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合生, 따로 또 같이

안민호 | 36호 (2009년 7월 Issue 1)
세계 경제의 상황이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지난해 말 절정에 달했던 위기 국면이 어느 정도 진정됐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위기의 규모, 범위, 지속 정도에 대해 신뢰할 만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쉽사리 줄지 않는다.
 
불안감은 비단 경제 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사회, 문화, 언론 등 현대 사회의 각 분야에서 혼돈, 우연, 비예측성이 높아지고 있다. 베이징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 폭풍이 몰아치는 복잡계 사회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계 사회에서는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우연과 필연, 외부와 내부, 안정과 불안정,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 중심과 변방이라는 전통적 구분이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달라도 다르지 않고 같아도 같지 않은,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가 지배하는 사회다. 이 변화의 물결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합생(合生·concresce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A.N. 화이트헤드가 여러 생물체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는 공진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합생은 고유의 특성을 지닌 개체들이 유기적 결합을 통해 또 다른 독립적 개체로 진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각 개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존된 결합이라는 점에서 전통적 개념의 ‘통합(synthesis)’과는 다르다.
 
각 개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유지된다는 점은 이 결합이 고정적이지 않고, 상황과 목적에 따라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즉 ‘통합’의 요체는 어떻게 잘 합성하는가에 있지만, ‘합생’은 어떻게 하면 잘 쪼갤 수 있느냐의 문제다. 20세기의 가치인 통합 대신 21세기 가치인 합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잘 쪼개놓아야 상황과 목적에 맞게 잘 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생 결합의 가장 좋은 예는 위키피디아다. 위키피디아는 수십만 개의 잘 쪼개진 모듈(자료)로 이뤄진 합생적 정보 네트워크다. 만일 오늘 저녁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하면 위키피디아에는 곧바로 관련 항목이 등장한다. 세계 각국의 핵 실험 역사, 핵 실험 장소에 관한 지역 정보 등 이제껏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수백, 수천 개의 관련 자료들이 순식간에 링크로 연결된다. 잘 쪼개진 모듈에서는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변화에 대한 대응도 빠르다. 참여, 공유, 개방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웹 2.0 역시 합생의 개념을 활용한 대표적 예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특징인 현대 사회에서는 합생의 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창조적 혁신이라는 개념 역시 분리와 조합이 지속적, 유기적, 자율적, 창조적으로 발생하는 합생의 문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기업 경영, 정치, 문화 활동, 국제 교류와 협력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차지하는 합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 사회 역시 빠른 속도로 다문화 복합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라는 낡은 구호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우리는 여럿일 때 경쟁력을 가진다.
 
필자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펄로 뉴욕주립대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숙명여대 한국문화교류원 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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