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거울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그리스의 이순신’ 테미스토클레스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다음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삼단노선 200척을 건조(建造)하자고 주장했다. ‘땅의 도시’인 아테네의 정체성을 ‘바다의 도시’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의 예지력은 탁월했다. 아테네를 바다의 도시로 바꾸지 않았다면 이후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지나쳤다. 그는 결국 도편추방(陶片追放)을 당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가 터전을 잡아가는 초기 단계에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결국 ‘전쟁에 더 적합한 자들, 혹은 전쟁에서의 지략이나 창의성이 뛰어난 자들’이 권력을 잡는다. 대한민국은 테미스토클레스 같은 인물들이 자생하기에 최적의 공간을 제공했다. |
편집자주
고전의 지혜와 통찰은 현대의 지성인들에게 여전히 큰 교훈을 줍니다. 메디치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과 마키아벨리 연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군주의 거울’을 연재합니다. 인문학 고전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깊은 통찰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몽테뉴와 <영웅전>의 ‘비교’
몽테뉴의 <수상록>에 대해서 들어 보신 분은 있어도 그 책을 직접 읽어 보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꼭 읽어야 할 책인데 내용이 어려워서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을 고전(Classic)이라고 한다는데 몽테뉴의 <수상록>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와인의 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 시장(市長)을 지낸 적이 있는 몽테뉴의 책은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읽기가 어려운 책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6살 때 라틴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몽테뉴는 탁월한 어학 실력을 바탕으로 어릴 때부터 그리스와 로마 고전을 줄기차게 읽어 내렸는데 가장 좋아했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영웅전>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그중에 이런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수상록> 제2권 32장의 내용입니다.
“나는 보댕이라는 사람이 플루타르코스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플루타르코스가 그리스인과 로마인을 비교할 때 편파적이었다는 것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짝이 맞지 않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을 비교시켜 의도적으로 그리스인의 편을 들어줬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바로 이 점이 플루타르코스에게서 가장 탁월한 점이고 칭찬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그의 ‘비교’는 가장 감탄할 만한 부분이며 내 생각으로 그 부분이 바로 <영웅전>의 백미에 해당한다. 그의 ‘비교’는 판단의 성실성과 충직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비교’ 부분은 우리에게 탁월함을 가르쳐주는 지혜의 길이다.”
저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몽테뉴에게 감사하고, 몽테뉴에게 시장이란 직함을 준 보르도 시에게 감사하고(그래서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 숙고하게 만들었으므로),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붉은 포도주에 감사하게 됩니다. (몽테뉴가 보르도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테니까요.) 사실 제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대한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바로 그 ‘비교’ 부분의 중요성과 통찰력이 너무 중요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영웅전>에는 아예 이 ‘비교’ 부분이 빠져 있거나(천병희 역) 별다른 해석 없이 번역문만 붙어 있을 뿐입니다(이윤기·이다희 역). 그러나 몽테뉴가 <수상록>에서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영웅전>의 백미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비교’ 부분에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비교’를 통해서 미래의 지도자를 위한 ‘군주의 거울’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몽테뉴의 표현처럼 이 ‘비교’야말로 “탁월함을 가르쳐 주는 지혜의 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웅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 ‘비교’ 부분을 그리스어로 신크리시스(Synkrisis)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신크리시스’와 관련해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테세우스 vs. 로물루스’ ‘리쿠르고스 vs. 누마’ ‘솔론 vs. 푸블리콜라’ 편을 다루면서 그 ‘비교(Synkrisis)’를 분석해 왔습니다. 그리스인의 덕목과 로마인의 덕목을 ‘비교’해 봄으로써 탁월함에 이르는 길을 모색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루게 될 ‘테미스토클레스 vs. 카밀루스’ 편에서는 그 ‘비교’가 빠져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분명히 두 인물에 대한 ‘비교’를 집필했을 텐데 아쉽게도 그 본문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스인인 테미스토클레스와 로마인인 카밀루스에 대해서 상세히 알아본 다음 플루타르코스의 도움 없이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각 인물에 대한 탁월함의 특징을 도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원 저자의 의도를 모르면서 그것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플루타르코스의 ‘비교’가 남아 있지 않으니 우리 나름대로 테미스토클레스를 다른 자료와 함께 비교해 보는 방식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탁월함과 한계를 가늠해 볼 수 있도록 그에 대한 비교의 자료가 남아 있는 다른 책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바로 철학자 플라톤이 쓴 <국가>란 책입니다. 이상(理想) 국가의 건설을 위해 어떻게 지도자를 양성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플라톤의 <국가> 제8권에서 저는 테미스토클레스를 분석할 수 있는 해석의 근거를 발견하게 됩니다. 테미스토클레스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플라톤의 <국가> 제8권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후 기원전 459년에 임종했지만 다음 세대를 살았던 플라톤에게도 여전히 전설적인 존재였습니다. 플라톤이 <국가>를 통해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나가면서 테미스토클레스를 고려하지 않았다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리더십에 대해 높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플라톤도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순신이 있었다면 그리스인들에게는(플라톤에게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있었습니다. 이순신에게 명량해전이 있었다면 테미스토클레스에게는 살라미스 해전이 있었고 두 사람은 다 승리를 거뒀습니다.
피레우스 항구에 서 있는 테미스토클레스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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