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자본주의와 창조

仁은 곧 인터랙션… 생명경제 시대를 열자

109호 (2012년 7월 Issue 2)




편집자주

기업 경영에 인문학적 소양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컨베이어벨트로 상징되는 대량생산과 원가절감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고객을 감동시키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돼 가고 있습니다. 특히 경영학계와 기업인들 사이에서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유교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DBR SK아트센터 나비와 CWPC서평(徐評)이 공동 주최한 최고경영자 교육 과정인문화와 경영프로그램(주임교수 서진영)을 지상 중계합니다. 1부 프로그램인논어(論語)와 경영과정 중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특별강연새로운 생명경제 시대가 온다내용 일부를 요약합니다. 이번 호 스페셜 주제인 Oriental Wisdom과 맞닿아 있어 다른 글들과 함께 읽어보실 수 있도록 Humanitas 코너에 싣지 않고 Special Report 코너에 싣습니다.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장세민(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와 성진원(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비생명경제의 지배와 대안으로서의 생명자본주의

우리가 살면서 하루 종일 가장 많이 쓰는 것이 무엇일까? (언어)과 돈이다. 하지만 경영자들에게 막상말이 무엇이냐’ ‘돈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거기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언어와 돈, 그리고 법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교환가치이긴 하지만 그 어떤 자연적 근거도 없다. 다시 말해 이 세 가지는 전부 인위적인 것이고 가짜다.

 

애초에 자연에는 언어도, 법도, 돈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은 0도에서 물이 얼고 100도에서 물이 끓는 것처럼 확실한 근거가 있다. 반면 우리가 사용하는 돈은 우리가 돈이라고 규정하고 인정했기 때문에 효력이 있는 것이다. 5만 원짜리가 돈이 되는 것은 우리가 그걸 그렇게 인정하기 때문이지 그 본질은 종이에 글자를 찍은 것에 불과하다. 언어도 그렇다. 한국어, 영어처럼 각 문화권에서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에 언어라 불리는 것이다. 무슨 자연적 근거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우리 현실은 이렇게 자연과 상관없는 언어, , 돈 같은 것들이 지배하고 있다.

 

기업 역시 인간이 조작한, 근거가 없는 것들이 지배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 조작하고 규정한 것들에 인간 스스로가 얽매이고 종속됐다. 여기서 우리는세상이 이렇게 가도록 내버려둬도 되는 것인가하는 비판을 제기해야만 한다. ,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자본주의 4.0’이나따뜻한 자본주의라는 말 같은 어떠한 해결방법의 제시가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던 것,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을내가 지금까지 잊고 있었구나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생명자본주의.

 

‘생명’을 상징성으로 설명해 보자. 인간의 3대 액체는 땀, , 눈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 자유(liberté), 평등(égalité), 우애(fraternité)를 상징한다. 바로 프랑스 국기의 3색이기도 하다. 이 각각의 액체를 어떻게 결합하는가의 문제가 바로 생명의 이야기다.

 

먼저 땀은 산업화와 경제의 원리를 의미한다. 인간은 세끼 밥을 굶지 않기 위해 수없이 많은 땀을 흘리며 노동해왔다. 땀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오늘의 시장경제이고 경제의 원리며 또 자유의 원리다.

 

그 이후에는 땀을 흘리는 과정에서 억압된 사람들과 소외돼 있는 사람들이 평등의 정치 원리를 가지고 나와 민주화를 이뤘다. 이때 이들이 흘린 피가 바로 민주화와 평등의 원리를 의미한다. 이렇게 땀과 피를 흘려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뤄졌다. 땀은 소위 말하는 파이를 키우는 것, 즉 시장과 경쟁을 의미하게 됐으며 피는 파이를 나누는 것, 즉 더불어 사는 사회와 복지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게 됐다. 문제는 땀과 피 둘 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인데 이들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통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장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항상 긴장해라, 경쟁에서 지면 안 된다라고 강조하며 경쟁 원리를 교육하는가 하면 동시에 한쪽에서는사람은 평등하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라며 자유와 평등의 두 개의 가치를 한꺼번에 알려주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이 두 가지만 가지고는 정신분열이 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경쟁의 원리와 평등의 원리가 팽팽하게 대결하고 있을 때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이 바로 눈물, 즉 우애다. 땀과 피의 모순을 새롭게 통합시키고 융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공감을 일으키는 재주, 남을 위해서 울어주는 생명화, 문화 원리, 그리고 우애에 있다. 이것이 민주화와 산업화의 대립각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인 것이다. 이 원리를 우리 사회에 적용해 보자. 산업국가라는 가치와 민주주의국가라는 가치가 물과 기름처럼 쌓이게 돼 국민 간의 가치의 분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서로 왕래 없이 친구가 되지 못해 한국 사회 전체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제는 우애가 필요한 시점이다.

 

생명화의 3대 원천: 바이오필리아, 토포필리아, 네오필리아

그렇다면 이우애(프라테르니테, fraternité)’라는 것은 무엇인가?(흔히박애라고 번역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자연과학자들이 인간의 모든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토포필리아(Topophilia, 장소에 대한 사랑),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생명에 대한 사랑), 네오필리아(Neophilia, 창조에 대한 사랑) 3가지다.

 

먼저 토포필리아는 장소와 공간에 대한 사랑이다. 사람이 죽을 때 나무 하나 없는 고향의 민둥산이 눈에 어른거리고, 심지어 여우도 죽을 때는 무덤에 자기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에 두고 죽는 수구초심, 이게 바로 토포필리아다. 고향이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지만 명절 때만 되면 고향에 내려가는 사람들로 고속도로가 꽉 차는 이유는 바로 이 설명할 수 없는 장소에 대한 사랑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토포필리아를 도시로, 기업으로 옮겨서 보면 바로 사무실이다. 요즘 일부 IT기업이 모바일 시대를 맞아 공동 사무실을 개념을 도입, 1 1책상의 개념을 없애고 직무별 책상을 통해 사무실 최적화를 추구한다고 한다. 직원들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무식한 발상이다.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자기 사무실, 자기 테이블이 있어 의지할 만한 공간이 있어야 거기서 생명력이 창조되는 것이다. 미국의 회사원들은 임원이 돼 사무실 창가자리에 자기 이름 박힌 방 하나를 얻는 것을 출세라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자기 방 하나 만들고 그 구석에 몰래 일기장 숨겨놓을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인간이든 뭐든 생명이 달린 존재는 이 넓은 우주에서 자기 몸을 둘 수 있는 자기만의 어떠한 한 공간을 확보하려 한다. 이것은 생명의 지상명령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은 절실히 원하면서 정작 자기 사무실 공간을 꾸미는 일에는 참 서투르다. 우리의 사무실을 바라보자. CEO들서부터 시골역장까지 초록색 당구대 천 같은 것에 유리를 깔고 쓰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무슨 토포필리아가 나오겠는가. 자기 책상 하나 디자인하지 못하고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서양의 관습을 따라가는 경영자들이 무슨 현대경영이나 창조경영을 하겠는가. 창조성이 생길 리가 없다.

 

다음으로 바이오필리아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생명애, 즉 생명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냥꾼에게 활을 맞은 사슴이 피를 흘리면서 농가에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잘됐다,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이거나 잡아먹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단 사냥꾼이 잡지 못하게 숨겨주고 다친 곳을 치료해 주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배가 고프면 자신이 직접 사냥을 하더라도 자기 집에 들어온 짐승은 불쌍하게 생각해주는 것이 바로 바이오필리아다. 인간뿐이 아니다. 모든 생물이 바이오필리아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살고 진화해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마지막 네오필리아는 성취애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여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신비감이자 살아 있다는 쾌감을 찾게 되는 욕구다. 사실 인간은 벤처(venture) 동물이다. 아기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직립하기 위해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계속 일어나려 하는 것을 보라. 누가 자기에게 그렇게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렇게 시도한다. 넘어지고 아파서 울다가도 마침내 두 발로 일어서게 되면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도 아기는 씩 웃는다. 아픔 속에서 일어섰을 때의 성취욕, ‘나는 살아 있다는 그 느낌이 생명화의 마지막 원천이고 인간과 기업과 정치와 사회를 생명력 있게 지탱하는 마지막 힘인 네오필리아인 것이다.

 

재조명받는 생명자본주의

인간은 이와 같은 3가지 생명력의 원천, 즉 토포필리아, 바이오필리아, 네오필리아라는 자본을 가지고 생산하고 저장하고 재활용하고 학습하면서 오랜 기간 생명자본주의를 실천해왔다. 그러던 것이 근래 300년 동안에 물질을 자본으로 하고 돈, 금융시스템 같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를 바탕으로 한 산업주의, 비생명자본주의가 유행했다. 이것은 지구 역사를 놓고 봤을 때 극히 짧은 순간이라 볼 수 있으며, 특히 북유럽 중심의 특수한 가치관이고 제도일 뿐이지 인류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비생명자본주의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생명자본주의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다만 무한경쟁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옛날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건너뛸 수 있으면서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논리들이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생명자본주의가 다시 재조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흘린 눈물을 받아서 판매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태어나서 흘린 첫 눈물이라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도 있지만 또 이것은 곧 그 사람의 DNA 정보이기도 하니 산업적 가치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생명자본이다. 미국에서는 한 청년이 자신의 블로그에 4년 동안 섭취한 모든 음식의 목록을 적어두었는데 이 기록이 엄청난 가격에 판매됐다. 그런 자료는 세계보건기구도 갖고 있지 않는 귀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을 보자. 거기 있던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지금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 은행나무들의 사진을 10년 동안 매일 찍어서 보관해놓았다고 생각해보자. 지금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가치를 가진 귀중한 자료가 됐을 것이다.

 

더군다나 생명자본이라는 것은 공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료, 생명 자료의 가치가 인정받는 시대가 왔는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기존에 돈 되는 것만 쫓아다니고 있다. 경영자들이 뭔가 새로운 다른 사업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기존에 하던 사업에다가 돈이 들지 않는 생명자본을 찾아서 더하기만 하면 큰 이익을 볼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기존 아이템들에 생명자본을 결합하는 다양성, 이종(異種)결합을 통해 전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결합의 시대 : HOWXYZ 이론

그렇다면 이종 간의 결합에는 어떤 방식들이 있을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만든 ‘HOWXYZ(하우 XYZ) 공식이 있다. 문자의 모양대로 H, O, W, X, Y, Z 6가지 형태로 구분한 것이다.

 

우선 H형은 세로 작대기 두 개를 하나의 가로 작대기로 연결시킨 것이다. 두 가지 가치가 서로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결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흔한 결합의 형태다. 그 다음은 O형으로 계절의 순환 같은 사이클이 돼버린 결합을 의미한다. W형은 V자를 두 개 가져다 붙인 것으로 듀얼시스템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예를 들어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것으로하이브리드(잡종)’이라기보다는 듀얼시스템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X형은 크로스오버를 의미한다. a b가 어느 한 부분에서만 합쳐지는 경우다. Y형은 두 가지가 결합해 완전한 하나로 퓨전되는 결합이다. 마지막으로 Z는 양극 사이를 오고 가는 형태의 결합을 표현한 것이다.

 

앞으로의 생명경제에서 바이오필리아와 네오필리아, 토포필리아가 산업에 실제로 운영됐을 때는 HOWXYZ로 표현되는 결합의 인터페이스와 모순에서 오는 새로운 창조의 힘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평범한 기술의 비범한 결합, 즉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기술인데 비범하게 결합시키는 방법에서부터 생명경제의 창조의 힘과 자본이 나올 것이다.

 

HOWXYZ 결합을 다른 말로 하이브리드(hybrid), 매시업(mashup), 퓨전(fusion), 컨버전스(convergence), 크로스오버(cross-over) 등으로 표현한다. 매시업은 구글맵이 대표적이다. 전국에 있는 모든 식당의 위치와 그 메뉴를 올려서 구글맵에 같이 표현, 운전하면서도 주문을 하고 먹고 갈 수 있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결합이다. 이러한 매시업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는 뜨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별로 없다. 퓨전도 마찬가지다. 1976년에 세계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가 소위 이종(異種)격투기라고 하는 결투를 벌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서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아주 시시하게 끝났다. 복서인 알리는 서서, 레슬러인 이노키는 누워서 서로를 상대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이종격투기가 대세가 됐다. 복싱이나 레슬링은 시시해서 쳐다보지도 않는 세상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명확한 룰과 울타리가 있어서 이거는 네 분야고, 저거는 네 분야다 해서 모든 것이 깨끗하게 나뉘어졌지만 이제는 이종격투기처럼 모든 것이 혼합돼서 명확한 룰도 경계도 없는 퓨전에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조력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존의 것에서 새롭고 재미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이것은 기능주의가 아니라 소통주의이며 이런 모든 것들을 통틀어서 이종결합 혹은 다양성이라고 표현한다. 근본적으로 산업주의 시대와 물질자본주의 시대의 가치관과는 명확히 다르다.

 

이러한 결합은 동양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이고 물질을 쪼개고 쪼개서 단일원소를 확인하는 양자역학까지 간다. 반면 하나이면서도 둘인, 조화로움을 담고 있는 동양의 애매성이야말로 생명주의가 이미 우리에게 대단히 익숙하며 동양에는 이런 전통이 있었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시는 시, 그림은 그림이지만 동양에서는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요, 그림은 형태 없는 시라 하면서 시서화를 한 붓으로 그렸다. 이런 특징은 우리말에서도 나타난다. 나들이(나다, 들다), 엇비슷(다르다, 비슷하다), 시원섭섭, 버려둬(버리다, 두다)라는 말은 서로 상반되는 뜻을 가진 두 단어를 결합했지만 완벽하게 뜻이 통한다. 서양에서는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거냐 저거냐가 아니라이것도 저것도라고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명자본주의를 만드는 힘이다.

 

이종 간의 결합을 통해 생명자본주의로 가는 경향은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교수는 협동 자본주의(Co-op Capitalism)라는 새로운 자본론을 얘기하고 있다. 또 빌 게이츠(Bill Gates)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라는 말을 한다. 교육과 의료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Earth Democracy(Vandana Shiva), Love Economy(Hazel Henderson), Natural Capitalism(Paul Hawken)과 같은 새로운 결합 개념들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종 결합은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의 세계를 가져왔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기가 사람을 찌르면 하나도 안 아픈데 인간이 만든 주사로 찌르면 아프다. 그래서 모기 침의 원리를 연구해서 당뇨병 환자나 어린이들을 위해 전혀 아프지 않는 바늘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선행하고 있다. 또한 나이지리아에는 사바나지역의 흰 개미집의 원리를 이용, 공조시설이 없어도 화씨 30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적 같은 6층짜리 빌딩이 이미 독일 건축가들에 의해 실현됐다. 또 물이 스며들지 않는 연잎의 고분자구조를 연구해 영구히 때가 타지 않는 벽돌을 만드는 연구자들도 있다. 전 세계가 다투어 경쟁하는 분야가 바로 바이오미미크리다. 예전에는 벌집에서 꿀을 취해왔다. 이제는 벌집의 육각형구조를 배워서 인공위성을 만드는 세상이다. 선진국에서 쓰는 축구 골네트를 보면 그물이 얽힌 모양이 육각형이다. 그게 가장 튼튼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떨까? 아마 아직도 사각형 골네트를 쓰고 있을 것이다.

 

모든 창조는 모순과 인터페이스(이종결합)에서 나온다.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를 결합하는 디지로그(digilog)를 잘한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는 ‘either, or(이것 아니면 저것)’ ‘both, and(이것도 저것도)’로 변화시킨 사람이다. 석기시대처럼 ‘+’ 버튼을 누르면 확대되고 ‘-’ 버튼을 누르면 줄어드는 개념이 아니라 손가락을 펴면 확대되고 모으면 줄어드는 신체의 신축성을 디지털 환경에 결합시켜 디지로그를 만든 것이다.

 




창조의 시대 : 생명과 소통을 자본으로

공자가 쓰는()’이라는 것은 현대의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interaction, 상호작용)을 뜻한다. 사람 인() 변에 두 이()자를 썼다. 그래서 인이라는 것은 도덕적이기 이전에 인터랙션을 뜻하는 것이며 반대로 상대방과의 소통과 느낌을 교환할 수 없는 것, 인터랙션하지 않는 것, 그것을 불인(不仁)이라고 한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에서도 인은 전체를 총괄하는 개념이다. 이것만 깨닫는다면 21세기에도 유교는 결코 나이 든 것이 아니다. 공자는 현대 시대에 중요시되는 인터랙션을 일찍이 강조했다.

 

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보자. 물건을 운송할 때, 예전에는 트럭은 육상 운송이고 배는 해상 운송이기 때문에 상호 간에이 없었다. 그런데 1956년에 말콤 맥린(Malcom McLean)이라는 트럭운전기사 출신의 사업가가 철제 컨테이너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물건이 트럭에도 실리고 배에도 실리게 됐다. 그 순간 육상수송과 해상수송이 작은 컨테이너 하나에 의해서 통해버렸고 바로 이것이이 된 것이다. 그때 그 작은 컨테이너가 없었다면 하역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들었을 것이고 무역 코스트는 물건의 크기에 비례해 계속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맥린이 하나의 인터페이스를 바꿔줌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큰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보다도 훨씬 큰일을 했다. 컨테이너라는 패키지를 만들어 세계 자유무역의 꽃을 피운 것이 맥린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주고 우리가 직접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컨테이너 발명과 같은 인터페이스의 변화다. 맥린의 아이디어 하나가 육상과 해상의 인터페이스를 결합시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상만 발전시키고 육상만 발전시킬 것만 생각하지 수상과 육상이라는 다른 시스템을 교차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에는 전문가도 없었고 아무도 노력하지 않았다. 이렇게 인터랙션이 필요한 인터페이스들이 수천, 수만 개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맥린과 같은 사람, 맥린과 같은 생각이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는 인간이 무엇이고 기계가 무엇이냐와 같은 존재론적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 앞으로 철학과 인문학이 기술과 만나서 새로운 자본과 새로운 지혜를 만든다고 말했다. 페이스북(facebook)의 등장을 보라. 예전에는 아날로그는 아날로그, 디지털은 디지털로 구분이 됐기 때문에 디지털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얘기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문자 그대로 자기 얼굴(face)을 보여주며 아날로그의 인간관계를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든 것이다. 이렇듯 이제는 생명과 소통과 공간을 자본으로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리=조진서 기자 cjs@donga.com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단국대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6세였던 1960년에 서울신문 논설위원이 된 이래 언론인, 교수, 평론가로 활동해왔으며 제1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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