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ia & Business
A사 이야기
올해로 창업 10년을 맞은 A사는 150여 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는 IT 분야 벤처기업이다. 탄탄하게 확보한 시장이 있고 재무상태와 경영권도 꽤 안정된 상태로 새로운 분야로의 진출도 꿈꾸는 기업이다. 벤처기업의 성장단계상 성공에서 도약 단계로 넘어서고 있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창업 때부터 A사를 이끌어 온 L 사장은 아직도 회사 내 그 어떤 직원보다 업무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L 사장은 평일에는 오후10시 이후에 퇴근하며 휴일에도 거의 사무실에 나온다. 다만 휴일에는 가족과 저녁을 먹기 위해 6시 전에 사무실을 나선다. L 사장은 하루에 50여 통 이상의 e메일을 보내고 두세 시간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안으로는 직원들을 독려하고 진행 상황을 체크하며 미진한 부분이 보이면 부서를 가리지 않고 본인이 개입해 업무를 지휘한다. 밖으로는 이전고객, 영업 중인 고객, 미래 고객 등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며 안부를 챙긴다. 일주일에 술을 거르는 날은 고작 하루이틀 정도다. A사의 급여 수준은 동종업계 평균을 조금 상회하고 있으나 L 사장은 창업 초기의 헝그리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본인의 급여 수준은 매우 낮게 유지하고 있다. 직원들은 L 사장의 이러한 업무 방식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L 사장이 일에 역동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나 일을 대하는 자세가 늘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전장의 장수와 비슷하며 일을 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P 이사는 5년 전부터 A사의 경영지원실을 맡고 있다. 스태프 조직의 확장을 극도로 꺼리는 L 사장의 성향 때문에 6명의 직원으로 총무, 재무/회계, 인사를 꾸려가고 있다. 기술이 뿌리가 된 회사 특성상 경영지원을 담당하는 P 이사의 급여는 다른 부서 임원에 비해 낮은 편이다. P 이사는 업무량이 꽤 많은 편이지만 L 사장과 같은 패턴으로 근무하지는 않는다. 일주일 중 야근을 하는 경우는 한두 번 정도이며 주말근무는 극도로 꺼린다. 업무 특성상 사내 여러 부서 사람들과 많은 소통이 필요한데 P 이사는 저녁 술자리보다는 점심식사나 티타임을 통해 사람들과 돌아가며 어울리는 편이다.
L 사장은 P 이사의 업무적 능력이나 인간적 성품을 높게 평가하지만 이러한 근무 패턴, 즉 회사를 위해 좀 더 헌신적으로 뛰지 않는 모습에는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 P 이사가 가진 능력이라면 회사를 위해 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텐데 P 이사는 일정 업무 이상을 넘어서지 않으려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L 사장은 P 이사가 늘 밝은 표정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 회사에 딱히 큰 불만은 없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P 이사는 L 사장의 헌신적 노력은 인정하지만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L 사장의 업무 연락에는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 L 사장은 자정을 넘은 시간에도 매우 소소한 일을 체크하기 위해 P 이사에게 전화를 한다. 이는 휴일에도 예외가 없는데 때로는 매우 신경질적으로 P 이사를 몰아붙이곤 한다.
중독(Workaholic)과 자족(Satisfied) 사이
A사의 상황을 읽고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여러분 또는 주변의 누군가가 L 사장이나 P 이사와 오버랩되지 않는가? 이번 글에서는 업무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에 업무에 빠진 적이 있다면 이 글을 좀 더 심도 있게 읽을 필요가 있다.
러셀(Russell, 2003)은 개인의 정서 상태를 <그림 1>1 과 같이 분류했다. 이 그림에서 가로축은 업무에 임하는 마음이 즐거운 상태인지, 불쾌한 상태인지를 의미한다. 세로축은 활기가 있는지 무력한지를 나눈다. 이렇게 나눠보면 업무에 임하는 당신의 상태는 크게 A, B, C, D의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된다. 원 테두리에 적힌 정서 상태는 각 영역에서 느끼는 감정을 대표한다.
A사의 L 사장과 P 이사는 러셀 모델의 어느 영역에 해당될까? L 사장은 활기차게 많은 업무를 추진하고 있으나 업무에 임하는 자세 또는 주변에서 느끼는 에너지가 즐거움보다는 불쾌함에 가깝다. 따라서 L사장은 A영역에 해당된다. P 이사는 주변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업무에 임하는 자세가 유쾌하지만 소극적인 업무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P 이사는 D영역에 해당된다. A사에 있는 다른 직원들의 시각에서 보면 L 사장이 자신들을 날카롭게 몰아붙이거나 업무 현황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P 이사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업무에 만족하고 있으며 크게 돌출돼 나서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고관여로 승화 vs. 직무탈진으로 추락
러셀 모델에서 A영역은 업무 중독에 해당되고 D영역은 업무에 대한 자족 상태에 해당된다 (Schaufeli, 2011). 즉, L 사장은 업무 중독이며 P 이사는 그저 자신의 업무에 자족하고 있는 상태다. 이론을 통해서 설명했으나 A사 이야기만 읽어봐도 L 사장과 P 이사의 상태는 이미 충분히 짐작했으리라 본다. 그러면 나머지 B, C영역은 어떤 상태인가? B영역은 업무에 대해 즐거움과 활기가 넘치는 상태, 업무에 대한 긍정적 몰입 상태, 즉 고관여(Engagement) 상태에 해당된다. C영역은 무기력하며 업무에서 즐거움도 없는 상태로 직무탈진(Job burnout)2 상태에 해당된다.러셀의 정서 모델을 기초로 업무에 임하는 정서적 상황을 되짚어 보면
<그림 2>와 같다.
당신의 상태는 어디에 해당될까? 다음의 <표 1>을 보고 각자 상태를 체크해보자.
<표 1>에서 질문 1∼5번에 대한 응답의 총합을 I값으로 놓고 질문 6∼10번에 대한 응답의 총합을 Ⅱ값으로 놓는다. 이 수치를 바탕으로 <표 2>와 같이 본인의 현재 상태를 판단하면 된다. 예를 들어 I값이 12점, Ⅱ값이 8점이면 자족상태에 해당된다.
업무중독 상태에 있는 L 사장, 자족 상태에 있는 P 이사. 이 둘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또는 어떻게 돼야 할까? 가장 긍정적인 상황은 모두 고관여 상태로 변화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직무탈진으로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도 가능하다. 직무탈진을 발생시키는 항목에는 업무 부하, 통제, 보상, 교류, 공정성, 직무 가치의 여섯 가지가 포함된다. 각 항목에서 직무탈진을 유발하는 요인과 고관여로의 전환을 위한 처방은 <표 3>과 같다(Maslach & Leiter,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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