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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헤쳐 나가는 힘과 혁신을 만들어가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런 힘의 원천은 다양한 곳에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근대부터 부각되는 중요한 원천은 바로 기업가정신(企業家精神·entrepreneurship)이다. 박근혜 정부의 중소기업청장인 한정화 전 한양대 경영대 교수는 <기업가정신의 힘(21세기북스, 2011)>에서 “인류 역사를 통해 볼 때 기업가정신은 부의 창출과 일자리 제공을 통해 개인의 삶을 향상시키고 지역사회를 발전시켜왔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은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보와 보수 등의 이념적 장벽을 넘어서 기업가주의(entrepreneurism)를 향해 나가고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창업국가 미국(Start-up America)’을 국가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 산업화 시대의 기업가정신을 넘어서는 새로운 기업가정신, 즉 ‘지식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기업가정신’에는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한정화 청장이 제시하는 필수 요소 ABC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A는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다. 기업가정신의 핵심 요소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과 태도다. 불황기에 더욱 필요한 역량인 역경지수(AQ)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역량뿐만 아니라 역경에 빠진 동료와 부하들을 함께 끌고 가는 역량을 의미한다. 혼자만 버티는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원들과 함께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톨츠(Stolz) 박사는 미국의 성공한 기업가들은 역경지수가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역경을 만났을 때 주저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팀을 추슬러서 전진할 수 있는 리더의 역량이 기업의 성공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벤처투자자(venture capitalist)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기업가의 자질과 역량을 중요하게 고려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위기 상황에서 끈질긴 노력을 할 수 있는가’다. 기업을 하다 보면 위기는 오게 마련이고 이때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역경지수가 높은 기업가의 한 예가 바로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회장이다. 창업 초기 자신이 구상한 프리미엄 커피 체인점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슐츠 회장은 한 해 242명의 잠재적인 투자자를 접촉했지만 217명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간단히 말해서 10명 중에 9명이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려 소수에게 받아낸 투자금으로 사업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는 자신이 좌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열패자의 정신력(underdog spirit)’으로 설명했다. 언더독(underdog)이란 싸움하다 밑에 깔린 개, 즉 열패자를 의미한다.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 출신으로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과 역경을 경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거절당하는 데 익숙했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잃지 않았다. 하워드 슐츠의 사례를 보면 기업가정신의 첫째 요소인 역경지수는 역(逆)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기업가들만이 강한 기업가정신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맹자의 ‘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하늘이 큰 임무를 내리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견디기 힘든 훈련을 시키는데 이는 하늘의 사명을 감당할 인내력을 키우고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역경을 버텨내는 힘이 없다면 어떤 임무를 맡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깊은 골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기업가정신의 A다.
그렇다면 B는 무엇인가. 기업가정신의 B는 균형감각(Balanced Way of Thinking)이다.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필요한 요소가 여럿 있지만 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시너지가 발휘될 때 높은 성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균형감각’은 성공적인 기업가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균형감각이란 단기와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분과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 조직을 전체 차원에서 보고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중용(中庸)이다. 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의미한다. 바로 균형감각을 말한다. 그래서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선양(禪讓)하면서 “하늘의 운수가 그대에게 있으니 진실로 그 중(中: 지나침도 없고 모자라지도 않는 핵심)을 잡아라”고 말하며 윤집궐중(允執闕中)을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강조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도 중용의 도를 추구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도리(道理)와 이치(理致)에 합당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합리(合理)를 경영이념으로 제시했다. 이병철 회장은 26세에 사업을 시작해서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마산에서 시작한 정미업이 번창했지만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대출자금의 회수로 위기를 겪고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병철 회장은 ‘경영 4원칙’을 정립했다. 첫째,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정세 판단이 정확해야 한다. 경기전망, 정치변동 등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사업에 대한 합리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무리한 계획은 실패하기 쉽기 때문에 계획은 원칙과 이치에 합당해야 한다. 셋째,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아무리 합리적인 계획을 세워도 뜻하지 않은 변수로 계획과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경우가 있다. 이를 대비한 제2, 제3의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대세가 기울었을 때는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이병철 회장의 기업가정신 핵심은 합리추구의 정신이었다. 그는 사업을 할 때 항상 이치에 맞는가를 검토했다. 기업의 본질상 혁신과 창조가 필요하지만 이들 모두 철두철미한 합리주의와 경제적인 계산이 토대가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혁신과 창조라고 해서 무턱대고 새롭다는 것만으로는 기업성이 없다. 새로운 기술은 경제성이 맞을 때만 기업적 의미를 갖는다.” 이병철 회장의 말은 기업가정신의 B, 균형감각과 중용을 배울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가정신의 C는 도전정신(Challenge Spirit)이다. 기업을 영어로 모험이라는 뜻이 담긴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나 벤처(venture)라고 한다. 사업과 모험은 둘 다 미지의 영역을 대상으로 하고 위험이 따르며 보물(treasure)과 즐거움(fun on the way)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그래서 모험을 해야 하는 기업가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는 도전정신이다.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이 부정적 의견을 가진 직원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해보기나 했어?”다. 이런 정주영 회장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두 가지가 있다.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주한 주베일항만 공사는 공사 금액만 해도 당시 우리나라 예산액의 절반에 맞먹는 9억3000만 달러였다. 20세기 최대 역사로 일컬어진다. 여기에 투입된 연 인원만 250만 명에 이르고 장비와 자재는 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래 최대 규모였다. 이 공사를 위해 현대건설은 매년 1000여 명씩을 신규 채용해야 했다. <브랜드, 행동경제학을 만나다(곽준식 지음, 갈매나무, 2012)>에서는 현대의 주베일항만 공사를 이렇게 전한다. 그 무렵은 제1차 석유파동 이후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넘쳐나는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던 중동국가들이 여러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려던 시기였다. 그러나 낮엔 너무 더워서 일을 할 수가 없고 건설공사에 필요한 물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느 나라에서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한국도 공무원들을 보냈지만 다녀온 공무원들은 역시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했던 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다. 중동은 1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 모래가 지천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쉬워서 ‘건설공사를 하기 제일 좋은 땅’이라는 것이다. 그는 부족한 물은 “다른 곳에서 공수해오고 뜨거운 더위는 낮에 자고 밤에 일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도전정신과 발상의 전환으로 시작된 주베일항만 공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후 현대건설은 두바이 발전소 등 중동 일대 대형 공사를 잇달아 수주하며 5년간 약 51억6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하기 싫어 하는 사람은 구실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정주영 회장은 방법을 찾았고 위기에서 기회를 만들어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조선업 진출이다. 정주영 회장은 조선업에 전혀 경험이 없었지만 종합건설회사의 역량이 조선업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도전했다. 불과 몇 만 t급의 배도 건조한 경험이 없는 한국에서 20만 t급의 배를 건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정주영 회장이 바클레이은행의 차관 도입 과정에서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가지고 A&P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설득한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던 실적과 두뇌가 있소. 영국의 조선 역사는 1800년대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300년이나 앞서 있었소. 다만 쇄국으로 산업화가 늦어졌고 그동안 아이디어가 녹슬었던 것이 불행한 일이지만 잠재력은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또 황량한 바닷가에 소나무 몇 그루와 초가집 몇 채가 있는 백사장을 찍은 사진을 가지고 그리스의 거물 해운업자인 리바노스를 설득해 26만 t짜리 배 두 척을 수주했다. 조선업의 불모지에서 30여 년 만에 세계 최고의 회사를 일구어낸 것은 바로 이러한 정 회장의 강력한 도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주영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위기라는 말에는 위험과 기회의 의미가 담겨 있다. 위험이라 생각할지, 기회라 생각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도전하는 자는 위기를 기회로 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어떨까. 1996년 미국의 창업 전문 잡지 <Inc.>의 젠드론(Gendron)이 피터 드러커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왕성한 나라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New Society(피터 드러커, 현대경제연구원북스, 2007)>를 보면 경영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이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한국에는 산업이 거의 없었다. 일본이 수십 년간 한국을 지배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지 않아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국전쟁의 결과로 남한은 폐허가 됐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20여 개 산업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이르렀고 조선업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세계 리더가 됐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다. 기업가정신을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현재 불황과 역경이 과연 무슨 문제이겠는가. 가장 쉬운 ABC를 가지고 ‘역경’을 넘어서는 ‘균형감각’의 기업가정신으로 새로운 역사 창조에 ‘도전’해야 할 때다. 책(冊) 읽고 행복하시길….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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