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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

우리의 내면은 창조적 아이디어의 보고

신동엽 | 142호 (2013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모두가창조를 말하는 시대지만 정작 정확한 개념 정의도, 진정한 의미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성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연구해 온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여러 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각종 인터뷰와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21세기 시대정신,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2012 113일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의 디스커버리 그린파크 음악당.

객석에 각양각색의 청중들이 모였다. 인종, 연령, 성별, 직업, 문화적 배경이 모두 다르고, 출신 국가가 다양한 만큼 성씨도 다양하다. 막이 올라가고 동양인 여자 셋, 미국인 남자 하나가 무대에 섰다. 네 명의 성악가는 한국 어머니들이 출산한 딸을 위해 요리해주는미역국을 소재로 한국계 이민 가족 여성들의 3대에 걸친 서사를 노래한다. 관객들에게는 그 이름도 생경한미역국’. 게다가 연주에는 일반적인 서양악기의 현대음악 선율 위로 우리 전통의 가야금 소리가 덧입혀진다. 40여 분 남짓 되는 오페라의 막이 내리자 관객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인다. 무엇이 인종과 문화적 배경이 우리와 전혀 다른 이들을 울렸을까? 미국 평단의 극찬을 받은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From my mother’s mother)’라는 이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은 한국인 여성 작곡가 김지영이다.

 

‘선두 따라잡기식 창조혁신 시도의 명암과 내면 탐색의 중요성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흔히 맨 먼저 하는 행동은 그 분야의 최첨단에 있는 선두가 현재 하고 있는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서 따라 하는 것이다. 바로선두 따라잡기(Catch-Up)’. 선두의 최신 추세를 따라잡을 경우 창조적 혁신가의 대열에 쉽게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경우 아예 이런 시도를초우량 기업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이라는 구체적 전문 용어로 부르며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다.

 

선두를 관찰해서 모방하는 벤치마킹 전략을 쓰면 후발 주자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출발 지점을 선두의 바로 뒤로 가져 가기도 하고, 때에 따라 선두를 따라잡고 추월할 가능성도 생기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전략을 택한다. 이런 면에서 모방이 혁신의 출발이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선두 따라잡기를 통한 창조적 혁신 전략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선두 따라잡기와 창조적 혁신은 전혀 다른 역량을 요구한다. 따라잡기는 선두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달려야 할 방향이 이미 정해져 있다. 단지 선두에 비해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가 관건이다. 선두보다 더 빨리 달릴 방법을 찾아내면 따라잡아서 추월할 수도 있다. 창조적 혁신은 선두를 포함한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영역에 맨 먼저 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많은 경우 창조적 혁신은 선두가 달리는 방향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향을 찾아내는 데에서 창출된다. 선두가 달려온 길을 선두보다 더 빨리 달려서 마침내 추월하더라도 새로운 지평을 연 창조적 혁신보다는 결국 선두가 이제까지 이뤄놓은 성취 위에 돌 하나 더 쌓는 정도의 누적적 개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설사 선두가 미래에도 상당 기간 중요한 가치를 창출할 방향으로 달리고 있기 때문에 선두를 추월하기만 하면 창조적 혁신가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후발 주자가 선두를 따라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선두도 후발주자가 따라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앞으로 달리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선두는 다른 대다수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후발주자가 열심히 달려 선두를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선두는 이미 오래 전에 다른 데로 옮겨 가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속편에 나오는 뒤로 움직이는 길에서는 길보다 빨리 뛰어야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레드퀸 경쟁(Red Queen Competition)’의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창조적 혁신의 바람직한 방법은 무엇일까? ‘창조적 혁신의 개념 그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자신이 그 이전까지 하지 않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일반적 혁신과 달리창조적 혁신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누구도 달성한 적이 없는 새로운 가치창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적 혁신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다른 누구도 모르는 자신만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 누구도 모르는 자신만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엔가 숨어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향으로 안테나를 켜고 세상 구석구석을 바쁘게 뒤지고 다닌다. 즉 창조적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시야를 바깥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놓치는 창조적 아이디어의 보고가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이다.모든 사람은 각자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독특한 삶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즉 지구상에 살아온 삶이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결코 있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삶의 역사를 구성하는 무수한 경험들 중 몇 가지가 다른 사람들과 겹칠 수는 있으나 모든 경험들이 완벽하게 겹칠 수는 없다. 즉 시대에 따라, 문화적 전통에 따라, 사회구조적 위치에 따라, 가족배경에 따라 각자의 경험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것이 각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이는 기업과 같은 조직들도 마찬가지다. 전략경영의 자원기반관점(resource based view)에서는 각 조직이 가진 경험이 축적돼 형성된 루틴(routine)들의 조합은 다른 조직들이 모방할 수 없으므로 지속가능한 차별적 경쟁우위의 원천이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그리고 구석구석 살펴보는 내면의 탐색과 성찰이 창조적 혁신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인 것이다. 그림동화의 파랑새에서 보여주듯이 역설적으로 온 세상을 그렇게 찾아 헤매던 창조적 아이디어의 보고가 바로 자기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와 동료 학자들이 21세기 시대정신의 핵심인 창조적 혁신의 원천과 원리를 다각적으로 탐구해 조만간 <21세기 창조성의 원천>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할 책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3년간의 연구과정에서 인터뷰했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세계적 예술가들 대부분은 이미 자기 내면에 대한 치열한 탐색과 깊은 성찰이 습관화돼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내면탐색형 예술가가 바로 이 글에서 소개할 세계적 작곡가 김지영이다. 물론 김지영뿐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도 대부분 자신의 경험과 내면을 끊임없이 되돌아봄으로써 창조적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고 있었다. 인류의 문화예술적 지평을 넓혀온 대부분의 해외 예술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예술가들은 창조적 예술의 아이디어와 영감을 찾기 위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그리고 깊게 뒤지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시야는 밖으로 향해 있지 않고 안으로 향해 있다. 이 예술가들은 자신의 뿌리, 자신이 살아온 과정과 경험, 자신의 문화적 배경과 전통이 새로운 창조의 씨앗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과 뿌리는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창조적 예술은 자기 내면에서 나온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 창조적 예술을 찾는 안으로의 끝없는 여행을 계속 하는 이유다.다시 말해 이들은 내면에서 소재를 찾아 자기만의 스토리텔링을 하는 예술가들이다.

 

이들의 창작물들은 무엇보다 예술가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자기 목소리로 전달하기 때문에 작가의 몸에 착 붙어 있고 편안하며 완성도가 높다. 각자의 내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에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도 있고 가족사도 있으며, 자신이 속한 사회나 나라 문화권의 전통과 역사도 스며들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창조적 예술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내면의 구성요소들의 집합은 예술가마다 다 다르므로 독창성과 차별성은 일단 보장된다. 관건은 이를 어떻게 완성도 높은 창조적 예술의 형태로 표현해내느냐다.

 

우리 국악의 독특한 농현 울림을 서양음악의 형식을 통해살아 움직이는 음계(living tone)’라는 독창적 개념으로 표현한 윤이상, 헝가리 민속음악을 현대음악으로 승화시킨 벨러 버르토크,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미국 빈민가 흑인들의 재즈음악을 클래식 음악으로 승화시킨 조지 거슈윈, 대중적 민속 춤곡인 탱고를 세계적 클래식 예술로 발전시킨 아스토르 피아졸라. 이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속한 문화와 사회에서 창조적 예술의 소재를 찾아낸 사람들이다.

 

아르헨티나의 탱고클럽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일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독학하던 피아졸라가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갔을 때의 사례는 이런 내면의 탐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지나치게 관능적이고 퇴폐적이라는 비판까지 받은 대중 민속음악이었던 탱고를 넘어서서 본격적인 클래식 음악 작곡가가 되고 싶었던 피아졸라는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들고 세계적 음악교수 나디아 불랑제를 찾아갔다. 피아졸라의 곡들을 자세히 살펴본 불랑제는다 좋은 곡들이군. 그런데 이 부분은 쇤베르크를 닮았고, 이 부분은 라벨과 비슷하네. 피아졸라는 도대체 어디 있지?”라고 물었다. 당황한 피아졸라가 자신이 탱고클럽을 위해 작곡했던 몇 곡의 탱고를 연주했다. 그러자 불라제의 표정이 바뀌며바로 거기에 피아졸라가 있네라고 하며 자신만의 뿌리로 돌아가 자신만의 음악을 계속 발전시킬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세계적 극찬을 받고 있는신탱고.

 

미술에서도 샤갈의 그림들은 예외 없이 어린 시절 그가 러시아 유태인으로 자란 고향 마을과 자신의 아내와 사랑 등 자기만의 스토리를 자기만의 아름다운 색채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자란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 건물벽의 그래피티 낙서를 현대 미술의 중요한 사조인 신표현주의로 발전시킨검은 피카소장 미셸 바스키아도 여기에 속한다.

 

즉 이런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내면은 창조성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자 보물들이 가득 묻혀 있는 노다지 금광인 것이다. 따라서 굳이 자신의 것이 아닌 낯선 것들로 가득 찬 밖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주인공인 김지영이 어떻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세계인을 감동시킨 창조적 음악을 작곡했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김지영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면 그녀는 현재 미국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세계적 작곡가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연세대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대에서 석사를,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들을 음악을 통해 만나게 하려는 시도인 요요마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극찬을 받으며 세계적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다. 서양 음악과 한국 전통 음악의 음색, 소재, 정서, 악기, 연주법을 창조적으로 결합한 작품들로 세계 음악계에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밀회(Tryst)’ 에밀레종을 소재로 한고대의 종(Ancient Bell)’ ‘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From my mother’s mother)’ 등 세계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은 음악들을 작곡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예술관의 발견: “누가 신경 쓴다고 그래? 너의 목소리로,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

 

1) 자신만의 내밀한 경험을 음악으로

 

작곡가 김지영이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의 위촉을 받아 창작한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From my mother’s mother)’는 외할머니, 어머니, 주인공인 수연과 그녀의 딸로 이어지는 한국계 미국 이민 여성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통과 가족, 문화의 의미를 조명한 오페라 작품이다. 이민 3세로 미국에서 나고 자란 수연은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 딸을 낳는다. 이민 1세대 외할머니와 2세대인 어머니는 출산한 수연에게 미역국을 정성스레 끓여다 주지만 수연은 이미 미국인 시어머니가 갖다 준 스콘과 요거트를 먹었다며 미역국을 거부한다. 수연은 남편에게 어린 시절부터 생일 때마다 먹는 미역국이 싫었다고 투덜댄다. 병실 밖에서 수연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한국 전설에서 미역국의 기원으로 등장하는 미역을 먹고 상처 입은 위장을 치료한 고래에 관한 설화를 노래한다. 돌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수연은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딸 지나를 보던 수연은 딸의 이름을 외할머니가 지어주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딸과 자신, 엄마와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전통의 끈을 노래하며 미역국을 만든다.

 

뉴욕에 거주하며 미국 무대에서 활동하는 김지영은 한국적인 정서와 소재, 한국 전통 음악의 요소를 서양 음악과 결합하는 다양한 창조적 시도로 음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김지영은 자신의 내밀한 경험에 대한 성찰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한 음악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도 한국계 미국 이민자인 김지영의 시누이의 출산 과정에 대한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 음악과 만나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김지영은 5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처음 음악을 접했다.

5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어요. 초등학생 때쯤, 피아노 레슨 도중에 선생님께서 전화 받으러 가시거나 자리를 잠시 뜨실 때면 제가 즉흥연주(improvise)를 하곤 했던 모양이에요. 재미로 했던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너 작곡 해 볼래?’ 하셨죠. 저는 작곡이라는 분야가 있는 줄도 몰랐고 살아 있는 작곡가가 있는 줄도 몰랐을 만큼 어렸을 때의 일이에요. 또 당시 예원을 다니던 사촌언니가 있었는데요, 미술 전공이었는데도 작곡 숙제가 있더라고요. 저한테 좀 해 줄 수 있겠냐고 해서 제가 대신 숙제를 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내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하고 깨달았죠. 같은 아파트에 사시던 아버지 고등학교 동창 분 중에 서울대 작곡과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께 테스트를 받아보려고 찾아갔어요. 그분께서 본인이 하고 싶어 하면 작곡에 재능이 있는 것이니 시키라고 하셨어요. 예고에 진학하려고도 생각했는데 부모님께서는 작곡이라는 것은 악기를 다루는 것과는 또 달라서 삶의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니 어린 시절부터 음악 하는 사람들하고만 같이 어울려 지낼 필요는 없다고 하셨고요. 그래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3) 개인적 관심을 넘어 사회 현실에 관심을 가지다

 

김지영은 1987년 작곡 전공으로 연세대 음악대학에 입학한다. 같은 해, 같은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는 80년대 후반 당시 대학가의 분위기와 현실 사회의 문제들에서 동떨어져 순수 음악을 작곡한다는 것이 무의미해 보였다고 회상한다. 특히 당시 한국 음악대학의 작곡과에서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난해한 현대음악을 작곡하라고 가르쳤기에 현실과 예술 사이의 간극은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처음에 대학 들어와서는 작곡을 그만두려고도 했어요. 너무 재미가 없어서. 제가 87학번인데 당시 이한열이 죽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혼자 작곡하는 것이 의미 없어 보였어요. 그래서 운동권 노래패에 가담했어요. ‘울림패라는 노래패에 들어가서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운동가요들을 반주했어요. 작곡은 전혀 안 했고요. 주로 총학생회장이랑 같이 다니면서 그 친구가 경찰에 적발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했어요. 선배들은 저에게 학생운동 하게 생기지 않았다고 회색분자라고 했었죠. 그런데 저는 음악이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사람들에게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이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그랬어요.”

 

김지영은 정치적 활동에 음악적 재능을 활용해 참여함으로써 당대의 사회적 요구와 음악 하는 것의 의미 사이의 조화를 꾀했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단순하고 선동적인 사회참여적 음악만을 필요로 하는 운동권 노래패에서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었다. 노래패 활동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 길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은 대학 2학년 무렵 가담했던 노래패에서 약 1년 반 정도를 활동한 후였다. 그녀는 다시 작곡으로 돌아간다. 학부과정에서 작곡에 대한 흥미를 잃은 상태였지만 음악을 이렇게 그만두기에는 무언가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인디애나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다.

 

 

4) “누가 신경 쓴다고 그래?”

 

고밀도 대도시인 서울에 살던 김지영에게 광활한 옥수수 밭뿐인시골인디애나의 풍광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리적, 환경적 차이에서 오는 시각적인 놀라움만큼이나 예술과 작곡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 차이에서 오는 문화충격도 컸다. 당시 한국에서 작곡을 공부한다는 것은 선생님이 원하는 음악을 꽉 짜인 틀 안에서 실수 없이 만들어 낸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인디애나대에서의 훈련과 수업은 달랐다. 미국에서 만난 선생님은네가 누구인지’ ‘너의 이야기는 무엇인지’네 이야기를 풀어낼 너만의 고유한 방식은 어떠한 것인지를 물었다.

 

“미국 유학 가서누가 신경 쓴다고 그래(Who cares)?’라는 말에 너무나도 깜짝 놀랐어요. 한국에서는 늘 남을 생각하잖아요. 나는 온전히나 자신이 아니라누구의 딸로 존재하죠. 또 남들이 맞다고 여기는 방식대로 생각하고 창작해야 해요. 당시 한국에서 음대 3∼4학년이 되면 어떤 음악을 써야 한다는 정형화된 틀을 알게 되고 거기 맞추거든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게 아닌 거예요.

 

인디애나에서 만난 프레디 폭스 교수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제가 뭘 어떻게 써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하자편안하게 해라. 네게 뭔가 들리는 것이 있을 거다. 잘 찾아봐라하셨어요. 그분은 어머니가 아메리칸 인디언이었거든요. 본인의 경우 어렸을 때 어머니가 들려주던 자장가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어요. 또 그분 방에 들어가면 아메리칸 인디언과 관련된 물건들이 정신 없을 정도로 많이 있었고요. 그분을 만난 것이 어떤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나만의 독창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거든요. ‘나의 것을 담아내려면 음악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빨리 끝내고 한국 가려는 생각이 없어졌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작곡하려 했어요. 한국에서는 빨리 오라고들 했는데지금 갈 때가 아니다라고 했죠.”

 

창조적 예술가의 대표적 특성이 새롭고 독창적인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라면 미국 유학 길 초입에서 김지영은누가 신경 쓴다고 그래?”라는 한마디에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깨어나는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미 널리 인정받은 스타일대로, 누군가가 잘 짜 놓은 패턴대로 예술 작품을 창작하라는 한국 교육의 주문 속에 갇혀 잃어버렸던 작곡에 대한 흥미를 되찾았다. 그녀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뿐만 아니라 자신 내면의 틀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기만의 예술을 찾아가는 여정에 들어서게 된다.

 

자신만의 고유의 소리를 찾아 나서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소통 방식은 한국 음악

 

1) 윤이상의 조언

 

김지영에게 독창성을 강조한 것은 인디애나대의 프레디 폭스교수뿐만이 아니었다. 한국 작곡가로서 세계 무대에서 거장으로 인정받았던 윤이상과 예일대 박사 과정에서 만난 제이콥 드러크만 교수 역시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아가도록 독려했다. 진지하게 작곡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은 김지영은 특유의 과감성을 발휘해 당시 독일에 거주하던 윤이상에게 전화를 건다. 잠시 동안이라도 윤이상을 찾아가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가 좀 엉뚱한 데가 있어요. 인디애나에 있을 때 학교를 한 학기 쉬고 윤이상 선생님을 찾아가 배워볼까 생각했어요. 제가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윤이상 선생님 음악은 국내에서 공연이 금지돼 있어서 들을 수도 없었거든요. 독일 전화번호를 수소문 끝에 알아내서 전화를 걸었는데 사모님께서 받으시더라고요. 처음엔 누구냐고 다짜고짜 물어보셔서 여차여차한데 한 달만이라도 선생님 만나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몸이 안 좋으시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한번 여쭤볼 테니 30분 후에 다시 전화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거니까 윤이상 선생님께서 전화를 받으셨어요. 당시 말년이셔서 목이 다 쉬셨고 몸이 정말 많이 안 좋으셨어요. 그때 전화로 제게 해 주신 말씀이내가 평생 여러 가지 음악을 열심히 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쓰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게, 네가 마음속에서부터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네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언어로 해라였어요. 그 말씀을 듣고 나니이거면 됐다싶으며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선생님 돌아가시고 슬퍼서 쓴 곡이바람을 쫓는 호랑이(Tiger chasing the wind)’예요.”

 

2) 예일대 음악대학의 열린 환경

 

윤이상이 작곡가로서 일생의 지침이 될 만한 메시지를 주었다면 예일대 박사 과정에서 만난 제이콥 드러크만 교수는 실제로 그러한 원칙에 따라 곡을 쓰도록 지도했다. 드러크만 역시네 속에 있는 것을 끌어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자들마다 가지고 있는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며 열심히 써 보라고 격려했다. 현재 미국 음악계를 주도하고 있는 그의 제자들은 한 선생님에게서 배웠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음악적 스타일이 다양하다.

 

“드러크만 교수님의 제자 중, 캐빈 푸츠라고 같이 입학했던 학생은 아주 미국적인 스타일로 작업해요. 미국의 대표적 작곡가 아론 코플랜드의 음악을 주로 공부했고요. 남아메리카에서 온 학생도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쪽 음악을 쓰더라고요. 모두들 다 다른 음악을 했어요. ‘이런 음악을 교수님께 가져가도 괜찮을까를 걱정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선생님은 우리 그룹 레슨을 할 때 자기가 이걸 돈 받으면서 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면서 이렇게 늘 새로운 곡들 만나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신나 하셨죠.”

 

3) 자신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 다시 국악을 만나다

 

독자적인 예술가로서 눈이 뜨이는 경험과 여러 멘토의 격려에 힘입어 김지영은 국악과 서양 음악의 접점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찾기 시작한다. 그녀는 인디애나대에서 수학하기 시작한 지 3∼4년 후부터 국악과의 접목을 시도했다. ‘너의 목소리, 너의 색깔을 찾으라는 윤이상의 가르침은나의 생각을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했다. 김지영에게 한국음악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가장 편한 소통방식이었다. 어린 시절 한국무용을 배웠던 탓에 장구 장단이나 한국음악의 음색 등을 좋아했다. 그런 음악을 들으면 울컥하고 무언가 감정이 치솟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만약 국내에서 한국음악과 서양 클래식 음악의 접목을 시도했더라면 아마도 큰 좌절을 맛봤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당시 국내 음악계의 분위기는 서양의현대음악이라고 불리던 정해진 스타일 안에서 철저히 서양의 전통을 따라 작곡하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지영의 경우 한국음악계의 경계를 넘어 서양 음악계로 들어서자 오히려 자신 내부에 있는 본질적인 요소나 한국 전통 음악의 세계에 주목하게 됐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예술가들에게서 한국적인 정념이나 전통 예술의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고유함과 정체성에 대한 탐구의 결과일 것이다. 특히 해외에서 교육을 받거나 활동한 경험이 풍부한 예술가들에게서 이런 경향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고유함이나 정체성 내부에서 자신을 인식할 때보다 외부의 객관적 시선에 비추어 자기를 바라봤을 때 더욱 강렬하게 인지되는 탓이 아닐까.

 

작곡과 연주, 공연 모두가 문화 간 만남의 과정: 요요마와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 간 경계를 넘어서다

 

1) 요요마와의 만남과 밀회의 탄생

 

우리 전통의 소리를 서양음악과 연결시키려는 김지영의 독창적인 시도는 세계 음악계로부터 서서히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예일대 박사 과정을 졸업할 즈음 요요마의실크로드프로젝트로부터 작품을 위촉받는다. 요요마의실크로드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가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과 관객들을 만나게 함으로써 예술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 간 만남을 이끌어내고자 1998년에 시작한 프로젝트다.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세계 각국의 작곡가들에게 창작곡을 위촉하고 전 세계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연주를 선보이는데 2001년 김지영에게도 기회가 닿았다.

 

“본래는 한국에 계신 작곡가에게 곡 위촉을 하고 싶어서 한국에 연락을 했었대요. 그랬더니 저명 교수님들 음악이 담긴 큰 박스가 세 개나 왔는데 다 들어보고도 마음을 움직이는 곡이 없었나 봐요. 그래서 미국에 있는 한국 작곡가들을 찾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때 누군가가 요요마에게 제 이름을 줬던 것 같아요. 처음에 곡을 보내라고 하길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 쓴 곡을 보냈어요. 실크로드 프로젝트에는 요요마만 있는 게 아니고 소니클래식 음반사 관계자, 카네기홀 관계자, 매니저들 등 총 7명의 위원회 멤버들이 있는데 그 곡이 그 사람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에요.”

 

요요마는 김지영에게 10∼15분 길이의 곡을 써 줄 것을 부탁했다. 주제와 형식은 작곡가의 자율에 맡겼다. 이때 김지영이 쓴 곡이 우리 전통 시조를 모티브로 한밀회(Tryst)’. ‘밀회는 송강 정철과 기생 진옥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한 곡으로 첼로가 송강 정철을, 가야금이 기생 진옥을 나타내고, 오보에가 이 둘의 사랑을 관조하는 달빛을 표현한다.

 

“곡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무얼 소재로 삼아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인터넷 검색을 했어요.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떨까 싶었고 그중에서도 기생의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3개월 정도 걸렸어요. 곡 쓰는 건 꼭 누군가에게 편지 쓰는 것 같아요. 처음에 어떤 얘기를 어떻게 쓸 것인지 지도를 구상해요. 물론 쓰는 중간에 바뀌기도 하지만 크게 어떤 방향으로 쓰고 싶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건축하는 거죠. ‘밀회에서는 요요마의 프로젝트니까 우선 첼로는 있어야 했고 가야금은 제가 원래부터 넣고 싶었고요. 그 다음에는 판소리에서 말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런 부분 있죠? 그런 것도 떠올렸어요. 또 피리 색깔을 낼 수 있는 악기, 그러면서 높은 음역대를 커버할 수 있는 악기를 생각하다 보니까 오보에를 찾은 거예요. 그 다음에는 남성적인 이미지를 첼로로, 여성적인 이미지를 가야금으로 표현하는 쪽으로 생각하면서 제 마음대로 하는 거죠. 또 가야금 병창을 넣어야겠다 싶어서 안숙선 선생님께 연락 드리고 찾아가서 배우기도 했어요.”

 

2) 요요마의 다른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

 

한국 전통 악기인 가야금과 서양의 첼로나 오보에는 사용하는 음의 체계나 박자가 다르고 악기의 음색 역시 다르다. 두 체계를 섞어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 것도 작곡가에게 큰 도전이지만 서로 다른 트레이닝을 받은 연주자들이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다. 김지영의 경우 대개 서양 악기에 맞춰 악보를 쓰고 가야금 연주자가 보기 쉽도록 조정한 악보를 준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음색이나 음계를 고려해 곡을 쓰고 악보를 제공하더라도 실제 연주에서 같은 문화권의 악기들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한국 전통음악과 서양 클래식 음악처럼 대비가 큰 두 체계가 만날 때 악기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연주자가 상대방 음악 체계와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맞춰가는 것이 필요하다.

 

“요요마의 경우 튜닝에 대해 굉장히 유연해요. 자기가 하는 악기가 서양 악기니까 이쪽을 따라오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야금에 맞추어 튜닝하려고 노력하더라고요. 연주자가 알아서 자연스럽게 튜닝을 해줘야 하거든요. 프랑스에서 연주할 때는 오보에 연주자가 너무 잘해서 정말 피리 같은 소리가 나도록 하더라고요.

 

요요마가 이 곡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뭇잎을 햇볕에 대고 비춰보면 이파리의 잎맥이 보이잖아요. 이 곡은 그걸 보는 마음으로 연주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밀회는 굉장히 섬세한 곡이기 때문에 첼로 파트는 남성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잎맥을 살펴보는 그런 마음으로 연주를 해야 한다고요. 좀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아마 서양음악과는 달리 우리 국악에서 모든 음이 하나하나 다 살아 있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연주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서양음악의 경우에는 멜로디가 모두 연결돼 절(phrase)을 이루면서 이어지는데 국악의 경우는 음 하나하나가 살아 있거든요. 서양 사람들이 살아 있는 음색, 즉 리빙톤(living tone)이라고 부르는 그런 거요.”

 

3) ‘밀회의 성공과 에밀레종

 

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는 곡이 완성된 후 연주자들과 작곡가가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워크숍을 겸한 콘서트를 하면서 곡에 대한 이해를 높인 후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공연을 올린다. 여러 도시에서의 연주회를 거쳐 좋은 반응을 얻은 곡들은 최종적으로 카네기홀 공연에서 연주된다. ‘밀회는 카네기홀에 올려져 폭발적 반응을 얻었고 요요마는 2006년 또 한번 김지영을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작곡가로 위촉했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에밀레종을 소재로 한고대의 종(Ancient Bell)’을 작곡했다.

 

“제 생각에 좋은 연주자는 마음으로 곡을 이해해 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럴 때 가장 고맙고 연주자와 소통이 이뤄져야 관객에게도 가 닿을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요요마는 정말 좋은 연주자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편안하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늘 진지하게 배우려고 하고, 겸손하게 곡에 맞는 소리를 찾으려 노력하고, 또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있어요.”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예는 김지영의 곡 그 자체도 서로 다른 문화권의 표현 체계가 마주치는 접점이지만 곡이 연주자와 관객에게 다가가는 과정 역시도 문화적 만남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일례로밀회(Tryst)’에는 가야금 연주자가 병창을 하는 부분이 있다. 서양 성악의 고운 소프라노 소리와는 현격히 다른 거칠고 격한 소리를 처음 접하고 서양 연주자들은 매우 놀라고 어색해 했다. 그러나 이 소리는 세월과 삶이 녹아 있는 감동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할머니의 톤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고 시간이 지나며 차츰 서양 연주자들도 이 소리에 익숙해졌다.

 

4) ‘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

 

최근작인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From my mother’s mother)’를 작곡하고 초연하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권이 만나 작품을 탄생시키는 경험을 했다. 미역국을 둘러싼 한국계 미국인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작품 소재상 총감독, 극작가, 무대 연출 관계자와 연주자들 모두가 미역국이 무엇이고, 한국에서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했다.

 

“오페라 작품은 처음이었어요. 저는 오페라 쓸 때, 스토리는 극작가가 가져오고, 저는 곡만 붙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스토리가 저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희 시댁에서 아가씨가 출산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했는데 그걸 딱 소재로 잡더라고요. 그 이야기가 거의 고스란히 오페라의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게 됐죠. 스토리가 잡힌 후에 극작가를 뉴욕으로 보내줘서 34일 정도 같이 작업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미역국이라는 게 미국 사람들에게 생소하잖아요. 반주자 중에 한국 분이 한 분 있었는데 그 친구가 미역국을 만들어와서 같이 먹어보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미역국이 무엇인지, 거기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 가는 거죠. 나중에는 맛있다고 좋아하더라고요. 무대에도 헝겊으로 여러 색을 엮어서 미역처럼 보이도록 연출했고요.“

 

김지영의 음악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음악이 만나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고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만나 독특한 감동을 빚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김지영은음악은 우리 역사의 심복이 아니라 문화 간의 진정한 연결고리(Music is not a servant of our history but is a true mediator between cultures)”라고 말한다.1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 “음악을 통해 표현된 인간에 대한 관심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1)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민

 

김지영의 작품세계가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서양음악과 다른 한국 음악의 요소를 단순히 결합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결합이 예술적 독창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두 음악 체계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관심과 연민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인간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인간에 대한 관심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제가 한국에서 컸기 때문에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 한국적인 표현 방식인 것 같고요.”

 

인간에 대한 관심은 김지영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 학생 운동에 가담한 것이 그랬고, 노래패 활동을 하며 농촌봉사활동을 다니던 것이 그랬다. 다만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그러한 관심을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 표출했다면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미국 유학시절부터는 음악을 통해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면,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보냈던 곡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위안부 할머니 관련 기사를 보고 느낀 인간에 대한 연민의 감정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밀회는 보편적인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편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는 국경과 문화권을 초월해서 공감할 수 있는 전통과 모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의 경우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의 지난 몇 년간 위촉된 작곡가들이 대부분 남자였기 때문에 정치나 전쟁 등 남성 중심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에 여성 작곡가로서 김지영은 여성에 관한 깊은 관심을 조명하고자 했다고 한다.

 

2)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탐구한다

 

물론 개별적인 소재나 표현의 방법은 때마다 다르다. 김지영은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음악 형식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때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소재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끄집어내기도 하고, 또 순수하게 음악적인 표현과 전달을 위한 시도를 해 보는 경우도 있다.최근에 쓴 작품의 경우에는 연주자가 관객을 끌어들여 소통하는 주술적인 느낌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제목은 ‘Sword Dance’ 즉 칼춤이다. 피아노를 두드려 드럼이나 장구 소리를 내기도 하고, 노래나 샤우팅을 하는 부분도 있다. 선율에서도 음이 하나하나 떨리는 국악의 리빙톤(living tone)을 접목해 칼춤을 추며 뛰는 이미지를 구현했다.

 

그녀는 기존에 충분한 경험이 있는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악기 구성으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만드는 모험을 즐긴다. ‘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험이다. 또 한국 음악과 서양 음악도 그 구분 자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오페라를 만들면서 새로웠던 점은 무대에 올려보고 연습해보는 과정에서 곡을 좀 수정해달라는 요청을 하더라고요. ‘무대 동선 때문에 이 부분에 곡이 34초 정도 더 필요하니 좀 늘려달라는 식이었어요. 또 어머니 역할인 메조소프라노 성악가가 높은 음으로 좀 길게 부르는 아리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넣어줬어요. 차이콥스키나 모차르트도 재단사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음악을 만들어줬대요. 연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주는 거죠. 오페라 싱어들이 그러는데 모차르트는 악보대로만 편안하게 불러도 너무 자연스럽게 잘하는 것처럼 들린대요. 그렇게 맞춰주면 노래하는 사람도 신이 나서 하게 되니 좋더라고요. 오페라를 작곡하고 무대에 올리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많이 배웠고요.

 

한국 음악인지, 서양 음악인지 그런 구분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9.11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 이후로는 인종이나 국적 같은 구별이 중요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그냥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또 요즘에는 인도 음악이나 아프리카 음악들도 현대 서양 음악의 경계 안으로 들어와 같이 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쪽에도 관심이 있어요. 이제는 국경 같은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 같아요.”

 

3) “좋은 예술작품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김지영은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향해 있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또 음악을 듣고 즐기고 이해하는 사람이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일부 집단에만 한정되지 않고 일반 대중에게까지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생각과 관심을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또는 수용자에게 잘 전달할 소통 방식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 소통의 방법은 국악적인 표현방식이 될 수도,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사람이 변화되잖아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만들 때는 나와 연주자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을 항상 고려해야 하는데 그 말은 곧, 그들이 이 음악을 통해서 어떻게 변화되기를 바라는지를 작품에 담아야 한다는 거죠. 옛날악학궤범같은 곳에도 좋은 음악이라 함은 그 음악을 들음으로써 국민들이 좋은 사람들로 변화되는 것이라는 내용이 나와요. 물론 바른생활 같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그런 말은 아니지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음악 본연의 그런 특징이랄까 본분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예일대에서 마틴 브래즈닉 교수님과 공부할 때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모차르트가 피아노 콘체르토를 쓰고 난 후 자기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대요. ‘아버지, 피아노 콘체르토를 썼습니다. 내 곡이 음악을 공부한 학자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고 음악을 전혀 모르는 동네 아낙이나 내 친구들이 들어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요. 모차르트 음악이 딱 그렇잖아요. 아이들도 배우면 칠 수 있고 나이가 지긋한 대가들이 쳐도 여전히 배울 것이 많고. 자신의 배움만큼 이해할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죠. 저는 이 이야기가 참 좋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기만의 이야기를 자기만의 색깔과 체계로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김지영은 예술가로서 깨어났다. 그 후 마음에 끌리는 인간에 관한 이슈를 가장 편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한국 전통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을 탐구해왔다. 그 시도의 독창성과 완성도는 세계 음악계의 찬사를 받아왔고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를 꿈꾼다.

 

내면에서 나온 독창성과 보편성이 공존하는 쉽고 좋은 음악 하기

 

김지영은 소재와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가 음악계의 동료들, 연주자와 클래식 음악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의 마음을 울려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려면 독창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독창성이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김지영의 경우, 진정한 개인적 관심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독창성의 원천이었다. 인간에 관한 소재도 개인적 관심사이고, 서양음악에 접목시킨 국악 역시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친숙하게 여기던 것이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대개 아주 깊고 진지해서 인간 혹은 인류의 본질적인 이슈나 감정과 맞닿게 된다. 따라서 김지영의 예술은 개별성에 근간을 둔 독창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보편성을 획득한다.그녀 자신의 가족 얘기에 바탕을 두고 있는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들이 겪는 전통과 문화에 대한 부정과 긍정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됐다가 다시 이민자의 나라인 모든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로 보편화돼 와 닿는다. 그리고 그 보편성을 발판 삼아 청중 개개인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공연을 보고 나서 다들 울더라고요.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 말하자면 전통에 관한 얘기잖아요. 그걸 보면서나도 어렸을 때 저랬다고 하더라고요. 또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잖아요. 독일에서 온 사람, 스페인에서 온 사람, 각자마다 자기 나라 전통 음식에 얽힌 그런 사연들이 있어요. 꼭 미역국이 아니어도. 식구들이 모이면 각자의 엄마가 어떤 음식을 했고, 할머니는 뭘 만들어주곤 했다는 그런 스토리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인 거예요.”

 

서양 오페라가 가야금 연주와 만나 오묘한 음악적 색채를 뿜어내고 미역국이라는 생소한 음식이 극을 이끌어가지만 국적과 인종, 성별, 그리고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도를 불문하고 감동을 받는 것은 작품이 독창적인 동시에 보편적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작품이 만들어져 조화롭게 연주가 이뤄지고 관객에게 잘 전달돼 감동을 함께 느끼는 소통의 순간에 성취감을 느낀다는 김지영. 모차르트처럼 그녀 역시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면서도 음악적 깊이와 창조성이 충만한 작품들을 계속 써 나가고 그 작품들이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자기만의 생을 찾아 오랜 시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를 기대한다.

 

한국 여성만이 가진 섬세하면서도 심오한 정서와 서양 현대음악의 언어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곡으로 요요마와 같은 세계적 음악가들과 전 세계 팬들을 감동시킨 김지영의 작품들은 모두 그녀 내면의 내밀한 이야기와 격정적이면서도 섬세한 그녀의 삶에서 탄생했다. ‘밀회’ ‘우리 엄마의 엄마로부터등 세계적 극찬을 받은 그녀의 창작물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격동의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이국 땅에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한 여성 작곡가로서의 김지영 자신의 스토리들이다. 창조적 작곡을 위해 김지영은 끊임없이 그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녀의 음악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한국적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어머니들이 딸들이 출산했을 때 요리해주는 미역국을 소재로 한내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공연은 서양인들의 마음 깊숙이까지 스며들어 서양 관객들을 흐느껴 울게 만들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여성 작곡가인 김지영의 내밀한 내면에 또 어떤 다른 이야기들이 묻혀 있을지 마음 설레며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주

이 글은 기초 자료 조사와 작가와의 인터뷰 녹취록 정리 등을 담당한 김맑음 미국 예일대 경영대 박사과정생(조직이론)의 도움으로 집필됐습니다. 귀한 시간을 아낌없이 인터뷰에 내어주신 김지영 작곡가 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dshin@yonsei.ac.kr

신동엽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스프링국제실내악축제 조직위원장을 지냈고 국립발레단 등 여러 문화예술단체들을 자문해왔다. 조직이론 분야 최고 학술지인와 문화예술 분야 세계적 학술지인등에 논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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