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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에서 소비자들은 고품질이나 신기능 못지 않게 차별화된 이야깃거리를 중시한다. 이런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큰 성공을 거둔 화장품업체가 있다. 바로 ‘화장은 편하고 재미있는 것’이란 콘셉트를 만든 베네피트다.
베네피트는 진 포드와 제인 포드라는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설립했다. 예술 교육을 전공한 언니 진은 어린 시절 반딧불이를 얼굴에 바를 정도로 화장 센스가 뛰어났다. 마케팅과 재무를 전공한 동생 제인은 어린 시절 반쯤 먹은 과자를 친구들의 새 초콜릿과 교환할 정도로 사업 수완이 좋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들 자매는 광고 모델로 데뷔했다.
이들은 촬영을 위해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터득한 화장 노하우를 토대로 1976년 샌프란시스코에 The Face Place라는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 1999년 세계적인 명품업체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가 이 회사를 사들이면서 오늘날의 베네피트가 탄생했다.
베네피트의 성공은 여심(女心)을 제대로 꿰뚫은 스토리텔링 마케팅에 있다. 우선, 베네피트는 제품 명을 마치 소비자에게 말을 거는 듯한 이름으로 만들었다. ‘소피아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지’ ‘우리 집 아니면 너희 집으로, 지나’ ‘나를 만져 봐. 그리고도 떠날 수 있으면 떠나 봐’ 연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바로 베네피트의 화장품 이름이다. 그간 ‘딥 워터 모이스처 라이징 크림’이라는 식의 거창한 속성 나열식 제품 명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에게 제품 특성을 은근히 표현하면서 마치 드라마의 대사를 속삭이는 듯한 베네피트의 네이밍 전략은 상당한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다.
회사 명을 ‘The Face Place’에서 베네피트로 바꾼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존 회사 명이 너무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했던 동생 제인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기분이 좋을 때마다 ‘베네 베네(bene bene)’라고 표현하는 걸 듣고 무릎을 쳤다. 여기에 ‘딱 맞는다’는 뜻의 피트(fit)를 붙여 ‘베네피트’라는 회사 명을 탄생시켰다.
둘째, 베네피트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패키징과 광고를 활용했다. 베네피트의 포장은 화장품보다는 과자나 장난감에 어울릴 정도로 개성이 넘친다. ‘닥터 필 굿’의 포장에는 흘러간 옛 영화의 키스 장면이 담겨 있다. ‘섬 카인다 고저스(Some Kind-A Gorgeous)’에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야외 전축이, ‘바디 소 파인(Body so Fine)’에는 럭셔리한 복고풍 일러스트레이션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패키징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15세 소녀부터 향수에 젖어드는 노인에게까지 폭넓게 어필할 수 있었다.
베네피트는 지금까지 광고 모델로 인기 스타를 사용하지 않은 업체로도 유명하다. 베네피트의 광고 모델은 포드 자매가 몇 십 년간 수집한 앤티크 인형들이다. 라나, 베티, 개비, 시몬 등의 이름이 붙은 이 인형들은 각각 핀업 걸, 아메리칸 뷰티, 파티 여왕처럼 각기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면서 제품에 상상력과 개성을 부여한다.
셋째, 베네피트는 차별화된 매장 체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했다. 베네피트는 매장을 단순한 판매 공간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고객 누구나 찾아와 미용 관련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수다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성들이 화장을 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 눈썹 그리기라는 점에 착안해 베네피트는 ‘브라우 바(Brow Bar)’라는 코너를 매장에 설치했다. 바로 여성들의 눈썹 모양 고민을 해결해주는 곳이다.
베네피트의 두 오너는 “메이크업을 하는 이유는 자기 만족이며 최고의 화장품은 웃음”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과거 결점 보완을 위한 기능성 측면을 중시했던 화장의 콘셉트를 즐거움을 위한 화장, 이야깃거리를 소비하는 화장으로 바꿔 큰 성공을 이뤄냈다. 과연 우리 회사의 브랜드는 어떤 콘셉트로 소비자들과 대화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에 신빙성과 구체성을 부여할 패키징, 광고, 매장, 서비스 전략은 갖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정호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