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 김대진 피아니스트

"모든 학생은 생긴 대로 친다, 창의적 혁신의 불꽃을 태우게 붙잡아줘야 한다"

신동엽 | 147호 (2014년 2월 Issue 2)

 

 

편집자주

모두가창조를 말하는 시대지만 정작 정확한 개념 정의도, 진정한 의미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성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연구해 온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여러 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각종 인터뷰와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21세기 시대정신,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자발적 열정, 창조성의 불완전한 원천

 

조직행동론의 거장 디시(Edward Deci)나 해크먼(Richard Hackman) 교수는 어떤 행동을 열심히 하도록 만드는 동기부여의 원천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그 행동 자체를 좋아해서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경우로 동기부여의 궁극적 원천이 그 행동 내부에 있다는 뜻에서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라고 부른다. 둘째는 행동 자체를 좋아하기보다는 그 행동에서 높은 성과를 창출할 때 기대되는 보상을 좋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다. 동기부여의 궁극적 원천이 행동이 아닌 외부의 보상에 있다고 해서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라고 부른다.

 

디시 교수나 해크먼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행동의 동기부여는 이 두 가지로 구성돼 있으며 각 조직의 동기부여 전략은 이 두 가지 동기 유형 사이의 상대적 비중에 따라 달라진다.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서 한두 가지 나사만 조이는 단순한 동작을 몇 십 초에 한 번씩 종일 반복하는 포디즘 대량생산 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경우 내재적 동기는 거의 전무하며 생산량에 비례해 지급되는 성과급이 동기부여의 핵심이므로 거의 100% 외재적 동기부여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대량생산 시스템의 단순반복작업에서 초래되는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각 직무에 다양한 과업들과 권한, 책임들을 포함시켜 재설계한 직무충실화(job enrichment)는 내재적 동기부여를 높이기 위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과 같은 창조적 행동의 동기부여는 어디에서 올까? 창조성 연구의 거장 아마빌(Theresa Amabile) 교수는 창조성은 압도적으로 내재적 동기부여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외재적 동기에 의한 행동은 본질적으로 보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빨리 원하는 보상을 쟁취하려는 효율성의 원칙이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즉 가장 효율적인 행동루틴을 파악하면 그 행동만 반복할 뿐 새로운 시도를 할 이유가 없다. 이에 비해 내재적 동기에 의한 행동은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행동을 더 잘하고, 폭을 넓히며, 깊이를 더하기 위한 다양한 새로운 시도들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이는 곧 창조성으로 연결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흔히 듣는가난한 예술가라든지예술 그 자체를 위한 예술(arts for arts’ sake)’ 등의 표현은 바로 창조성이 핵심인 예술 행위에서 내재적 동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재적 동기에 기반한 자발적 열정이 창조성을 낳는 것은 사실이나 문제는 자발적 열정이 항상 같은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열정과 영감이 샘솟다가 이유 없이 갑자기 침체에 빠져 의욕을 상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다. , 내재적 동기와 자발적 열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 믿고 창조성을 추구하기에는 너무 불안정하고 부침이 잦다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형성된 현대 산업조직의 초기 선구자들인 테일러(Frederic Taylor)나 포드(Henry Ford)는 아예 불안정하고 부침이 많은 내재적 동기부여에 의존하는 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들은 차라리 모든 구성원들을 치밀하게 미리 설계된 프로세스와 규칙, 절차에 따라 정해진 대로 기계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대량생산 관료제조직이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계론적인 피라미드형 현대 조직들은 효율성과 신뢰성에서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창출했으나 개별 구성원들의 창조성을 극도로 억압하고 획일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치명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20세기 대량생산 조직의 비창조성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 제시되고 있는 21세기 창조경영형 조직모형들은 개인의 자율성과 내재적 동기, 자발적 노력 등을 강조함으로써 창조적 혁신의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대가로 효율성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창조성과 효율성/신뢰성 간 딜레마를 극복할 근본적 해법은 없는 것일까?

 

투철한 사명감이 자발적 열정의 부침을 해결할 열쇠

 

필자가 동료 학자들과 함께 <창조성의 원천> 책을 집필하기 위해 20여 명의 세계적 예술가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이 창조성과 효율성/신뢰성 간 딜레마의 해결책을 찾아봤다.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투철한 사명감이었다. 일반적으로 동기부여의 원천은 어떤 행동에 대한 자발적인 열정이나 도구적인 이익 추구,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명감, 소명의식, 책임감 등 규범적이고 철학적이며 어떻게 보면 가장 심오한 제3의 동기부여 원천을 간과하는 수가 많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이 이유 없이 사라지고, 특별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으며, 다른 누가 외부에서 강제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한 발자국도 떼기 힘든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그 일에 완전히 치열하게 몰입해 끊임없이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게 만드는 힘은 바로 그 일에 대한 소명의식, 즉 사명감이다. 따라서 내재적 동기에 기반한 자발적 열정이 일시적으로 식을 때에도 투철한 사명감이 작동하면 지속적인 몰입을 만들어갈 수 있다. 즉 좌절해 주저앉아 버리지 않고 다시 한번 창조적 혁신의 불꽃을 태울 수 있도록 붙들어 주는 강력한 닻의 역할을 해준다.

 

필자가 <창조성의 원천> 집필 과정에서 인터뷰한 20여 명의 세계적 예술가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예술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음악과 예술에 대한 사명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세계 200대 피아니스트로 선정될 정도로 정상급 피아니스트인 김대진은 교육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단연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그가 가르친 김선욱, 손열음, 문지영 등 순수 국내파 제자들이 세계 최고의 피아노 콩쿠르인 리즈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에틀링겐 콩쿠르 등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김대진은클래식계의 멀티맨’ ‘건반 위의 진화론자’ ‘욕심 많은 팔방미인으로 불린다. 피아니스트, 교육자, 세계 각종 콩쿠르의 심사위원, 실내악 리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등 한 명의 개인이 소화한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역할을 열정적으로 소화해 내고 있는 김대진의 지칠 줄 모르는 예술 창조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토록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김대진에게 그중에서도 자기의 가장 중요한 역할과 소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한마디로 요약한다. “나는 선생이다.” (조선일보 탑클래스 2009 8월 호) 김대진이 본인을 규정하는선생이라는 단어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육성하는 교육자로서의 역할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창작자와 매개자, 소비자 모두가 성숙한 클래식 문화를 만들고 즐기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기 위한 개척자와 길잡이의 역할까지 포함하는,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사명감을 뜻한다. 그랜드피아노 두 대가 나란히 놓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클래식 음악계의 위대한선생김대진을 만났다.

  

 

예술 창조성의 원천: “선천선과 후천성 사이의 고민

 

김대진이 자신의 역할 중 가장 좋아하는 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는 가르치는 일에 대한 흥미는 대학교 1∼2학년 무렵 어린 학생들 개인지도를 맡을 때부터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당시에도 가르치는 일이 편했고 학생들도 잘 따랐다. 그래서 매우 자연스럽게 연주를 가르치는 일을 접했다. 박사 졸업 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길에 들어섰다. 서울대 재학 시절 은사인 오정주 선생의 영향으로 김대진은 1993년과 1994년 서울대 임용에 응했으나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았다. 1994년 서울대 임용을 위해 한국에 잠시 들어온 김대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인 이강숙 선생에 의해 음악원 교수로 영입된다. 1995년부터 기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2012 9월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영재교육원장 직도 겸하고 있다.

 

1) “철저한 자기 관리와 연주자로서 홀로서기를 가르친다

 

김대진은 자신의 스승들이 본인을 가르쳤던 방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기본을 바로 잡아줌으로써 모든 학교 과정이 끝났을 때 연주자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궁극적으로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대진이 처음 피아노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몸이 아파 학교에 가지 못했던 어느 날, 집에 있던 피아노를 재미 삼아 쳐봤고 이때 외할머니께서 찬송가 멜로디를 가르쳐주셨던 것이 연주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이후 김대진이 성장해 홀로서기를 할 때까지 영향을 준 선생님은 총 세 사람이다. 어린 시절의 은사인 서울대 이선균 교수, 서울대 재학 시절 사사한 오정주 교수, 줄리어드의 마틴 캐닌 교수다. 김대진은 그들이 모두 학구파에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원칙을 가르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저도 선생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좋은 선생이란 학생이 학교도 졸업하고 레슨을 받을 나이가 지났을 때 스스로 배워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런 방향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려고 합니다. 기본적인 원리(principle)를 배운 학생들은 혼자서 얼마든지 자기가 공부를 해나가고, 새 것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죠. (따라서) 곡 레슨을 할 때에도, 가르치는 곡의 특정한 부분의 원리를 설명을 하면서 그것을 일반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면 그걸 알고 있는 아이들은 혼자 공부를 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바로크 시대의 곡을 가르칠 때 이 시대 곡들의 장식음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고 어떤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면 나중에는 다른 곡들에도 응용해서 혼자서 공부를 해나갈 수 있어요. 여기서 장식음을 이렇게 치는 것을 배웠는데 다른 장식음은 연관이 안 되는 거면 문제가 되죠.”

 

2) “생긴 대로 친다. 곡이 아닌 사람을 가르치자

 

김대진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교육관은생긴 대로 친다는 것이다. 느긋한 사람에게서는 느긋한 음악이 나오고 무대에서 연주가 빨라지는 사람은 평소에 말할 때나 걸을 때에도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 말수가 적고 말소리도 작은 소심한 아이는 무대에서 많이 떤다. 분주하고 부산스럽게 연주하는 학생은 레슨실에 물건을 두고 간다든지 물건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김대진은이 아니라사람을 가르치고자 한다. “이 부분을 빠르게 치지 말아라라고 가르치면 그 곡의 그 부분에서는 신경 써서 칠지 몰라도 다른 곡을 칠 때는 또다시 빨라진다. 김대진은 학생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인정하고, 고치도록 노력을 기울이도록 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사람을 바꾸고자 한다. 걸음걸이나 말소리, 그리고 연주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행동이기 때문에 이런 점들을 고치도록 의식의 세계에서 깨우쳐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탑클래스 2009 8월 호)

 

연주로 두각을 나타내는 제자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가르쳐생긴 대로 치는습관이나 문제점을 바로잡은 경우였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대학생 시절까지 성장을 지켜보면서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레슨을 시작할수록 교수가 빚는 대로 바뀔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특히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기악의 경우에는 분명 영재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악기를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친숙하게 느끼며 갖고 놀 수 있을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 나이에 재능을 발견하고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3) 선천성의 중요성에 눈을 뜨다. “자기관리/노력과의 결합이 필수

 

 

오랜 시간 음악 영재들을 가르쳐 온 김대진은 분명히 선천적 재능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창조적 예술가로 자라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얘기한다. 손의 유연성, 악보를 외우는 암기력뿐만 아니라 건반을 눌렀을 때 만들어내는 소리 등도 선천성의 영역이라고 믿는다. 실기 지도를 하다 보면 소리가 너무 탁하고 날카롭고 건조한 학생이 있는 반면 기술적인 면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소리 자체가 아름다운 학생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천성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관리와 노력도 중요하다. 김대진은 어려서부터 자기 통제에 아주 능했다. 모든 일을 그날 정해놓은 분량대로 소화하지 않으면 연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떠올리면 자유분방하고 매우 즉흥적인 모습을 연상하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예술가들은 의외로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성실한 경우가 많다. 물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들도 있다. 김대진은 선천적 재능과 노력의 비율은 개인별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90%의 노력과 10%의 재능으로 훌륭한 연주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90%의 재능과 10%의 노력으로 이뤄진 예술가도 있다는 것이다. ,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 및 자기 통제, 환경 등의 요인이 잘 맞아떨어져야 좋은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에신동소리를 들으며 세계 예술계에 데뷔했던 예술가들이 종종 성장하면서 명성을 잃거나 어디론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주와 개성 있는 창조적 연주는 다르다: “예술 창조성의 양면성을 극복하라.”

 

1) 콩쿠르 열풍의 허와 실

 

최근 몇 년간 김대진은 리즈 콩쿠르를 비롯해 세계 각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지 20여 년을 바라보고 있는 베테랑 교육자 김대진을 혼란에 빠뜨린 것도 콩쿠르에서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가르치던 방식을 반추해 보면 무엇보다도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객관적인 연주의 기준과 주관적인 개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도록 도울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예술적 표현은 기본적으로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전제한다. , 어떠한 객관적이고 일률적인 기준에 의하여 예술이 이해되거나 의미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의 주관적 세계와 창작자의 주관적 세계 사이에서 예술적 표현의 의미가 형성되는 것이다. 김대진 역시 연주자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은 연주하는 사람도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연주하고, 듣는 사람 역시 자신의 주관으로 듣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콩쿠르의 경우 마치 예술에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처럼 참가자들에게 순위를 부여하는 인정 체계다. 김대진의 경우, 학생들을 콩쿠르에 내보내는 입장에 있다가 심사위원으로서 순위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을 직접 보면서 콩쿠르의 부정적인 면을 보기 시작했다. 특히, 비교할 수 없는예술적 표현이라는 것을 비교하다 보니 순위 결정에 뜻하지 않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외적인 요인이 많이 개입되는 것을 봤다.

 

물론 창조적인 연주자는 기술면에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을 갖춰야 한다. 한국 학생들에게 아쉬운 점이 바로 개성이다. 많은 경우 한국의 학생들은 콩쿠르 무대에서 기계처럼 정확하고 완벽하게 곡을 연주하고 어떤 시간, 어떤 맥락에서 무대에 올라가게 되더라도 준비된 곡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뛰어난 연주력을 가진 반면 상상력이나 독특함, 고유한 색채나 자기만의 주장 등은 부족하다. 김대진은 개성 부족의 원인을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는다. , 한국 사회에서는 의식 세계는 물론 무의식의 세계에서도남들과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발표를 하더라도 혼자만 엉뚱한 의견을 이야기할 수 없고 뭔가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답을 찾는다. 반면 서양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어떻게 남들과 다를지 고민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것을 염려한다. 이런 면이 개성을 죽이고 연주에서도 개인만의 독특함을 계발하지 못하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 탁월한 연주력의 한국 음악도들의 아쉬움: 즐기기와 개성의 결여

 

그는 동양 아이들, 특히 한국 아이들은 연주를 즐기지 못하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목표의식이 있고, 도전적인 면이 강하다. 반면 유럽의 아이들은 테크닉적인 측면에서 훨씬 못해도 무대에 선 순간을 즐기고 음악과 교감하는 것이 느껴진다. 피아노와 대화하는 것이 보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지며 말 그대로 커뮤니케이션이 된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학생들은 커뮤니케이션이라기보다는 피아노를 제압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김대진이 이러한 현상에 대해 내린 결론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가 함께 노는 대상이 아니라 다스리고 통제해서 무조건 잘해야만 하는 공포의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축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외국 아이들에게 축구공은 즐겁게 어릴 적부터 함께 노는 대상이지만 한국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실수하면 선생님에게 혼나기 때문에 늘 두렵고, 항상 잘 다뤄야만 한다. 피아노 역시 어릴 적부터 늘잘할 것을 요구받기 때문에 피아노를 대할 때 몸이 굳고, 표정이 없어지고, 즐기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콩쿠르 무대에서 보면 성격이 없고, 표현이 없고, 틀리지 않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돼 버린 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김대진은 리즈 콩쿠르 심사를 계기로 자신의 교육 방식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콩쿠르에서 봤던 한국 학생의 예를 들며 한국의 주류(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서 다른 구조와 환경에서 공부하는 경우 개성과 독특함을 갖출 수 있다는 증거를 그 학생의 연주에서 봤다고 반색했다.

 

“이전까지 콩쿠르에서 잘하고 있다고 이름만 많이 들었던 학생이었는데 그 아이의 무대를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 학생이 나와서 치는데, 달라요. 정말 달라요.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심사결과가 나온 뒤, 다가가서 얘기를 해보니 예원은 당연히 안 갔고 일반 중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예고에 붙어서 입학식만 하고 그 다음날 유학을 갔대요. 우리나라에서 하던 정석 코스, 메인스트림을 안 거치고 간 아이였어요. 그러니까 (연주 스타일이) 달라요. 분명히 달라요. 그 아이가 선택한 코스에서는 가르치는 방식이 달랐을 것이고, 공부하고 친구들과 커갔던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개성이 있는 연주가 가능할 수 있었던 거죠. 콩쿠르에서 만난 그 친구를 보니 일반적인 아이들도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느냐에 따라서 개성과 상상력을 갖추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을 얻었어요.”

 

한국과 동양 학생들이 흠 없는 연주력과 기량에 비해 상상력과 개성이 부족하다면 서양의 학생들은 반대로 일관된 연주력이나 객관적인 기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시간 예술인 클래식 음악 공연의 특성상 언제든 무대에 올라가 훌륭한 연주를 선보일 수 있는 연주력을 갖출 필요가 있는데 이 점은 서양 학생들보다 동양 학생들이 뛰어나고, 특히 한국 학생들이 독보적이다. 아무리 상상력과 개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언제 어떤 무대에서든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일관성 같은 것이 없다면 좋은 연주자가 되기에 어려움이 있다. 또한 개인별 개성이 너무 강하다 보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선까지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김대진이 해외 마스터클래스 등에서 외국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흔히 그릇 비유를 자주 쓴다. 음식을 만들 때, 기가 막힌 맛을 내는 요리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음식 맛을 제대로 내게 해 줄 수 있는 접시를 만드는 것도 요리의 하나라는 것이다. 따라서 객관성의 틀 없이는 연주를 통해 개인의 주장, 개성, 상상력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서양 학생들의 경우에는 창조적 재창작자로서의 연주자 자신의 주관적인 틀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정통성이라든지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곡가의 의도나 절대적 가치보다는 자기 생각이나 느낌이 앞서가기 때문에 개성보다는 오히려다름쪽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이곤 한다. 그러나 분명단순한 다름개성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예술적 창조성은 기본적으로 기존 스타일이나 형식, 이미 봤던 표현과다를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단순히남과 다름이 예술적 창조성은 아니라는 얘기다. , 현재까지 쌓여 온예술성에 대한 보편 타당한 기준에 부응하고, 현재의 전문가 및 수용자 집단이 의미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으며, 그 표현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집단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한에서 창작자의 개성과 의도가 창조적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개성과 다름 사이, 간주관성의 영역을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범주 내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표현하는 사람을 창조적인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김대진은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서, 늘 자신을 반추해보는 교육자로서, 학생들 개인이 이러한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 예술계가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의 균형을 잃을 때 쓴소리로 일침을 가할 수 있는선생이다.

 

기회가 먼저다: “클래식 예술이 꽃피는 창조적 토양을 위해

 

1) IMF 위기가 우리 클래식 음악 발전의 계기가 되다.

 

김대진은 국내의 클래식 음악계가 이만큼 성장하고 연주자들의 재능이 꽃필 수 있었던 데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공연을 하기로 돼 있었던 외국 연주자들의 내한이 어려워졌고 연주회 자체를 취소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자 국내 연주자들에게 기회가 많이 생겼다. 김대진은 그때가 국내 연주자들에게는 전환점이 됐다고 회상한다. 기회가 생기자 너도나도 새로운 아이템과 형식을 실험해보고 기획 연주도 많이 나왔다. 누군가가 조율하거나 이끌고 나간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새로운 시도들이 생겨나고 서로에게서 자극을 받았다. 만약 외환위기가 아니었다면 해외 공연과 외국 오케스트라 수입 중심의 시장 구조가 깨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국내 클래식 음악계의 발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외환위기를 통한 구조적 충격이 변화를 가져온 측면이 있는가 하면 클래식 음악계가 의식적으로 관객과의 관계를 개발하고 체질을 개선하고자 노력한 점도 클래식 음악계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김대진이 진행해 온 관객 교육 프로그램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클래식의 대중화라고 명명하지만 김대진은대중의 클래식화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클래식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은관객들이 꾸준히 공연장을 찾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1990년대에도 클래식 음악 관객들은 젊은이들이 주를 이뤘는데 2000년대에도 공연장의 청중은 여전히 젊은 층이라는 점은 청중의 수명이 매우 짧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였다. ‘10년 전 그 관객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해 김대진이 내린 결론은 그 관객들은 클래식 음악의 팬이 아니라 개인 연주자를 보러 온 팬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연주자를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클래식의 본질을 이해하고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클래식 청중의 수명이 연장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무엇이 교향곡을 교향곡스럽게 만드나’ ‘소나타형식이란 무엇인가같은 강의들을 함께 곁들이게 됐다.

 

2) 청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결과

 

청중에게 다가가려는 음악계의 노력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김대진은 2008년 한 인터뷰에서예술의 전당 청소년 음악회에서 달라진 수준을 절감한다불과 5∼6년 전에는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 없이 소신 있게 음악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요즘 진행하고 있는 예술의 전당토요음악회에서는 본인이 항상 꿈꾸던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6개월만 해보기로 하고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정말로 많이 오고 제가 원하던, 저만이 아니라 모든 음악 하는 사람들이 원하던 관중들이 거기에 와요. 남자분들이 굉장히 많이 오시고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에요. 토요음악회는 분위기가 굉장히 무겁고 진짜 클래식 음악회 같은 분위기가 나요. 오히려 집중도가 높죠. 나가보면 금방 알지 않습니까? 음악을 들으러 온, 제 연주에 앞서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기 온다고요.”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연주자들의 기회 구조를 늘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주를 듣고 즐기는 청중이 있다면 스타 연주자가 오기 때문에 연주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들으러 가게 되고, 음악을 즐기면서 무대에서 연주하는 사람의 장점과 개성을 만날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연주자들도 경력을 떠나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유럽의 경우에는 시골의 동네 오케스트라 연주회에도 관객이 찾아오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훌륭하지는 않아도 관객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면서 감동받아 박수를 보낸다. 김대진이 생각하는 순수음악의 진짜 청중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2008년 수원시향의 지휘자를 맡은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연예술이 서울에만 집중돼 있는 현상을 완화하고 지방의 오케스트라를 활성화해 클래식 문화가 정착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마음이 수원시향의 지휘자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였다. 문화예술의 중심축이 서울에 있다 보니 지방 오케스트라들이 연고도시에서 관객들을 만나기보다 서울에서 공연을 성황리에 마침으로써 실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경향이 크다. 김대진은 이를 타파해보고 싶었고 백건우나 김선욱 등 유명 솔리스트와의 협연을 통해 그러한 비전을 실천해왔다. 또 해설이 있는 음악회, 찾아가는 음악회 등을 통해서도 관객과 만난다. 그 결과 수원시향은 현재 해마다 열리는 교향악축제에서 관객 수 기준 상위의 악단이 됐다. 2007 14위에서 2009 1, 2010 5, 2011 2, 2012 7위를 기록했다. (동아일보 2012 524일자)

 

3) 기존 경계를 넘어서는 모든 종류의 네트워킹은 예술 창조성의 기폭제

 

김대진은 또한 네트워킹을 통해 한국과 해외의 클래식 음악계를 연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기획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국내 음악계에서 가장 발전이 시급한 부분이 바로 중간 연결을 담당하는 기획사라고 꼬집었다. 국내의 기획사는 모두 수입을 위주로만 운영된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재능이나 실력도 출중하고, 수출할 만한 공연 상품도 충분히 있는데, 구태의연한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수입에만 의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네크워킹은 비단 매개자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교육자들도 해외의 교육자들과의 교류에 힘써 한국의 재능 있는 아이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고, 또 국내에도 국제 콩쿠르 같은 것을 만들어서 일종의장터를 만들어 교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의 힘은 교육에서도 발휘될 수 있다. 특히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다양한 장르 간의 협업을 통한 네트워크의 장점을 향유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예술을 이해하고, 곡의 깊이를 깨닫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피아노를 열심히 치는 것 이외에 세상과 호흡하고 다른 분야의 지식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아까 우리 왜 브람스 화음을 그렇게 치는 영재가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언제까지 영재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고, 어느 순간이 되면 시간 차이가 있을 뿐 그걸 깨닫게 되겠죠. 브람스라는 게 무엇인지 자기만의 생각도 생기고. 그러면 그것을 자기화 해야 하는 데 피아노만 치면 그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여러 가지 교양 과목이나 공부를 통해서, 물론 그 공부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세상을 읽어낼 수 있고 외적인 것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죠.”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종합대학에 비해 교양과목 강좌 수가 훨씬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진 교수는 오히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만 가능한, 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바로 예술 장르 간의 협동이다. 장르 간의 다름을 인식하는 범위 내에서 함께 어울리면서 작품을 통해 서로가 예술 세계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선의의 교류활동이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의 예술적 창조성을 키우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한번 협동작품을 봤는데 괜찮더라고요. 어떤 아이가 작곡을 하고, 작곡한 것을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고, 거기에 맞춰서 발레를 하고, 미술하는 애들은 그것을 설치 미술로 만들고, 영상 하는 아이들은 조명을 하고. 이런 합작품이 아주 가끔 나와요. 더 해야 하는데, 가끔 한두 작품 나올 때 보면 제법 근사하고 제 나이에도 감동을 받아요. 아이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많이 바뀐 거예요. 옛날에는 그게 필요한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최근에 그런 거 보고 나니 굉장히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나는 끝없이 고민하고 회의한다: “음악에 대한 사명감과 헌신

 

1) 자신의 교육법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회의

 

출중한 제자들을 양성한전설적인 선생님인 김대진이지만 그도 자신의 교육법을 되돌아보며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꾀한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좋을지, 어떻게 하면 학생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한국의 클래식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좋아졌고, 정보도 많아지고, 접근성도 좋아졌기 때문에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기본 실력이 예전에 비해 매우 좋아졌다.

 

이미 상당한 실력을 갖춘 학생들에게 무엇을 더 해줘야 하는지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간적으로 더 가깝게 다가가게 됐다. 이야기를 통해서 보태줘야 할 점을 찾고 개선해야 할 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믿게 된 계기는 또 있었다. 학생에게 가르침을 줄 때 그 말이 진정으로 와 닿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 사건이 있었다.

 

“대학교 때 만난 학생이 있었는데 하여간 페달을 잘 못 쓰고, 굉장히 지저분하게 쓰는 아이였어요. 그건 어디 가든지 문제가 될 것이 뻔하죠. 그래서 실기 시험 못 봐도 상관없고 콩쿠르도 됐고 페달만 고치자고 했죠. 거의 정말 4년을 씨름했어요. 졸업 연주 앞두고 레슨을 하는데 다 고쳐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학생마다 큰일이 있는 경우 남겨두는 일기 같은 파일에 이걸 기록하고서는역시 나는 가르치는 것에 소질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다음날 졸업 연주에서 보니 옛날보다 더 나빠졌어요. 그래서 그날 또 그 파일에 썼죠. ‘가르치는 것을 그만 둬야겠다.’ 그리고 나서 학생이 유학을 갔어요. 얼마 있다가 편지를 보내왔는데 제가 그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내용이미국 어느 주에 와서 어떤 선생님을 만나서 잘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깨달음이 있다면 제 페달이 지저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였어요. 제가 페달을 고쳐주려고 한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고 제가 이미 4년간 다 했던 이야기잖아요. 그 이후로는 진정으로 소통이 안 되면 이럴 수가 있다는 걸 알았죠.”

 

스스로 좋은 연주자에서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김대진은 곡 하나를 잘 치는 학생을 기르기보다 곡과 그 배경을 이해해 다른 유사 작품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자 했다. 그리고 배움의 시간이 끝났을 때 진정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제자들을 교육해왔다. 그리하여 김선욱과 손열음 등 제자들이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선생의 범주 안에서 김대진이 가장 좋아하는 역할은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선천성과 후천성이 잘 조화를 이루도록 길을 안내해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김대진은 너무나도 다양한, 그리고 음악계에 꼭 필요한 중요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때로는 그는 이런 자신의 활동을욕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소화하고 있는 다양한 역할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조금 더 좋은 환경으로 만들고자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감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다.

 

2) 예술에의 두 가지 열정: 순수한 열정과 사명감

 

그는 열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순수한 열정과 일종의 사명감.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물론 바탕이 되지만 자기 자신의 명성이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자존심이나 이 공동체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 등도 음악계에서의 커리어를 지속해 나가는 중요한 동력이라는 것이다.

 

“순수한 열정만 놓고 보면 그 열정이 있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죠. 완전히 없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죠.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거니까. 그러니까 어떤 것에 대한 열정이 일생 동안 똑같다고 한다면 정말 존경할 만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또 그건 약간 과장이 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그 열정을 뒷받침해주는 또 어떤 다른 감정들, 예를 들어 일종의 자존심이나 자기 사명감 같은 것이 같이 있어줘야 열정이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된 연주자로서의 커리어를 지금까지 쉼 없이 계속 유지하며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있는 김대진의 음악 인생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교육자로서 제자 양성에 혼신의 힘을 쏟아 훌륭한 인재들을 국내 환경에서 길러내고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 오케스트라 지휘자, 클래식 음악 해설자, 실내악 리더 등을 도맡아 최선을 다해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은 단순한 음악에 대한 열정 그 이상이다. 바로 스스로가 자신에게 부여한 이 음악 공동체를 위한 사명감과 헌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앞으로도 더 성숙한 클래식 음악 향유 문화, 더 좋은 창작 환경, 다양한 나라 및 분야 간의 교류를 위해, 누군가 꼭 해야만 하는 역할이 발견된다면 그 자리에 누군가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로 스스로에게 새로이 부여한 사명을 위해 헌신하며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는 예술 창조성의 위대한 스승 김대진이다.

 

필자 주

이 글은 기초 자료 조사와 작가와의 인터뷰 녹취록 정리 등을 담당한 김맑음 미국 예일대 경영대 박사과정생(조직이론)의 도움으로 집필됐습니다. 귀한 시간을 아낌없이 인터뷰에 내어주신 김대진 교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dshin@yonsei.ac.kr

신동엽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스프링국제실내악축제 조직위원장을 지냈고 국립발레단 등 여러 문화예술단체들을 자문해왔다. 조직이론 분야 최고 학술지인 와 문화예술 분야 세계적 학술지인 등에 논문을 실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