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뉴욕타임스에 ‘탐욕과 부패인가 아니면 근면성인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의 헤드라인은 2009년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된 라즈 라자랏트넘의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라자랏트넘은 한때 7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했던 헤지펀드인 갤리온그룹의 최고경영자였다. 검사는 피고가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투자회사의 뛰어난 경영자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맥킨지, 골드만삭스, 프록터앤드갬블 등과 같은 유명회사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경영대학원 동창 등의 친분을 이용하거나 보상을 해주는 식으로 내부정보를 얻어 수익을 실현했다는 것이다. 훌륭한 경영자라기보다는 탐욕과 부패에 물든 범죄자라는 게 검찰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라자랏트넘의 변호사는 ‘잘게 쪼개진 정보들을 발로 뛰어 한데 모아 분석하고 의미있는 정보로 만드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근면하고 똑똑한 경영자’라고 맞섰다. 이른바 투자의 모자이크기법을 잘 활용한 경영자라는 주장이다.
내부 거래혐의로 도덕과 법의 심판대에 오른 경영자는 라자랏트넘만이 아니다. 워런 버핏의 후계자로 유력시됐던 소콜이나 심지어 버핏의 오랜 동지인 멍거도 자신이 투자한 기업에 자신들의 회사인 버크서 해서웨이의 투자를 유도함으로써 막대한 차익을 올렸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이 사건들의 법적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법을 넘어서서 윤리경영이 기업에 필요한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윤리가 현대 기업 경영의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행동에 나서기보다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기업이 아직도 많다는 지적이다. 윤리경영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탓이다. 윤리경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올바른 기업경영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국제적인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세계화 시대의 기업에 점차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2010년 11월 공표한 ISO 26000의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둘째, 사업상 의사결정과 윤리적 의사결정은 별개라는 이른바 ‘분리의 오류(Separation fallacy)’가 점점 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해관계자에게 영향을 끼치며, 따라서 윤리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셋째, 윤리경영은 기업 성과에 기여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에 영향을 끼치거나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기업이 이해관계자를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가치 창출과 거래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자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기업은 여러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가치를 창출하고 주고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지를 파악해야 기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최근 ‘워크스마트(Work Smart)’ 트렌드는 단순히 새로운 방식으로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식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도 포함된다. 행복추구권, 성희롱, 다양성에 따른 차별해소, 인간적인 처우 등 당연한 인간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과중심주의에 따라 상대적으로 덜 인정받고 있는 종업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탁월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는 B급 종업원이나 저성과자에 대한 인간중심적 접근이 필요하다. 인권 보장은 협력업체의 종업원이나 파견근로자 등과 같은 간접노동자들에게도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 등에 관심이 많다. 이러한 가치관의 구체적 실현은 윤리경영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윤리경영은 이제 기업 경영의 핵심 키워드이며, 더 나아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사회 전반의 흐름이기도 하다. 윤리야말로 기업 근간인 인간 존재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문형구 한국인사조직학회장•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hkmoon@korea.ac.kr
필자는 서울대 영문과와 연세대 대학원(경영학 석사)을 졸업한 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박사학위(조직행동론 전공)를 취득했다. 1993년부터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비영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사는 신뢰, 조직시민행동, 문화지능, 조직문화, 윤리경영과 혁신, 기업의 사회공헌, 비영리조직 경영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