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한국 속담은 매우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 잃고 외양간을 ? 고쳐야 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이하고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리스크 컨설팅회사인 크롤(Kroll)의 르네 윤 한국 사무소 대표가 한국 기업들에게 던진 충고다. 윤 대표는 MIT에서 바이오테크를 전공한 후 다수의 컨설팅 회사에서 지적재산권 보호, 정보보안, 기업부정 행위, 조직 내부통제, 소송 지원 전문가로 활동했다. 2005년 크롤 한국 사무소가 개설된 이후 한국 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다. 크롤은 미국 최대 보험 중개회사인 마시 앤 맥레넌의 자회사로 전문 조사, 정보 분석, 금융, 보안 및 정보 기술 등 기업 리스크 매니지먼트와 관련한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기관리 못하면 기업의 성장은 없다
“물론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면 제일 좋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곳에서 돌발 악재가 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9·11 테러를 예를 들어보죠. 1990년대에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지하에서 폭탄이 터져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WTC나 미국 정부도 이에 관한 위기관리 대처법을 마련하느라고 법석을 떨었죠.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대처법은 폭탄이 지하에서 혹은 지상에서 터졌을 때 어떻게 대비하느냐에만 국한돼 있었습니다. 공중에서 비행기가 날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이에 대비를 안 했기 때문에 처참한 사태를 맞은 겁니다. 이것이 바로 소 잃고 반드시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윤 대표는 한국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과 관련, 크게 3가지 문제점을 꼽았다.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기업보다 먼저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리더 마인드가 부족하며 △위기관리에 있어 최고경영자(CEO) 또한 예외가 있을 수 없음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한국 기업들은 위기관리를 반드시 갖춰야 할 아이템이 아니라 사치품으로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의 규모가 세계 10위 수준이지만 막상 기업 CEO들 스스로가 인식하는 수준은 낮은 것 같아요. 위기관리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권유하면 ‘우리 회사는 이제 구멍가게 수준인데 뭐 벌써 그런 걸. 한 10∼20년 후에나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리더 마인드도 많이 부족해요. 동종업계에서, 특히 라이벌 회사가 한다고 하면 따라가긴 하지만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예외 조항을 많이 두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보나 기술 유출, 보안과 관련한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누구나 예외는 없다’는 겁니다. 일단 시행령이 나오면 경비부터 CEO까지 회사의 모든 직원이 다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 중 CEO나 임원이 소지품 검사대를 통과하거나 그들에게 온 방문객이 일지를 작성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위기관리란 것이 말은 거창하고 좋지만 사실 실천하기는 매우 힘든 것 아니냐’는 질문을 일부러 던졌다. 당장 눈앞에 놓인 과제를 하기도 힘든데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도 모를 위험을 대비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