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Bestselling Author: <롱테일 경제학> <메이커스> 크리스 앤더슨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허태영(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2년, ‘미완의 우주인’으로 불리는 고산 씨가 3D프린터 업체를 세웠다. 고 씨가 자리 잡은 곳은 종로와 청계천 사이, 지은 지 40년도 넘은 허름한 세운상가다. 이 지역에 있는 수많은 영세 수공업자들과 시너지 효과를 보기 위해서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세운상가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라고 할 수 있죠. … 만약 샌프란시스코에 세운상가와 같은 곳이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했었을 것입니다”1 라고 말했다.
2013년 4월, 세계 최초로 1인 인공위성을 제작해 러시아 로켓편으로 우주로 쏘아올린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 씨도 청계천의 힘을 빌렸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우주의 혹독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인공위성 부품들을 청계천 일대에서 구했다. 인공위성 이름도 ‘청계천호’라 붙였다. 이들의 사례가 알려지며 탱크나 미사일도 똑같이 만들 수 있다는 청계천 일대 소규모 제조업자들의 경쟁력이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도 예정돼 있던 세운상가 일대의 대규모 재개발 계획을 2013년 6월 철회했다. 내년 1월까지 재정비계획 변경안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최근의 ‘창조경제’ 트렌드에 맞는 제조업 벤처 클러스터로의 발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렇게 소규모 제조업의 경쟁력을 살려 경제발전의 한 동력으로 삼자는 분위기는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메이커스(Makers)’ ‘팹랩(Fab Lab)’ 운동과도 맞닿아 있다. 메이커는 취미로 집이나 사무실에서 공구를 이용해 물건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팹랩은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 선반, CAD/CAM 장비, 3D프린터 등의 공작기계를 갖다 놓고 누구나 와서 쓸 수 있게 만든 공동 작업장을 말한다. 이 두 가지 트렌드는 이제 누구나 필요한 물건을 직접 제조하거나 주문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상징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같은 컴퓨터광들이 집적회로(IC)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가정집 차고에서부터 IT 혁명을 이끈 것처럼 제2의 제조업 혁명 역시 풀뿌리에서 시작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메이커는 뜻밖에도 언론인 출신이다. 크리스 앤더슨은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로, 과학 저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의 편집자로 일했으며 2001년부터 2012년까지 12년 동안 과학기술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을 지냈다. 그는 또 경영 베스트셀러 <롱테일 경제학>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취미였다는 앤더슨은 2007년 ‘긱 대드(GeekDad)’라는 DIY(do-it-yourself) 동호인 사이트를 만들더니 2009년엔 3D로보틱스라는 소형 무인비행기 업체를 창업했다. 2012년부터는 <와이어드>의 편집장 직을 내려놓고 사업에 전념하고 있는 한편 <메이커스>라는 책을 펴내 메이커스 운동의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 현재 3D로보틱스는 개인용 경량 무인항공기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크리스 앤더슨
우연한 창업
앤더슨이 실리콘밸리에서 IT가 아닌 제조업으로 창업하게 된 계기는 청소하다 발견한 외할아버지의 옛 문서들이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자동차 엔지니어이자 아마추어 발명가로 생전 총 27개의 특허를 냈는데 그중 상업화에 성공한 것은 단 하나, 자동 타이머가 부착된 스프링클러였다. 이 특허는 1950년대 한 대기업이 상용화해서 미국 전역에 빠르게 보급했다. 하지만 발명가의 몫으로 돌아오는 돈은 많지 않았다. 발명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디어 제공일 뿐, 공장을 세우고 마케팅을 하고 영업사원을 길러내는 건 자본을 가진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외할아버지의 옛 문서를 보고 자극을 받아 자기도 직접 새로운 스프링클러를 발명해 팔아보기로 한다. 그와 동업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조종할 수 있는 온라인 스프링클러를 디자인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DIY 전자기판을 이용해 직접 회로를 설계했고 이 디자인 파일을 e메일로 금형 공장에 보냈다. 금형은 다시 사출 공장으로 배달돼 생산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오픈 스프링클러’는 현재도 인터넷에서 150달러 정도에 팔리고 있다. 완제품을 판매하기까지 디자인과 제조, 웹사이트 구축에 앤더슨이 투자한 돈은 고작 5000달러에 불과하다. 60여 년 전 그의 외할아버지가 특허를 출원하는 데 썼던 돈보다도 적다.
그가 소형 무인비행기(드론)를 제조하게 된 과정은 이보다도 쉬웠다. 앤더슨은 <와이어드> 편집장 일을 하면서 취미로 드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 동호회(www.diydrone.com)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이 맞는 동호인들과 함께 드론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조금씩 설계해 나갔다. 물론 어려운 부분은 앤더슨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했다. 부품은 중국, 캐나다, 대만 등지에서 수입했다. 조립도 전문 공장으로 아웃소싱했다. 앤더슨 본인이 한 일은 완성된 비행기 몸체가 도착하면 부엌 바닥에 늘어놓고 소프트웨어를 탑재시킨 후 박스로 포장한 게 전부였다.
3D로보틱스의 소형 무인항공기
재미삼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소형 드론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군사용 드론은 거대 방위산업업체에서 독점하기 때문에 민간 개발자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나 항공촬영, 작은 물품 운송 등에 쓰이는 저가형 드론은 관련 규제도 적고 작은 규모로도 충분히 완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자 앤더슨은 <와이어드>를 그만두고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샌프란시스코 인근 버클리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R&D 센터는 샌디에이고에, 제조공장은 멕시코에 세웠다. 이렇게 해서 파트타임 발명가였던 언론인은 얼렁뚱땅 중견 제조기업의 창업자겸 CEO가 됐다. 자기 돈은 거의 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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