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경영자와 임직원들의 근면성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직장에 대부분의 자원을 투자하는 게 당연한 조직문화였고 이는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시간 중심의 근로 방식’이 한계를 맞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 요인은 한국 기업들이 모방제품 생산에서 혁신제품 생산으로 초점을 전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류 기업의 모방 제품을 더 싸게, 더 빨리 생산해 수익을 창출할 때는 시간과 자원의 투입량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기업들도 혁신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세계 시장을 선점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따라서 근로시간의 양보다 질이 기업성과를 좌우하고 있다. 오래 일하는 것보다 몰입함으로써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이를 제품 개발에 적용하는 노력이 더 중요해졌다.
‘시간 중심 근로’의 한계를 인식한 기업들은 창의적인 산출물을 내면서도 직원들의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시킬 수 있는 조직관리 대안으로 ‘스마트워크(Smart Work)’에 관심을 갖고 있다. 스마트워크는 직원들이 IT 인프라를 활용해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업무를 더욱 생산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워크가 IT 인프라 활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워크스마트(Work Smart)’는 IT 인프라 변화뿐 아니라 업무 평가 및 보상 방식의 변화, 창의적인 산출물을 낼 수 있는 업무 수행 방법론 도입 등 전반적인 업무 관리 방식의 변화를 포함하며 이를 통해 직원들이 ‘똑똑하게 일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워크가 일과 삶의 균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최근 기업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마트워크 프로그램을 활발히 도입하고 있다. 기존 장시간 근로와 ‘페이스 타임(face time·관리자가 직접 부하직원의 근무 모습을 확인하는 것)’을 중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조직 구성원들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예전보다 훨씬 단축시킬 수 있게 됐으며 사무실로 이동하는 시간을 절약해 일과 삶의 균형에 필요한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스마트워크가 오히려 일과 삶의 균형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첫째, 스마트워크 하에서는 시·공간의 경계가 파괴될 수 있다. 먼저 공간적인 측면에서 ‘일하는 공간’과 ‘휴식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스마트워크 도입과 함께 직원들은 IT 기기를 활용해 사무실 밖에서도 사내에서 일하는 것과 유사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관리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부하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할 수 있다.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근무시간’과 ‘휴식시간’의 경계가 파괴될 수 있다. 유연근무제 도입 등으로 공통의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없어지면 근무시간의 범위가 모호해질 수 있다. 스마트워크의 원래 취지는 근로자가 자신의 생활 여건과 생체리듬에 맞춰 가장 몰입할 수 있는 시간에 업무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직 구성원이 체계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지 않으면 불규칙적으로 업무를 하게 돼 오히려 일과 삶의 균형이 악화된다. 장시간 근로가 관행이 된 조직에서는 스마트워크 도입으로 직원들의 근무시간이 오히려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와 관련,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워크스마트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상사 눈치 보며 업무 진행(32.3%)’ ‘얼마나 오래 일하는지로 성실성 평가(26.3%)’ ‘일이 없어도 주말 근무 실시(8.3%)’ 등이 꼽혔다.
둘째, 스마트워크 하에서 관리자는 직원들과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정확도가 떨어지거나 의사소통 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의사소통 중 시각적 요소(얼굴 표정, 동작 등)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5%, 청각적 요소(목소리의 톤, 뉘앙스 등)는 38%를 차지하는 반면, 말의 내용 자체는 7%에 불과하다고 한다. 따라서 스마트워크 하에서 관리자는 의사소통의 부족으로 업무지시를 부정확하게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고도 관리자가 의도한 결과물을 창출하지 못할 수 있다. 구성원 간에도 공간적, 시간적 분리로 직접 만나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의사소통의 빈도도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이 때문에 업무조정이 원활하게 되지 않을 경우 동일한 업무를 중복 처리할 수도 있다.
셋째, 스마트워크 하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감소하면서 구성원 간 유대감이 약화될 수 있다. 각 구성원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하거나 재택근무 또는 원격근무를 하기 때문에 동료들과 직접 만나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일반적으로 조직 내 구성원들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유대감을 느끼고 안정감을 유지한다. 그런데 스마트워크 환경에서는 동료끼리 만나고 어울릴 기회가 줄어들어 유대감과 심리적인 안정감이 낮아질 수 있으며 심리적인 불안감을 가질 수도 있다. 결국 동료와의 협업 기회 감소와 유대감 상실은 심리적으로 개인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오히려 일과 삶의 균형을 훼손할 수 있다.
직원들과 시간적,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관리자도 직원들의 정서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직원들과 일상적으로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직원들의 업무적, 심리적 고충을 제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원들의 일과 삶의 균형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업무뿐 아니라 개인의 상황을 파악하고 직원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시의적절하게 조치를 취하는 게 중요하므로 관리자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