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주류 경제학은 아인슈타인급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한다는 가정하에 이론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주목한 행동경제학이 주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급부상한 또 하나의 흐름은 무의식에 대한 고찰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합리적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선택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간 인식활동의 95%는 무의식이고 의식은 단 5%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즉, 평소 대부분의 시간 동안 무의식이 디폴트(default)로 뇌를 지배하다가 필요한 때에 한해 의식이 제한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무의식의 위력을 보여주는 다양한 실험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 사진을 본 사람들은 동물과 관계없는 사진을 본 사람들에 비해 푸마(PUMA) 브랜드를 알아보는 시간이 30%나 빨랐고 선호도도 높았습니다. 개의 사진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유사한 애완동물인 고양이가 떠오르고 이 연상이 고양이과에 속한 푸마로 이어져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를 높였다는 분석입니다.
미국 패스파인더호가 화성에 착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초콜릿 바인 ‘마스(Mars)’의 판매량이 늘었다는 실증 사례도 있습니다. 점심식사 메뉴로 채식 뷔페를 선택한 게 건강을 위한 합리적 이성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출근길에 우연히 비만 체형의 사람을 만났거나 녹색 광고판을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의식이 이처럼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의식 마케팅>의 저자인 정성희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 마케팅전략연구소장은 사람이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가 초당 1100만 바이트에 달하지만 의식이 처리하는 속도는 이의 0.000004%인 40바이트에 불과하다고 강조합니다.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 매번 정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처리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문명의 혜택을 받기 전 인간은 멀리서 맹수와 유사한 물체가 보이면 즉각 달아나는 식의 무의식적 반응에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합리적 판단을 위해 정보를 확인할 때까지 머뭇거리다가는 맹수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 반응은 생존에 훨씬 도움을 줬기 때문에 이런 패턴이 강화 발전됐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받은 것은 고작 2만 년 정도여서 과거 수백만 년 동안 축적된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뇌는 용량이 작지만 매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은 가급적 인지활동을 줄이려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이기도 합니다.
언어로 표현되는 인간의 이성적 반응을 중시했던 종래의 마케팅 관행에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뇌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반응들을 토대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뉴로마케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DBR에 소개된 적이 있는 기아자동차의 K7 브랜드 작명 과정도 뉴로마케팅을 활용한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기술 발전으로 뉴로마케팅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장비들을 비교적 쉽게 활용해 인간의 즉각적 반응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마케터가 의식의 영역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영역에까지 파고들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노려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입니다.
이번 호 스페셜리포트는 뉴로마케팅의 개념과 원리, 적용 사례에 대한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분석과 적절한 적용 대상, 한계를 소개합니다. 인간의 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한 거대한 도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스페셜리포트에 제시된 뉴로마케팅의 원리와 실천 방안들을 토대로 마케팅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시기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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