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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사과와인

농업, 제조, 서비스 결합한 6차산업 시간 비용 줄이고 리스크 낮춘다

조진서,유학열 | 113호 (2012년 9월 Issue 2)

 

편집자주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서진원(서울대 응용생명화학과 4학년), 성진원(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술 빚는 것처럼 와인사업 역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기업 경영과는 다른 눈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술을 찍어내는 술공장이 아니라 술을 빚는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충남 예산의은성농장에서 직접 키운 사과로 와인을 담그는 예산사과와인의 정제민 부사장이 인터뷰에 앞서 기자에게 이런 당부부터 했다. 그가 캐나다에서 배워온 전통 양조법으로 만드는 예산사과와인은 복분자주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전통 과실주와는 달리 알코올 희석 과정이나 첨가제, 색소 첨가 과정이 없다. 포도밭이 딸린 서양의 와이너리처럼 이곳에서도 눈앞의 과수원에서 재배되는 예산 사과만을 원료를 쓴다. 집채만한 지하 스테인리스 발효조(1만 리터 용량)에서 1년 동안 발효, 숙성돼 나오는 와인의 색깔은 잘 익은 사과 속살 같은 황금색이다. 맛은 달콤한 편으로 술자리에서보다는 식후에 먹는 디저트 와인으로 적합하다.

처음 농장에서 수확한 사과로 와인을 생산한 것은 2005년이었고 제품화까지는 5년이 걸려 2010년 말에추사라는 브랜드로 출시됐다. 이는가을사과라는 의미와 함께 추사 김정희가 예산 출신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추사와인은 상품화 다음해인 2011년 농식품부와 전통주 진흥협회에서 주관한 우리술 품평회에서 장려상(4)을 받아 품질을 인정받았다. 갓 만들어진 술이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기뻐하긴 이르다. 정 부사장은 아직 2, 3년은 더 기다려야 와인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첫해(2011) 와인 매출은 약 8000만 원이다. 와인을 팔아 와이너리 건설에 들어간 114000만 원(이 중 89000만 원은 지자체에서 지원)을 회수하려면 긴 세월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는 사업 시작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그런데 수익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와인의 재료인 은성농장 사과의 매출이 평년 대비 30% 이상 증가해 18000만 원을 기록했다. 와이너리가 사과농장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와이너리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와인뿐 아니라 사과도 택배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은성농원의 사과만으로는 직거래 주문을 맞출 수 없어 인근 다른 농가에서 재배한 사과까지 팔아주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2012년 사과 판매 매출은 25000만 원, 거기에 이웃 농가에서 재배한 사과의 판매대행 매출이 7000만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직거래의 증가는 도매업자에게 떼어줘야 하는 유통마진을 절약할 수 있어 매출뿐 아니라 순이익도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산 와인의 꿈을 위한 도전

정 부사장은 대학 재학 중이던 1980년대 후반에 개인사정으로 한국을 떠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12년간 거주하면서 와인 양조법을 배웠다. 캐나다에는 소규모 와이너리도 많고 집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직접 담가서 먹는 문화도 보편화돼 있어서 자연스럽게 양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어느 정도 재미를 붙인 다음에는 와인교육기관에 등록해 6개월간 정식 교육을 받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와인으로 사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2001년에 한국에 돌아오자 그는 이민유학 관련 사업을 시작했고 취미 삼아 다음 인터넷 카페에 와인 만들기 동호회를 열었다. 한국에서는 와인이 대중화되기 전이라 와인뿐 아니라 다른 과일로 집에서 쉽게 담가 먹을 수 있는 과일 발효주를 만드는 법도 회원들과 공유했다. 호기심에, 혹은 술에 관심이 있어 카페에 가입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두 번씩 강연을 했고 모임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자 관광버스를 대절해 전국 각지의 전통주를 마시러 다니는 주말 모임을 갖기도 했다.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정 부사장이 안타깝게 생각한 것은 우리나라의 과실주 문화가 왜곡되고 또 침체돼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술을 담가 먹는 다채로운 전통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제사문화 때문에 집집마다 자기만의 비법으로 술을 담갔고, 또 주막에서도 막걸리 같은 술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런데 일제시대 때 일본이 세금을 걷기 위해 주류면허가 없으면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하면서 순식간에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소주와 맥주 위주로 단조롭게 바뀌어버렸습니다고 그는 말한다. 술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 집에서 술을 담그다가 적발되면 큰 처벌을 받았다. 그래서 집에서 과실주나 인삼주, 뱀술 등을 만들어 먹을 때도 알코올을 자연스럽게 발효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든 플라스틱 통에 소주를 부어놓았다가 마시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엄밀히 말하면 과실주가 아니라 소주 칵테일인 셈이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술 문화가 다시금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TV드라마 등에 힘입어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와 함께 전통주와 맥주, 와인을 집에서 담가 먹는 이른바홈브루’, 그리고 소규모 맥주 양조장인마이크로 브루어리와 지역특산물을 이용한 복분자주 등 전통주 양조도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농산물 소비를 늘리기 위해 양조농가들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했다. 이러한 양조문화 열풍을 타고 정 부사장이 운영하는 와인 만들기 인터넷 카페의 회원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 1만 명을 돌파했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맥주 만들기 동호회(맥만동)’ ‘와인 만들기 동호회(와만동)’ ‘전통주 만들기 동호회(전만동)’의 회원들이 모여 서로가 만든 술을 맛보는 이른바삼만동 번개도 애주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정 부사장이 와인사업을 본격적으로 구상한 것도 이때쯤이다. “예전에는 강연을 하면 취미로 술을 담그려는 동호회 회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농사짓는 분들이나 정부기관 관계자들도 제 강연을 많이 듣게 됐습니다. 그걸 보니 이제 시장이 커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캐나다에서 12, 또 한국에서 5년 동안 갈고 닦은 노하우로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와인제조용 포도와는 품종이 달라 술로 만들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서 재배한 원료를 수입해 술을 만들면 만드는 사람이나 사먹는 사람이나 감동을 느낄 수 없고 가격 면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갖춘 수입산 와인과 경쟁하기 힘들다. 그는 몇 년 전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포도와인의 꿈을 완전히 접었다.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부러 남부지방의 소규모 와이너리를 골라서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작은 곳도 몇 십만 평인 겁니다. 한국의 포도밭은 기껏해야 몇 천 평인데, 이래서야 도저히 규모의 경제 때문에 경쟁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산 포도와인과 경쟁하지 않으려면 우리나라에서 나는 작물을 선택해야 했다. 여러 가지 과일을 놓고 가능성을 타진하다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닿은 것이 사과다. 국산 사과는 세계적으로 알아줄 정도로 맛과 향이 뛰어나고 매년 수확량도 안정적인 편이다. 특히 그의 장인(서정학 대표)은 수십 년째 충남 예산에서 은성농원을 운영하며 특등급 예산사과를 생산하고 있어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서구에서 사이다(cider)라고 불리는 사과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낮고 맛이 상큼해 가벼운 음료나 식후 입가심용으로 많이 소비된다. 정 부사장은 사과농사도 지으면서 그 사과로 만든 와인을 함께 팔고 또 농장과 와이너리 투어와 농장체험까지 한다면스토리텔링을 통해 소비자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국내에도 방문객을 받는 와이너리가 여러 곳 있지만 은성농원처럼 농장과 와이너리가 한 장소에 있는 곳은 드물기 때문에 독특한 체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좋은 와인을 담글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2010년 완공된 와이너리의 지하에는 거대한 발효실과 저장고가 들어갔고 상부에는 강의실과 콘도 형태의 숙박이 가능한 방, 넓은 식당을 갖춰 단체 방문객들이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매일 체험코스를 열어 어린이들이 사과파이를 직접 만들어 굽고, 잼을 만들고, 사과를 딸 수 있으며 가족단위로 사과나무도 분양한다. 또 인근의 대형 온천인 리솜스파캐슬(구 덕파스파캐슬)의 협조를 받아 무료로 와인 판매장과 체험장을 설치하고 그곳으로부터 와이너리 투어 방문객을 유치하고 있다.

출하 첫해인 2011년의 결과는 고무적이다. ( 1) 무엇보다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도움이 된다. 덕산스패캐슬과의 협력 덕분에 한 해 동안 약 15000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와인뿐 아니라 종종 은성농원의 사과도 택배로 주문해 사과의 직거래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 사과농사와 와인, 체험관광서비스를 한군데 모아놓으니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와만동카페 회원들의 주문이 꾸준한 것도 큰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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