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 사회와 경쟁

88호 (2011년 9월 Issue 1)


‘나이키의 경쟁자는 닌텐도다’ ‘갤럭시S의 경쟁자는 코카콜라다’….
급변하는 21세기 경영 환경에서 경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들입니다. 실제 나이키는 실적 둔화의 원인을 찾아봤더니 닌텐도 등 게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운동시간이 줄어들어 운동화 매출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또 소비자 조사 결과, 사람들은 휴식시간에 갤럭시S와 같은 스마트폰을 이용하거나 코카콜라 등 음료수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마트폰과 음료수는 소비자의 ‘시간’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쟁에 대한 통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과거 농업사회나 산업사회에서는 경쟁자를 파악하기가 쉬웠고 경쟁 양상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업종의 경계가 명확했던 고체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는 사업 기반을 무너뜨릴 경쟁자가 어떤 분야에서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른바 액체 사회가 됐다는 분석입니다.
 
액체 사회에서는 경쟁자의 불행이 나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과거 한국 섬유업체들은 경쟁사 공장에서 불이 나면 ‘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몇 달간 편안하게 장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사 공장의 화재가 더 이상 좋은 뉴스가 아닙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밀려오면서 경쟁사의 불행이 오히려 중국 제품의 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 섬유업계는 경쟁사 및 협력 업체와 강력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생태계 관점에서 경쟁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액체 사회에서는 경쟁자의 시장을 빼앗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점유율 상승 전략도 위험합니다. 시장점유율(market share)은 기존 시장의 구도를 가정하고 산정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경쟁의 장과 게임의 룰이 수시로 바뀌는 시대에는 경쟁자 시장을 아무리 많이 빼앗았다고 해도 생존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또 경쟁자 고객 뺏기에 몰입하다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져 업계 전체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경쟁자의 점유율이 아닌, 소비자의 시간 점유율(time share)이나 일상 점유율(life share)이 중요하다는 논의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액체 사회에서는 훨씬 복잡한 인과관계도 고려해야 합니다. 다른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으려고 경쟁사의 카피 시도를 강력하게 차단할수록 경쟁자의 대체재 생산 욕구가 커집니다. 단기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방어할 수 있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플랫폼을 확보하거나 네트워크 허브가 되기 위해 공짜로 기술을 공개하거나 암묵적으로 카피를 용인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얼마 전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이 삼성전자에 인수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한 사연이 공개돼 관심을 모았습니다. 눈앞의 경쟁자보다 더 빨리, 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면 승리할 수 있었던 전통적인 경쟁 환경에서 삼성은 탁월한 역량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생태계나 플랫폼, 복잡한 인과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경쟁 구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애써 개발한 OS를 공개하겠다는 안드로이드 제안을 풋내기들의 허황된 꿈으로 여겼습니다.
 
반면 새로운 경쟁 구도에 익숙한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인수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모토로라 모빌리티까지 집어삼켜 모바일 분야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원천기술을 장악했습니다. 이제 삼성은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유료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DBR은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경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 스페셜 리포트를 제작했습니다. 기존 경쟁 전략에 대한 리뷰는 물론이고 새로운 관점에서 경쟁 구도를 파악하기 위한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특히 플랫폼 전략의 성공 요인, 게임 관점에서 바라본 마케팅 전략, 기존 경영 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등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거시조직이론 관점에서 바라본 경쟁에 대한 시각은 우리의 통념을 무너뜨립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액체 사회에서 새로운 전략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 남 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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