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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윤활유 ‘신뢰’의 기술

로더릭 크레이머(Roderick M. Kramer) | 36호 (2009년 7월 Issue 1)
신뢰’는 경제를 돌아가게 만들고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초강력 윤활유라는 평가를 받는다. 불티나게 팔린 경영 베스트셀러들은 한결같이 신뢰의 힘과 미덕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학자들도 신뢰의 이점을 보여주는 연구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이 와중에 월가를 뒤흔든 금융 사기꾼 버나드 매도프가 등장했다. 매도프는 희대의 금융 사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찰스 폰지의 이름을 딴 ‘폰지(Ponzi)’ 수법으로 650억 달러의 사기극을 벌였다. 매도프에게 속은 한 브로커는 그를 두고 “이 사람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의 뛰어난 혈통, 명성이 신뢰를 불러일으킨다”고 표현했다.
 
겉으로 보기에 매도프는 뛰어난 투자 실적, 화려한 이력서, 전문성, 인맥 등 신뢰할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뛰어난 금융 전문가나 경영자 등 많은 사람들이 매도프의 사업이 매우 안전하다고 믿었다. 이 사실을 생각해보면 신뢰에 대해 좀더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쉽게 상대를 믿는 것일까?
 
더구나 매도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 첫 번째 인물도 아니다. 엔론, 월드컴, 타이코 등 지난 10여 년간 지저분한 사건들이 종종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업을 신뢰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30여 년간 사회심리학자의 길을 걸어온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신뢰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해왔다. 최근 엄청난 규모로 대중의 신뢰가 농락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매일 또 다른 스캔들이 발생할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필자는 왜 우리가 그토록 쉽게 신뢰를 하며, 왜 가끔씩은 믿지 말아야 할 대상을 믿는지,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논문을 통해 인간은 유전적 요인 및 학습의 영향으로 상대를 쉽게 신뢰하게 되며, 신뢰는 인류가 지금껏 번성할 수 있었던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인간은 상대를 쉽게 믿어버리는 습성 때문에 종종 문제에 부딪힌다. 믿어도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때도 많다. 믿을 만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다는 점은 사회적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 보면 믿지 못할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한 개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명하게, 제대로 신뢰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를 ‘절제된 신뢰’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신에게 계속 올바른 질문을 던지다 보면 절제된 신뢰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왜 사람이 쉽게 상대를 믿는지부터 살펴보자.
 
신뢰는 인간의 본능
모든 현상은 인간의 두뇌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의존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사실을 증명해주는 놀라운 근거가 하나 있다. 신생아는 태어난 지 한 시간 이내에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의 눈과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놀랍게도 자신을 보살피는 사람의 표정도 흉내 낸다. 아이의 엄마는 단 몇 초 내에 아이의 표정 및 감정에 반응하고 똑같은 감정을 표현한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신뢰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나타난다는 뜻이다. 신뢰는 생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에 큰 도움을 준다. 사회심리학자 셸리 테일러는 신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두뇌를 발달시키는 결정적 요소로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특성을 꼽는다. 배려와 사랑은 부모와 자식의 유대 관계, 조직 문화, 기타 온건한 사회적 관계 등에서 나타난다. 이는 하나의 생물체로서 인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진화 역사를 살펴봐도 인간이 왜 상대를 쉽게 신뢰하고자 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연구 결과를 보면 감정을 통제하는 두뇌 작용 또한 신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경경제학자 폴 자크는 인체 내의 강력한 천연 화합물 옥시토신이 신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옥시토신은 출산을 돕고 모유 생산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옥시토신 성분이 들어 있는 스프레이를 코에 뿌리기만 해도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옥시토신을 이용한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옥시토신을 사용했을 때 상대를 더욱 믿었고, 스스로도 신뢰할 만한 행동을 한다는 점이 나타났다. 다른 연구에서도 옥시토신이 긍정적인 감정 상태와 관련이 있으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옥시토신을 주입하면 동물들 역시 좀더 차분해지고, 조용해지며, 불안감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때로는 놀라울 만큼 단순한 신호에 의해 신뢰가 싹트기도 한다. 가령 사람들은 어떤 측면에서건 자신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리사 드브륀은 연구를 통해 이 가설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실험 참가자의 얼굴과 점점 닮아가는 방향으로, 또 점점 닮은 부분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컴퓨터 이미지를 만들었다. 실험 결과, 피실험자는 자신의 얼굴과 닮은 부분이 많을수록 컴퓨터 속의 인물에 대해 높은 신뢰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신과 닮은 사람을 믿는 현상은 이러한 사람이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모임의 구성원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욱 좋아하고 신뢰한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이 ‘내부자 효과’는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한 그룹을 무작위로 작은 소그룹으로 나누는 간단한 일로도 소그룹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다.
 
심리학자 대처 켈트너와 다른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상대를 가볍게 터치하는 행동만으로도 상대방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한 실험자는 피실험자들에게 내용을 설명하면서 게임 시작 전 피실험자들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줬다. 실험자가 짧고 가볍게 등을 두드려준 피실험자들은 파트너와 경쟁하려 하지 않고, 매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켈트너는 세계 각국에서 인사를 할 때 가벼운 접촉이 있는 이유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인사를 할 때 악수를 나누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연구 결과가 뜻하는 점은 간단하다. ‘신뢰를 얻기 위해 그렇게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볼 때 신뢰는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일상적, 반사적으로 타인을 신뢰한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믿는 일도 종종 있다. 임상심리사 도리스 브라더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간이 특정 순간 스스로에게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왜 신뢰하고 있나’ 하고 자문하는 일은 ‘여전히 지구가 궤도를 돌고 있을까’라고 질문하는 횟수보다 적다.”
 
필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어떤 현상이나 사람을 믿는 인간의 이런 특성을 ‘가정에 기초한 신뢰(presumptive trust)’라고 부른다. 물론 이는 인간에게 도움을 줄 때가 많다. 끔찍한 배신의 경험이 없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과 조직에 대한 신뢰를 가진다. 또 신뢰를 통한 긍정정인 경험을 하면서 성인으로 성장한다. 신뢰를 갖고 있을 때 끔찍하리만치 일이 틀어지는 사례도 극히 드물다. 신뢰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 자체를 불합리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판단이 잘못됐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신뢰가 인간의 본성이듯, 실수도 인간의 본성이다. 실수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인간의 두뇌는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두뇌 때문에 배신당할 때도 많다. 사람은 외적인 유사성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를 바탕으로 상대를 믿어도 좋을지 판단한다. 이러한 습성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더해져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이러한 특성은 판단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확증 편견(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른다. 확증 편견으로 인해 사람은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반면 자신의 가설과 반대되는 근거는 무시한다. 필자는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방식은 피실험자에게 앞으로 자신의 파트너가 될 인물이 신뢰를 저버릴 가능성이 있거나,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암시를 미리 해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신뢰를 저버릴 가능성을 미리 알려주면, 피실험자는 상대방을 불신할 징후를 찾기 위해 그를 매우 유심히 관찰한다. 반대로 상대방에 대해 긍정적인 정보를 주면, 피실험자들은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 근거에 관심을 보인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피실험자가 장차 자신의 파트너가 될 사람에 대한 신뢰 수준을 결정할 때 이런 기대 수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이다.
 
사실 사람들은 사회적 고정관념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다면 확증 편견이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정관념은 얼굴, 연령, 성별, 인종 등 겉으로 드러나는 단서와 정직성, 확실성, 호감, 신뢰성 등의 심리적 특징에 관한 사회적인 통념을 모두 반영한다. 물론 이 통념이 옳지 않을 때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믿음을 ‘암묵적 이론(implicit theories)’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묵적 이론이 자신의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암묵적 이론은 상대가 어떤 부류인지를 신속하게 파악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신체적, 재정적 안전 등이 결부된 상황에서 암묵적 이론을 지나치게 믿으면 위험하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과대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협상 방법을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MBA 과정 재학생 중 95%가 ‘다른 사람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나의 능력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급생의 신뢰도, 확실성, 정직성, 공정성 등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을 들은 학생 중 66% 이상이 ‘나는 전체 학생 중 상위 25%에 속한다’고 답했다. 20%는 ‘내가 상위 10%에 속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판단력을 과대평가하는 성향은 사람들이 왜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를 알려준다.
 
편견 외에도 인간의 판단력을 왜곡시키는 대상은 많다. 대다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성격이나 신뢰도를 판단하기 위해 믿을 만한 제3자의 판단에 의존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다. 한 대상에 대한 신뢰가 또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버나드 매도프의 사례가 보여주듯, 신뢰의 전이 현상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에 빠져드는 사례는 허다하다. 매도프는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활용하는 데 귀재였다. 심지어 외부인이 끼어들기 쉽지 않은 배타적인 정통파 유대교 사회에도 손을 뻗쳐 사기극을 벌였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2가지 착각이 너무 쉽게, 많이, 오랫동안 신뢰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고 평가한다. 첫 번째 착각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길거리 범죄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사람들은 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범죄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한다.
 
두 번째 착각은 비현실적인 낙관론이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과대평가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오래 사는 등 자신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적인 가능성이 크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평균 이상의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또 지나치게 단순한 단서를 통해 상대를 신뢰할지 말지 결정한다. 이때 배신당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신뢰성을 나타내는 모든 지표도 얼마든지 조작되거나 날조될 수 있다. 사기꾼을 찾아내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필자는 실험을 통해 거짓된 행동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경영대학원에서 권력 및 협상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면서 직접 실험 내용을 접목해오고 있다. 필자는 수업 시간에 참가 학생 중 일부에게 다음 협상 수업 시간에 상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속임수’를 써보라고 종종 요구한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신호를 전달하는 행동과 관련 이론을 마음껏 응용해도 좋다고도 말한다.
 
필자의 요구를 들은 학생들은 과연 어떻게 할까? 그들은 대개 자주 미소를 짓고, 계속 상대와 눈을 맞추며, 상대의 팔이나 손을 부드럽게 건드렸다. 특히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가벼운 터치를 전략적으로 사용할 때가 많았다. 학생들은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즐거운 농담을 많이 건네고, 실제 협상을 진행하는 중에 열린 태도를 갖고 있는 듯 행동했다. 즉 “정직하게 얘기를 나눠봅시다. 그럼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저는 제 패를 모두 드러내 보이는 걸 좋아하죠”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학생들의 노력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렵지 않게 상대방에게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며, 열린 태도를 갖고 있고, 매우 협조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미리 지시를 받지 않은 채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는 은밀하게 협상 테이블 맞은편 학생들 중 절반이 속임수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럴 때조차 누가 속임수를 쓰는 사람인지를 찾아내는 능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학생들이 직접 속임수를 쓰는 사람을 찾아낸 결과와 동전을 던져 아무렇게나 찾아낸 결과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속임수를 쓰는 상대가 협상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은 학생들이 ‘나는 동급생들보다 속임수를 더 잘 잡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HBR TIP] 기업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영향을 준 일련의 사건들
 
대형 스캔들이 터지거나 금융 위기가 닥치면 기업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바닥을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가 항상 낮은 수준에 머물렀던 건 아니다. 정부 기관, 소비자 단체, 기업들은 그동안 감시 기관 역할을 하고 신뢰를 높일 안전 장치를 세우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기업이 신뢰를 악용하는 사례가 또 발생했다. 신뢰를 높이기 위한 시스템이 결코 철옹성같이 튼튼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셈이다. ‘우리가 기업을 지나치게 많이 신뢰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문도 든다. -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편집팀
 
1907 유니이티드 코퍼의 주식을 매점 매석하려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니커보커 신탁이 몰락했다. 이는 미국 금융시장의 공황으로 이어졌다. 전설적인 금융가 J.P. 모건은 주요 은행가들을 한 방에 가둔 후, 위태로운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풀어줬다.
 
1909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미국 철도 운영업체의 주식과 채권에 대한 분석 자료를 발표하며 세계 최초로 공개 주식을 평가하는 업체로 떠올랐다. 신용평가회사들이 성장하자 투자자들이 다양한 자산의 위험도를 손쉽게 평가할 수 있게 됐다. 그 덕에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도 높아졌다.
 
1912 미 법무장관이 허위 광고를 문제 삼아 코카콜라를 법정에 세운 후, 광고업계는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광고의 진실성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 경영주들이 모여 국립감찰위원회(National Vigilance Committee)를 설립했다. 각 지역에서 관련 문제를 담당하던 국립감찰위원회의 하부 기관들이 미국 ‘거래개선협회(Better Business Bureaus·BBB)’가 됐다.
 
1913 1907년 금융시장 공황 여파로 화폐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등장했다. 미국 의회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출범시켰다.
 
19221929 대기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면서 일반 투자자들이 채권이 아닌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미국 주식시장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1929년 10월 ‘블랙 먼데이’로 미국 주식시장은 완전히 무너졌다.
 
1930년대 대공황 동안, 피코라 위원회(Pecora Commission)는 주식시장이 붕괴한 이유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은행업계에서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미국 정부는 기업에 대한 신뢰를 재구축하기 위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여러 감독 기관을 설립했다.
 
1941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 정부는 전례 없이 많은 금액을 지출했다. 하도급 업체들의 예산 남용 사례가 발생하자,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이를 조사하기 위해 ‘특별 상원위원회’를 신설했다.
 
1950년대 투자자들이 위험을 분산하고 관리하기 위해 조심스레 대형 중개업체에 돈을 맡기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처음 등장한 ‘뮤추얼 펀드’가 많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60년대 랄프 네이더의 저서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Unsafe at Any Speed)>는 기업과 소비자의 이해관계 충돌에 관한 인식을 높였다. 미국 의회는 고객 안전 및 환경 보호와 관련된 여러 법안을 통과시켰다.
 
1970년대 미국 정부는 기업이 대중의 이익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규제하기 위해 여러 규제 기관을 신설했다. 모기지 증권이 등장하면서 주택 구매자들은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대부업체들로부터도 돈을 빌릴 수 있었다.
 
1978 미국 증권회사 드렉셀 번햄 램버트는 벤처기업 운영 및 기업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때 유용한 ‘정크본드(고위험·고수익 채권)’ 시장을 만들기 위해 위험 분석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크본드의 인기는 시들했지만, 1990년대 들어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1세기에는 정크본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이 훨씬 많아졌다.
 
1981 일반 대중들이 정부보다 기업을 더욱 신뢰하기 시작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및 각국 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서방 선진국들이 거대한 규제 완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1983 스프링필드 리매뉴팩처링 사의 신임 최고경영자(CEO) 잭 스택은 총 119명의 직원들과 재정 정보를 공유하고, 직원들에게 금융 정보를 해석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열린 경영’의 시초였다.
 
1984 유니온 카바이드의 인도 공장에서 독성 가스가 유출돼 사고 당일에만 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숨지는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경영진의 급여도 치솟았다. CEO에 대한 동경이 커졌고,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미국식 방법을 자사의 비즈니스에 접목하기 위해 분주했다.
 
1995 눈부신 인터넷의 발달로 주식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이 나타났다. 투자자들은 실제로는 별 가치가 없거나 전혀 가치가 없는 정보기술(IT) 업체의 주식을 비싸게 사들였다.
 
1997 이베이는 ‘자체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구매자들이 판매자의 신뢰도를 평가하도록 했다. 34만 명 정도에 불과했던 이베이 회원이 이듬해에는 무려 210만 명에 이르렀다.
 
2000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2000년 3월 역사상 최고점인 5048.62에 이르렀다. 그러나 몇 주 후 25% 급락했다. 결국 IT 업계의 거품은 터졌다(버블 붕괴).
 
2001 엔론 파산 선고 이후 월드컴을 비롯한 여러 업체들의 회계 부정 스캔들이 터졌다.
 
2006 빈민 소액 대출로 유명한 ‘그라민 은행’과 설립자인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라민 은행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최초의 기업이다.
 
2008 주택 시장의 거품 붕괴와 과도한 차입 경영으로 심각한 수준의 신용 경색이 발생했다. 은행들은 기업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투자자들도 은행을 믿지 않게 됐다. 전 세계가 심각한 불황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9 사상 최대의 손실을 기록한 세계 최대 보험회사 AIG가 미국 정부로부터 170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돈으로 임직원들에게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해 큰 지탄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AIG의 이런 결정에 격분했다. 그는 미 재무부에 AIG가 임직원에게 지급한 보너스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모든 법적인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신뢰를 조절하라
지금까지 왜 신뢰를 하는지, 왜 가끔씩 잘못된 대상을 신뢰하는지 살펴봤다. 이제, 제대로 신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신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장점을 취하려면 현명한 방법으로 신뢰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동기, 의도, 성격, 미래 행동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신뢰와 불신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는 일뿐이다. 신뢰를 할 때 사기꾼을 만나면 그가 당신의 신뢰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불신을 선택하면 상대가 정직한 사람일 때 얻을 수 있는 혜택을 놓칠 수 있다. 신뢰에 관한 모든 결정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마음가짐 및 행동 습관을 조정하면 의심의 여지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신뢰를 조절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원칙 1] 자기 자신을 알라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상대를 너무 많이, 너무 쉽게 믿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일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대부분 점잖은 사람들이며, 상대방이 결코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이들은 상대방과 신뢰의 기반을 다지기도 전에 지나치게 빨리 개인적 비밀을 공개한다. 직장에서도 아무런 대책 없이 민감한 정보를 공유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현재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적군인지 아군인지를 제대로 구별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념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떠벌린다. 지나치게 타인을 믿는 태도 때문에 재난이 닥칠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 관계를 맺을 때 지나치게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대의 동기, 의도, 미래 행동에 관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항상 상상한다.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자신의 개인 정보를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잘못된 대상을 믿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상대의 호의에 답례하는 일을 꺼린다. 이들이 지나치게 쉽게 상대를 믿는 사람보다 실수를 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나 상대와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신뢰를 통한 긍정적인 경험을 할 가능성도 낮다.
 
따라서 올바른 신뢰를 위한 첫 번째 원칙은 자신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자신에게 필요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잘 믿지만 잘못된 사람을 믿기 일쑤라면, 수집한 단서를 제대로 해석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단서를 인지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타인을 신뢰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 자신의 행동을 바꿔야 한다.
 
[원칙 2] 작은 일부터 시작하라 신뢰에는 위험이 따른다. 신뢰를 하면서 위험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다만 위험을 상식적인 수준으로 유지할 수는 있다. 특히 인간관계 형성 초기 단계에서는 위험을 상식적 수준으로 유지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상식적인 수준의 위험은 위험도가 낮다는 뜻이다. 사회심리학자 데이비드 메식과 필자는 상대를 신뢰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는 작지만 생산적인 행동을 ‘얕은 신뢰’라고 표현한다.
 
1980년대에 HP가 취한 정책을 보자. HP 경영진은 엔지니어들에게 주말을 포함해 언제든지 복잡한 서류 절차나 허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장비를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이 정책은 도구를 회사 밖으로 가져가는 직원들을 믿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물론 엔지니어들은 장비를 제때 반납했다. 이는 신뢰 정책의 효용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와 직원들의 신뢰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당신이 먼저 신뢰를 표현하는 행동을 하면, 상대도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신뢰할 만한 행동을 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데에는 그다지 큰 위험이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효과는 매우 크다.
 
작지만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자주 하라. 이는 좋은 관계를 구축하려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신호를 전달한다. 사회심리학자 스벤 린스콜드 등 여러 학자들은 작지만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행동들이 긍정적인 상호작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증명하는 수십 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이처럼 위험이 낮은 행동과 위험 수위가 높은 행동을 번갈아 활용하면, 강력하면서도 절제된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원칙 3] 위험에 대비하라 필자는 데브라 메이어슨, 칼 와익과 함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신뢰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살펴봤다. 우리는 연구를 통해 ‘약속 파기에 대한 명확한 대책을 세워놓으면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이 있으면 조직 구성원들이 한층 쉽게 서로를 신뢰한다. 기꺼이 더 큰 위험도 감수하려 든다. 나를 믿는 상대방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나를 믿지만 동시에 대처 방안도 마련해둔 상태다. 그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줄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내 마음도 한층 편안해진다는 뜻이다.
 
복잡한 조직이나 사회 시스템에서는 이따금씩 피할 수 없는 실수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다.
 
필자는 신뢰를 배반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연예 산업을 파헤치기 위해 신참 극작가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소재를 보일 기회를 얻기 위해 에이전트, 독립 프로듀서, 제작회사 경영진을 찾아갔다. 문제는 이 단계에서 아이디어가 도난당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먼저 그 아이디어를 공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종종 생긴다. 극작가 아트 버크월드는 아프리카 왕자의 미국 방문기를 다룬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홍보해왔다. 그는 이 아이디어가 몇 년 후 에디 머피 주연의 ‘구혼 작전(Coming to America)’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1988년 버크월드는 이 영화의 내용이 자신의 아이디어였다며 파라마운트 영화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결국 승소했다.
 
아이디어가 빼앗길 위험에 대비하려면 극의 구성 내용을 먼저 미국 작가조합(WGA)에 등록해둬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아이디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셈이다. 할리우드는 생각보다 작은 세상이다. 작은 세상의 무언가를 세상이 다 아는 진리로 만드는 일은 매우 훌륭한 전략이다.
 
[원칙 4] 강력한 신호를 보내라 작은 행동을 더욱 깊고 포괄적인 신뢰로 키워 나가려면 강력하고 뚜렷하며 지속적인 신뢰의 신호를 보내야 한다. 우리가 보내는 신호 중에는 강도가 너무나 약한 것들이 많다. 게다가 우리는 종종 이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한다.
 
필자는 상호 신뢰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많은 관리자와 부하 직원들이 상대방이 자신을 신뢰하는 수준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과 상대방이 인식하는 정도의 차이, 즉 신뢰의 차이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해 그다지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공명정대하고 정직하며 청렴하다는 것을 상대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설사 알지 못하더라도 곧 그 사실을 식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에 불과하다.
 
강력하면서도 뚜렷한 신호를 계속 보내라. 그러면 절제된 신뢰를 보내는 사람을 모을 수 있다. 또한 당신의 신뢰를 배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물리칠 수도 있다. 신뢰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약하고 일관성 없는 신호를 보내는 이들을 희생자로 삼는다.
 
강인하다는 명성을 얻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성은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떤 관계를 추구하는지를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최선의 방법이다. 로버트 액설로드는 이를 ‘도발 능력(provocability)’이라는 화려한 어휘로 표현했다. 상대방과의 신뢰 관계가 원활하고 공평하게 굴러가기를 원한다면, 당신이 먼저 약간의 신뢰를 보여 기회를 잡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강하고 신속하며 적절하게 복수를 할 준비도 마쳐야 한다.
 
전자는 협력할 의사를 나타내기 위해, 후자는 상대방이 신뢰를 악용할 때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특히 상대방이 반칙을 할 때는 엄중하게 처벌할 거라는 신호를 엄격하고 일관성 있게 보내야 한다.
 
[원칙 5] 상대의 딜레마를 인정하라 당신의 생각에만 파묻혀 있다 보면, 당신이 정해놓은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어려워진다. ‘누구에게 돈을 맡겨야 할까?’ ‘누구에게 수술을 맡겨야 할까?’와 같은 문제들은 모두 신뢰의 딜레마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도 결국 각자의 신뢰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 사람들 역시 우리를 믿어야 할지, 얼마나 믿어야 할지에 대한 확신을 강력하게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망각한다.
 
신뢰 구축 역량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상대방의 관점에 많은 관심을 표한다. 상대방의 생각에도 큰 공감을 보낸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는다. 그들은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불안과 걱정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3년, 아메리카대에서 케네디가 했던 유명한 연설을 보자. 그는 이 연설에서 소련 국민들이 갖고 있는 존경할 만한 특징들을 높이 평가했다. 소련 지도자들과 함께 미국과 소련의 비핵화에 힘쓸 의사가 있다고도 밝혔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 흐루시초프는 케네디의 연설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케네디가 진심으로 냉전을 뛰어넘을 뜻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케네디를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상대로 여겼다.
 
[원칙 6] 사람 그 자체뿐 아니라 그의 역할까지 고려하라 많은 전문가들은 신뢰 구축 과정에서 개인적인 관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주장은 매우 타당하다. 그러나 리더나 권력자를 신뢰하기 위해 반드시 상대방을 직접 만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필자는 데브라 메이어슨, 칼 와익과 함께 단기간에 형성되는 신뢰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의 신뢰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개인적 관계가 신뢰 구축을 방해할 때도 많다. 단기간에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뚜렷하고 명확한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는 특정 역할에 대한 깊은 신뢰가 특정 개인과의 직접적인 경험을 대체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역할을 기반으로 한 신뢰는 그 사람을 선발하고 훈련시키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인간의 판단 능력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심리학자 로빈 도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엔지니어를 믿는 이유는 엔지니어링을 믿고, 엔지니어들이 각각의 역할에 합당한 엔지니어링 교육을 받았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역할은 인간의 직접경험을 대신한다. 상대방의 전문성과 동기, 즉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보증한다.
 
물론 역할을 기반으로 한 신뢰도 나름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 미국 실물경제를 주도했던 기업가들은 세계가 월가의 금융 시스템을 부러워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월가의 금융 전문가들을 신뢰해왔다. 하지만 문제가 있더라도 ‘상대방을 믿어야 하나’라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가 맡고 있는 역할을 배제할 수는 없다.
 
[원칙 7] 경계를 늦추지 말고 항상 질문을 던져라 인간은 배가 고프면 허기가 없어질 때까지 음식에 대한 생각만 한다. 일단 배를 채운 후에야 다른 문제로 넘어간다. 이처럼 인간은 눈앞에 어떤 일이 닥치면 그 일부터 마무리하려 든다. 신뢰에 관한 딜레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특별한 이상을 감지하지 않는 한 다시 의문을 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몹시 위험하다.
 
필자의 연구 결과, 상대를 믿었다 무참히 짓밟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상황이 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사람들은 상황에 대한 판단을 너무 성급하게, 너무 오래전에 끝냈기 때문에 눈앞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다. 부하 직원에 대한 상사의 태도가 바뀌었거나, 조직 구성원 중 누군가가 회사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는데도 이를 전혀 모른 채 안전하다는 믿음만 갖고 살아가는 셈이다. 경계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매도프 사건을 보자. 버나드 매도프에게 일생 동안 모은 돈을 맡겼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에 관해 철저하게 조사했다. 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린 후에는 더 이상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자신이 금융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특히 그를 의심하는 데 주저했다.
 
2차 대전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셀 또한 매도프에게 돈을 잃은 희생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매도프와 함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확인해보니 모두 월가의 최고 인재들이었다. 하나같이 금융 천재라고 평가받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철학과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떻게 그들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당신이 신뢰하는 대상에 대해 항상 질문을 던져라. 당신의 육체적, 정신적, 재정적 안전이 걸려 있는 문제라면 더더욱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상대방을 쉽게 믿는 습성은 어린아이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신뢰는 인류가 지금의 번성을 누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서는 신뢰가 국가의 사회 경제적 활력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고 해서 신뢰가 언제나 개개인에게도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쉽게 믿는 성향은 인간을 매우 위험한 처지로 몰아가기도 한다. 신뢰의 장점만을 안전하게 취하고 싶다면 신뢰를 절제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가 제안한 7가지 원칙이 분별력 있게 상대를 믿는 방법에 관한 모든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7가지 원칙은 당신이 평생 배워야 할 숙제, 즉 ‘현명하면서도 분별력 있게 신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첫걸음이다.
 
[HBR TIP] 현명한 신뢰를 위한 7계명
 
현명한 신뢰를 하려면 다음 7가지 원칙에 따라 마음가짐과 행동 습관을 수정해야 한다.
 
[원칙 1] 자기 자신을 알라 잘못된 대상을 믿는 경향이 있다면, 신호를 해석하는 방식부터 재고해야 한다. 신호를 인지하는 능력은 있지만 신뢰할 만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문제가 있다면,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행동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
 
[원칙 2] 작은 일부터 시작하라 상대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 작은 행동부터 달리해라. 1980년대 초 HP에서 나타난 역학 관계는 훌륭한 예다. 당시 HP 경영진은 엔지니어들이 필요할 때마다 별다른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장비를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이 정책은 회사가 직원들을 믿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전달했다. 직원들이 사측의 신뢰를 악용하지 않을 거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정책이었다.
 
[원칙 3] 위험에 대비하라 약속이 깨졌을 때를 대비해 대책을 명확히 세워두면, 사람들은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된다. 할리우드 작가들은 극의 구성 내용을 미 작가조합(WGA)에 등록해둠으로써 다른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 미리 대비한다.
 
[원칙 4] 강력한 신호를 보내라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도 명확하게 인지할 거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상대를 믿고 있을 때에는 그에 관한 뚜렷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자신의 신뢰를 악용하면 강력하게 보복해야 한다. 상대를 신뢰하고 있거나, 상대가 자신의 신뢰를 악용했을 때 강력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이용당하기 쉬운 대상으로 전락한다.
 
[원칙 5] 상대의 딜레마를 인정하라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보호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때문에 상대방도 당신을 신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혹은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불안해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관계를 맺는 능력이 우수한 사람들은 쌍방의 불안감과 걱정을 없애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원칙 6] 사람 그 자체뿐 아니라 그의 역할까지 고려하라 상대의 역할, 혹은 직급을 보면 그 사람의 전문성과 동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역할까지 생각해야 한다. 미국 실물경제를 주도했던 기업가들은 단지 전 세계가 월가의 금융 시스템을 부러워한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월가의 금융 전문가들을 신뢰해왔다.
 
[원칙 7] 경계를 늦추지 말고 항상 질문을 던져라 신뢰하는 상대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면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경계의 끈을 팽팽하게 조이지 않으면 곤란하다. 상대를 믿었다가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꼼꼼하게 살펴보는 버릇을 가진다.

번역 김현정 jamkurogi@hotmail.com
 
로더릭 크레이머(kramer_rod@gsb.stanford.edu)는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조직 행동을 가르치고 있는 사회심리학자다. 저서로는 2006년 발표한 <신뢰(Trust)>, 2004년 캐런 쿡과 공동 집필한 <조직 내에서의 신뢰와 불신(Trust and Distrust in Organizations)> 등이 있다.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6월 호에 실린 로더릭 크레이머 스탠퍼드대 교수의 글 ‘Rethinking Trust’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 로더릭 크레이머(Roderick M. Kramer) 로더릭 크레이머(Roderick M. Kramer) |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조직 행동을 가르치고 있는 사회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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