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for CEo -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 강연
편집자주 기업 경영에 인문학적 소양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컨베이어벨트로 상징되는 대량생산과 원가절감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고객을 감동시키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돼 가고 있습니다. 특히 경영학계와 기업인들 사이에서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유교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DBR은 SK아트센터 나비와 CWPC서평(徐評)이 공동 주최한 최고경영자 교육 과정인 ‘문화와 경영’ 프로그램(주임교수 서진영)을 지상 중계합니다. 제1부 프로그램인 ‘논어(論語)와 경영’ 과정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의 두 번째 강연 내용 일부를 요약합니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씀들을 따져서(論) 그중 내용이 비슷한 것끼리 모아 놓은 것이다. <논어>에 가장 처음 나오는 문장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다. ‘배우고 때맞게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그런데 배운다는 게 반드시 기쁜 일인가? 지겨운 일일 수도 있고 따분한 일일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때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는 지겨워 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렇다면 공자가 배우는 게 기쁘다고 했을 때 그 배운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격을 향상하기 위해서’라는 진부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들을 모아 놓고 시험을 칠 때에는 감독관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대학생들을 모아 놓고 할 때에는 분명 문제가 생긴다. 공부를 해서 인격이 향상됐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하향된 셈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왜 했는가? 답은 경쟁이다. 경쟁에서 이겨서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한 것이다. 좋은 대학은 왜 가야 하는가?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취직 안 하고 시집가겠다는 사람도 좋은 곳에 시집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결국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함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듯이 이런 경쟁에도 마지막은 있다.
사람들은 남은 시간이 많다는 착각에 빠져 이런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어’ 하다가 50∼60년이 지나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간이 아직 많다고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만일 불치의 병에 걸려 삶이 이제 한두 달 정도 남았음을 알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던 일을 계속하고 가던 회사를 계속 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은 지금까지 달려오던 일상을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방황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철학적 방황은 굉장히 중요하다. 예전에는 아이가 태어나도 부모가 1∼2년간은 호적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아이가 홍역을 앓고 나야 이제 살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호적에 올렸다. 즉, 홍역을 치르기 전에는 태어난 아이가 사람이 될지 안 될지 불확실했다는 것이다. 철학적 방황 역시 인간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결정한다. 철학적 방황을 진지하게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은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 훌륭한 사람은 항상 나의 마지막 순간이 코앞에 온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느낌이 오면 성공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어지고 왕이 되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게 된다. 잠깐 왕 자리에 앉았다가 곧 사라지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석가모니도, 예수도, 공자도 방황을 했다. 방황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생에 대한 자가진단을 안 해봤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방황하고 있을 때 옆에 누군가 같이 방황하고 있다면 의지가 되고 쉽게 친해진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활짝 웃으면서 나타났다고 해보자.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저 워커힐 뒷산에 가서 무슨 나무 뿌리를 뜯어먹었더니 나았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덥석 붙잡고 물을 것이다. ‘무슨 나무냐. 어떻게 먹느냐’라고 캐물을 것이다.
방황하는 인간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공자다. 만일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에게 누군가 나타나 ‘나는 뒷산에 있는 나무 뿌리를 뜯어먹었더니 병이 나았다’고 말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에게 ‘무슨 나무냐, 어떻게 먹느냐, 어디 가서 구할 수 있느냐’고 캐물을 것이다. 그가 떠나려 해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논어>를 읽을 때 그런 사람, 공자를 만난다.
그런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배워서 알았다’고.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소학이라고 한다면 공자가 말하는 ‘학’은 대학이다.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게 된다. 그래서 <논어>의 첫 구절에 배움이 기쁘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불교에서는 ‘고통’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것도 <논어>와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배우니까 기쁘다고 말했고 이 얘기는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고통이라는 뜻이다.
행복한 마음 경영, 한마음 경영을 하라
‘주식으로 20억 버는 방법’ ‘부동산은 아름다운 꽃이다’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요새 잘 팔리는 책들의 제목은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에 안 맞는 책, 돈 되는 이야기가 없는 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논어>다.
마음을 챙기겠다고 결심을 하고 <논어>를 펴면 세상에 그보다 좋은 책은 없다. 마음을 챙기는 방법은 첫째, 공부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음을 방치해 뒀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손가락을 다쳤다고 해도 이것을 치료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데 마음을 30년, 50년 이렇게 방치했으니 이를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즐겁고 기쁨을 느끼게 된다. 부산이 멀더라도 그것이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기차 안에서도 즐거울 것이다. <논어>를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방법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인생에서 항상 경쟁을 해야 하니까, 또 경쟁에는 정보가 중요하니까 늘 우리의 촉각은 외부를 향해 있어야 했다. 향외(向外)라는 것인데 이제는 향내(向內), 즉 내 마음속을 향해서 관심을 가지는 방법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늘 면접을 한다. 입사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식당을 고를 때도, 옷가게를 고를 때도 사람들은 종업원의 얼굴을 보고 결정한다. 즉, 모든 만남이 곧 면접이다. 여기서 면접점수는 얼굴의 점수인데 얼굴은 ‘얼의 꼴’이라는 말이다. ‘얼’은 마음이기 때문에 ‘얼꼴’은 마음의 모습이다. 면접점수는 외모가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나처럼 생각하면 누구를 만나도 계산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상대도 부담 없이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사랑이 몸에서 퍼져 나오는 사람은 ‘한마음’을 회복한 것이고 면접점수가 높아서 어딜 가서 무엇을 해도 잘되게 된다. 어떤 일을 해도 이상하게 잘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어떤 일을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기도 한데 이것은 노하우의 차이가 아니고 바로 이런 면접점수의 차이, 마음 모습의 차이다.
그 다음에는 일이 달라진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돈 때문에 일을 하고 일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돈을 많이 주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 간다. 그런데 욕심이 없어지면 그 사람은 일을 돈 때문에 하지 않게 되고 마음이 일 그 자체로 한다. 그러면 일이 재미있게 되고 돈을 따지지 않게 된다.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에서 일하는 박효남 주방장이 150명의 요리사를 거느리는 총주방장, 상무가 됐다. 출근시간이 오전10시라면 그는 오전7시에 출근해서 설거지하고 재료를 다듬었다. 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열 시간 이상 일해도 시간가는 줄 몰랐기 때문에 요리 실력이 크게 늘었고 세계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 그는 40대에 주방장이 되고 50대에 상무가 되는 등 성적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즉, 마음이 일에 있으면 피곤하지도 않고 능력 발휘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이 사람이 다른 데에 가면 안 되니 월급을 올려주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향해서 뛰는 사람에게서는 돈이 달아나지만 내가 행복해서, 내가 즐거워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것을 ‘논어 경영학’ 또는 ‘한마음 경영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과거의 경영학이 돈을 남들보다 어떻게 빨리 얻느냐 하는 연구를 했다면 앞으로의 경영학은 내가 행복하고 내가 즐거우면 돈이 따라온다는 방식으로 변할 것이다. 욕심이 없어져야 진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연습의 중요성
이렇듯 진리는 ‘한마음’을 얻는 것이다. 늘 여유롭게, 건강하게, 느긋하게, 심지어 몸이 늙어가는데도 그걸 늙는다 생각하지 않고 자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해도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이런 인생이 되는 것이 한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지에 이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것은 마치 수영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몸이 물에 뜬다는 것을 알아도 깊은 물에 들어가라 하면 겁이 나서 들어가지 못한다. 머리로 아는 것은 부족하고 물 먹어가면서 몸이 알 때까지 연습을 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뜬다. 그때 비로소 ‘아! 뜬다!’는 기쁨이 오고 그 다음부터는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해도 들어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때에 늦지 않게 늘 양심과 욕심의 갈등에서 욕심을 버리고 행복을 느끼는 연습을 해야 한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아, 행복하다’ 생각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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