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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배우는 공감 5계명

리더가 첫 줄 쓰고 직원이 이어서 詩를 짓자 불만과 불통이 사라진다

황인원 | 156호 (2014년 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혁신,인문학

시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공감의 방법은?

① 진정성을 발휘해 대상의 상황과 하나가 되라

② 자유로운 발상을 통해 창의적으로 상상하라

③ 자리에 맡는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라

④ 공감이 가능한 유효기간을 기억하라

⑤ 공동의 시를 만들어보라

황희 정승이 퇴궐 후 가마에 올라 집으로 가던 때였다. 동네 어귀에서 어느 아낙의 서러운 곡소리를 들었다. 황 정승은 가마에서 내려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젊은 아낙이 남편의 시신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황 정승은 아낙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슬퍼했다. 그러다가 어쩌다 남편이 죽었는지 물었다. 한참을 대답 없이 울기만 하던 아낙은 사연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낙은 결혼 후 남편과 행복하게 지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아내이고, 남편은 남편일 뿐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사라졌다. 지금으로 말하면 권태기 같은 시기였으리라. 하지만 이들은 이 시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몰랐다.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내면서 잘못된 것만 눈에 들어왔고 상대에 대한 불만이 늘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서로 미워하는 감정까지 생겼다. 이즈음 아낙은 자신에게 곰살맞게 굴던 남자와 마음을 나누게 됐다. 정부(情夫)가 생긴 것이다. 정부는 아낙을 꼬드겼다. ‘우리 사랑에 방해가 되니 네 남편을 죽이자.’ 아낙은 정부의 의견에 따랐다. 그리고 야심한 밤, 잠자는 남편의 배꼽에 돼지꼬리의 뻣뻣한 털(이 털이 돼지 털 중 가장 뻣뻣하고 강하다고 한다)을 꽂았다. 남편은 잠자다 배에 바람이 들어가 꼼짝 못하고 죽었다.

 

남편이 죽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아낙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깨닫고 후회의 눈물을 쏟으며 울었다. 황 정승이 아낙의 집을 찾은 것은 이때였다. 이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황희 정승은 밤새 한 잠도 못자고 고민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리라.”

 

아침에 입궐한 황 정승은 임금에게 지난 밤 겪은 일을 고하고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한 번 결혼한 아녀자는 두 번 다시 결혼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과부가 돼도 다시 결혼할 수 없는과부재가금지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결혼 후 얼마 살지 못하고 남편이 죽어도 평생 시집살이하며 혼자 살아야 하는 여자, 결혼을 약속한 후 남자가 죽어도 이미 결혼한 것으로 여겨져 다시 결혼을 못하는 여자들이 생겼다. 세월이 가면서 여기저기서 청상과부들의 한이 쌓여 산을 이뤘고, 그 기운이 황 정승 집안을 덮쳤다. 청상과부의 한 때문에 황 정승 자손들은 이후 제대로 벼슬을 하지 못했다.

 

필자의 성은 황 씨, 본은 장수다.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방촌 황희 선생은 필자의 선조다. 이 얘기는 필자가 어렸을 때 친할머니에게서 들은 황희 선생의 일화다. 과부재가금지법 전면 시행은 성종 때였고 그 전에는 일부만 시행되거나 논의만 됐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바 있어 내용의 사실 여부를 따지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이 얘기를 길게 한 이유가 있다. 공감을 말하기 위해서다.

 

공감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해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이다. 여기서자기는 누구일까. 나일 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다. ㄱ이라는 사람과 ㄴ이라는 사람이 있을 때 ㄱ이 읽어도자기고 ㄴ이 읽어도자기. 말하자면 공감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내가 남의 말에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일 수도 있고, 남이 내 말이나 감정에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일 수도 있다.

 

 

다시 황희 정승 얘기로 돌아가 보자. 황 정승은 가마를 타고 가다가 서러운 울음소리를 듣고 아낙에게 갔다. 황 정승은 백성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받아들일 줄 아는 성품이었다. 그러니 아낙이 서럽게 우는 소리를 듣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지려는 리더의 마음이었을 것이니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황 정승은 아낙의 서러운 감정과 태도에 공감하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과부재가금지법 시행을 임금에게 요청했다. 이때의 공감은 남편을 죽인 아낙의 상황을 황 정승이 공감한 것일 뿐이다.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될 여성들과는 어떤 공감도 없었다. 남자인 사대부가 법안을 내놓으면서 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여자들과 어떤 공감도 없었다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당연히 충분하다. 역사에서는 그것을 청상과부의 한이라는 단어로 보여준다. 공감은 했지만 잘못된 방향과 방법으로 엉뚱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꼴이다.

 

, 그렇다면 진정한 공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공감의 방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대상 중 하나로를 꼽을 수 있다. 시인이 아무리 재주를 발휘해 자신만의 개성과 상상력을 녹여 썼더라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와 닿지 않는 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 황 정승이 비극적인 일이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공감을 동원했지만 결과적으로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낸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시인은 애써 지은 시가 독백으로 끝나지 않도록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장치를 동원한다. 이제부터 황 정승의 사례를 토대로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감 5계명을 소개한다.

 

진정성이 있는 정()을 활용하라

황 정승처럼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정()이라고 한다. 정은 사전적 의미로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이지만 시학으로 풀이하면남의 감정을 내 감정과 일체화해 함께 느끼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정다감(多情多感), 다정다한(多情多恨)이라는 말이 있다. 정이 많아 느낌이나 생각이 많고, 정이 많아 한이 많다는 뜻이다. 왜 정이 많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한이 많아지는가. 정이 너와 나를 일체화하는 일원론적 의식구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아픔이나 고통이 얼마나 많으면 그렇게 보내는 힘든 시간들이 오히려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역발상적 깨달음이 명언으로 제시될까. 그런데 정이 많으면 자신의 삶에 등장하는 아픔, 고난, 고통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존재하는 아픔, 고난, 고통까지 모두 자신의 상황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만큼 아픔이나 슬픔, 서러움이 많아지고 가슴에 맺히는 게 늘어난다. 이때의 맺힘이 한()으로 쌓인다. 다정(多情)이 다한(多恨)으로 쌓이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 국민 모두가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자신과 무관한 일인데도 트라우마까지 겪는 이유 역시 그것을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내 아픔으로, 내 고통으로, 내 두려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일을 겪지 않은 사람까지도 함께 울고 땅을 친다. 울음과 상처의 배경에 정()이라는 속성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은 공감의 기본 요소다. 정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공감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

 

시인은 시를 쓸 때 시적 대상의 상황과 하나가 되는 일체화 방법을 동원한다. 일체화는 시인의 마음에 있는 정이라는 감정이 활발하게 작용한 결과다. 시인에게 정이 없다면 시적 대상이 처한 상황에서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시 자체를 쓸 수 없다.

 

울음이 타는 가을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나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처음 보겠네

 

김소월 시인의 계보를 잇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서정시인 박재삼 시인의 시다. 이 시를 보면 시인은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맨 처음 시구에마음도 한자리에 못 앉아 있는 마음이 바로 그런 상태다. 이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인은 산등성이에 오른다. 때는 가을이었고 햇살이 따사로웠다. 시인은 친구와 함께인 것처럼 가을 햇살을 마치 친구처럼 여기며 올라간다. 그러면서 친구가 얘기해 준 실패한 첫사랑, 그래서 정말 서럽기 짝이 없는 그런 사랑 이야기를 생각한다.

 

주목할 점은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떠오른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따라가면이라는 시구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의 마음을 첫사랑에 실패하고 서러워하는 친구의 마음속으로 적극 대입해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시인은 그 친구의 서러움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느꼈고 등성이에 올랐을 때는 서러움이 넘쳐 급기야 눈물이 흐르고 만다.

 

시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히 일체화 마음, 즉 정 때문이다. 친구의 사랑 이야기가 곧 내 사랑 이야기로 변하면서 서러움을 고스란히 느끼니내가 왜 친구 일에 이처럼 슬퍼하는가하는 이성적 감정은 들어올 틈이 없다. 정은 어떤 이해타산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마음이다. 그리고 정이 있는 사람은 공감을 잘한다.

 

요즘은 정을 죽이며 사는 시대다. 타인이 처한 상황을 내가 그대로 받아들여 행동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강하다. 여성이 길에서 남성에게 공격을 당해도 정이 발동해 여성을 보호하거나 옹호하지 않고나 몰라라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내 식구, 내 자식만 챙기는 일이 아무렇지 않고 기업에서는 냉정이 생명이라며 정을 활용가치 없는 정서로 인식한다.

 

하지만 정에서 출발하는 공감능력이 발달하면 어떤 이익이나 거래적 개념 없이 순수한 마음에서 행동이 유발되기 때문에 진정성이 확보된다. 따라서 내 행동을 타인이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또 타인의 행동을 내가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구성원과 구성원 간에, 리더와 구성원 간에 마음속 교감이 이뤄져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지고 하나의 성과를 위해 최대한의 단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 , 그리고 여기에서 출발한 공감이 조직원의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창의적인 시적 논리를 동원하라

모든 글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fact)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주관적 사실이든, 객관적 사실이든 드러난 사실이 없으면 글을 전개할 수 없다. 산문의 대표 장르인 소설도 그렇다. 예를 들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은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불면

 

박라연

 

누군가의 손짓일 것입니다

독 속의 쌀을 싹싹 긁어 굶주린 허공에게

밥을 지어 먹이자는,

 

세 줄짜리 짧은 시다. 이 시의 출발점은 시인이 불면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다. 불면이라는 사실이 있어서 얼마 남지 않은 쌀독의 쌀을 박박 긁어서허공에게 밥을 지어 먹이자는’ ‘누군가의 손짓을 볼 수 있었다. 불면이 없었다면 시인은누군가의 손짓을 볼 수 없었으니불면이라는 내용의 시는 전개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글에는 모름지기 논리가 필요하다. ‘글을 왜 쓰는가’ ‘목적이 무엇인가에 해당하는 것이 논리다. 주장에 논리가 없으면 타인의 이해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

 

시는 어떨까? 시는 감성의 소산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에 논리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시적 논리. 시도 글이므로 시인의 시적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시가 완성된다. 더불어 시적 논리가 있어야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다만 산문의 논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윤문인 시는 공감을 강제하지 않는다. 어떤 사실을 주장할 때 반드시 규범이나 윤리, 도덕, 상식에 근거해 논리를 갖출 필요가 없다. 박라연 시인의불면이라는 시만 해도 그렇다. 시인은 자신이 불면인 이유가누군가의 손짓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산문이라면 불면을 정신적 흥분이나 불안에 해당하는 어떤 사건이나 일로 그 까닭을 설명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는 누가 내게 손짓을 하기 때문이라는 상상적 논리를 불면의 이유로 제시해도 된다. 불면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했지만 논리 전개의 토대가 사회적 강제성에서 벗어나 자유롭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렇구나하며 공감한다.

 

이것은 시적 창조성에 대한 공감이다. 시인의 자유로운 사고에 대한 공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전체적인 공감의 폭이 넓어진다.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을 넘어선 행동이나 사고에 대해서도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방법이라는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고 함께 공감하는 사람을 늘릴 수 있다. 이것은 시에서만 볼 수 있는 시적 논리에 의한 공감의 방법이다. 이런 공감은 우리 사회를, 기업을 창의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관행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발상을 가능하게 한다.

 

직급은 사장이라서 사장 자리에 앉았는데 의식공간이 사장 자리에 있지 않고 부장이나 과장 자리에 있다면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은 구성원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자리에 맞는 의식이 공감을 이끈다

‘가곡’이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에는 ㄱ이 세 개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ㄱ이 표기상으로는 같지만 음성학적으로 볼 때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른 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어두의 ㄱ은 성대가 울리지 않는 무성음[k]이다. 어중의 ㄱ은 성대가 울리는 유성음[g]이며 어말 받침 ㄱ은 숨이 풀리지 않은 채 끝나는 내파음(불파음)[k]이다. ㄱ이라는 생김새는 같지만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가 난다. 환경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다른 소리를 내는 게 세상의 이치다. ㄱ이라는 자모만이 아니다. 단어도 그렇다. 어느 위치에 놓이느냐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달라진다.

 

뜻밖에

 

박제영

 

젊은 날엔 시를 쓰기 위해 사전을 뒤져야 했다

몇 번의 실직과 몇 번의 실연이 지나갔다

시는 뜻밖에 뜻, 밖에 있었다

 

이 시는 시인이 세상을 살면서 몇 번의 고난을 겪어보니 그제야 세상이 보이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젊었을 때 시인은 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뒤졌다. 시도 문장을 이뤄야 하기 때문에 단어가 부족하면 좋은 시적 문장이 나올 수 없다.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시인은 사전을 뒤져가며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의미에 부합하는 단어를 찾아 시적 문장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몇 번의 실직, 실연을 겪는 고통의 시기를 보내고 나니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 단어를 다루는 능력도 달라졌다. ‘뜻밖에, 밖에로 바꿀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뜻밖에생각이나 기대 또는 예상과 달리라는 의미다. 그런데, 밖에로 뜻 다음에 쉼표를 하나 넣으니이 리더가 되고바깥은 그 뒤를 따르는 꼴이 됐다. ‘무엇을 하겠다고 속으로 먹는 마음의 바깥이라는 의미다. 쉼표 하나로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이 두 단어는’, 그리고라는 단어의 연결로 단어의 모양과 본질은 같다. 그런데 뜻이 달라졌다. 단어가 어느 곳에 자리 잡느냐에 따라 기능과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느 곳에 자리 잡느냐에 따라 할 일과 의미, 그리고 역할이 달라진다. 사람의 자리는 보이는 자리와 보이지 않는 자리가 있다. 보이는 자리는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 부장, 과장 등 직장에서 주어지는 직급에 의한 자리다. 과장에서 부장이 되면 자리가 달라진다. 전무에서 부사장, 사장이 되면 또 자리가 달라진다.

 

자리는 의식을 동반한다. 어떤 사람이 사장 자리에 앉으면 사장의 의식을 갖게 된다. 과장이 되면 과장 의식을 갖게 된다. 대리나 사원도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 맞는 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자리는 의식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자리가 의식의 공간을 의미할 때 그 자리는 보이지 않는 자리가 된다. 그러니까 사장 자리에는 보이는, 사장의 의자가 놓인 자리가 있고 사장이라는 의식이 존재하는 공간으로서의 보이지 않는 자리가 있다는 말이다. 의식은 인식 작용이다. 무엇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정신은 있다가도 없고, 빠졌다가 다시 차기도 한다. ‘정신 있다, 정신없다, 정신 차리다, 정신 빠졌다등의 말이 이것을 보여준다.

 

정신이 사장의 의식공간에 있으면 그 사람은 모든 말과 행동을 사장에 맞게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과장이라는 의식공간에 있으면 과장 자리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정신 차린다는 말은 자신의 의식공간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하게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직급은 사장이라서 사장 자리에 앉았는데 의식공간이 사장 자리에 있지 않고 부장이나 과장 자리에 있다면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은 구성원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부장이나 과장은 사장을 자신의 역할을 침범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사장은 사장으로서의 힘을 잃는다.

 

세상 모든 것은 자기 자리에 맞는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을 책임지고 충실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서로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사장이 사장 자리에서 사장의 의식공간에 자신을 몰입시키고 부하 직원은 직원에 맞는 자리에서 의식공간에 맞는 책임과 권한을 주고 몰입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조직 사회에서 공감을 얻는 방법이다.

 

공감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멈출 수 없지

 

박노해

 

빨리 빨리

바삐 아침을 지어 먹고

만원버스 따라 뛰며

종종종 바쁘게 걸어

후다닥 작업복 갈아입고

쓰왜앵-

열나게 하루를 돈다

 

3

 

박노해

 

물건을 살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 것 단단한 것 단아한 것

 

일을 할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사람을 볼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가 단단한가 단아한가

 

두 편 다 술술 읽히기는 하지만 시의 형태도 내용도 전혀 다른 시다. 그런데멈출 수 없지 1984 <노동의 새벽>에 나온 시의 일부이고, ‘3 2010년 출간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실린 시다. 놀랍게도 두 시는 모두 박노해 시인의 시다. 한 사람의 시인데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굳이 문학사까지 들추지 않더라도 시() 창작 경향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낭만파, 카프파, 순수시파, 주지시파, 생명파, 청록파 등 시인들의 창작 추구 목적에 따른 유파가 그것을 증명한다. 더불어 전통시, 민족시, 실존주의시, 전쟁시, 참여저항시, 노동시 등 내용이나 형태적 측면의 분류도 존재한다.

 

왜 이렇게 ‘∼ ‘∼로 구분되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시 창작 추구 목적이나 내용, 혹은 시 형태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기존의 시적 경향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시간이나 시대가 정해져 있다. 마냥 자유분방할 것만 같은 시에도 창작기법이나 추구 경향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이다.

 

유효기간을 지나쳤는데도 기존과 같은 경향의 시를 쓰면 시인들은 그런 시를 관념에 빠졌다고 평가한다. 유효기간이 지났는데도 과거와 같은 시 형태나 내용을 담으면 독자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 1980년대와 2010년대는 다르다. 읽는 독자가 다르고 독자의 성향이 다르다. 따라서 시인은 독자를 공감시킬 수 있는 형태와 내용으로 깨달음을 줘야 한다. 시에도 유효기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박노해 시인은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수명이 곧 삶의 유효기간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 모든 존재물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좀 빠르거나 느릴 뿐이다. 이 유효기간을 잘 활용해야 공감이 이뤄진다. 필자 주변에서 있었던 일이다. 남자 A 씨와 그의 아내 B 씨는 6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맞벌이 부부인 이들의 시작은 행복했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아이도 태어났다. 약간의 의견 차가 있기는 했지만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 여자는 결혼생활을 힘들어했다. 일하고, 아이 키우고, 집안 살림까지 해가며 육체적 피곤이 쌓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섭섭함이 쌓여갔다. 남자도 회사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늘 긴장해야 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다. 아내가 위로해줬으면 했다. 하지만 아내에게서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남자와 여자는 데면데면한 생활을 이어갔다. 이들 부부의 대화는 아이와 관련된 내용이 전부였다. 엄마 또는 아빠로서의 역할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기를 20.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결국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아이는 성장해 대학생이 됐고 부모의 곁을 떠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두 사람을 연결하던 엄마, 아빠라는 역할의 중요성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남자도 여자도 서로 아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여자가 집을 얻어 나가자 남자는 그동안의 삶을 떠올렸다. 성실하게 집을 지켜준 여자였다.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남자는 그제야 대화를 시도했다. 여자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여자는기다림의 유효기간이 끝났다고만 했다.

 

공감이 가능한 시간은 정해져 있다. 시간이 흐르고 유효기간을 넘기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만다.

 

공감능력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족이든, 회사 구성원이든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모여서 공동으로 시를 써보면 좋다.

 

공동 시 창작 습관화로 공감능력을 키워라

공감능력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족이든, 회사 구성원이든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모여서 공동으로 시를 써보면 좋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리더가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앞의 문장에 이어질 수 있는 문장을 쓴다. 다음 사람이 그 다음을 잇는다. 순서대로 이어서 하나의 시를 만든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장이나는 회사에서 행복하다는 문장을 썼다고 하자. 사장의 문장에 이어서 직급에 따라 문장을 만든다.

 

나는 회사에서 행복하다’(사장)

 

나의 감정을 리더가 존중할 때’(이사)

 

사장과 이사가 내 말을 관심 있게 들을 때’(부장)

 

윗사람이 내 말에 긍정적 반응을 보일 때’(과장)

 

실수를 해도 위로하고 격려해줄 때’(사원)

 

이런 방식의 공동으로 시 쓰기는 조직 구성원들이 회사 생활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직접 말하게 할 수 있다. 나아가 가장 먼저 나온 문장인회사에서의 행복을 어떤 방법으로 언제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스스로를 동물로 바꿔 지금 어떤 느낌인지 말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나는 지금 기린처럼 느껴진다또는나는 지금 원숭이처럼 느껴진다고 적는 것이다. 문장이 완성되면 이 동물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살펴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거나 고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극복 방법은 마지막 행에라면 좋겠다로 끝나는 시를 만드는 것이다. 또는나는 늘 하곤 했지만, 그러나 지금 나는 처럼 되고 싶다처럼 앞뒤 구절이 상반되는 문장을 반복해서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면 현재 상황과 극복해야 할 상황을 동시에 적어서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향후 방향까지 표현할 수 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사원과 같은 팀 부장이 서로의 행동에 공감하지 못하고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회의 시간에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기도 꺼려하는 사이였다. 이들에게 각각 상대를 대상으로 상반되는 문장을 적어보도록 유도했다.

 

사원: 부장은 항상 나의 어떤 점을 트집 잡을지 고민하는 얼굴을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부장 얼굴만 보면 화가 나요. 그러나 지금은 내 행동을 자제하고 있고 왜 이러는 것일까를 생각하고 있어요.

 

부장: 신세대라지만 내가 조언하면 반응이 냉소적이에요. 그래서 나는 저 친구의 반응에 늘 당황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이해하려고 하고 있지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기법은 말이 아닌 단어나 문장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서 서로의 반응에 대한 공감능력을 높이는 통로가 된다. 이로 인해 불통이 소통으로 이어지고 조직 내 치유가 가능해진다. 더불어 구성원의 의사소통을 활성화하고 상대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 회사나 가정 안에서 이런 방법을 습관화하면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통의 원인을 찾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공감을 키울 수 있을지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황인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moonk0306@naver.com

필자는 성균관대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경향신문> 기자와 경기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및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시 전공자와 경영학자가 함께 만나 창조 시대를 이끄는 문학경영학회를 만드는 게 꿈이다. 저서로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시 한 줄에서 통찰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감성의 끝에 서라(공저)> 등이 있다.

 

  • 황인원 | - (현)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및 원장
    - (전) 중앙일보/경향신문 기자
    - (전) 경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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