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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거울

‘땅의 도시’ 아테네 살린 ‘그리스 이순신’ 그도 돈과 명예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김상근 | 160호 (2014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그리스의 이순신테미스토클레스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다음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삼단노선 200척을 건조(建造)하자고 주장했다. ‘땅의 도시인 아테네의 정체성을바다의 도시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의 예지력은 탁월했다. 아테네를 바다의 도시로 바꾸지 않았다면 이후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지나쳤다. 그는 결국 도편추방(陶片追放)을 당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가 터전을 잡아가는 초기 단계에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결국전쟁에 더 적합한 자들, 혹은 전쟁에서의 지략이나 창의성이 뛰어난 자들이 권력을 잡는다. 대한민국은 테미스토클레스 같은 인물들이 자생하기에 최적의 공간을 제공했다.

 

 

 

편집자주

고전의 지혜와 통찰은 현대의 지성인들에게 여전히 큰 교훈을 줍니다. 메디치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과 마키아벨리 연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군주의 거울을 연재합니다. 인문학 고전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깊은 통찰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몽테뉴와 <영웅전>비교

몽테뉴의 <수상록>에 대해서 들어 보신 분은 있어도 그 책을 직접 읽어 보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꼭 읽어야 할 책인데 내용이 어려워서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을 고전(Classic)이라고 한다는데 몽테뉴의 <수상록>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와인의 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 시장(市長)을 지낸 적이 있는 몽테뉴의 책은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읽기가 어려운 책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6살 때 라틴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몽테뉴는 탁월한 어학 실력을 바탕으로 어릴 때부터 그리스와 로마 고전을 줄기차게 읽어 내렸는데 가장 좋아했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영웅전>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그중에 이런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수상록> 2 32장의 내용입니다.

 

“나는 보댕이라는 사람이 플루타르코스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플루타르코스가 그리스인과 로마인을 비교할 때 편파적이었다는 것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짝이 맞지 않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을 비교시켜 의도적으로 그리스인의 편을 들어줬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바로 이 점이 플루타르코스에게서 가장 탁월한 점이고 칭찬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그의비교는 가장 감탄할 만한 부분이며 내 생각으로 그 부분이 바로 <영웅전>의 백미에 해당한다. 그의비교는 판단의 성실성과 충직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비교부분은 우리에게 탁월함을 가르쳐주는 지혜의 길이다.”

 

저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몽테뉴에게 감사하고, 몽테뉴에게 시장이란 직함을 준 보르도 시에게 감사하고(그래서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 숙고하게 만들었으므로),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붉은 포도주에 감사하게 됩니다. (몽테뉴가 보르도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테니까요.) 사실 제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대한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바로 그비교부분의 중요성과 통찰력이 너무 중요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영웅전>에는 아예 이비교부분이 빠져 있거나(천병희 역) 별다른 해석 없이 번역문만 붙어 있을 뿐입니다(이윤기·이다희 역). 그러나 몽테뉴가 <수상록>에서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영웅전>의 백미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의비교부분에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비교를 통해서 미래의 지도자를 위한군주의 거울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몽테뉴의 표현처럼 이비교야말로탁월함을 가르쳐 주는 지혜의 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웅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비교부분을 그리스어로 신크리시스(Synkrisis)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신크리시스와 관련해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테세우스 vs. 로물루스’ ‘리쿠르고스 vs. 누마’ ‘솔론 vs. 푸블리콜라편을 다루면서 그비교(Synkrisis)’를 분석해 왔습니다. 그리스인의 덕목과 로마인의 덕목을비교해 봄으로써 탁월함에 이르는 길을 모색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루게 될테미스토클레스 vs. 카밀루스편에서는 그비교가 빠져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분명히 두 인물에 대한비교를 집필했을 텐데 아쉽게도 그 본문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스인인 테미스토클레스와 로마인인 카밀루스에 대해서 상세히 알아본 다음 플루타르코스의 도움 없이 이 두 사람을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각 인물에 대한 탁월함의 특징을 도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원 저자의 의도를 모르면서 그것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플루타르코스의비교가 남아 있지 않으니 우리 나름대로 테미스토클레스를 다른 자료와 함께 비교해 보는 방식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탁월함과 한계를 가늠해 볼 수 있도록 그에 대한 비교의 자료가 남아 있는 다른 책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바로 철학자 플라톤이 쓴 <국가>란 책입니다. 이상(理想) 국가의 건설을 위해 어떻게 지도자를 양성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플라톤의 <국가> 8권에서 저는 테미스토클레스를 분석할 수 있는 해석의 근거를 발견하게 됩니다. 테미스토클레스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플라톤의 <국가> 8권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후 기원전 459년에 임종했지만 다음 세대를 살았던 플라톤에게도 여전히 전설적인 존재였습니다. 플라톤이 <국가>를 통해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나가면서 테미스토클레스를 고려하지 않았다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리더십에 대해 높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플라톤도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순신이 있었다면 그리스인들에게는(플라톤에게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있었습니다. 이순신에게 명량해전이 있었다면 테미스토클레스에게는 살라미스 해전이 있었고 두 사람은 다 승리를 거뒀습니다.

 

피레우스 항구에 서 있는 테미스토클레스의 동상

 

그리스의 이순신, 테미스토클레스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기원전 524∼459)그리스의 이순신이라고 보시면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20만 대군을 이끌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처럼(1592)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Darius I, 기원전 550∼486)과 크세르크세스(Xerxes, 기원전 518∼465) 대왕은 무려 500만 명을 이끌고(헤로도토스 <국가> 7:186) 그리스를 침공해 왔습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은 동쪽으로 인도와 박트리아, 서쪽으로 리디아(지금의 터키)와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는 작은 도시국가들로 분열돼 있던, 그야말로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이순신이 없었다면 조선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듯이 그리스에 테미스토클레스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나 헬라스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테미스토클레스를 이렇게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미리 준비하거나 학습을 통해 익히는 일 없이 타고난 지능만으로 잠시 숙고해 보고는 당면 과제를 정확하게 판단했으며 먼 미래를 언제나 가장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든 완전히 설명할 수 있었고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도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아직 드러나지 않는 미래에 가능한 이익과 손실을 어느 누구보다 잘 예견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타고난 재능과 신속한 대응으로 필요할 때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데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 138)

 

이런 테미스토클레스도 첫 출발은 한미(寒微)했습니다. 원래 아테네 출신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원주민과 재류외인(在留外人)을 엄격하게 분리했기에, 테미스토클레스는 처음부터 불리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아이 적부터 격정적이고, 천성적으로 영리하고, 일을 크게 벌이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성격을 타고 났습니다(2). 몰려다니면서 놀기를 좋아하던 또래 아테네 아이들과는 달리 혼자 연설문을 작성하고 대중연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주로 다른 소년을 탄핵하거나 변호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선생님은좋든 나쁘든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합니다.

 

야심을 가진 젊은이는 까칠한 성격을 가질 확률이 높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도 그런 청년이었습니다. 귀족 출신도 아니었고 평소에 세련된 행동이나 교양미 넘치는 언행을 하지 않아서 사람들의 조롱을 자주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은비록 현악기의 현을 조율할지는 모르지만 작고 시시한 도시를 영광스러운 큰 도시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큰소리치곤 했습니다. 이런 건방진 언행 때문에 그의 부친은 걱정이 태산 같았던 모양입니다. 한번은 아들을 해안으로 데려가 좌초돼 떠밀려 내려온 삼단노선의 잔해를 보여주면서백성은 쓸모가 없어진 지도자를 이렇게 다룬다는 점을 잊지 말라며 아들의 정치 입문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더 큰 명성을 얻고 싶은 욕구에 늘 사로잡혀 있던 아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490년의 유명한 마라톤 전투에서 밀티아데스(Miltiades) 장군의 지휘로 아테네 군대가 대승을 거두자 전전긍긍했던 사람은 테미스토클레스 한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아테네 사람들이 모두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친 승전의 기쁨에 취해 있을 때 테미스토클레스는 밀티아데스가 자신이 차지할 영광을 모두 차지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3). 그만큼 성공에 대한 욕구와 명예욕에 불탔다는 뜻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탁월한 점은먼 미래를 언제나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에 있었습니다.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을 때, 그래서 이제 위기는 끝이 났다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을 때, 테미스토클레스는이것은 더 큰 싸움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확신했던 사람입니다(3). 그는 다리우스 대왕이 마라톤에서 철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삼단노선 200척을 건조(建造)하자고 주장합니다. 마침 아테네 남쪽 지역에서 라우레이온 은광이 발견됐는데 이 은광에서 나온, 뜻하지 않은 재정적인 여유를 해군력 증강에 사용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이런 주장은 아테네의 국가적 정통성에 도전하는 혁명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아테네의 수호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의 여신 아테나(Athena)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이 서로 힘겨루기를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아테네는 올리브 나무와 아테나로 상징되는 땅의 도시, 육군의 도시였는데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를 바다의 도시, 포세이돈의 도시로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의 역사적 정통성 자체를 뒤집으려는 시도였습니다. 만약 이때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런 혁명적인 발상에 기초해서 아테네를 바다와 해군의 도시로 만들지 않았다면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그리고 로마시대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테미스토클레스의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능력에 대해서 이렇게 높이 평가했습니다.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이 치러졌던 살라미스 해협의 전경. 지금도 그리스 해군의 작전 요충지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 헬라스인들은 해군력에 의해 구원받았고 불에 탄 아테네 시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이 삼단노선 덕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크세르크세스가 증언해 주고 있다. 크세르크세스는 육군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해전에서 패하자 자신은 헬라스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믿고는 도주했기 때문이다.” (‘테미스토클레스 4)

 

또 다른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해서아직 드러나지 않는 미래에 가능한 이익과 손실을 어느 누구보다 잘 예견할 수 있었다고 표현한 것은 실로 정확한 평가였습니다. 미래를 잘 예견하던 그의 탁월함은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이 승리로 끝난 다음에 다시 한번 그 진가를 드러냅니다. 크세르크세스가 물러나고 페르시아의 잔류병들이 모두 섬멸됐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택한 길은아테네의 요새화정책이었습니다. 아테네의 도심에서부터 인근 항구도시인 피레우스까지 성벽을 쌓아 예상되는 적의 도전을 물리친다는 방어 계획이었습니다. 지금도 아테네 곳곳에 테미스토클레스가 건축했던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테네의 성벽 쌓기를 위한 토목 공사가 아니었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또 한번,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테네가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그리스의 맹주가 된 후, 다음 적은 분명히 스파르타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비록 같은 동족이지만 제국의 길로 들어설 아테네를 향해서 경쟁국가인 스파르타가 창검을 겨눌 것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입니다. 그래서 육군이 강한 스파르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아테네 도심을 성벽으로 보호하고 해군 기지가 있는 피레우스 항구로의 신속한 이동로를 확보한 것입니다.만약 스파르타가 막강한 육군을 동원해 아테네를 공격해 오면 테미스토클레스는 신속하게 피레우스 항구에 정박돼 있는 삼단노선을 타고 스파르타 도시 자체를 공격하겠다는 작전을 세운 것입니다. 미래를 준비하고 신속한 판단을 내리는 일, 그리고 그것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추진하는 일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를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빌헬름 폰 카울바흐(Wilhelm von Kaulbach), ‘살라미스 해전’ 1868, 개인소장품

 

테미스토클레스의 치명적인 단점

이렇게 보면 테미스토클레스는 완벽한군주의 거울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춘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플루타르코스는 이 천하의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천성적으로 명예욕이 강하고금전에 대한 욕심이 지나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18). 적장으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바침으로써 전쟁의 판세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그래도 눈감아 줍니다만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다음 그리스 동맹국을 돌아다니면서 동맹부담금을 우려냈던 행동에 대해서는 플루타르코스도 눈살을 찌푸리고 있습니다(21). 결국 이런 행동 때문에 테미스토클레스는 도편추방(陶片追放)을 당하게 되고 죽을 고생하면서 도피를 다니다가 결국 적국 페르시아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처지로 전락합니다. 물론 조국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그리스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라는 페르시아 대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명예욕과 금전욕이 강했던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한 플루타르코스의 비판은 추상과 같습니다.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그가 가진 전 재산이 3달란톤에 불과했는데 공직에 올랐을 때 무려 100달란톤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25).

 

테미스토클레스가 건축했던 아테네 성벽의 유적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가 직면했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테미스토클레스라는 탁월한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인물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명예욕과 물질에 대한 욕심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품질 좋은 떡만 만들 수 있다면 방앗간의 일꾼들이 떡고물 챙기는 것은 용납해야 합니까?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으니 그깟 100달란톤쯤이야 눈감아 줘야 하는 것일까요? 회사에 100억 원쯤 벌게 해주는 직원이라면 개인적으로 10억 원쯤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요?

 

저는 이 문제에 답할 사법적 지식이나 조직 행동에 기초한 분석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테미스토클레스의 사례에서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그렇게 탁월한 인간이라면 사소한 이익에는 초탈할 것 같은데 왜 인간은 명예와 물질에 대해 끊임없이 욕심을 내는 것일까요? 우리는 가끔 언론 보도를 통해서 높은 공직에 있는 분들이나 큰 부자들이 뇌물을 받거나 금전부정을 일으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미 높은 지위에 올랐는데도, 그리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사람들은 더 많은 명예를 추구하고 더 많은 재산을 노리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성향에 대해 비난하기 전에 내게는 그런 욕심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쯤 될까요?

 

인간본성에 대한 플라톤의 해석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플라톤이라는 철학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책이 있습니다. 바로 <국가>입니다. 플라톤의 명저 <국가>는 보통 7권까지 읽고 그만 두는 책입니다. 10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에서 제7권이 제일 재미있고, 또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이데아론동굴의 비유 <국가> 7권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플라톤의 독자들은 제7권까지만 읽고 안도의 한숨을 쉰 다음 책을 덮습니다. 이어지는 8∼10권의 내용은 플라톤의 핵심 사상인이데아론동굴의 비유를 설명하기 위한 사족이라고들 생각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제8장의 내용이, 아까 우리가 논의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왜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 명예욕과 금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입니다.

 

플라톤은가장 우수한 자들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는 이상국가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상당 부분은 이런 이상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가장 우수한 자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8장에서는 국가 정체(政體)의 발전과정을 소개하면서 각 발전 단계에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일반적 유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이것은 놀랍고 무서운 주장입니다. 그 나라나 사회, 혹은 기업이나 집단의 발전 과정에 따라 어떤 전형적인인간의 유형이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플라톤의 인간론을 논의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8장의 핵심적인 내용만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왜 테미스토클레스 같은 탁월한 인간이 명예욕과 금전욕을 버리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니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욕심을 가진 인간을 성찰해 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플라톤은 간략하게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플라톤은 일반적인 국가의 정체(政體)가 명예지상 정체(timokratia)→과두제(oligarchia)→민주제(demokratia)→참주제(tyrannis) 순서로 진행된다고 봤습니다. 칼 마르크스가 역사의 발전 단계를 연구했다지만 그 시원(始原)에는 플라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명예지상 정체는 역사의 초기 단계로지혜를 사랑하는 자에 의해 통치되는 이상적인 국가 형태입니다. 나라가 터전을 잡아가는 초기 단계에 이런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쉽게 찾아 볼 수 없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를 통치하는 것보다 개인의 덕목을 수련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결국 이런 정체 아래서는기개 높은 자들, 본성이 평화적이기보다 전쟁에 더 적합한 자들, 혹은 전쟁에서의 지략이나 창의성이 뛰어난 자들, 혹은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게 된다는 것입니다(<국가> 8: 547e-548a).놀랍지 않습니까? 플라톤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테미스토클레스야말로기개가 높은 자, 전쟁에 적합한 자, 지략과 창의성이 뛰어난 자,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그 다음 문장이 더 충격적입니다.

 

“그런 자들은 과두제의 통치자처럼 돈을 탐해 남몰래 황금과 은을 숭상한다네. 그들에게는 황금과 은을 은밀히 감춰둘 개인용 금고가 있으니까.” (플라톤 <국가> 8: 548a)

 

플라톤의 위대한 점은 이런 인간 유형의 등장을 국가 정체(政體)와 연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유형의 인간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가정환경까지도 통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놀랍게도 플라톤은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인간의 유형이 나오는 가정환경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젊은이는 잘못 다스려진 나라에서 살기에 명예나 관직이나 소송이나 그 밖에 성가신 일을 당하기보다 차라리 손해를 보기를 원하는 선량한 아버지의 젊은 아들인 경우가 종종 있다네.” (플라톤 <국가> 8: 549c)

 

이쯤 되면 제가 왜 앞부분에서 테미스토클레스의 아버지를 등장시켰는지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큰 야심을 가지고 정치에 나서려는 아들을 만류하기 위해 테미스토클레스의선량한아버지는 해안에 떠밀려 내려온 삼단노선의 잔해를 보여주면서 백성들은 쓸모가 없어진 지도자를 이렇게 다룬다고 아들에게 호소한 바 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선량한 아버지였습니다. 플라톤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유형의 인간이 나타나는 배경에는 어머니의 영향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유형의 젊은이가 탄생하는 것은 어머니의 불평을 듣고 자라기 때문이라네. 어머니는 남편이 아무런 관직을 맡지 않아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자기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한다네. 어머니의 남편은 재물에도 관심이 없어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해도 그저 참고 견딜 수밖에 없지. 어머니는 또한 남편이 자기 생각에만 골똘할 뿐 아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네. 그래서 화가 난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둥, 너무 안이하다는 둥, 불평을 쏟아내게 되지. 또한 하인들도 아들에게 이런 말을 늘어놓는다네. 하인들은 아버지가 채무자나 가해자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중에 성인되면 이들을 응징하라고, 아버지보다 더 남자다운 남자가 되라고 아들을 부추기네. 그래서 결국 그 젊은이는 교만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인간이 된다네.” (<국가> 8: 549c-550b)

 

물론 플라톤은 이교만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인간이 테미스토클레스였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가>를 읽는 독자라면 무릎을 치면서그래, 테미스토클레스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지!”라고 탄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명예지상 정체(timokratia)를 대표했다, 그 다음에 등장할 인물 페리클레스가 과두제(oligarchia)를 상징한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분별한 민주제(demokratia)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몰았고(기원전 399), 결국 ‘30에 의한 참주제(tyrannis)가 실시되면서 아테네가 몰락해 간다는 현실을 플라톤이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도편추방 당한 증거. 아테네 아고라 박물관 소장

 

테미스토클레스가 주는 오늘의 의미

우리 시대의 테미스토클레스는 정치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민주제와 참주제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오늘의 정치 현장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탁월한 인물이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테미스토클레스는 정치판이 아니라 치열한 경영 현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교적 가치를 우선시하는선량한 아버지밑에서 자란 아들들이 많고 상대적으로 고생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가정에서 지켜보면서 성공에 대한 욕망을 불태웠던 아들들이 대한민국에 많았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인물들이 자생하기에 최적의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위에 보면 경영 측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분도 많지만 동시에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억제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테미스토클레스가 많이 있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공과(功過)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그리고 플라톤의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숙고하면서, 무엇보다 자신의 본성을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기회에 테미스토클레스와 여러분 자신을비교(Synkrisis)’해보란 말씀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무덤은 피레우스 항구의 높은 언덕에 있었다고 합니다. 아테네의 상인들이 분주하게 교역물자를 실어 나르는 항구입니다. 한 시인은 그의 무덤 앞에 이런 시비(詩碑)를 세워 미래의 상인들에게 경종을 울렸다고 합니다.

 

“그대의 무덤은 피레우스 항구의 명당에 자리 잡고 있으니, 항해하는 상인들에게 언제나 길라잡이가 되리라. 그대의 무덤은 항구로 들어 올 때나 나갈 때나 그들을 바라볼 것이며 배들이 서로 속력을 다투는 모습을 구경하게 되리라.” (“테미스토클레스 32)

 

테미스토클레스처럼 탁월한 성과를 낼 것인가? 아니면 테미스토클레스처럼 명예욕과 물질에 대한 욕심을 결국 통제하지 못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여러분 자신의 통찰력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와 여러분 자신을비교(Synkrisis)’해 보시면서 그에게서 배울 것은 부단히 배우고, 그로부터 버릴 것은 깨끗이 버리시기 바랍니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skk@yonsei.ac.kr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 및 에모리대에서 석사 학위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플라톤아카데미 연구책임 교수도 맡고 있다. <르네상스 창조 경영>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20여 권의 책을 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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