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거울

아테네의 현자 솔론의 슬픈 종말 로마의 개혁가 푸블리콜라의 행복

158호 (2014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아테네의 정치 지도자 솔론은 탁월한 입법으로 3개 분파로 나뉜 아테네 사람들의 힘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 솔론의 애민(愛民) 정신은 로마의 집정관 푸블리콜라에 의해 열매를 맺는다. 모두 네 차례나 로마의 집정관에 올랐던 푸블리콜라는 현자 솔론처럼 로마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파격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네의 솔론보다는 로마의 푸블리콜라에게 더 큰 찬사를 보냈다. 왜 그랬을까. 솔론은 임종의 순간에 행복하지 않았다. 참주제를 몰아내기 위해 천신만고의 노력을 다했는데 자신이 해방시킨 평민이 오히려 참주가 돼 아테네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푸블리콜라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행복했다. 로마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나라로 만들고 싶어 했던 그의 평생소원과 노력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고전의 지혜와 통찰은 현대의 지성인들에게 여전히 큰 교훈을 줍니다. 메디치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과 마키아벨리 연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군주의 거울을 연재합니다. 인문학 고전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깊은 통찰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 솔론! 솔론! 솔론!

‘솔론의 개혁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솔론의 개혁은 기원전 593년부터 591년까지아테네의 현자로 불렸던 솔론(Solon, 기원전 638∼558년 추정)이 추진한 아테네의 정치 개혁이었습니다. 아테네를 건강한 사회로 만들고 이른바지속가능한 체제로 정착시키기 위해 사회구조를 개혁한 것이지요. 얼마 전에 법제처장을 지냈던 원로 법조인을 뵌 적이 있습니다. 제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자 당신께서도 학창 시절에 <영웅전> 중에서솔론편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법제처장으로 재직하실 때도 늘솔론의 개혁을 떠올리며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면 건강한 사회로 만들고 지속가능한 체제로 정착시킬지 늘 고민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의 의회 건물 벽면에도 솔론의 조각상이 전시돼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미국의 입법 기관도 늘솔론의 개혁을 모범으로 삼으며 자기 나라를 건강한 사회, 지속가능한 체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테네의 정치가 솔론은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란 책에도 잠시 등장합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가 전쟁에 패해 화형을 당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리디아는 지금의 터키 지역입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에게 제압돼 당시 관례에 따라 화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사형 집행인이 쌓아놓은 장작에 불을 붙이려고 하자 크로이소스 왕은, 솔론, 솔론, 솔론!”이라고 외쳤습니다. 처형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키루스 대왕은 사형 집행을 중지하고 왜 솔론의 이름을 그렇게 애타게 불렀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크로이소스 대왕은 아테네의 현자 솔론과 나눴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솔론은 아테네에 새로운 법을 창제한 다음 10년간의 외유(外遊)를 선택했습니다. 새로 제정된 법률 때문에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줄기차게 법의 개정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솔론은 자신이 공들여 만든 새 법이 개정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장기간 외유를 떠나 이런 시도를 저지하기로 합니다. 아예 자리를 비워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솔론은 크레타와 이집트, 리디아를 차례로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아테네의 현자가 자기 나라를 방문한다고 하자 내심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보물창고를 솔론에게 보여줍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다스리던 리디아에서 막대한 양의 금이 출토돼 많은 금은보화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막대한 재원으로 크로이소스 왕은 궁궐을 화려하게 꾸몄고 많은 용병을 고용해 막강한 군대를 거느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크로이소스 왕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많은 금은보화를 가졌고, 태평성대를 지켜줄 막강한 군대도 보유하고 있으니, 남 보기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크로이소스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테네의 현자 솔론이여,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크로이소스는폐하, 리디아의 왕이시며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계신 폐하께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옵니다란 대답을 기대했겠지요. 그런데 솔론은용감하게 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던 텔로스란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한편으로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섭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재차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럼,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자 솔론은어머니 헤라 여신을 모시고 열심히 달려 축제 장소에 도달한 뒤 평화롭게 죽었던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이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크로이소스 왕은 화를 내면서 솔론에게 그 이유를 따져 물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자신보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이 왜 자신보다 행복한 사람인지 설명하란 것이지요. 그러자 현자 솔론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하, 인간이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옵니다. 전하는 거부(巨富)에다 수많은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옵니다. 하지만 저는 전하께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전하의 물음에 답할 수 없사옵니다. 누가 죽기 전에는 그를 행복하다고 부르지 마시고 단지 운이 좋았다고 하소서.”

 

니콜라우스 크눕퍼(Nikolaus Knüpfer), ‘크로이소스 왕 앞에 선 솔론’ 1650년대 작품, 폴 게티 박물관 소장. 크로이소스 왕은 솔론에게누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가?”라고 질문했다.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 1 32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전쟁에 패해 장작불에 타 죽게 된 크로이소스는 최후의 순간에 솔론이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자신이 누렸던 엄청난 부와 권력은 모두우연의 산물일 뿐이었고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솔론의 경고를 새겨듣지 않았던 자신이 후회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불타오르는 장작불 위에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 자신의 불우한 운명을 돌아보며 솔론의 이름을 그토록 애절하게 외쳤던 것입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말입니다. , 솔론! 솔론! 솔론!

 

솔론, 그는 예고편일 뿐!

솔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아테네의 현자라 불릴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솔론은 그냥예고편일 뿐이었습니다. 솔론을 현자로 치켜세웠던 헤로도토스, 늘 솔론을 기억하며 공직에 임하셨다는 전 법제처장님, 그리고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을 모두 머쓱하게 만드는 평가지요. 아테네의 현자 솔론은 예고편이었을 뿐이고, 로마의 입법자 푸블리콜라(Publius Valerius Publicola, 기원전 503년 사망)가 진짜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솔론의 진정한 가치는 푸블리콜라의 로마 입법을 통해 그 역사적 실체가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로마인을 그리스인보다 높이 평가하는 이런 플루타르코스의 비교는 지금까지 <영웅전>에서 봐왔던 방식과 확연히 다른 차이를 드러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테세우스 vs. 로물루스리쿠르고스 vs. 누마의 비교를 통해 로마시대의 인물보다 뛰어났던 그리스 시대의 인물을 소개하는 플루타르코스를 봤습니다. 그런데솔론 vs. 푸블리콜라의 비교에서는 그리스 시대의 인물 솔론은 단지 예고편에 불과했고 진짜 본받아야 하는 사람은 로마시대의 인물 푸블리콜라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글을 읽고 계신 현명한 독자께서는그렇다면 지금까지 플루타르코스가 그리스 정신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영웅전>을 썼다는 김 교수의 해석이 틀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조금 당황했습니다. 로마시대의 지도자들에게 그리스 정신의 위대함을 본받으라는 취지에서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가 왜솔론 vs. 푸블리콜라비교 편에서는 로마시대의 인물인 푸블리콜라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 본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서 플루타르코스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플루타르코스가 로마시대의 인물인 푸블리콜라를 더 높이 칭송하고 있지만 자기가 살아가고 있던 로마시대를 비판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거대한 제국으로 치달아 가면서 팽창과 확장에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백성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던 로마제국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솔론 vs. 푸블리콜라에서도 마찬가지란 것입니다. 푸블리콜라의 원래 이름은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Publius Valerius)였지만 굳이 푸블리콜라(Publicola),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 즉 푸블리콜라가 그 애민(愛民) 정신의 씨앗을 뿌렸던 솔론을 이어받아 로마의 사회적 방향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로마제국의 지도자들은 금은보화에 눈이 멀었고 권력 추구에만 전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솔론의 이름을 세 번이나 외쳐 불렀던 크로이소스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그리고 그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플루타르코스는솔론과 푸블리콜라의 비교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두 사람의 비교는 정말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다른 비교에서 볼 수 없었던 점이 있다. 뒷사람(푸블리콜라)이 앞사람(솔론)을 모방했고 결국 앞사람이 뒷사람에게 증인이 됐다는 점이다.”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 이제 제 해석에 동의하십니까? 지금까지 로마시대의 인물보다 뛰어났던 그리스 시대의 인물을 소개해 왔는데솔론 vs. 푸블리콜라의 비교는정말 특별한 경우이고지금까지 다른 비교에서 볼 수 없었던 점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솔론은 예고편이었고 진정으로 한 조직과 사회가 건강해지고 지속가능하려면 푸블리콜라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로마에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솔론의 연대기

, 그렇다면 우선 솔론의 연대기부터 살펴봐야겠습니다. 솔론은 워낙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플루타르코스는 여러 선행 자료를 참고하면서 솔론의 생애를 재구성했습니다. 앞에 소개해드린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같은 책들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솔론은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큰 부자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솔론은 인생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적당한 부를 축적했는데 젊은 나이에 장사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솔론 편, 2).세월이 흐른 다음 아테네가 정치적 혼란에 휩싸이자 시민들이 솔론에게 정치 일선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솔론이 적임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아테네 시민들의 눈으로 볼 때 솔론이야말로그 시대의 오류에 가장 덜 연루돼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론은부자들의 불의와도 연관이 없었고 가난한 자들의 궁핍과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습니다(솔론 편, 14).모름지기 정치가가 되려면 너무 부자여서도 안 되고, 너무 가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그리스인들의 통념이었습니다.

 

솔론이 공직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살라미스 섬 때문에 빚어진 메가라 사람들과의 분쟁 때문이었습니다. 살라미스는 아테네 인근 피레우스 항구에서 배를 타고 1시간쯤 가면 나오는 작은 섬입니다. 북서쪽의 메가라인들이 이 섬을 차지하자 솔론은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해 살라미스 탈환 전쟁을 펼칩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분쟁을 회피하려들자 미친 척하기도 하고, 델포이 신탁까지 들먹이며 시민들의 마음을 바꿔 놓았습니다. 솔론의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살라미스는 적의 손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이 살라미스 탈환 전쟁을 통해 솔론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유능한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게 됩니다.

 

다비드두 아들의 시신을 브루투스에게 보내다’ 1789년 작품, 루브르박물관 소장.

 

당시 아테네는 세 파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이른바언덕 사람들은 극단적인 민주정을 선호했고평지 사람들은 극단적인 과두정을 원했습니다. 이 말은평지 사람들이 부자였다는 말입니다. 귀족과 부자들은 늘 강력한 과두정으로 통치되는 안정 지향의 사회를 원하게 마련이지요. 특이한 점은 아테네에 제3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물가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민주정과 과두정을 오락가락하면서언덕 사람들이나평지 사람들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물가에 사는 사람들의 힘이 약화되면서평지 사람들’, 즉 부자들의 권력이 팽창하게 됩니다. 부자들의 권력이 커졌고 아테네에 참주의 독재가 등장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에게 많은 부채를 지고 있었습니다. 지주들의 땅을 경작해서 얻은 소득의 60%를 바쳐야 했기 때문에 아테네의 부가 한쪽으로 집중되는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경작할 땅을 가지지 못했던 하층민들은 헥트모로이(hektmoroi)라고 불렸습니다. 그들은 빚을 갚지 못해 결국 노예로 팔려가거나 심지어 친자식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아테네 시민들은 부자의 편에 서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지도 않았던 솔론에게대중 앞으로 나와 만연한 아테네의 불화를 끝맺어 달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솔론 편, 14).솔론은 탁월한 입법으로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솔론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는 법을 제정하는 데 조금의 나약함도 보이지 않았다. 힘 있는 자에게 굽히지도 않았고 유권자들(투표권만 가지고 있는 가난한 시민들)을 기쁘게 하려고 들지도 않았다(솔론 편, 15).”

 

솔론은 우선 모든 아테네 시민들의 빚을 일시에 탕감해 줬습니다. 또한 빚을 갚지 못해 노예로 전락한 시민들을 해방시켜 줍니다. 상위 3계급의 정치 주도권을 인정하면서도 일반 평민들에게도테테스라는 사회적 계급을 부여해 민회의 일원으로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줬습니다. 이제 아테네의 최하위층 사람들도 배심원의 자격으로 나라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솔론은나약한 군중의 힘을 보장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솔론 편, 18).그는 아테네를 건강한 나라로 만들고 싶었고 자신이 이끌어가는 도시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길 원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시민들이 스스로 한 집단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또한 남이 불의를 당하면 측은히 여길 수 있도록 적절히 길들이는 일에 매진했던 것입니다(솔론 편, 18).

 

, 이런솔론의 개혁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테네 시민들 모두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을까요? 솔론은 10년간이나 외유를 떠나면서까지 자신이 공들여 만든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솔론이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를 만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10년간의 긴 외유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테네는 다시 혼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평지 사람들언덕 사람들’ ‘물가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치열하게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었지요. 다행스럽게도언덕 사람들’, 즉 가난한 평민을 대표하던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권력을 잡아 겨우겨우 솔론의 법을 지켜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목적인 평화였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참주로 돌변해 아테네를 집어 삼키게 됩니다. 부자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가난한 자들을 보호해 줬더니 가난한 자들이 부와 권력에 맛이 들어 참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솔론이 그렇게 막고자 했던 참주가 아테네에 등장했지만 이를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솔론은 노령으로 사망했고 화장한 그의 시신은 살라미스 섬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솔론의 개혁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솔론은 임종을 맞이하면서 크로이소스 왕에게 했던 자신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누가 죽기 전에는 그를 행복하다고 부르지 마시고, 단지 운이 좋았다고 하소서!”

 

그렇다면 푸블리콜라는 생애는?

플루타르코스의 진짜 영웅은 푸블리콜라였습니다. 아테네의 현자 솔론이 뿌렸던 애민(愛民) 정신의 씨앗은로마의 전쟁과 평화라는 두 시기에 모두 가장 능력 있는 정치가란 평가를 받았던 푸블리콜라에 의해 열매를 맺게 됐습니다. 로마제국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그리스 영웅들의 덕목을 소개하던 플루타르코스는 특유의그리스 찬양을 잠시 멈추고 푸블리콜라에게 더 큰 찬사를 바치고 있습니다. 로마 지도자들에게 푸블리콜라란 이름의 의미처럼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도였지요.

 

푸블리콜라는 기원전 509년의로마 혁명을 끌었던 4인방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로마의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Tarquinius Superbus, 기원전 495년 사망)를 폐위시키고 로마 공화정을 시작한 인물입니다. 물론 이 4인방 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은 루키우스 브루투스(Lucius Brutus, 기원전 509년 사망)입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기원전 44년이 됐을 때 로마 공화정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카이사르를 암살한 인물, 기억하시죠? 브루투스란 인물입니다. 카이사르가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브루투스, 너 마저?”라고 했다지요? 카이사르를 암살했던 브루투스에게는 로마 왕정을 끝내고 공화정의 초석을 놓았던 조상 루키우스 브루투스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브루투스는 정말 혁명가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두 아들이 왕정복고를 획책하다가 체포당하자 처참한 두 아들의 처형 장면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지켜봤다고 합니다.

 

이런 혁명가들의 용기와 희생 덕분에 로마는 기원전 509년부터 공화정을 시행하기에 이릅니다. 왕의 집권을 막고 매년 공화정의 대표인 집정관(Consul) 두 명을 투표로 선출해 통치를 위임하는 방식입니다. 모두 네 차례나 로마의 집정관에 올랐던 푸블리콜라는 아테네의 현자 솔론처럼 로마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아래와 같은 파격적인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 로마의 시민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집정관으로 선출될 자격을 가진다.

● 집정관의 결정이나 정책에 대해 모든 로마 시민은 반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 왕정의 복구를 획책하는 자는 재판을 거치지 않고 처형할 수 있다.

● 일정 수준 이하의 가난한 로마 시민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집정관이 관리하던 국가의 세금은 공공장소인 사투르누스(Saturnus) 신전에 보관하고 재정관이 국가의 세금을 관리하고 집행한다.

 

푸블리콜라의 이런 개혁 정책은 로마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사생활에서도 탁월한 모범을 보였습니다. 새로 짓고 있던 집이 너무 크고 호화롭다는 비판을 듣자 푸블리콜라는 그날 밤에 신축 중이던 저택을 허물고 살고 있던 동네의 허름한 집에서 거주합니다. 로마의 집정관으로 행진할 때도 시민들 앞에서는 수행원이 들고 다니던 통치권의 상징이었던 파스케스(Fasces)를 아래로 숙이게 했습니다. 파스케스는 12개의 지팡이와 도끼를 묶어서 집정관의 통치권을 상징했는데 그것을 아래로 숙임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로마 시민들 앞에서 낮추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미국 의회당 정면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파스케스. 공화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푸블리콜라는 무공(武功)도 뛰어났습니다. 폐위됐던 타르퀴니우스 가문이 이탈리아 북부의 에트루리아인과 결탁해 여러 번 왕정복고 전쟁을 일으켰지만 그때마다 푸블리콜라의 지휘하에 로마군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로마 인근의 사비니족들과 맺은 평화정책도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무려 5000가구의 사비니족들을 로마로 집단 이주시켜 공존을 위한 타협점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땅을 무상으로 배분해 주고 사비니 귀족 가문들에게는 원로원의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로마인과 사비니인 사이에서 벌어졌던 오랜 갈등이 마침내 해결됐습니다. 왕정을 타도하고 혁명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탁월한 무공으로 나라를 지켜냈으며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로마 공화정을 위해 시민들을 이끌던 푸블리콜라가 임종(기원전 503)하자 로마 시민들은 무려 1년 동안이나 그를 위해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 뒤에백성을 사랑하는 사람’, 즉 푸블리콜라(Publicola)라는 명예로운 찬사를 붙이게 됩니다.

 

솔론보다 푸블리콜라가 더 위대한 이유

솔론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크로이소스 왕의 질문에누가 죽기 전에는 그를 행복하다고 부르지 마시고 운이 좋았다고 하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행복한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솔론은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참주제를 몰아내기 위해 천신만고의 노력을 경주했는데 자신이 천신만고 끝에 해방시킨 평민이 참주가 돼 아테네를 집어삼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영웅 푸블리콜라는 마지막 순간에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나라로 만들고 싶어 했던 평생의 소원과 노력이 이뤄졌습니다. 에트루리아인들과 사비니족들과의 평화도 완성시켰습니다. 로마인들은 그에게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헌정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두 사람의 평생을 이렇게 요약합니다.솔론이 누구보다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푸블리콜라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솔론과 푸블리콜라 비교편, 1).”

 

플루타르코스는 로마의 지도자들에게 푸블리콜라의 길을 따라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제국을 지향하는 참주의 길을 멈추고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로마 공화정의 기초를 닦았던 푸블리콜라는 로마 지도자들의 모범이 됐습니다. 푸블리콜라가 보여준 이런 지도자들의 특징은능동적이고 용기 있는 반대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굳세고 단호하게 대처하고 평화로운 대화와 상냥한 설득이 필요할 때는 더욱 잘 대처하는 것이었습니다(솔론과 푸블리콜라 비교편, 4).그렇습니다. 푸블리콜라 같은 지도자는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에 알맞은 방식으로 해결하고 종종 자신이 누리던 일부의 권리를 희생함으로써 전체를 살리고, 작은 특권을 포기함으로써 더 큰 특권을 얻게 될 것입니다(솔론과 푸블리콜라 비교편, 4).로마 시민들 앞에서 권력의 상징이었던 파스케스를 숙였던 푸블리콜라가 우리 시대까지 유효한군주의 거울을 잘 보여줬습니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skk@yonsei.ac.kr

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 및 에모리대에서 석사 학위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플라톤아카데미 연구책임 교수도 맡고 있다. <르네상스 창조 경영>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20여 권의 책을 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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