벌가의 자녀들, 그래서 남들이 이룩하지 못한 권력과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대개 오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라면 상무땅콩 회항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은 직원의 사소한 실수에도 폭언을 퍼붓고 인격적인 모욕을 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런 실수를 한번도 해본적도 없고 그런 실수를 하는 직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오만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합니다. 그들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내뱉거나 심지어 폭력적인 행동까지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현상은 이런 안하무인의 엘리트일수록 자신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로 나타나는데 사실 그 이유는 본인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마음속 분노 때문입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분노가 크면 클수록 감정의 폭발은 더욱 거칠게 나타납니다.

 

엘리트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 즉 과시욕과 오만한 성격,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왜 집안도 좋고, 명석한 머리를 가지고 있고, 명문대학을 다녔고, 높은 지위나 막강한 부를 누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오만한 언행을 일삼는 걸까요? 왜 이들에게서 마음의 분노는 가시지 않는 것일까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등장하는알키비아데스 VS. 코리올라누스편은 바로 이 점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프랑수아 앙드레 빈센트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1776년 작품, 프랑스 몽펠리에의 파브르박물관 소장

 

 

알키비아데스와과시욕

아테네의 악동으로 불리는 알키비아데스는 명문가 출신의 귀족 청년이었습니다. 아테네의 탁월했던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친척이었고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잘 생긴 외모로도 유명했던 인물입니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졌던 알키비아데스는소년기에도, 청년기에도, 그리고 장년기에도 사랑스럽고 보기 좋았던인물이었습니다(알키비아데스 편 1).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그의 자존심은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덩치가 큰 소년과 레슬링을 하다가 힘이 부족해서 질 것 같으면 상대방의 팔을 물어뜯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계집아이처럼 문다고 비난하면 알키비아데스는아니, 나는 지금 사자처럼 널 물고 있는 거야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경쟁에 대한 애정과 명성에 대한 갈망”(2)을 타고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알키비아데스에게영혼의 약점을 드러내고 어리석은 자부심을 꾸짖는”(4) 스승이 있었으니 바로 소크라테스였습니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알키비아데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가슴을 쥐어짜게 하고 두 눈에 눈물이 고이게”(6) 만들었습니다. 스승과 제자는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우이기도 했습니다. 포티다이아 원정(BC 432) 당시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는 같은 막사를 쓰면서 함께 적과 싸웠고 알키비아데스가 상처를 입고 쓰러지자 소크라테스가 곁에 서서 목숨을 지켜준 적도 있었습니다. 델리움 전투(BC 424)에서는 일반 보병으로 참전했던 소크라테스를 귀족 지휘관이었던 알키비아데스가 보호해준 적도 있었습니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으로 알키비아데스는 마치불에 달아 무르게 된 쇠가 찬물에 들어가면 다시 단단해지고 그 입자가 촘촘하게 뭉치듯이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성격”(6)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렇다면 알키비아데스는 탁월한 스승의 가르침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을까요?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플루타르코스의 분석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플루타르코스 철학의 기본 입장이었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의 경쟁자였던 니키아스 장군을 음해하기도 했고 계략을 부리며 스파르타와의 분쟁을 촉발시키기도 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제3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됩니다. 사치와 방탕의 버릇은 죽을 때까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아테네의 정치가들은 알키비아데스의 무절제한 행동과 정치적 야심을 지켜보면서 “(그에게) 독재와 무법의 낌새가 보인다고분개했습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알키비아데스의 행동에 대해 관용적이었습니다. 그가 망나니짓을 해도 너그럽게 받아주곤 했습니다. 알키비아데스가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고, 대중을 위한 볼거리에 투자하고, 나라에 아낌없이 베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런 아테네 시민들의 반응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루이 장 프랑수아 라그르네티마이아를 유혹하는 알키비아데스’ 1781년 작품

 

 

“알키비아데스는 빛나는 혈통, 뛰어난 연설 능력, 잘 생기고 생기 있는 용모에 전쟁 경험과 전투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은 알키비아데스의 일탈 행위에 매번 관대한 이름을 붙여 철없는 호기와 야망의 산물이라 하였다.” (16)

 

알키비아데스가 일삼던 일탈 행위는 그의과시욕때문이었습니다. 명문가 출신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그는 아테네라는 역사의 무대에 자신의 명성을 떨치려는 욕구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무모한 전쟁이라고 할 제3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특유의 연설 솜씨로 뜬금없는 시칠리아 정복을 관철시킨 것입니다. 헤라클레스와 같은 무공을 쌓고 싶었던 알키비아데스는 명성에 대한 욕망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젊은 나이에 장군으로 임명된 그는 출항 전날 밤, 또다시 망나니짓을 합니다. 누군가가 아테네의 도심 아고라 곳곳에 서 있던 헤르메스 신상의 얼굴과 형상을 훼손시킨 사건이 발생했는데 아테네 시민들은 그것이 술과 혈기에 취한 알키비아데스의 소행이라 여겼습니다. 심지어 그리스에서 신성시되던 엘레우시스 비의(秘儀)를 우스꽝스럽게 재현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결국 그는 시칠리아 원정을 가던 중에 아테네 법정의 소환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 조국의 등에 비수를 꽂는 행동을 일삼게 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철천지원수가 된 스파르타 편에 붙은 것이지요. 그는 스파르타의 군사 참모가 돼 자기 조국 아테네의 군사적 약점을 적에게 일러바칩니다. 심지어 스파르타의 왕 아기스의 아내를 유혹해서 아이까지 낳게 합니다. 스파르타의 왕비 티마이아와의 불륜은 사랑이나 욕정 때문이 아니라단지 자기 자손이 스파르타의 왕위에 앉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23)이었습니다. 그만큼 자기 과시욕이 넘쳐났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의 마음과 정조를 알키비아데스에게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아기스는 복수심에 불탑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를 탈출해 이번에는 페르시아의 왕을 모시는 티사페르네스라는 총독에게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그는 페르시아의 총독에게 내전 중이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분열시키고 두 나라 간의 세력을 비슷하게 유지해 전쟁을 계속하도록 유도하라는 조언했습니다.

 

로마 민중들의 마음이

조변석개(朝變夕改)하자

코리올라누스는 이전보다 더 심하게

그들의 어리석음을 혐오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은 알키비아데스를 무작정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완전히 정복했고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는 ‘30인의 참주가 아테네 시민들을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의지할 곳은 알키비아데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테네 시민들은알키비아데스에게 사람을 보내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고 군대를 이끌어 독재자들을 처벌해 달라고 간청”(26)했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시민들의동정이나 호의 속에서가 아니라 영광의 불꽃에 휩싸여 귀국하고 싶어”(27) 했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주목한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평생 불세출의 명성을 추구하던 알키비아데스는영광의 불꽃속에서 아테네의 영원한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주가를 최고로 올리기 위해 페르시아의 왕궁으로 찾아갑니다. 결국 알키비아데스는 암살당합니다. 함께 지내던 창부와 함께 쓸쓸하게 자객의 칼을 받고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예리한 표현대로드높은 명성으로 인해 몰락한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알키비아데스”(35)였습니다.

 

 

코리올라누스와오만한 성격

아테네의 악동 알키비아데스와 비교된 인물은 로마의 전설적인 장군 코리올라누스(Coriolanus, BC 5세기)입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가이우스 마르키우스(Gaius Marcius)였습니다. 그러나 코리올리(Corioli)란 지역에서 볼스키(Volsci)족을 격퇴하면서코리올리의 정복자란 뜻의 코리올라누스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게 됐습니다. 그는 로마를 전쟁 위기에서 구한 탁월한 장군이었지만 로마 시민들에게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불같은 성격을 억누를 수 있는 자제력이 없었고 평민들 앞에서 자신의 오만함을 숨기지 않았던 정치가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명문가 출신으로 장군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인 탁월한 용기를 가졌지만오만한 성격때문에 결국 파멸의 주인공이 됩니다.

 

코리올라누스는 이미 소년 시절부터 용맹함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소년 코리올라누스는 로마의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가 몰락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부상당한 전우를 보호하기 위해 전투 현장을 끝까지 지키며 싸웠던 소년 코리올라누스는 떡갈나무 잎으로 된 관을 받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떡갈나무 관은 로마 시민의 목숨을 구한 영웅에게 주는 상이었습니다. 코리올라누스가 어릴 때부터 전쟁에 나섰던 이유는 어머니 볼룸니아가 아들에게영웅적인 삶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볼룸니아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아들의 피를 로마의 제단에 흘려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을 여장부였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보기 힘든 강인한 어머니 상을 보여주었던 볼룸니아 때문에 코리올라누스가 그렇게 명성에 목말라 했는지도 모릅니다. 모름지기 아들은 어머니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인정받기 위해 목숨이라도 내어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해석했습니다.

 

코리올라누스는 로마의 귀족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권력을 시민들에게 양보하는 귀족 세력을 질책하던 초강경 보수파였습니다. 로마의 적이었던 볼스키족이 주변 세력을 규합해 로마에 전쟁을 걸어오자 귀족 세력을 대변하던 원로원이 시민 징집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일반 시민들은 아무도 원로원의 징집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의 혼란을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에서 원로원의 입장이 갈렸다. 일부는 시민들에게 양보해야 하고, 지나친 법 집행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를 반대했는데 코리올라누스도 그들 중 하나였다.” (코리올라누스 편, 5)

 

이런 문제는 지금도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정치가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얼마만큼의 자유를 허락해야 하는지, (使) 측 또는 노() 측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서로 밀고 당기는 협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마의 경우 이 문제를 잘못 처리했을 때 혁명이나 국가 파업이라는 파국적인 국면이 초래되곤 했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들은 원로원과 적대적인 관계였습니다. 로마 원로원이 볼스키족과의 전쟁을 위해 징집 명령을 내린 것은 부유층을 보호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믿었습니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원로원은 타협책을 제시했습니다. 로마 시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대변자 5명을 선출토록 한 것입니다. 평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호민관(Tribune) 제도가 바로 이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코리올라누스는 호민관 제도를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귀족이 할 일은 나라의 번영을 위한 경쟁에서 민중과 겨뤄 이기는 일이라고”(7) 늘 주장했습니다. 이기적인 판단이 앞서고 집단 심리에 사로잡혀 있는 무지한 대중들에게 로마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습니다.

 

전쟁 영웅 코리올라누스는 선거를 거쳐 집정관(Consul)에 오르게 됩니다. 집정관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전이 한창 진행될 때 코리올라누스는 토가(귀족이 입는 옷)를 벗고 전쟁 때 입은 몸의 상처를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은 열광하며 코리올라누스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정관에 취임하자 시민들은 입장을 바꾸어 코리올라누스를 탄핵하게 됩니다. 평소 자신들을 무시하고 귀족의 입장을 대변하던 강경보수파 코리올라누스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로마 민중들의 마음이 이렇게 조변석개(朝變夕改)하자 코리올라누스는 이전보다 더 심하게 그들의 어리석음을 혐오하게 됩니다. 코리올라누스는 로마 시민들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도 않았고격정적이고 분쟁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을 마음껏 드러냈습니다.”(15) 플루타르코스는 코리올라누스의 행동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그는 정치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즉 이성과 수양을 통해 얻어지는 위엄과 관용을 갖고 있지 못했다. 플라톤이고독의 동지라고 불렀던 독선을 피해야만 하는데도 이를 알지 못했다. 남들과 어울릴 줄 알아야 하는데도 코리올라누스는 그러지 못했다. 직선적이고 고집스러웠던 그는 만물을 항상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마음이 용기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15)

 

 

우리 사회에 코리올라누스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고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는 최고 엘리트들이위엄과 관용을 갖추는 것은 고사하고 땅콩 한 봉지 때문에 힘없는 사람을 쥐 잡듯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이자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코리올라누스의 진군을 막는 어머니콜드웰이 그린 동판화로 셰익스피어의 동명 극본코리올라누스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 셰익스피어는 <영웅전>을 바탕으로코리올라누스라는 연극 대본을 썼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코리올라누스는 로마 시민들 앞에서오만한 행동을 거침없이 자행했습니다. “그의 연설은 드러내놓고 시민에 대한 공격적인 어휘로 시작되었으며 그들에 대한 뚜렷한 비난으로 끝을 맺었다”(18)고 기록돼 있을 정도입니다. 결국 분통을 터트리던 로마 시민들은 부족별로 투표를 통해 영구추방이라는 처벌을 코리올라누스에게 내립니다. 투표를 마친 로마 시민들은그 어느 적과 싸워 이겼을 때보다 크게 환호하고 기뻐하며 흩어졌다”(20)고 합니다. 코리올라누스가 가족과 이별하며 로마를 떠날 때 누가 귀족이고 누가 평민인지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뻐하는 자는 모두 평민, 슬퍼하는 자는 모두 귀족이었습니다.

 

오만한 성격을 숨기지 않았던 코리올라누스에게 로마에서의 영구 추방은 말할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오만한 코리올라누스가 영구 추방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분노라는 숨겨진 본성을 드러냈다고 기록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수양과 자기 통제 때문에, 혹은 제도의 엄격성과 성공을 위한 본인 스스로의 조심성 때문에 본성이 일정기간 숨겨질 수 있지만 극심한 고통이나 스트레스는 그 사람이 본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도록 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분노가 고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통은 숨겨져 있던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도록 만든다. 따라서 분노에 찬 사람은 고열에 달아오른 사람처럼 흥분한다.” (21)

 

오만한 성격의 밑바닥에는 내면의 분노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격이 오만한 사람은 비록 냉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마음속에는 뜨거운 분노가 숨겨져 있는 법입니다. 활화산처럼 뜨거운 분노의 열기를 주체할 수 없었던 코리올라누스는 볼스키족의 장군인 툴루스에게 제 발로 걸어 찾아갑니다. 마치 그리스의 배신자 알키비아데스가 적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품에 자신의 몸을 맡겼듯이, 로마의 배신자 코리올라누스는 볼스키족에게 투항하며 로마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코리올라누스는 적장 툴루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탄원자로서 그대에게 온 것은 내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가 아니오. 죽음이 두려웠다면 왜 여기 왔겠소? 나는 나를 내친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왔으며, 내가 그대의 부하가 되는 순간 복수는 시작되오. 로마라는 적을 쳐부수고 싶다면 내 재앙을 이용하시오. 내 개인의 불행을 볼스키족 전체의 행운으로 바꾸시오.” (23)

 

플루타르코스가 쓴 <코리올라누스>는 셰익스피어의 동명 작품에 영감을 줬다. 사진은 랄프 파인즈 감독이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를 대본으로 만든 영화의 한 장면.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현상은 이런 안하무인의 엘리트일수록 자신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로 나타나는데 사실 그 이유는 본인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마음속 분노 때문입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분노가 크면 클수록 감정의 폭발은 더욱 거칠게 나타납니다. 그 다음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대로입니다. 볼스키족의 장군이 된 코리올라누스는 파죽지세로 로마를 몰아붙입니다. 복수심으로 타오르는 분노를 전쟁터에서 쏟아부었으니 로마군대는 코리올라누스의 적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죽자고 덤비는 인간입니다. 불타는 복수의 일념에 분노의 기름을 끼얹었으니 코리올라누스의 앞길을 막을 자, 아무도 없었습니다.

 

코리올라누스가 이끄는 볼스키족의 로마 도심 공격이 임박했을 때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어머니 볼룸니아가 코리올라누스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찾아 온 것입니다. 마치 로마와 사비니족과의 전쟁이 불가피했을 때 로마로 시집온 사비니의 딸들이 눈물로 전쟁 준비를 호소했던 것처럼 코리올라누스의 어머니가 분노와 살육의 전쟁을 막기 위해 아들을 찾아 온 것입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네 아내와 자식들은 나라를 잃든가, 너를 잃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전쟁이 결정해 줄 때까지 살 마음이 없다. 네가 만약 양국의 은인이 되기보다 한 나라를 파괴하는 자가 된다면 널 낳아준 여인을 짓밟고 가야 할 것이다.” (35)

 

 

본성보다 강한 것이 어머니의 눈물인 모양입니다. 그토록 오만한 성격을 가졌고 치를 떨며 복수의 시간을 기다리던 코리올라누스도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그는감정에 북받쳐어머니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으며 아내와 아들을 껴안고는눈물을 아끼지 않은 채 감정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합니다(34). 결국 이렇게 전쟁이 끝나고 볼스키족의 장군 툴루스가 코리올라누스를 살해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코리올라누스가 전쟁을 중단했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로마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코리올라누스라는 명예로웠던 그의 이름은 로마 민중들의 기억 속에서 곧 잊혀졌습니다.

 

과시욕과 오만한 행동, 그리고 마음속의 분노

그리스의 알키비아데스와 로마의 코리올라누스는 두 사람 다 탁월한 장군이었고 한때는 조국의 수호자였다가 나중에는 각각 아테네와 로마의 배신자가 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 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본성으로 타고난 과시욕을 억제하지 못했고, 코리올라누스는 오만한 성격을 주체치 못했던 인물입니다. 지금까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의 면모를 비교하면서 탁월한 지도자의 모델을 모색하던 플루타르코스는 이 두 사람의 사례를 본받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알키비아데스가 조금 더 나은 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타고난 과시욕 때문에 늘 문제를 일으켰지만때로는 그의 실수마저도 매력적이고 복스럽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테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랑을 받았던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의 코리올라누스는 존경을 받지도 못했고, 사랑도 받지 못한 일생을 살았다고 분석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코리올라누스가 비사교적이고, 몹시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은 그 자체로도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것인데 야심과 결합하면 극도로 잔악하고 견딜 수 없게 된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대중의 존경을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대중이 존경을 표하지 않으면 불쾌해 하는 경향이 있다.” (비교 편)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명석한 머리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결국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된 엘리트 중에는 지나칠 정도의 과시욕과 오만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큰 고통이 닥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그동안 숨겨져 있던 분노의 본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욕설을 퍼붓거나 파괴적인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이런 사람이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켰을 때, 주위의 약자들은 쩔쩔매면서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하게 되고 결국 이들의 분노는 지속적으로 반복됩니다.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를 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게 된 때문입니다. 이른바분노의 학습효과에 길들여지면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격렬하게 내면의 분노를 표출시키게 됩니다. 분노는 습관이 되고 습관적인 분노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결국분노의 중독증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플루타르코스는 분노의 중독증에 걸렸던 코리올라누스를 소개하면서 그 분노의 심연을 들여다보라고 말합니다. 왜 코리올라누스는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을까요? 코리올라누스가 진정으로 로마 시민들의 무지함과 짧은 생각을 경멸했다면 그들의 추방령도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상식적인 대응입니다. 어차피 민중이란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괘념치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코리올라누스는 본성 깊은 곳에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지나친 기대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코리올라누스의 지나친 오만과 거친 분노의 표현은 사실존경심에 대한 지나친 갈망의 감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마음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겠으면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존경에 대한 지나친 갈망을 내면에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지금 다른 사람들의 더 많은 인정을 받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자가진단을 마치신 분들에게 <논어>의 학이(學而) 편 끝 구절을 처방해 드립니다.

인부지불온(人不知不溫)이라도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skk@yonsei.ac.kr

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 및 에모리대에서 석사 학위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플라톤아카데미 연구책임 교수도 맡고 있다. <르네상스 창조 경영>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20여 권의 책을 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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