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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전쟁'의 본질 꿰뚫은 90분 토론

강아름 | 52호 (2010년 3월 Issue 1)
경영학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경영학’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MBA 졸업이 탄탄한 인맥을 쌓는 일 이외에 지식 측면에서 어떤 가치를 주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 역시 하버드 MBA스쿨에 오기 전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한 학기를 다니고 나니 그야말로 오해임을 깨달았다.
 
하버드 MBA 수업은 케이스 스터디(사례 연구)가 대부분이다. 필자도 하버드에 오기 전에 과연 사례 연구 발표만으로 90분 수업을 하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실제로 겪어본 사례 연구 위주의 수업은 매우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특히 수업이 끝난 후 수업 내용을 기억하는 데 사례 연구만 한 방식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4P와 SWOT, 마이클 포터 교수의 5 Forces 이론 등을 익히는 게 경영학의 전부라고 오해하는 사람, 사례 발표만으로 90분 수업이 가능하냐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젠 리브킨 교수의 전략(Strategy) 수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략 수업은 MBA 학생들이 미래의 최고경영자(CEO) 입장에서 회사 경쟁력을 강화하여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방법론을 배우는 수업이다. 리브킨 교수는 오랫동안 모니터그룹의 파트너로 재직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다. 게다가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수업 스타일로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대단하다. 그중에서도 코카콜라와 펩시의 사례를 분석했던 수업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코카콜라와 펩시 두 회사가 수십 년간 엄청난 수익률을 유지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교수님께서는 아주 직설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하신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열댓 개의 손이 올라간다.
 
독일에서 컨설팅을 하다 온 크리스토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탄산음료 산업에서 코카콜라와 펩시는 시럽 회사입니다. 공급업자로부터 재료를 받아 시럽을 만들어 가공업자에게 넘기고 거기서 잘 포장된 음료를 우리 같은 소비자가 슈퍼에서 구매하는 구조죠. 한마디로 가치 사슬의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두 회사는 1990년대부터 급격히 확장된 소매업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넓은 시장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도록 가공업자들을 공격적으로 포섭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커진 음료 시장을 두 회사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겁니다.”
곧바로 교수님의 반론이 이어진다. “그렇게 수익률이 좋은데 왜 다른 회사들은 못 따라하는 걸까요? 가령 여기 밥이랑 제가 그냥 회사 하나 차려서 음료수를 판다면 어떨까요?” “힘들겠죠. 코카콜라와 펩시가 선발 주자로서의 엄청난 프리미엄을 가지고 음료 매장의 진열대를 압도하고 있으니까요. 작은 회사가 소매업자들에게 새로운 브랜드의 음료를 파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교수님이 다시 반문한다. “왜 그런가요? 소매업자 입장에서는 상품 종류가 다양할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이런 응답이 오고 갈 때마다 발표를 기다리는 여러 개 손들이 올라가고 수업은 열기를 더해간다. 교수님이 다른 학생을 가리킨다. “맥스가 대답해보세요.” 맥스는 “코카콜라와 펩시가 이미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들여 형성한 브랜드 이미지가 미국인, 아니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상품에서 수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고 답했다.
 
교수님이 웃으면서 계속 질문을 던지신다. “그럼 저와 밥이 만든 회사도 광고하면 되죠. 안 그런가요?”
 
질문이 나올 때마다, 학생들은 더 깊이 생각하고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도록 자극받는다.
 
“그렇게는 못 합니다. 왜냐하면 코카콜라와 펩시는 이미 그 규모가 대단히 커서, 막대한 예산 비용 내에서 원하는 스케일의 광고 비용을 충당할 수 있지만, 작은 회사는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 말을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가 있습니까?”
 
“…”
학생들이 몇 초간 머뭇거리는 사이에 중국에서 온 이디가 손을 든다.
 
“네. 4번 자료에 코카콜라의 판매 가격과 코카콜라 한 캔의 비용 요소를 정리해놓은 차트가 있습니다. 이 차트에 따르면 코카콜라는 캔당 수입의 43%, 즉 42센트를 광고와 마케팅에 투자합니다. 마케팅 비용이 42센트인 이유는 코카콜라가 대기업이므로 판매량이 늘수록 마케팅 비용이 줄어드는 ‘규모의 경제’ 효과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규모 경쟁사들이 다른 원가 부문을 동일하게, 혹은 더 싸게 한다 해도 코카콜라 수준의 마케팅을 진행한다면 당연히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겠죠.”
 
리브킨 교수가 다시 등장했다. “아주 좋아. 결국 이 산업에서는 규모가 매우 중요하단 얘기군. 아까 크리스토프가 듀오폴리(두 기업의 독점)를 언급했는데, 코카콜라와 펩시의 독점 구도가 이 산업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기에 두 기업 모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경쟁 구도가 결과적으로 두 회사 외의 다른 잠재적 경쟁자들이 산업에 진입하는 것을 어렵게 했습니다.”
 
“흠…. 흥미롭군요. 더 설명해보세요.”
 
“펩시라는 라이벌이 없었다면 코카콜라는 수십 개 작은 회사들과 경쟁해야 했을 겁니다. 펩시라는 막강한 경쟁자는 코카콜라로 하여금 꾸준히 소비자 요구에 맞는 혁신을 단행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두 회사의 끊임없는 경쟁과 혁신은 소규모 콜라회사들이 들어설 틈을 없앴습니다.”
 
토론 주제는 코카콜라와 펩시의 가격 정책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두 회사가 팽팽하게 경쟁한다면 가격을 서로 인하하려 들만도 하다. 하지만 펩시가 가격을 내렸을 때, 코카콜라는 오히려 가격을 올렸다. 펩시가 주도하는 가격 할인 경쟁에 가담하기 시작하는 순간, 소모적인 가격 할인 전쟁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악순환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덕분에 두 업체 모두 아직까지도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한 학생의 분석이 이어진다.
 
리브킨 교수가 또 질문을 던졌다. “그럼 코카콜라와 펩시 중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입니까?”
 
한 학생이 “둘 다 승자입니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경쟁으로 각자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고, 몇몇 학생들이 동의했다.
 
“그럼 이 산업에는 모두 승자뿐인가요?” 리브킨 교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때 캐롤린이 손을 들었다. “물론 두 회사가 승자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잘 보이지 않는 패자도 있습니다. 저는 두 회사로부터 시럽을 받아 탄산음료를 가공하는 업체, 코카콜라와 펩시에 재료를 공급하는 회사들이 패자라고 생각합니다. 5번 자료를 보면 코카콜라와 납품업체의 수익률을 볼 수 있습니다. 가공업자의 수익률은 불과 4%에 불과한 반면 코카콜라는 무려 30%가 넘습니다. 또한 자료상으론 나타나지 않았지만 코카콜라 생산에 차지하는 설탕, 물 등 원재료비는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공급업체들의 마진과 협상력이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리브킨 교수의 질문 공세와 학생들의 응답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흥미롭군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으니 좀 더 분석해보도록 합시다. 여기서 왜 가공업자들과 재료 공급자들이 힘이 없습니까?” “시럽을 만드는 회사는 코카콜라와 펩시 둘뿐인 반면, 공급자와 가공업자는 백 개가 넘기 때문입니다. 코카콜라의 시럽 제조법이 극비 사항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럼 콜라를 진열하는 소매업자들은 어떤가요? 왜 힘이 없죠? 다른 상품들 가져다놓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소비자들은 또 어떻고요?”
 
“두 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때문에 손님들이 콜라와 펩시를 찾습니다. 소매업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콜라나 펩시를 비치해야 합니다. 또한 소비자들은 물이나 주스보다 가격이 싼 콜라를 선호하기도 하고요. 콜라의 중독성은 대단하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 전체 가치 사슬에서 시럽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두 회사, 코카콜라와 펩시가 막강한 파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교수님이 맞장구를 친다. “바로 그겁니다! 펩시 사장이 한때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펩시 판매량의 50% 이상이 펩시를 하루에 8캔 이상 섭취하는 소비자들 덕이라고.” 마지막으로 후발 주자 펩시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코카콜라를 상대로 벌인 전략들을 평가한 후, 리브킨 교수가 학생들의 토론 내용을 정리하며 수업을 마무리한다.
 
“오늘 토론은 참 훌륭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산업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다 확인할 수 있었어요. 오늘 수업에서 논의했듯이 왜 한 산업은 잘나가고, 어떤 산업은 사양 산업인지를 한 가지 요소만으로 결정짓기는 어렵습니다. 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 산업의 수익성은 주로 5가지 요소로 분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고 있는 탄산음료수 산업은 이 5가지 요소가 모두 두 회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아마 이번 학기에 배울 산업들 중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산업일 겁니다.”
 
자연스럽게 포터 교수의 5 Forces 이론이 담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등장한다. 포터 교수는 산업의 수익성을 평가하는 그 유명한 5 Forces 이론을 창시해 세계적인 석학으로 거듭났다. 신규 진입자의 위협, 대체제의 위협, 구매자의 협상력, 공급자의 협상력, 현재의 경쟁자라는 5 요인이 방금 수업에서 학생들이 언급한 내용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 Forces 이론을 배우기도 전에 현실 속 사례를 통해 중요한 전략 분석 틀이 학생들 머릿속에 각인된 셈이다. 덕분에 학생들은 이 분석 도구를 쉽게 습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산업을 연구할 때에도 이를 자유롭게 응용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렇듯 현장감 넘치는 수업이 가능한 것은 물론 교수의 능숙한 토론 진행 덕분이다. 오랜 연구와 끝없는 수업 준비는 하버드대 교수진들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물론 학생들 또한 그에 걸맞은 수업 준비를 마치고 온다. 전략 경영 수업처럼 수업 내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수업에서 교수의 눈에 띄는 의미 있는 참여를 하려면 15페이지가량의 케이스를 숙독하고, 정량 및 정성 자료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렇게 오랜 준비를 하는 것이 고되긴 해도, 예습 과정은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열띤 논의 속에서 교수와 다른 학생들로부터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통찰력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날의 수업을 딱딱한 강의 형식으로 배웠다면, 몇 달이 지난 지금 필자가 이 모든 대화 내용을 이렇게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하버드 MBA에서는 살아 있는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꼭 필요한 지식과 통찰력을 배운다. 교수와 학생들이 수업에 임하는 열정적인 자세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스쿨,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중국 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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