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세계 남자 테니스계의 1인자로 군림했던 피트 샘프라스는 대포알 서브로 유명했다. 그가 세계 테니스계를 지배하는 동안 샘프라스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렉 루세드스키나 마크 필리포시스처럼 서브 자체는 샘프라스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선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 중 그 누구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쓸쓸히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 그들을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필리포시스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중년 여성들과 데이트하는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출연자로 나와 테니스 팬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들의 실패 요인은 간단하다. 서브는 따라 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전광석화와 같은 샘프라스의 완벽한 발리, 강력한 그라운드 스트로크 능력 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샘프라스의 상징은 대포알 서브지만 그 서브만 따라 한다고 누구나 피트 샘프라스가 되는 건 아니었다.
현재 세계 1위인 로저 페더러는 테니스 역사 상 가장 우수한 선수다. 클레이코트에서는 우승하지 못했던 샘프라스와 달리 페더러는 하드, 잔디, 클레이코트를 가리지 않고 4개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우승 횟수도 16회로 가장 많다. 서브, 포핸드, 백핸드, 발리, 스매싱 등 페더러가 구사하는 모든 기술은 테니스 교과서 그 자체다. 쓸데없는 동작은 전혀 구사하지 않은 채 우아하고 간결하게 위닝 샷을 상대방의 코트에 꽂아 넣는다. 페더러가 압도적인 위용을 뿜어낼 동안 그의 경쟁자들은 페더러와 자신을 비교하며 결점 보완에 나섰다. 서브는 좋지만 영리한 플레이를 하지 못했던 앤디 로딕은 여러 명의 코치를 교체하며 스트로크와 발리를 향상시키려 노력했고, 파워가 부족했던 레이튼 휴이트는 파워를 보강하는 데 힘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페더러를 당해내지 못했다.
뜻밖에도 페더러를 침몰시킨 대상은 라파엘 나달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었다. 나달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테니스 역사를 스쳐간 여러 스페인 선수와 마찬가지로 나달 역시 반쪽 짜리 클레이코트용 전문 선수라고만 여겼다. 스트로크 자세는 괴상했고, 서브는 강력하지 않았으며, 나머지 기술도 다 어설펐다. 가진 건 오직 튼튼한 다리와 무지막지한 힘을 바탕으로 한 끈질긴 수비 능력뿐이었다. 상대방이 어떤 샷을 날려도 가공할 만한 코트 커버 능력으로 이를 미친 듯 걷어내면 상대방이 제풀에 지쳐 실수를 범할 때 포인트를 따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효율성이나 아름다움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테니스였다.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많은 사람들의 전망과 달리 나달은 빠른 속도로 두각을 나타냈고,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연달아 페더러를 격파했다. 클레이코트 밖에서는 우승하지 못할 거라던 예상도 깨고 페더러의 안방이던 2008년 윔블던, 2009년 호주 오픈 결승에서도 잇따라 페더러를 무너뜨렸다.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결승전으로 불리는 2008년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이 벌어졌을 때 국내 한 방송사의 해설위원은 노골적으로 페더러의 편을 들며 “나달의 샷이 지저분하고, 스윙은 거북하다”고 말해 논란을 낳았다. 감독 출신인 이 해설자에게 나달은 이해하기 어려운 선수였을지 모른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가치관과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나달이 페더러처럼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테니스를 구사했더라면 과연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나달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페더러와는 완전히 다른, 테니스 역사상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방식의 플레이를 했다는 점이다. 정석이 아니고, 아름답거나 효율적이지도 않으며, 부상 위험까지 높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독창적 플레이를 했기에 나달은 세계 최고가 됐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1등 기업의 전략을 답습하거나, 1등과 비교한 자신의 약점을 개선한다고 해서 누구나 1등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전략을 세울 때 성공 확률이 더 높아진다. 개선과 보완은 산업화 시대의 화두다. 이제 다름, 의외성, 다양성을 추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