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는 ‘양날의 칼’
Based on “Performance pressure as a double-edged sword: Enhancing team motivation but undermining the use of team knowledge” by Gardner, H. K.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2012년 vol. 57, no. 1: 1-46)
왜 연구했나
성과주의는 90년대 말 이후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해 이제 기업은 물론 정부기관, 병원, 학교 등 거의 모든 조직에서 인사 및 평가제도의 기조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성과주의의 공과에 대한 논쟁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최근 국내 주요 대학들이 아시아 및 세계대학 평가순위에서 괄목할 만한 도약을 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각 대학의 성과평가 강화가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성과주의와 성과압력이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새로운 지식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미래의 경영환경에서도 성과주의는 지속적인 효과를 만들어 낼 것인가? 더 이상 추종할 대상이 없어지고 이제 스스로의 역사를 써나가야 할 국내 기업들이 계속 성과압력을 강화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연구했나
하버드대의 가드너(Heidi K. Gardner) 교수는 집단상황에서 성과압력이 구성원들의 지식공유 및 사용에 미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를 발표했다. 성과압력이란 우수한 성과를 산출하기 위해서 결과에 대한 책임, 평가와 감독의 강화, 성과와 연동된 보상을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책임의 강조나 평가강화는 구성원의 노력과 업무몰입을 증가시켜서 팀 성과를 향상시킬 것이다. 또한 고성과를 강조하는 성과압력은 업무기획이나 지식조정과 같은 팀 전체의 노력을 유도해 역시 팀 성과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성과압력은 팀원들의 위험회피 성향을 증가시켜 상식적이고 손쉬운 특정 유형의 지식만을 공유 및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부분 최적화된 성과에 머무르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즉, 이 연구는 성과압력이 성과향상과 성과저하라는 양면적 효과를 어떻게 동시에 만들어 내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성과주의 관련 연구에서 성과압력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면이 혼재된 결과를 산출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규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연구했나
가드너 교수는 계량적 연구와 질적인 연구를 포함한 복수의 연구방법을 동원해 성과압력과 지식공유/사용에 관한 포괄적인 설명을 시도했다. 먼저, 한 유명 회계법인의 72개 회계감사 팀과 컨설팅 팀을 대상으로 두 차례에 걸쳐 설문을 통한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연구의 초점은 각 팀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일반적 전문성(general expertise)과 영역특수적 전문성(domain-specific expertise)을 두 가지 유형의 지식으로 구분해 측정한 것이다. 일반적 전문성은 공식 교육을 통해 얻은 학위나 자격, 회계법인 근속년수에 따라 자연스럽게 획득된 지식을 말하며 영역특수적 지식이란 특정 고객사와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보다 전문적이고 복합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가드너 교수는 컨설팅 개시 후 최초 3일 동안에 팀원들의 일반적 전문성과 영역특수적 전문성의 정도를 측정한 다음, 컨설팅 종료 직전 1주일 동안 두 종류의 지식이 어느 정도 사용됐는지를 측정했다. 또한, 동일원천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성과압력 정도는 컨설팅 팀을 감독하는 선임파트너로부터, 팀 성과는 고객사의 주요 담당직원을 통해 측정했다. 다음으로, 팀원들이 특정 유형의 지식을 더 사용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한 유명 전략컨설팅 회사의 6개 프로젝트 팀을 대상으로 심층 사례연구를 실시했다. 연구자가 모든 팀의 컨설팅 전 과정에 참여하면서 총 81시간 동안 45회의 업무회의를 모두 녹화하고 기록했다. 이를 통해 얻은 팀원들의 회의 중 코멘트, 태도, 제스처 등을 별도로 마련된 기준에 따라 코딩해 지식공유와 사용에 관한 데이터를 구축했다.
무엇을 발견했나
계량적 연구와 참여관찰을 통한 사례연구에서 밝혀진 결과는 가드너 교수의 예측과 일치했다. 먼저 성과압력과 팀 성과의 일차적 관계는 예상대로 성과압력이 증가함에 따라 팀 성과도 증가했으며, 이는 업무기획, 사기진작 등 팀 내 조정활동을 통해 매개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성과압력이 두 유형의 지식사용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결과가 발견됐다. 성과압력이 높아지면 일반적 지식사용은 증가하는 반면 영역특수적 전문지식의 사용은 오히려 감소했다. 즉, 성과압력은 한 종류의 지식사용은 희생시키면서 특정 유형의 지식만을 사용하도록 만든다는 것이 밝혀졌다.마지막으로 성과압력과 두 유형의 지식을 동시에 투입해 팀 성과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본 결과 성과압력과 영역특수적 지식은 여전히 팀 성과를 향상시켰지만 일반적 지식은 아무런 효과를 미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팀 성과가 향상되는 주요 원인은 영역특수적 전문지식이지 일반지식은 아니라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성과압력은 왜 구성원들로 하여금 성과향상에 더 유용한 특수지식은 사용하지 않으면서 일반적인 지식만을 사용하도록 할까? 이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한 심층사례연구 결과 다음 네 가지 요인이 발견됐다. 즉, 성과압력에 직면하면 구성원들은 합의를 이루려는 동기가 증대되며, 공통의 지식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업무완수에 몰입하게 되며, 팀 내 위계에 쉽게 순응하게 됨으로써 위험부담이 있는 영역특수적 지식보다는 안전하고 누구에게나 상식적인 일반지식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이 연구의 결과는 성과주의나 성과압력이 갖고 있는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집단상황에서 사람들이 강한 성과압력을 느끼면 잘 해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증가해 업무에 대한 몰입이 높아지고 팀원 간 업무조정이나 지식공유, 사기진작과 같은 효율적인 팀 프로세스가 구축됨으로써 성과를 향상시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성과압력을 느끼면 팀원 누구나 최적의 성과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느끼는 복합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고 사용하기보다는 각 팀원이 모두 갖고 있고 공식교육이나 회사의 업무 데이터베이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반적인 지식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최고의 성과에 못 미치는 그저 그런 성과만을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심지어 팀원 모두가 다른 팀원이 프로젝트 성공에 유용한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더라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많은 기업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의뢰한 컨설팅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결국 너무나 상식적인 제안이 담긴 보고서를 손에 들고 실망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위협-경직성 이론(threat-rigidity theory)이 말해주듯이 사람들은 위험상황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는 일상적이고 습관화된 과거의 루틴(routine)을 반복하게 된다. 또한, 성과압력을 하나의 위협으로 느끼게 되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참신한 (그러나 불확실한) 시도보다는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뻔한 대안을 선택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성과주의가 양날을 가진 칼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어느 쪽 날이 더 중요한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게임의 규칙이 주어진 상황에서 효율성과 생산성 경쟁을 해야 한다면 구성원의 노력과 몰입수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날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부 국내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게임을 해야 한다면 창의적인 지식생산과 최고의 성과를 방해하는 칼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평가순위가 급상승했다는 국내 대학들이 논문의 양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세계 학계가 주목할 만한 우수한 논문이 많지 않은 것은 교수들의 능력부족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 최고의 학술지에 도전한다는 것은 길게는 수년 이상 그저 그런 논문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성과주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북미에서 시장원리에 기초한 성과주의를 포기하고 장기고용과 연공중시, 보상격차의 축소, 집단단위 평가와 자율관리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community)형 인사시스템으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무엇이든 지나쳐서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성과주의 실행과 강화에 골몰해 있는 우리 기업들에는 아직 먼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성과주의가 아니라면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답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 성과기준을 몇 % 올릴까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경영자들도 언젠가 이 고차방정식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사람들을 경영하는 행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정명호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 myhoc@ewha.ac.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방문교수 등을 거쳐 현재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된 연구분야는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네트워크, 인력다양성 관리, 창의성과 집단성과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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