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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를 통해 본 세상

영구채, 국제기준상 자본이지만…

최종학 | 140호 (2013년 11월 Issue 1)

 

 

 

지난 2012 10월 두산인프라코어는 5억 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이 채권이 성공적으로 발행되면서 두산인프라코어는 앞으로 상당기간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기업이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큰 뉴스거리가 안 될 정도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두산인프라코어의 채권 발행은 좀 달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회계기준원, 회계학계, 산업은행까지 나서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유는 이 채권이영구채권(perpetual bond, consol bond)’으로 일반 채권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가진 특수한 종류의 채권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 채권은 부채인지, 자본인지 구분이 애매한하이브리드채권에 해당한다. 우선 하이브리드 채권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회계를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자산=부채+자본이라는 재무상태표(대차대조표) 등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기업이 영업 및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자원(resource)인 자산은 채권자가 공급한 자금(부채) 또는 주주가 공급한 자금(자본)을 이용해 마련된다. 자금을 조달한 기업 입장에서 보면 부채는 상환의무가 있지만 자본은 상환의무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반대로 자금을 제공하는 입장에서 보면 채권자는 정해진 이자를 받아 투자효익을 얻지만 주주들은 이익배분의 성격을 가진 배당금이나 주가 상승을 통한 차익으로 투자효익을 얻는다는 점이 다르다. 기업이 청산하게 되면 채권자가 투자금을 먼저 돌려받은 후에 남는 자금이 있어야 주주가 소유 주식 수에 따라 비례적으로 남는 자금을 배분받을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 전문용어로 하면 채권자가 주주보다 선순위에 있고 주주가 채권자보다 후순위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부채와 자본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부채는 대부분 정해진 시점에 정해진 이자를 지불해야 하므로 지속적인 현금 유출이 일어난다. 또한 만기가 오면 원금을 상환해야 하므로 채권을 발행한 또는 대출을 받은 회사 입장에서 볼 때 대규모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당한 재무적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자본은 상환할 필요가 없고 배당을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것도 아니므로 상대적으로 재무적 압력이 작다. 따라서 규제기관이나 은행, 신용평가사나 개인투자자들은 부채비율(부채/자본 또는 부채/자산)을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지표로 사용한다. 부채비율이 높을수록 그 기업에 가해지는 재무적 압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 증권의 탄생

시간이 지나면서 부채와 자본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증권1  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양자의 장점을 조합해 투자자들에게 좀 더 매력적인 형태로 만들면 자금 조달금리를 낮출 수 있다. 신종증권(또는 하이브리드(hybrid) 증권)이라고 불리는 증권이다. 부채지만 자본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 같은 사채들과 자본이지만 부채처럼 상환의무가 있는 상환우선주가 그 예다.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지금도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상환우선주는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도입 이전까지 국내에서 가끔 사용된 바 있다.

 

 

하이브리드 증권보다도 부채 또는 자본으로 분류하기가 더 애매한 증권이 등장한 것은 1997∼1998년 경제위기 직후다. 당시 정부는 경제위기로 큰 타격을 입은 은행들의 자본확충을 위해 다음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채권을 발행하면 이를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1) 30년 이상 채권으로 동일한 조건으로 발행자가 만기연장 권한 보유

(2) 보완자본(후순위채)보다 후순위

(3) 배당(이자) 지급율의 제한적 상향(step up, 가산금리) 가능

(4) 배당시기와 규모에 대한 결정권 보유

(5) 발행 후 5년 이내에 상환되지 않아야 함

 

이런 조건에 따라 당시 여러 은행들이 하이브리드 증권을 발행해서 이를 자본으로 분류했다. 자본을 발행하면 재무건전성이 높아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본은 부채보다 자금 조달금리가 높고 조달 조건도 까다롭기 때문에 발행이 쉽지 않다. 따라서 위 조건에 해당하는 채권을 발행하면서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필요한 자금을 좀 더 쉽게 조달하면서 동시에 재무제표상 표시되는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 다섯 가지 조건 가운데배당(이자) 지급율의 가산금리(step up)’란 채권을 발행한 은행이 정해진 배당(이자)률을 상향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발행 후 5년 동안은 이자율이 5%지만 그 이후에는 10%가 되는 채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만약 이 가산금리 조건으로 채권을 발행한데다 조건(1)에 따라 만기가 없거나 만기가 아주 길다면 5년 이후 금리가 매우 높아진다. 발행 은행 입장에서는 이렇게 부담이 되는 채권을 계속 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 5년이 되는 시점에 채권을 상환할 강력한 유인이 발생한다. 현실적으로는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발행 후 5년이 되는 시점에 상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자본인 셈이다.

당시 은행들의 재무건전성이 극히 악화된 상황이었으므로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식 아닌 채권 형식의 영구채를 발행해서 시중에 파는 것이 주식을 발행하는 것보다 자금 조달에 유리했다. 그러면서 부채비율도 낮출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당시 발행한 영구채권은 은행권에 한해 특별히 허용된 것이었으므로 은행 외 기업들은 발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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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학

    최종학acchoi@snu.ac.kr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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