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Article at a Glance- 인문학
한국인들은 주로 문화를 ‘외국/한국’ 또는 ‘서양/동양’의 차이로만 나누어 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계의 문화는 여러 방식으로 나뉜다. 일본은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국가지만 제국들이 식민지 개척 경쟁을 하던 19세기에 유럽 제국에 정복을 당하는 대신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웃 나라들을 침략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영국이나 프랑스와 비슷한 면이 많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한국이나 프랑스처럼 역사가 긴 나라는 미국 같은 신개척지보다 오히려 서로 더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또 문화적 동질감이 더 큰 측면도 분명히 있다. 따라서 이러한 대륙별 구분법에 따라 신대륙 사람들의 ‘극단적 개인주의’와 평등의식, 구대륙 사람들의 ‘문화적 보수성’과 ‘계급의식’의 이면을 파고드는 것 역시 각 대륙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
편집자주
인종, 문화, 종교, 정서, 안목 등이 각양각색인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의 호감을 얻고 수익을 만들려면 인문학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고객에게는 최고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이 다른 나라 고객에게는 혐오감을 주거나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미 지역과 동남아 문화에 정통한 언어 전문가이자 ‘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 ‘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을 연재합니다.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커피 체인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 약 1만2000여 개, 전 세계에 약 2만여 개의 체인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전히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스타벅스 경영진은 2013년 3분기에 25%의 수익 신장률을 기록해 커피 사업이 포화 상태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었다.1
스타벅스는 자국 내 성공에 힘입어 2004년부터 ‘구대륙’ 진출을 모색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8년 간 프랑스에 진출해 63개의 체인점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2 프랑스에서도 젊은 ‘미드(미국드라마)’팬들, 현지 음식에 적응 못하는 외국인들,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하려고 노트북 가지고 매장에 와서 업무를 처리하려는 프리랜서 등은 스타벅스를 찾았지만 프랑스 주류 커피시장에서는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오스트리아 비엔나 등 구대륙의 심장부에서는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스타벅스의 프랑스 진출 실패에 대해서는 미국 신문에서 여러 가지 분석 자료들을 내놓았다. 그간의 분석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프랑스인들의 60%가 에스프레소 원액을 마시는데 스타벅스 커피는 여러 가지 크림과 시럽을 섞어 만들기 위한 원액이어서 원액 그대로 마시기에는 너무 쓰다. 둘째, 프랑스인들은 카페를 친구들과 긴 시간 동안 마주 앉아서 마음껏 수다를 떠는 장소로 이용해 왔기 때문에 스타벅스의 주 수입원인 ‘테이크아웃’ 사업이 부진할 수밖에 없다. 셋째, 프랑스인들의 까다로운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 설치 비용이 너무 비싸다. 그 밖에도 유럽의 비싼 인건비와 임대료도 이윤을 내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걸으면서 음식을 먹지 않는 전통이 있다. 아주 오래된 문화다. 따라서 스타벅스의 아이콘인 ‘큰 잔’을 들고 다니면서 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는 ‘트렌디 피플’의 이미지가 판매에 도움을 주기 힘들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 모든 분석들을 종합해 보면, 프랑스인들은 워낙 오랫동안 커피를 즐겨왔던 까닭에 ‘커피는 이런 것이다’ ‘카페는 이런 곳이다’라는 고정관념이 강해서 스타벅스 같은 혁신적인 영업 방법을 정착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스타벅스만 겪고 있는 게 아니다. 역사가 짧은 나라인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혁신을 통해 성공을 거둔 비즈니스 모델을 오랜 역사를 가진 구대륙 국가에 옮겨 심을 때마다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처럼 편리와 실용을 중요시하는 신대륙 기업이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고정관념과 전통을 이해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사례는 상당히 많다.
혁신적 미국 기업에게 프랑스는 구대륙 국가 중에서도 가장 적응하기 힘든 시장이다. 자국의 생활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1997년 미국 햄버거 체인 버거킹 역시 프랑스 진출 후 수익이 저조한 나머지 손실이 큰 체인점 39곳의 문을 닫은 적이 있다. ‘디즈니랜드 파리’는 프랑스 사람들의 고용 문화와 교육 환경을 이해하지 못해 1990년대부터 프랑스인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에 시달려 ‘문화 체르노빌’이라는 악명까지 얻었다. 디즈니사는 와인 없이는 식사를 하지 않는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맞춰 장내 식당에서 알코올 금지를 해제하는 등 여러 노력을 했지만 디즈니랜드 파리 오픈 20주년인 2012년에 수익을 내기는커녕 빚만 19억 달러(약 2조3000억 원) 지게 됐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3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신대륙 개척으로 만들어진 나라들은 몇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구대륙’과 매우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경험들은 문학, 예술, 영화 등 인문학적 자료로 축적돼 후세들에게 전파된 일종의 후천적 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신대륙/구대륙 문화 DNA 차이를 생성시켰다. 문화적 차이를 감수하고 글로벌 규모의 사업을 해야 하는 경영인 중에는 구대륙과 신대륙의 문화 DNA 차이를 간과해 자주 소비자, 고용주, 직원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앞에서 소개했던 사례들처럼 심각한 손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신대륙
극단적 개인주의
신대륙이라는 용어는 ‘아메리카’라는 대륙 이름의 어원이 되기도 한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사람이 만들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디딘 유럽인은 콜럼버스지만 그는 자기가 다녀온 장소를 인도라고 믿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브라질 여행 및 포르투갈 해군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유럽의 서쪽에 어마어마한 신대륙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시 유럽 최고 재벌인 메디치에게 쓴 편지에 ‘Novus Mondus’ 즉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 단어는 아직도 유럽인들의 언어 습관에 남아 유럽인들은 유라시아 대륙을 ‘Old World’, 미주·남미·호주 등을 ‘New World’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조국을 버리고 신대륙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대체로 정부의 보호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먼 땅에서 자력으로 땅을 일구고 마을도 세웠다. 땅은 넓고 노동력은 턱없이 부족해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했다. 농사 짓기, 가축 사육, 공구 제작하기, 집 짓기 등을 스스로 해냈다. 군대나 경찰의 보호가 전무했기 때문에 원주민들이나 옆 마을의 낯선 사람들이 집으로 쳐들어 오면 스스로 총을 들고 나가 자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대륙 사람들의 문화 DNA에 새겨진 인간의 기본 단위는 철저히 ‘개인’이다. 정리해보면, 인구 밀도가 극도로 낮고 자연 재해의 위험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던 개척 시대의 신대륙에서는 학벌, 나이, 혈통, 그 어느 것도 생명의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었다. 따라서 오로지 혼자의 노력과 힘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했다. 그래서 신대륙에서는 지독한 개인주의가 발달했다.
네덜란드의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찰스 햄든-터너와 알폰즈 트랜포나의 연구는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두 교수는 여러 나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좋은 근무 환경’에 대해서 연구해본 결과 구대륙과 신대륙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컨대 개인 실적 위주로 상벌이 주어지는 회사를 A라 하고, 사원들의 공동체로서 일과 이익을 나눠 갖는 회사를 B라고 한 후 ‘어떤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신대륙 사람들은 90%가 A를 골랐다. 그만큼 신대륙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는 뜻이다. 또 남들과 운명을 같이하기 싫어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 등 구대륙 사람들의 경우 70% 정도가 A를 골랐으며 일본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에선 50%만이 A를 선택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이 연구결과를 정리해보자.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문화권 사람들은 스스로 ‘집단주의’가 강하다고 믿는다. 반면 서구인들은 모두 개인주의적 사고를 강하게 할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를 보면, 동양인(50%)과 유럽인(70%)들이 ‘개인주의가 강한 회사 A’를 고른 비율의 차이(20%)와 유럽인(구대륙인)들과 신대륙 사람들(90%)의 답변(의식) 차이가 같다. 즉 동양인과 구대륙 유럽인의 차이만큼 신대륙과 구대륙 사람들의 성향 차이도 크다는 얘기다.
또 다른 재미난 결과도 있다. ‘15년 동안 한 회사에서 충성스럽게 일한 사람이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실수를 저질렀을 경우 그 사람을 해고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에 미국과 캐나다 사람 중 75%가 해고를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에 비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사람들은 30% 정도만 해고를 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한국과 싱가포르 사람들은 25%만 해고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땅의 크기에 비해 인구 규모가 턱없이 적어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던 개척지에서는 단체 행동 중 한 사람만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해 이동 속도가 느려지거나 식량만 축내면 모든 사람이 죽을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신대륙 사람들이 자기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잔인할 정도로 매정한 이유다.
신대륙 사람들의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이해 못하는 기업은 신대륙 진출 시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2014년 미국의 직장 평가 사이트 ‘글래스도어’에는 미국 진출 한국 기업에 대한 직장 만족도가 공개돼 SNS상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조사에서 트위터, 베인앤컴퍼니, 구글 등이 4.5 이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미국의 100대 기업 평균은 약 3.6 정도로 나타났다. 그러나 미주 주재 삼성은 2.7을 받아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가 평균 이하인 것으로 조사돼 주목을 끌었다. 신대륙 사람들은 개인의 아이디어와 성향에 따라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 개인 실적에 대한 정확한 측정과 그에 맞는 상벌을 원하기 때문에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는’ 구대륙적 한국 기업 문화에 상당히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